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안가면 사람구실 못한다는 인식이 깔려있고, 실제 취업시장에서도 대학스펙이 최우선시 되고 있고, 대한민국 초중고의 교육 역시 일류대학가기 프로젝트 하에 모두 재편되어 있고, 공교육의 지출만으로는 그 무한경쟁에서 이길 수 없어 가계별 재정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각개전투식으로 사교육 시장에 다 발을 담구고 있고..

그래서 사교육이 가계소비에 차지하는 비중이 타국가와는 이미 비교 자체가 불가하고, 마찬가지로 사교육 시장에서 생산되는 부가가치도 엄청나서 대학문제를 건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 거대한 사교육 시장과 관계되어 있는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의 밥줄이 출렁이게 되어 있고..

이러한 "과수요" 때문에 대학만 지으면 돈이 되는 현실은 계속 되어 왔고, 인구감소의 악재만 아니면 지금의 이 비정상적인 교육열기와 사회분위기만으로도 등록금을 눈치껏 높게 책정할 수 있고, 글로벌 대학과 인재 육성이라는 명목하에 정부 지원이나 보조금도 타낼 수 있고, 산학연계를 통해 기업의 지원금도 이끌어 낼 수 있으니, 대학들의 방만한 경영과 문어발식 확장 그로인한 갖가지 부작용이 나타나는 건 당연한 귀결이겠죠.

그렇게 뭉칫돈들이 대학경영진의 호주머니로 들어가 사학비리의 파장을 낳고, 일선 교수들 선에서는 전공분과별 크고 작은 연구개발비 착복으로 나타나고 있죠. 또 안그래도 학맥, 인맥, 연고에 따라 운신의 폭이 결정되는 교수사회의 카르텔이 그 돈의 힘, 곧 임금의 차이 때문에 더욱 공고해 지고 있죠. 대학을 불문하고 정교수와 조교수(및 시간강사) 간에는 임금과 처우에 있어 넘사벽의 차이가 있는데, 그때문에 학문의 뜻을 품고 대학에 입성한 이들의 주관심사가 학문연구가 아닌 정교수 타이틀에 고정되게 되죠. 교수의 길에 들어서서 자기 논문을 발표하지 않은 것은 흠이 되지 않지만, 나이 먹고도 시간강사를 전전하며 먹고사니즘 문제를 해결못하게 되면 그건 자기가 속한 교수사회에서는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거니까..

그러니 다들 연구는 뒷전이고, 어떻게든 라인을 잘 타서 정교수로 출세하려는 의식에만 사로잡히게 되고, 그게 지도교수와 조교수들 간에 희안한 주종관계를 형성하여, 무슨 지도교수가 상전인 줄 착각하는 무뢰배들이 대학사회에서 넘쳐나고 있죠. 근데 너무 막가는 몇몇만 빼고 보면, 또 이 치들이 자기 연구실적은 없어도(=자기 논문따윈 조교한테 다 떠넘기죠) 말빨 좋고 사바사바 하는 정치력이 좋아, 돈되는 큰 프로젝트 따오는 일은 잘하는 터라 샌님같이 공부밖에 모르는 착하디 착한 학자풍의 지도교수 보다 결국 학생들 사이에서 더 큰 인기를 얻게 되죠. 그러니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대학사회는 이 주종관계를 당연시 하는 분위기가 자리잡게 되고, 언론보도를 타는 큰 비리사건이 안터지는 다음에는 다들 조용히 이 체제에 순응하며 대학사회가 그렇게 굴러가고 있죠..

하지만 그 결과, 기형적인 교수사회의 카르텔과 신분제 사회로 움직이는 대학사회의 모습은 더 굳어지고 있죠. 결국 그것이 국제적인 대학의 경쟁력 순위에서 별볼일 없는 연구성과로 점점 뒤쳐지고 있는 한국대학의 현주소를 만들고 있고, 그것은 곧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질낮은 수업을 감당해야 하는 한국 대학생들의 소비자 주권의 침해로 까지 이어지고 있죠. 

뭐 대충만 떠올려 봐도, 한국의 대학사회가 돌아가는 모습이 이 지경인데, 반값 등록금이 이 모든 구조적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좀 회의적입니다. (무작정)등록금 가격에 상한선을 정하는 가격 규제를 하겠다는 것은, 이미 이 방만한 대학사회의 시스템, 그리고 사교육 시장이라는 그 하위 시스템에 자기 밥줄을 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건들게 된다는 소리인데, 그 후속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실질적인 고민들이 전혀 거론되고 있지 않은", "거의 포퓰리즘에 가까운"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이 의제를 부각시키는 것에는 크게 우려의 마음도 들구요..

당장 등록금을 반값 수준으로 다운한다 치면 정부나 기업의 별도 지원금이 없는 소위 이름값 못하는 지잡대 부터 해서 차례대로 폐교가 되거나 통폐합이 될 거고, 나머지 경쟁력 있는 학교들도 다 극심한 구조조정의 진통을 겪게 되겠죠. 물론 이 구조조정의 진통은 대학문제를 정상화하기 위해 반드시 치러야만 하는 댓가임이 분명한데, 문제는 한국사회가 그것을 감내할 내부적인 준비가 되어 있는가는 것이죠. 저는 전혀 그런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보고, 그래서 지금과 같은 식의 진행이 되버리면, 추후 이 문제의 부작용이 가시화 되었을 때, 다시 한번 우리 사회가 큰 진통과 혼란속에 빠져들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거든요. 

가령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해당학교 관련 교직원들의 임금삭감이나 해고 문제가 대대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면 또 한차례 큰 사회적 진통을 치르게 될 것이 뻔한데, 다음 정권에서 그 부담을 어떻게 질 수 있을까요? 그때는 또 공권력 투입해서 무작정 진압하면 될려나요?(=아마 빨간띠 매고 나오는 숫자가 공장하나 폐쇄할 때와는 차원이 다를 텐데..) 

게다가 시내 중심가에 준하는 지역상권이 대개 대학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도시들이 많아 대학이 폐교가 되면, 단순히 그 대학과 그 학교 학생들만의 문제로 끝나지가 않죠. 그 대학이 지역주민들의 생계와 또 지자체의 재정과도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역밀착형 대학들이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이 구조조정의 문제를 지역경제의 측면과도 연계해서, 비용을 보다 최소화하는 방안으로의 구조조정 아이디어들이 필요하겠죠. 근데 지금 그런 문제를 고민하는 분위기를 전혀 감지할 수가 없는데, 저만 모르고 있는 건가요?ㅡ.ㅡ;

암튼 제 생각에 반값 등록금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우선해서 대학에 가야 사람구실을 할 수 있다는 고질적인 의식부터 국가가 팔걷고 나서 적극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그 의식이 만들어 내는 가수요의 거품들이 꺼지면 초중고 사교육 시장의 거품도 자연히 빠지고, 그것과 연계한 대학등록금 문제도 자연히 해결이 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업이 평가기준을 다양화 해 대학 스펙"만"을 최우선해서 뽑는 문화부터 최우선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좋은 대학 안나와도(=혹은 중고등학교만 나와도) 좋은 직장에 갈 수 있던지, 좋은 대학 안나와서 중소기업을 가도 좋은 대학나와서 대기업 간 친구들과 생활의 질에서 크게 차이가 안난다면 굳이 대학에 목매는 지금의 현실은 서서히 사라지겠지요. 하지만 지금 처럼 첫직장의 단추를 어떻게 끼우냐가 평생의 자기 임금수준과, 인생의 질을 결정해 버리는 현실이 여전히 지속된다면 반값 등록금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는 것이 없게 될 겁니다.

오히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이 본질적인 문제들을 은폐하고, 단지 지금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숨통만 조금 튀워주는 미봉책에 그치고 말겠지요. 헌데 그 결과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들이 속출해서 그 사회적 비용과 출혈을 또다시 우리 국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악순환이 예상되기 때문에, 반값 등록금 정책은 이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를 경착륙 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정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됩니다.

제 예상이 빗나가면 저도 물론 좋겠지만, 아무튼 그런 진지한 고민없는 지금의 분위기에 선뜻 동의하기가 힘든 건 사실이네요..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