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는 진화심리학: 데이트, 쇼핑, 놀이에서 전쟁과 부자 되기까지 숨기고 싶었던 인간 본성에 대한 모든 것, 앨런 S. 밀러, 가나자와 사토시 지음, 박완신 옮김, 웅진지식하우스(웅진닷컴), 2008

 

Why Beautiful People Have More Daughters: From Dating, Shopping, and Praying to Going to War and Becoming a Billionaire -- Two Evolutionary Psychologists Explain Why We Do What We Do, Alan S. Miller and Satoshi Kanazawa, 2007

 

 

 

내가 이 책의 존재를 언제 알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아래 구절을 읽고 나서 이 책에 대한 흥미가 조금은 생겼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묵직한 입문서를 원하시는 분들은 이 책을 즉시 내려놓으시고(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다!) 서점 안내원에게 요청하거나 인터넷 서점 검색창에서 새로 검색해서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How the mind works), 로버트 라이트(Robert Wright)도덕적 동물(Moral animals), 앨런 밀러(Alan Miller)와 사토시 가나자와(Satoshi Kanazawa)처음 읽는 진화심리학(Why beautiful people have more daughters) 같은 책을 구입하시기 바란다. (오래된 연장통, 중환, 19)

 

그러다가 이 책을 마무리한(밀러는 책이 완성되기 전에 사망했다) 가나자와 사토시가 도발적인 글을 발표한다는 사실을 아래 글을 통해 알게 되었다.

 

논란기사 하나; 특정 집단 사이의 '매력 편차' 얘기

http://fischer.egloos.com/4577118

 

 

 

한국에서도 이 책이 꽤 많이 팔리는 듯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이 책을 읽어보고 번역도 검토해볼 생각으로 원서와 번역서를 함께 샀다.

 

이 책에 대한 찬사를 모아 놓은 곳에서 David M. Buss가 쓴 An absolute gem of a book(완전히 보석 같은 책이다)이라는 문구가 가장 눈에 띄었다.

 

 

 

본문(원서) 196쪽까지 있는데 현재 131쪽까지 읽었다. 읽으면서 점점 짜증이 났다. 그리고 도대체 Buss가 왜 이 책을 그렇게 칭찬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안 그래도 Buss를 아주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지금 이 책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을 쓸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일단은 머리말(또는 결론)만 써 놓고 나중에 결정할 생각이다.

 

 

 

글을 쓰려고 백과사전을 먼저 뒤져보았는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는 것이 아닌가? 수십 명의 진화 심리학자들이 작당을 하고 진화 심리학자를 자처하는 한 학자를 엿 먹이다니...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An open letter signed by sixty-eight evolutionary psychologists states that "He has repeatedly been criticised by other academics in his field of research for using poor quality data, inappropriate statistical methods and consistently failing to consider alternative explanations for his results."

http://en.wikipedia.org/wiki/Satoshi_Kanazawa

 

다음 글이 바로 그 open letter.

 

Kanazawa's bad science does not represent evolutionary psychology

http://www.epjournal.net/filestore/kanazawa-statement.pdf

 

가나자와를 엿 먹이는 바로 위의 글의 공동 저자 중에는 David M. Buss도 있다. 오락가락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어쨌든...

 

 

 

『처음 읽는 진화심리학』에 장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쉽다.

 

둘째, 최근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최근의 연구도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수십 명의 진화 심리학자들이 떼거리로 욕하는 것으로 보아 최근의 연구를 얼마나 제대로 소개했는지는 장담 못한다.

 

셋째, 대중이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을 다룬다. 그리고 때로는 매우 도발적이기 때문에 재미 있을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매우 용감해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ly correct) 눈치를 보지 않는다.

 

넷째, 온갖 진화 심리학 가설들을 제시하여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하지만 잘못된 내용이 너무 많다.

 

어차피 입문서나 대중서에서 깊이와 엄밀함을 많이 기대할 수는 없다. 쉽게 쓰기 위해 어느 정도 왜곡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나도 인정한다. 문제는 이 책의 오류들 중 많은 부분이 쉽게 쓰기 위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저자가 멍청하거나 무식하기 때문에 생긴 것들로 보인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아무리 대중서라지만 표현이 너무 단정적이다. 그럴 듯한 가설을 제시하고 그에 부합하는 증거를 약간 제시한 다음에 마치 완벽하게 입증이나 된 것처럼 이야기한다.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얻기 위해 이 책을 읽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말리지 않겠다. 하지만 이 책이 진화 심리학계의 정설을 제대로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이 여러 가지 면에서 어설프기 짝이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며, 많은 저명한 진화 심리학자들도 가나자와 사토시가 잘 봐줘야 어설픈 진화 심리학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모든 진화 심리학자들이 가나자와 만큼이나 어설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보기에는 이 책은 비판할 가치도 별로 없다. 이것이 내가 어쩌면 이 머리말만 쓰고 본격적인 비판은 쓰지 않을지도 모르는 이유다.

 

 

 

진화 심리학 초보자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어설픈 점 찾기 놀이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기는 하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이 초보자를 위한 훌륭한 스파링 파트너일지도 모른다. 초보자가 Tooby & Cosmdes의 논문들을 읽으면서 약점을 찾으려고 해 본다면 좌절감만 맛볼지 모르지만 훨씬 만만한 가나자와의 글과 대결해 본다면 좀 더 재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바둑에 비유하자면 프로 기사와 대결(?)하면서 좌절감과 경외감을 느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맞수와 대결하면서 맛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만약 이 책의 번역이 엉터리라면 잘못된 내용이 가나자와의 어설픔 때문인지 오역 때문인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이 책의 번역이 엉터리라 하더라도 내가 이 책의 번역을 비판할지 여부는 지금으로서는 나도 알 수 없다.

 

 

 

2011-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