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대학생들의 피맺힌 절규의 현장을 목격했다. 광화문 인근에서 벌어진 대학생들의 촛불집회에는 숙연함 마저 느낄 정도로 매우 진지했다. 수백명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모였고, 그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 천명이상의 경찰도 보였다. 이들은 왜 서로 대치하면서 긴장스러운 대결 국면을 벌여야만 했을까? 정답은 간단하다. 바로 돈 문제때문이다. 사적인 돈이 아니라 공공교육 성격의 대학 등록금 문제 때문에 이런 대결 양상이 벌어지는 대한민국이 개탄스럽다.

그래서 정동영의 <등록금 폐지>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지지를 보낸다. 등록금 반값 투쟁을 훨씬 넘어 선 혁명적인 대학 교육정책의 근간이 될 정동영의 등록금 폐지공약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가장 충격이다라고 비견될만 하다.

 

 

 

대학 등록금 천만원 시대에 교육비 연간 2천만원 시대에 살고 있는 이 땅의 젊은이들은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한가닥도 찾아볼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하루 자살 숫자는 무려 40명이 넘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수 없을 정도로 자살공화국이 되어버렸다.

이제 대학 등록금 문제는 젊은 대학생들만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큰 대한민국의 사회병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을 타파하고 균등한 교육복지 차원에서 반드시 실시되어야하는게 바로 <무상 교육>이며 이러한 무상교육을 실시하기전에 징검다리로 먼저 해야 하는 것이 대학 등록금 폐지인 것이다. 이러한 선결조건이 성사되어야만이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학벌 위주의 사회와 미친 등록금 폭등현상을 잠재울수 있으며 <교육의 양극화 현상>을 막을수 있다.

 

 

 

정동영은 역시 승부사다. 또한, 진정성있게 대학 등록금 폐지를 주장했다. 5월 29일날 정동영은 대학생들이 100명 모인 동작구청 동작경찰서 앞에서 대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이것은 메인뉴스에 나오지도 않았고  그 흔한 인터넷신문에서조차 언급해주지 않았다. 왜냐면 정동영의 가치가 그만큼 무섭고 두려웠기때문에 정동영을 죽이려면 철저하게 정동영을 뉴스미디어에서 방치하는 전략을 고수하는것이 이명박정권과 친노유빠들에게 일거양득 효과를 주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은 정동영이 나타나자, 대학 등록금이 가장 폭등한 시점이 바로 노무현의 참여정부라고 소리치자, 그 자리에서 곧바로 정동영은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저와 참여정부의 불찰입니다>. 정동영은 자신이 뭘 잘못한가를 누구보다 잘알고 있기에 변명 따위는 애당초 하지 않았다. 참여정부의 교육부장관하고 노무현이 대학 등록금 폭등현상에 가장 큰 책임이 있음에도 정동영이 친노유빠들을 대신해서 대학생들에게 공식 사과한 것이다. 아직도 친노유빠들은 대학 등록금 폭등현상에 대한 책임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

 

 

 

대한미국의 3대 망국병은  1.지역감정과   2.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그리고 3.대학 등록금 문제다. 여기서 정동영은 핵심을 찌른 것이다. 대학 등록금 문제가 곧바로 소득 불평등문제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좋은 대학을 나와야 출세를 하는 대한민국의 사회풍토에서 대학 등록금 문제는 사회 양극화와 정확하게 일치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대학 등록금 문제가 해결된다면 가난한 사람도 출세할수 있는 <개천에서 용이 나는 세상>을 다시한번 재현할수 있다. 현재, 서울대 재학생들의 절대다수가 부모님이 중산층과 상류층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절반이상이 가난한 집안출신의 서울대 재학생이 많았는데 2천년대 들어서면부터 급격하게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 서울대를 싹쓸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불평등 문제는 반드시 소득불평등과 사회양극화 현상을 심화시키게 되어 있다.

 

 

 

정동영은 대한민국 복지혁명의 선두주자다. 그러므로 정동영의 <대학 등록금 폐지>주장은 매우 정당한 처사이며 옳바른 선택이다. 그의 결정을 정치적 퍼포먼스로 몰아가려는 간악한 세력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필자도 잘 안다. 그러나 제아무리 DY를 공격하고 마타도어해도 끄덕없을 비장의 히든카드인 대학 등록금 이슈 문제를 정동영은 가장 먼저 선점했다. 정동영에게는 이제 국민들과 함께 승리만 남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