여자의 내숭에 대한 속설

 

서로 어느 정도 좋아하는 남녀 관계에서 먼저 성교를 하자고 제안하는 쪽은 거의 항상 남자다. 이 때 여자가 안 된다고 이야기할 때가 많다. 이런 것을 두고 자기도 하고 싶으면서 튕기는 것일 뿐이다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여자는 튕겨야 맛이다라는 말도 있다. 여자는 성교와 관련하여 내숭을 떠는 경향이 있으며, 여자는 어느 정도는 내숭을 떨어야 매력이 있다는 속설 또는 믿음이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는 널리 퍼진 것 같다.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학자들은 이런 믿음이 사회화의 결과일 뿐이라고 단언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적응론(adaptationism)의 논리와 잘 부합하는 면이 있다.

 

여자가 자기도 하고 싶으면서 튕기는 경향이 있는지, 여자가 튕기는 경향이 있다는 믿음이 남녀를 불문하고 널리 퍼져 있는지, 여자는 튕겨야 맛이라는 믿음이 남녀를 불문하고 널리 퍼져 있는지, 튕기는 여자를 남자가 더 매력적이라고 느끼는지 등을 온갖 문화권을 대상으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런 것들이 인류 보편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하고 있다.

 

만약 이런 현상들이 인류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면, 튕기도록 하는 심리 기제가 여자에게 진화했다고, 여자는 튕기는 경향이 있다고 믿도록 만드는 심리 기제가 남녀 모두에게 진화했다고, 여자는 튕겨야 맛이라고 믿도록 만드는 심리 기제가 남녀 모두에게 진화했다고, 튕기는 여자를 더 사랑하도록 만드는 심리 기제가 남자에게 진화했다고 보는 가설들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여자가 튕겨야 하는 적응론적 이유

 

매력도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자신을 전혀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성교를 하고 싶어하는 여자는 거의 없다. 매력이 없는 남자와 성교한 여자는 좋은 유전자를 얻지 못하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성교한 여자는 자식을 혼자 키울 위험이 있다. 따라서 여자는 성교 여부를 결정할 때 남자의 매력 정도와 자신을 사랑하는 정도를 평가하여 그에 따라 결정하도록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글에서 튕김 또는 내숭은 자신도 남자에게 호감을 품고 있거나 남자를 사랑하고 있을 때를 말한다. 이럴 때 튕기는 것이 왜 여자의 번식에 이득인가?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남자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특히 자신이 먼저 남자에게 사랑에 빠진 경우에는 남자의 사랑을 확인할 시간이 부족하다. 남자가 자신에게 얼마나 헌신하는지를 알아낼 때까지 성교를 미루는 것이 적응적일 것이다.

 

또한 성교 요구에 어느 정도 퇴짜를 놓으면 남자가 단기 짝짓기 전략(단지 성교만 원하는 경우)을 취하고 있는지 아니면 장기 짝짓기 전략(사랑과 결혼)을 취하고 있는지 가리기 쉽다. 성교만 원하는 남자라면 어느 정도 이상 튕기면 포기하겠지만 정말 사랑에 빠진 남자는 상당한 기간 동안 성교 요구를 거절 당하더라도 계속 구애할 것이다.

 

둘째, 헤퍼 보이지 않아야 한다. 즉 남자가 성교를 요구할 때 쉽게 응하는 여자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

 

남자는 오쟁이 질 위험이 있다. 즉 아내가 바람을 피워서 남의 유전적 자식을 자신의 자식으로 알고 열심히 보살필 위험이 있다. 따라서 남자는 결혼 상대를 고를 때에는 아무하고나 쉽게 성교를 할 것 같지 않은 여자를 고르도록 진화했을 것 같다. 여자는 튕겨야 맛이다라는 속설은 남자의 이런 심리 기제를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가 쉽게 성교에 응하지 않을 것 같은 여자를 더 사랑하도록 설계되었다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튕겨야 한다.

 

남자는 성교를 하자고 조르고 여자는 아직은 아니라고 퇴짜를 놓으면서 실랑이가 벌어질 때 양쪽 모두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자는 계속되는 퇴짜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계속 구애를 할 정도로 자신을 많이 사랑하는지를 알아내려고 하고, 남자는 자신의 집요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퇴짜를 놓을 정도로 정조를 잘 지키는 여자인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런 실랑이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갈등(남자는 되도록 많은 여자와 성교를 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여자는 아무 남자와 성교하면 손해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에 생기는 갈등)이라는 요소도 개입되지만 평가(여자는 남자의 사랑을 평가하고 싶어하고 남자는 여자의 정절을 평가하고 싶어한다)라는 요소도 개입되기 때문에 매우 복잡미묘할 수밖에 없다.

 

 

 

여자는 자신이 튕기고 있음을 모를지도 모른다

 

어떤 남자와 성교를 하기로 이미 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헤퍼 보이지 않기 위해 튕기도록 여자가 진화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럴 때 이런 과정이 모두 의식될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무의식적으로는 이미 성교를 하기로 결심했지만 그것이 의식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뇌에서 일어나는 모든 정보 처리가 의식되는 것은 아니며, 어떤 것들은 오히려 의식되지 않는 것이 번식에 유리하다.

 

 

 

내숭과 오류 관리 이론

 

여자가 단지 호의를 보이기 위해 미소를 지었을 뿐인데도 남자는 그것을 추파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을 진화 심리학계에서는 오류 관리 이론으로 설명한다. 추파인데도 불구하고 단순한 호의로 해석할 때 남자가 잃는 것(사랑과 성교의 기회를 상실하는 것)에 비해 단순한 호의인데도 불구하고 추파로 해석할 때 남자가 잃는 것(퇴짜를 맞아서 쪽 팔리는 것)이 더 작기 때문에 남자가 웬만하면 추파로 해석하도록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내숭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논리가 적용된다. 여자가 하기 싫다고 말할 때, 진짜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 단지 튕기는 것일 뿐이라고 해석하는 방향의 편향이 남자에게 이득이 된다.

 

만약 그렇다면 성교 여부를 둘러싼 실랑이는 더 복잡해진다. 부모 투자 이론에 따르면 자식을 위해 더 적게 투자하는 남자는 되도록 여러 여자들과 성교를 하는 것이 유리한 반면 여자는 성교 여부를 훨씬 더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요구를 거부하는 일이 많다. 게다가 여자는 헤퍼 보이지 않기 위해 튕긴다. 이것은 임신이 여자의 몸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남자는 누가 자신의 자식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사실에서 도출된다. 여기에 오류 관리 이론에서 도출되는 남자의 인지 편향까지 합쳐진다.

 

성교 여부를 둘러싼 실랑이를 제대로 분석하기 위해서는 이런 요인들을 모두 고려한 모델이 필요하다.

 

 

 

2011-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