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정치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그 기본으로 합니다. 그리고 대의제 민주주의는 정당을 그 중심에 놓고 운영됩니다. 정당에 소속된 정치인들이 현실정치의 핵심이죠.

최장집 교수가 민주주의자로서 현실정치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제시를 함에 있어서 '정당'문제에 천착한 것은 그래서 당연했습니다. 사회적 균열에 기반하지 않은 한국의 정당, 좀 더 구체적으로, 노동과 거리를 둔 정당체제에 대한 비판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습니다.

정당에 대한 문제제기는 현실정치에서는 '정당다운 정당'을 만들자는 여러 정치운동의 이론적 바탕이 되었고, 특히 민주주의 하겠다는 민주당의 정당 내부의 비민주성, 폐쇄성을 공격하는데에 자주 활용되었습니다.

이처럼 최장집 교수의 문제제기는 학계를 넘어서 현실정치에서도 매우 큰 영향력을 발휘했고, 최장집과 그 제자들은 한국 진보학계의 대표적 인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최장집 교수는 이번에는 막스 베버의 책을 들고 왔습니다. 막스 베버만 들고 나온 것은 아닙니다. 마키아벨리를 비롯한 아주 이름난 정치철학자들을 차례로 탐구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첫번째 탐구대상은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입니다.

정치학 교수로서,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를 운영하는 주체중 하나인 정당에 대해서 어느정도 논했기 때문에, 이번에 정치인을 논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특히 막스 베버를 선택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단 막스 베버는 로버트 달과 마찬가지로 정당 내부의 민주주의에 집착하며 '과두제의 철칙'을 말한 미헬스와 생각을 달리합니다. 민주주의는 정당들간의 경쟁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고, 정당은 민주주의를 이루어내는 하나의 도구, 수단으로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은 정치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베버는 정치인 개인의 신념, 소신과 그러한 신념, 소신을 현실에서 어떻게 이루어내는가를 균형있게 바라봅니다.

베버가 살던 시기 독일의 정치상황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관료의 힘이 강했고, 의회의 힘이 약했습니다. 그 관료를 지배하는 것은 '카이저'였고 의회의 정당들은 노선투쟁 하느라 바빴지, 현실에서 실질적인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지는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도 매우 흡사합니다. 민주주의가 직접적으로 작동하는 대의주체인 국회, 정당보다 관료의 영향력이 더 강합니다. 물론 관료는 민주적으로 뽑힌 대통령의 통제를 받지만, 한번 대통령으로 뽑힌 다음에는 그 어떠한 정치적 책임을 받지 않는 강한 권력을 가진 대통령부터 민주적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관료가 민주적 통제를 거의 받지 않는 것은 베버 시기의 독일이나 우리나 마찬가지입니다.

관료 우위, 민주주의가 작동되는 의회, 정당의 열위의 상황에서 베버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주체인 '정치인'에 주목합니다. 베버는 유시민이 인용해서 유명해진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조화롭게 균형있게 갖춘 정치인, 정치 지도자와 대중의 결합을 통해 답답한 당시 독일의 정치를 타개하고자한 것이죠.


최장집이 유일하게 현실정치에 발은 담근 시기는 김대중 정부 초창기입니다. 김대중은 '정치의 우위'를 강조한 정치인이죠. 정치의 우위란, 민주주의 원리로 작동되는 정당, 의회의 우위를 의미합니다. 자원의 배분, 가치의 배분에 있어서 민주주의적인 작동원리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김대중의 철학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최장집이 김대중 정부에 참여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것이죠.

이처럼 정치의 우위, 민주주의적 작동원리의 우위, 정당과 의회의 관료조직에 대한 우위를 말하는 최장집은, 민주세력 집권 이후 꾸준하게 정치의 후퇴, 민주주의 원리의 후퇴, 경제원리의 득세 등을 '신자유주의 비판'을 통해 언급해왔고,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에는 비판이 아닌, 대안제시의 성격으로서 '정치인'을 화두로 삼은 것 같습니다.

결국 제도, 이론 등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을 실제로 행하는 주체는 사람, 정치인이라는 것이죠.

앞으로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향후 한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운영할지에 대한 현실적인 비전 제시와 그것을 통한 대중동원을 잘 해낼 정치인이 등장하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