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의 파업을 두고 보수세력이 이때다 하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경찰의 신속한 진압은 흡사 3.1운동을 탄압하는 일제 군경을 연상시킨다.언론, 정치권, 공권력의 일사분란한 대오에 비해 상대방(유성기업 노조)은 너무 초라하다. 체급이 안맞는 부당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7000만원 귀족 노조의 파업이 산업생산을 멈추었으므로 법을 초월한 탄압은 당연하다는 것이 보수 세력의 주장이다. 파업때마다 항상 반복되는 국가주의 레파토리이다. 사실, 정말 실제로 고액 연봉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것일수도 있으며, 거기에는 노동자 이기주의가 스며들었을수도 있다. 한국 정규직 노동자의 계급 이기주의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사용자의 폭력적 진압에 맞선 노동조합의 과격한 파업과 시위문화 역시 부정할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개별 노조 운동의 정당성이 아니다. 파업이 났다 하면 모든 법적, 제도적 수단은 노조의 요구를 묵살하고 처벌하는데 동원된다. 이것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비대칭이야 말로 노조 운동의 정당성 이전에 다뤄져야할 의제다. 왜냐하면 어떤 사회의 정치경제적 힘의 균형 상태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지표가 바로 손노동자와 사용자의 대립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전통 제조업에서의 노사대립에서 나타나는 힘의 쏠림 현상이야 말로 소위 말하는 "사회 정의"를 표상하는 좋은 바로메터다. 

서구 산업 선진국에서 산업 예비군의 존재로 인한 노동 계약 협상의 비대칭성을 해소한 것은 국가의 시혜적인 노동법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총노동의 단결이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총노동의 단결로 인한 협상의 비대칭성 해소가 있고나서 비로소 노동3권이 글자위의 선언이 아니라 법원에서의 규범이 될수 있었다. 

약간 촌스럽게 말하면, 한국 사회는 아직 총노동의 단결로 인한 협상 비대칭의 해소라는, 산업 사회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작업도 끝내지 못했다고 할수 있다. 개인적으로 일정한 역사적 단계를 상정하는 맑스주의적 역사철학을 내켜하진 않지만, 근대 국가로서 밟아나가야 하는 필연적인 통과의례, 과정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근대법률, 사회보장제도, 언론의 자유, 결사의 자유등이 그것이며, 사회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총노동과 총자본의 한판승부(?)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 혹은 힘의 균형이 달성되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이 주도하는 실질적인 힘의 균형이 달성되지 못한 경우, 상부의 정치 구조가 주도하는 시혜적 복지 정책은 당연히 추동력 부족에 허덕일수 밖에 없다. 단결의 경험이 없는 국민 대중은 소수 기득권 세력의 국가주의 마타도어에 쉽사리 넘어가기 때문이다. 복지에 솔깃하는 서민이 귀족 노조의 파업이라는 확인되지 않는 마타도어에 넘어가 같은 노동자를 비난하는 것은 이때문이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중 상당수는 중도 개혁 세력에 호의적이기도 하다. 

노동자 운동을 지배하는 지사주의나 엄숙주의도 사회적 총단결이 미비해서 나타나는 일종의 피해의식일수 있다. 3년을 끈 기륭전자 사건은 노동운동의 위대한 승리라기 보다는 을씨년스러운 고립주의의 폐해라고 할것이다. 이런 경향이 강화되면 계급성이 약화되는 대신, 좌파 이념의 강화, 과도한 문화화(패션좌파?), 추상화등, 일종의 퇴폐주의가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