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6월 1일, 지난 5월에 있었던 '남북 간 비밀접촉'을 공개한 이후, "도대체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특히 공개내용 가운데  "천안함 침몰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하여 더이상 거론하지 않겠으니 제발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가지자", "제발 북측에서 볼 때는 사과가 아니고 남측에서 볼 때는 사과처럼 보이는 절충안이라도 만들어 세상에 내놓자고 하면서 우리 측에서 제발 좀 양보하여 달라고 애걸하였다", "최소한 두 사건에 대해 유감이라도 표시해 달라. 말레이시아에서 다시 만나 이 문제를 결속하자. 그리고 정상회담개최를 빨리 추진시키자고 하면서 돈봉투까지 꺼리낌없이 내놓고 그 누구를 유혹하려고 꾀하다가..." 와 같은 부분은 의문을 넘어서, 황당,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북한 특유의 과장법을 고려하더라도, 공개내용의 구체성과 정황을 따져보면, 전반적으로 북한이 공개한 내용이 사실에 가깝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남북관계도 넓게 보면 외교관계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 양국의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물밑에서는 지속적인 교섭이 진행되는 것은 당연하고,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그리고 국제정치도 국내정치의 연장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이명박정부의 지지기반인 국내 보수세력을 고려한 이중적인 행보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해외사례를 살펴보면, 군사외교적으로 매파 성향을 띠는 보수세력이 집권한 이후 외교관계가 원활하게 잘 풀린 경우도 많죠.

하지만 이번 사태는, 그런 어떤 전문가적인 모습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급습을 당한마냥, 우리 정부는 당황한 모습을 보여줬고, 해명다운 해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분명 지난 10년 민주정부의 대북정책과 많은 점에서 다릅니다. 지금까지 알려지기로는,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습니다.
1. 정경연계
'상생공영정책'을 표방한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 개방, 3000', 즉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경제체제를 개방하면 북한경제의 정상화를 위해 남한의 주도로 대규모 국제 개발지원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즉 남북관계의 출발점을 '북핵'으로 상정하고, 다른 모든 남북 간 문제를 여기에 결부시킨 것입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북핵문제의 개선(북핵포기)을 선결과제로 제시하고, 남북경협, 대북지원을 그것과 연동시킨 정경연계론에 입각한 것입니다. 이는 지난 민주정부 10년간, 북핵을 비롯한 군사적 문제와 남북경협, 대북지원 등을 분리하려했던 정경분리론과 분명 대비됩니다. 민주정부가 남북 간의 군사적 문제를 전체적인 남북관계에서 의도적으로 분리해서, 일시적인 군사적 경색국면에도 불구하고 남북 사이의 대화를 이어나간 것과 비교하면 이명박정부의 정경연계에 기반한 대북정책은 전혀 다르죠.

2. 남북관계의 국제관계로의 종속
민주정부가 국제관계와 구분되는 남과 북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해서, 북한을 둘러싼 국제적 주변 정세변화와 관계없이 대북정책을 추진한 것에 비해, 이명박정부는 북한을 다른 일반적인 국가와 마찬가지로 간주하고, 따라서 남북관계도 다른 일반적인 국제관계와 마찬가지로, 국제사회의 보편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일을 지향하는 잠정적 특수관계', 이것이 남한과 북한의 관계를 말해주는 통설적 견해로 볼 수 있는데, 이명박정부는 이러한 잠정적 특수관계를 구시대적, 후진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남북관계를 한미관계, 한일관계, 한중관계와 같이 통상적인 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로 '정상화', '선진화'한다고 선언했죠. 이명박정부 출범 초기, 통일부를 폐지하고 외교부에 통합시킨다는 말이 나온 것, 국회의 통일외교통상위원회가 외교통상위원회로 이름이 바뀐 것, NSC의장을 외교부장관이 맡은 것을 보면, 남북관계의 국제관계로의 종속의 모습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3. 엄격한 상호주의
민주정부가 포괄적 상호주의, 즉 '퍼주기'를 했다고 비판하며 들어선 이명박정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엄격한 상호주의를 표방했죠. 이것은 위의 정경연계와 남북관계의 국제관계로의 종속과 연관되는 이야기입니다. 통상적인 국가 간 관계에서 적용되는 당연한 원칙인 상호주의를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것이니까요. 따라서 '포괄적'으로 보면, 남한과 북한이 주고받는 것이 있어 보이지만, '엄격'하게 보면 남한이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퍼주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므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북한도 변해야"한다고 주장하며, '전략적 인내'전략을 구사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기'전략을 폈죠.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금강산 피격, 천안함 사태, 연평도 포격을 거치면서 어느정도 일관되게 추진되어 왔습니다. 중간중간 이명박정부에서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도 해주면서 나름 강경한 모습도 보여줬죠. '비핵, 개방, 3000'을 살짝 각색한 '그랜드바겐'을 들고 나오면서, 오바마정부의 '패키지 딜'과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자아낼 정도로, 흐트러짐 없는 '강경보수적' 대북정책을 타협없이 추진해나가는 모습을 이명박정부는 지금까지 보여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얼마 전부터, 베를린에서 '베를린 제안'의 이름으로, 내년 3월 서울에서 열릴 '서울핵안보정상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해서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하고, 외국을 돌아다니면서 자스민 혁명을 북한도 피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식의 강경발언도 함께 쏟아내서 의구심을 자아냈습니다. '핵안보정상회의'가 핵테러리즘으로부터 국제사회를 보호하자는 것과 핵관련물질을 안전하고 방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특히 2012년의 의제가 '북핵, 원전'으로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그런 회의에 김정일을 초청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 회의에서 무슨 내용을 가지고 정상회담을 할 것인지 상당히 의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북한은 '도발적 망발'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베를린 제안'을 무시했죠.

분명 위에 썼듯이,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의 기조는 '선북핵포기(선북한변화), 후남북대화'였습니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을 거치면서, 이러한 이명박정부의 정책기조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조건이 하나씩 추가되기만 했죠. 천안함 사과, 연평도 사과와 같은 조건이 점점 추가되면서, 이명박정부 하에서는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더이상의 남북관계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뜬금없이 남북정상회담, 거기다가 김정일을 서울에 초청하겠다고, 그것도 핵테러를 예방하자는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하겠다는 제안을 하고, 남북간 실무자 접촉 여부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여전히 천안함, 연평도 사과도  요구하는 등 알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죠.

일련의 돌아가는 상황은 국제사회는 물론, 국내에서도 큰 주목을 받지 못했죠. 왜냐면, 보시다시피 이랬다 저랬다 당장 앞뒤의 말이 맞지 않고, 나름 일관성을 보여주던 '원칙있는' 대북정책기조의 수정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그럴 계기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김정일이 후계문제논의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중국에 또다시 방문한 것이 오히려 더 큰 이슈가 되었지, 이명박정부가 북한에게 보낸 메시지는, 정부 출범 이래 늘 북한을 향해 그래온 것처럼 남북관계차원에서는 별 의미없는, 그저 국내정치적 립서비스로 치부되었죠.


그 이후...별다른 사건없이 시간이 흐르다가, 결국 6월 1일, 북한이 남북 간에 있었던 비밀접촉사실과 서로 간에 오고 간 대화내용, 그리고 우리 정부에서 참석한 인사의 직책과 실명까지 공개해버렸습니다.

일반적으로, 국가 간의 외교관계에 있어서 비밀접촉이 있을 시, 그 비밀접촉여부, 접촉에 참여한 관계자의 신원을 비공개로 하는 것이 외교관례라지만, 가장 섬세하고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요구되는 비지니스인 외교에서 북한이 그런 관례를 따르지 않고 모두 공개한 것은, 북한이 외교관례를 무시하는 불법국가, 깡패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외교관례를 남한에게는 행하지 않겠다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을 마친 외교적 메시지, 즉 이명박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이명박정부를 무시하겠다는 외교적 행위를 취한 것이죠. 이로서 "북한이 변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없다", "북한의 변화를 통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추구하던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명박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없다"라고 되받아친 북한의 강수에 완전히 말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저는 도저히 이명박정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실질적인 업적을 남기고픈 집권 4년차 정부의 소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정책변화에 대한 명분, 계기도 전혀없고, 남북 간의 고위급 접촉조차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김정일과 이명박 간의 정상회담을, 그것도 전혀 남북 간 정상회담의 장소로 어울리지 않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더군다나 김정일이 서울로 들어와서 하자는 제안을 툭 하고 던진 것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최고의 두뇌들이 모여서 깜짝 놀랄만한 전략, 정책을 선보여도 풀릴까 말까 한 남북관계를 이렇게 서투르게 다루는 것은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분명 이명박정부는 집권 말기, 딱히 역사에 남길만한 업적을 이루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관계를 '정상화'(누가봐도 꼬여버린 남북관계지만)시킴과 더불어 북한과 대화도 시도했다는 것을 기록에 남기려고, 그리고 만약 북한이 그런 우리 정부의 제안에 응하면 응하는대로 좋고, 응하지 않으면 우리는 대화를 제안했는데 북한이 거부한 것이므로 남북관계악화의 책임도 회피할 수 있는 꽃놀이패를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베를린제안'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그게 되겠어?"였던 것을 보면,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협의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지금까지 대북강경정책을 주도했던 인사들(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현인택 통일부장관 등)이 정부차원에서 깊이있는 논의없이 이명박대통령, 국정원장, 통일부장관, 김태효 등 일부 실무진들만의 가벼운 논의 후(자기들은 조용히 깊게 처리하겠다는 의도엿겠지만), 일을 그르친 게 아닌가 합니다.


정말 이명박정부는 불행한 정부입니다. 대북강경정책을 주도한 인사들은, 자기들이 추진한 바로 그 정책, 그리고 그로인한 현재의 남북관계의 모습이 '정상화'된 것이 아니라, '퍼주기'세력, '친북'세력이 주장한 것처럼 완전히 꼬여있다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면, 민주정부 10년의 대북정책을 모조리 부정하고, 선진화, 정상화된 남북관계를 주장하며 4년간 행했던(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자기부정이 되기 때문에, 꼼수를 쓴거죠. 남북관계에 꼼수를 쓴 것이죠...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철학이 없는 정부, 이명박정부를 향해 철학이 없다고 비판을 가하는 것을 보고, 설마 전반적인 철학이 없겠어, 다만 우리가 보기에 다른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지, 정권을 쥔 사람들인데...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틀렸나봅니다. 정말 철학이 없습니다. 적어도 대북정책에 있어서만큼은...수많은 국제정치학자, 남북관계전문가들이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을 주제로 논의해왔는데, 다 쓸데없는 짓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이상 이 정부에게 정말 어떤 면에서도 무언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를 정말 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아니, 현상유지를 할 것이라는 기대도 하면 안되겠네요. 신념도 없고 책임감도 없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