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유물론자가 아니다

오프로드님의 글을 보고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인식론의 문제와 존재론의 문제 나아가 가치론의 문제를 철학의 3대 주제라고 하잖아요(가치론은 인식론과 존재론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상당부분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인식론의 문제와 존재론의 문제를 서양철학사의 흐름에 따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존재론
-유물론(또는 실재론)/유심론(또는 관념론)/이원론[정신과 물질](데카르트)-철학과 과학의 분리)/정신과 물질을 합친 일원론(스피노자)/무원론(흄)/기타 다원론
cf)실재론은 논자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임. 실재론이 유명론과 대립되어 쓰일때는 초월적 세계나 신이 실재함을 의미함.
cf)이원론은 논자에 따라 유물론 또는 유심론에, 다원론은 논자에 따라 유물론 또는 유심론 또는 이원론에 위치시킬 수 있음
cf)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와 같은 다원론자들은 실제로 이원론(엠페도클레스), 유물론(아낙사고라스)으로 볼 수 있음.
cf)라이프니찌의 단자론은 단자가 여러개 있으므로 다원론으로 볼 수도 있지만 모두 정신이라는 점에서 유심론으로 볼 수 있음.

인식론
-경험론/합리론/종합론(칸트)
cf)인식론은 고대에도 있었지만 보다 체계적 진행은 근대철학의 산물

경험론자중에 유물론이, 합리론자중에 관념론이 많으나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cf)불교의 유식사상은 전형적인 관념론인데 이 중에서 관념형성이 축적되는 중심으로서의 마음을 아뢰아식=제8식 이라고 표현합니다.(태어나기 이전에 생긴 경험과 관념까지도 축적된다고 함) 空사상은 이 축적된 관념까지 모두 사멸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이렇게 될때 진여(=여래장) 즉 물자체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아뢰아식의 정화 즉 아뢰아식을 비게 하는 것 즉 아뢰아식을 공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곧 진여가 아닐까 합니다.(이건 개인적인 생각) 아뢰아식을 멸절시키는 방법으로 붓다는 8정도(통찰 혹은 명상의 길)-칠각지(실천 혹은 수양의 길)-무학도(배움이 없는 길)을 말합니다.

합리론에서 중요한 것이 실체라는 말(개념)이고 경험론에서 중요한 것이 관념이라는 말(개념)이고 종합론에서 중요한 것이 표상과 개념이라는 말(=개념)입니다.

1. 우선 합리론자의 견해에 대해 정리해 보았습니다.(종합론자는 이 안에서 같이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근대철학에 나타나는 합리론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데카르트는 인식론에서 합리론자(본유관념(생득관념)-자아관념, 신관념 인과관계,수학공식-을 인정)이지만 정신과 물질이라는 두 유한 실체를 인정한 이원론자입니다.(정신은 사유를 속성으로 하는 실체이고 물질은 연장을 속성으로 하는 실체라고 합니다. cf)속성-기본적인 것과 양태-우연적인 것의 구별) 

물론 신이라는 무한 실체를 인정했지만 그 신은 이 세계를 만들고 나서는 이 세계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물체와 정신이라는 두 유한실체를 인정했다는 것 자체가 이들이 존재하기 위해 신이라는 존재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신에 의한 피조물이지만 피조된 뒤에는 신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데카르트가 근대철학의 시조가 된 이유이기도 하고 동시에 신을 인정하면서도 이원론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만약 신 자체를 끝까지 중요하게 보고 싶다면 신과 정신과 물질이라는 3원론으로 봐도 무방합니다.

데카르트에 의해 종교와 과학과 철학은 분리되게 됩니다.

스피노자 같은 경우 인식론에서 합리론자이지만 존재론에서는 유물+유심의 속성을 갖는 자연(=신)입니다.(다만 자연전체가 객관적 합법칙성에 의해 지배된 것으로 파악했다는 점은 유물론적 색채를 강해게 남기고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정신을 사유 실체, 물체를 연장 실체라고 보았지만 스피노자는 실체는 자연(=신) 뿐이고 사유와 연장은 신의 무한한 속성중에 2가지 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정신과 물체를 신의 양태라고 봅니다.

라이프니찌는 인식론에서 합리론자이고 존재론에서는 정신(=단자 monade)만이 실체라고 봄으로 유심론을 지지합니다. 이 단자는 창이 없는 닫힌 개체입니다. 동시에 비공간적입니다. 단자는 무의식적 표상만을 지니는 최하위의 단자에서부터 의식을 가지는 인간의 정신과 같은 상위의 단자, 무한의 의식과 전지전능한 힘을 가지는 신과 같은 최상위의 단자로 나뉘어 집니다. 즉 질적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라이프니찌는 합리적(이성적) 인식을 이상으로 생각함에도 현실적인 인간의 의식은 반드시 합리적인 인식만을 일관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라이프니츠는 진리를 모순율을 따르는 '이성의 진리'와 충족 이유율에 따르는 '사실의 진리'로 구분하고 이성의 진리는 선천적이고 분석적인 영원한 진리인 반면 사실의 진리는 후천적이고 경험적인 우연의 진리라고 합니다. 다만 이것은 인간의 정신에서 그렇고 신에게는 사실의 진리로 보여지는 것도 이성의 진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라이프니찌의 단자론은 상호 교섭이 없음에도 이들간의 통일성이 유지되고 상호 병렬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신에 의한다고 하므로써 논리적으로 예정 조화설로 빠집니다. 예정 조화설을 통해 기계론적 필연성과 종교적인 목적론을 융합시키게 됩니다.(종교와 과학의 융합)

칸트
는 인식론에서는 종합론, 존재론에서 실재 즉 물자체에 대한 불가지론을 취합니다.(다만 존재론에서 인식 주관과 물자체라는 데카르트식의 이원론이 부분적으로 유지되고 있음을 봅니다.)

칸트는 인식론에서 경험론처럼 관념이 단지 사물의 모사에 불과하다면 그러한 인식은 보편 타당성이 없기 때문에 학문으로 성립할 수 없으므로 학문성을 기초지우기 위해 선험적인 틀을 끌어들여 선천적 종합판단(수학, 자연과학)이 가능함을 이끌어 냅니다.즉 인식론에서 종합론을 취함으로써 선험적 종합판단이 가능하다고 보게 되어 경험학문의 보편타당성 즉 학문성을 정초시킵니다. 그러나 물자체는 인식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칸트가 처음에 라이프니찌의 합리론에서 출발해 신을 인정했지만 로크의 논의를 거치고 나아가 흄의 회의론을 읽은 후 인과관계에 의한 신존재증명(ex모든 것은 원인을 가져야 하므로 신은 존재한다는 부동의 동자)은 인식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았기에 순수이성으로는 신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대신 이 부분은 실천이성의 문제로 넘겨서 합리적 이성에 의해 요청된 신을 만들어 냅니다.

칸트는 결국 기존의 합리론을 종합론으로 대체하면서 기존의 관념론을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비판적 관념론자가 됩니다.(물자체는 실재하지만 우리에게는 현상으로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칸트에게 물자체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으므로 사실상 무와 같게 됩니다. 나아가 신, 영혼, 자유는 존재하지는 않지만 요청됩니다.) 

데카르트의 경우 강조점에 따라 이원론으로 볼 수도 있고 3원론으로 볼 수도 있듯이 칸트의 경우에도 이원론으로 볼 수도 있고 (비판적) 관념론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칸트는 신을 요청된다고 보왔기 때문에 무신론으로 볼 수 있습니다.

칸트 뒤의 독일철학은 특히 헤겔은 칸트의 이분론적 잔재를 철저히 관념론으로 해소시키는 작업을 했던 것이고 나아가 사유의 변증법과 실제 세계의 변증법의 동일성을 주장합니다. 나아가 절대정신을 주장함으로써 완벽한 관념론자가 됩니다.

이러한 헤겔적 사유는 나중에 마르크스 엥겔스에 의해 변증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으로 완전히 탈바꿈되게 됩니다.(기계적 유물론과 구별)

결론적으로 칸트 이후 존재론은 실재와 현상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도출됩니다. 물자체는 실재하지만 그건 현상으로써만 나타나게 됩니다. 존재론적으로 이원론이 부분적으로 유지되지만(데까르트는 대립적 이원론이 반면 칸트에서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화해를 보게 됩니다.-레닌) 인식론의 영향을 받아 관념론의 성격이 두드러집니다. 헤겔은 아에 칸트에서 부분적으로 유지되던 이원론을 모두 파괴시켜 완변한 관념론을 유지합니다.

위에 설명을 통해 유물론자가 아니면서(즉 관념론자나 이원론자)이면서 무신론자일 수 있음도 중간중간 보았습니다.

근대 철학이 무신론적 경향을 띄면서 과거 고대 희랍철학의 존재론을 인식론이라는 새로운 철학적 사조와 결합해서 근대에 다시 부활시켰다고 보면 됩니다. 

고대의 합리론자에는 피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와 그의 제자 제논(엘레아 학파),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다원론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들 수 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밀레토스의 학파의 질료의 철학에 대비되어 數를 핵심개념으로 하는 형상의 철학을 시도합니다.(거스리, 희랍 철학 입문) 남부 이탈리아의 낙후된 농업지역인 그리스 식민지 크로톤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남부 이탈리아의 지방에서 성행하던 오르페우스교를 그리스화한 종교 단체라고 합니다. 오르페우스교가 디오니소스를 신봉하며 술과 (성적)축제를 통한 도취 속에서 영혼이 해방되어 신과 합일되는 황홀경(ecstacy)를 추구했다면 이들은 금욕적 생활과 학문 연구를 통해 영혼의 정화를 믿었고 동시에 신과 합일될 때까지 영혼은 윤회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수는 질적규정이 배제된 철저한 양적 규정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형상과 구조만을 취합니다. 나아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은 이 양적 규정의 대립에 의한다고 합니다.(부분적으로 변증법적 사고가 보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우주관과 결합된 물활론적 사고(우주 만물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믿음으로 밀레토스 학파에서도 발견됨)는 존재론적으로 유심론의 색채를 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와 그의 제자 제논은 인식론적으로 볼때 철저하게 감각적 지각과 유리된 사유만의 우리를 실재 세계로 인도한다고 보았습니다.그 결과 사유의 형식 논리를 추구했고 그러한 순수한 사유에 의해 포착된 세계가 참된 존재의 세계라고 합니다. 동일률, 모순률, 배중률로 표현되는 사유의 형식 논리적 법칙을 철저하게 참된 존재의 특성에 적용하면서 그의 존재의 세계에서는 '변화'와 '존재의 다수성'이 부정되게 됩니다. 왜냐하면 '변화'와 '존재의 다수성'은 사유의 형식적 논리법칙과 모순된 것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나아가 빈 공간도 부정)

결론적으로 인식론이 존재론에 영향을 미친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파르메니데스의 추상적 존재 개념은 그 결과 철저하게 불변 부동의 단일한 실체(=一者)로써 속이 꽉 차있고 빈 공간이 없는 연속된 공으로 비유되었습니다. 동시에 변화하는 감각적 세계를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아 부정하는 무우주론을 취합니다.(참된 존재는 사유속에만 있기 때문에) 

인식론적으로 합리론의 전통의 시초가 된 파르메니데스는 동시에 관념론의 시초가 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이들의 생각은 플라톤 철학을 예비하는 성격이 강합니다. 나아가 제논은 헤겔에 의해 변증법의 창시자로 불리기도 합니다.(그런데 제논의 사고는 단순 형식 논리학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헤겔의 견해에 대해서는 의문입니다. 헤겔은 제논의 아포리아를 주목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엘레아 학파의 무우주론을 반박하기 위하여 나중에 다원론과 원자론이 출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원론과 원자론은 모두 파르네미데스의 기본적 관점 즉 비존재(무)로부터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는 것과 참된 존재는 영원 불변 불가분 충만하다는 개념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면서도 다원론은 사유 안에서 획득된 참된 존재와 더불어 현실세계 즉 우주 안에서의 변화를 확보하기 위해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공이 여러개 있다는 주장을 합니다.

즉 참된 존재를 파르메니데스처럼 일자가 아닌 다자로 보고 각 다자는 파르메니데스가 말한 참된 존재의 특성을 가지면서도 그 다자간의 비율적 관계를 통해 우주안의 변화 즉 생성과 소멸이 일어난다는 논리를 구사합니다.
 
엠페도클레스는 그 다자로 물 공기 흙 불이라는 4원소(rhizomata;만물의 뿌리)를 말했고 아낙사고라스는 스페르마타(spermata)라는 만물의 종자(=동질소)를 말합니다. 그런데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는 4개로 한정되고 나아가 질적 차이가 있음을 자체에서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아낙사만드로스의 스페르마타 역시 질적으로 상이하고 다만 수적으로 무한합니다. 결론적으로 아낙사만드로스의 다원론은 바로 질적인 차이점에서 뒤의 원자론의 원자와 구별됨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질적으로 상이하는 것은 라이프니찌의 유한한 정신인 단자와 유사하지만 상호 교섭하고 동시에 만물 안에 있다는 점에서는 다릅니다.(라이프니찌의 단자는 상호 비교섭(창이 없다는 것으로 표현됨), 비공간적인 색채를 띔.)

그런데 이들은 결합과 분리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의 원인이 있다고 봅니다. 그 운동의 원인을 엠페도클레스는 사랑과 미움이라고 불렀고 아낙사고라스는 누스(nous=정신)라고 불렀습니다. (엠페도클레스의 경우는 물활론적 색채도 없지 않지만) 이들은 밀레토스 학파의 (자연이 스스로 살아있다고 보는) 물활론적인 우주관과 다르고 나아가 정신적인 목적론적 우주관과도 다른 기계론적 원리로써 이해되고 있습니다. 아낙사고라스가 누스를 모든 사물 중에서 가장 미세하고 순수한 물질이라고 부른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러한 다원론은 생성과 소멸이라는 변화를 불변하는 근본 물질들의 결합과 분리에서 찾았던 이들 다원론자들의 기계론적 발전관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변증법적 발전관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들에게 있어서 근본적인 것은 불변의 참된 존재로 이것들은 현실이 아닌 사유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사유 속에서 발견된 존재들에 의해 현실세계가 설명되고 있음을 봅니다.

다만 엠페도클레스의 경우는 영혼의 존재와 윤회를 인정하고 종교적인 색채도 강하다는 점에서 피타고라스적인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결국 이들 다원론자들은 인식론에서 파르메니데스의 전통에 따르는 합리론자이지만 존재론에서는 조금 구분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엠페도클레스는 이원론자라 보는게 맞을 것 같고 아낙사고라스는 기본적으로 유물론으로 보는게 맞는 것 같습니다.(논자에 따라서는 누스라는 개념에 정신적이고 목적론적인 의미가 있다고 보아 아낙사고라스도 이원론자라고 보기도 합니다.-요하네스 휠시베르거, 서양철학사 上 p89)

그리고 원자론자인 데모크리토스는 비록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받아 불변의 존재인 원자를 인정하지만 기본적으로 인식론 자체에서 감각으로부터 오는 지각을 가지고 설명하므로 비록 종합론적 성격이 있지만 원칙적으로 경험론자로 보는게 타당하다는 점에서 경험론 파트에서 설명하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결론만 말하면 데모크리토스는 종합론적 성격도 가지는 경험론자이면서 유물론자라고 봅니다.

이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부분은 다음에 가치론을 언급할 때 묶어서 주요 테마로 쓰기로 하겠습니다.

2. 이제 경험론자의 견해를 보도록 합시다.

우선 근대철학에 나타나는 경험론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프로드님의 글에서 하킴님은 각종 실험기기를 통해 인간이 인식한 것에 대해 왜 유물론이 아니냐고 물어보셨는데 인간 외부의 물자체가 존재한다고 할때 그 물 자체를 단지 감각은 그대로 모사(또는 복사)해 온다고 보면 유물론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래 내용을 읽다보면 대강 답이 나옵니다.

경험론의 창시자 베이컨은 유물론적인 색채를 띄지만 실험적 능력과 합리적 능력의 결합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는 점에서 완벽한 경험론자는 아닙니다. 마르크스는 그래서 베이컨을 소박한 유물론자로 보았습니다.

로크는 종합론적 성격도 가지는 경험론자로써 그 결과 존재론에서도 이원론적인 색채가 강합니다.

실제 대상을 아는 '감각'과 우리 정신의 내적 작용인 '반성'에 의해 생기는 '관념'을 단순관념과 복합관념으로 나누었는데 단순관념은 외부의 실재대상이 모사(복사)된 것으로 보았지만 복합관념은 비교 추상 합일과 같은 정신의 능동성에 의해 형성된 것을 보았습니다. 나아가 단순관념조차도 외부의 실재대상과 그 관념이 100프로 일치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아가 관념의 경우도 대상과의 관계에 따라 다시 제 1성질과 2성질로 분류합니다. 제 1성질은 물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성질로 연장 충전성 형태 운동 정지수와 같은 것이고 제 2성질은 색 맛 냄새 소리와 같은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합니다. 제 2성질은 객관성을 지니니 못하고 사물 속에 존재하는 제 1성질로 해소되지만 제 1성질과 같지는 않다고 합니다. 제 1성질로 물체의 실체성을 인정하고 제 2성질로 정신의 실체성을 인정한 것이라고 본다면 이원론적인 색채를 띄게 됩니다.(물체와 정신의 이원론, 또는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 

이런 로크의 사상은 프랑스로 가서는 유물론적으로 되었고 버클리나 흄을 거치면서 주관적 관념론으로 흘러갑니다.

버클리는 분명 경험론자입니다. 그는 관념과 실재 대상을 분리한 로크를 비판하면서 지각과 실제 대상은 분리될 수 없다고 합니다.(동시에 보편 관념 또는 일반 관념은 다만 유명론일 뿐이라고 개별 관념만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실제 대상과 분리되지 않게 되므로) 하지만 그는 "모든 외부 대상은 감관에 의해 그대로 지각된다"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이와는 반대로 "우리가 지각한대로 외부의 대상도 실재한다"는 의미를 취한다. 왜냐하면 지각과 실제 대상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로 우리의 지각은 존재 자체를 볼 정도로 탁월하고 감각(지각의 일종)으로부터 생긴 관념 역시 완벽한 것이 되고 존재는 지각된 관념의 다발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런데 관념은 정신안에 있으므로 정신의 실체성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여기서 외부 대상의 실체성도 인정할 수 있지 않느냐는 물음도 가능해 보이지만 명확한 설명없이 바로 지각이 존재의 원인이라는 설명으로 치닫습니다.(한가지 이유를 찾자면 그가 클로인의 성공회 주교라는 점일 것입니다.) 즉 존재는 지각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외부 존재는 지각으로 귀결되고 지각은 다시 관념으로 귀결되고 관념은 다시 정신으로 귀결됨을 봅니다. 나아가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인데 인간 정신은 유한하므로 무한한 신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유신론으로 귀결 됩니다. 다시 말하면 신의 지각은 존재 전체를 드러내지만 인간의 지각은 존재의 일부분을 드러낼 뿐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각을 하지 않더라도 외부 대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신이 정신을 통해 지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신이라는 개념 역시 보편 관념이고 유명론에 따르면 실재하는 것이 아닌 이름일 뿐이지 않느냐는 반론이 가능함을 봅니다. 물론 이에 대해 버클리는 신은 개별 관념이라고 우길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유명론을 끌어들인 이유는 인간이라는 보편 관념은 단지 이름일 뿐이고 실제 우리가 지각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즉 지각[=영이나 순이]과 관념[=인간]의 불일치) 지각에 의한 관념은 영이 순이와 같은 개별 관념이어야 실제 대상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버클리는 경험론자인지만 주관적 관념론자로 화했고 나아가 유신론자가 되었습니다.

은 버클리가 존재와 지각간의 분리를 부정하기 위하여 존재와 지각 사이에 신의 정신을 개재시킨 것을 부정합니다. 로크와 같이 관념을 감각과 반성으로 이원화하는 것도 반대합니다. 나아가 로크의 복합관념이라는 것도 인간 정신의 능동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의 연합법칙에 의한 결합일 뿐이라고 봅니다. 결국 인간 정신 혹은 자아는 여러 가지 지각의 묶음에 불과하며 단  한 순간이라도 불변적인 동일성을 유지하는 정신의 힘이란 있을 수 없다고 보게 됩니다. 결국 실재하는 것은 지각일 뿐인 것이죠. 지각중에 생생한 것이 인상이고 인상의 단순한 모사(=복사)가 관념이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그는 정신의 실체성을 해소해 버립니다.

나아가 흄은 물체가 실체한다고 여기는 관념역시 강렬한 인상 때문에 생기거나 인상들 일부의 정합성 혹은 항상성 때문에 생기는 주관적 신념일 뿐이라는 이유로 물체의 실체성을 부정해 버립니다.

결국 버클리가 물체의 실체성을 없애 버렸다면 흄은 정신의 실체성과 물체의 실체성을 모두 해소해 버립니다. 이로 인해 데카르트가 인정한 정신과 물체라는 두 실체성이 모두 부정되고 오로지 지각만이 남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버클리나 흄이나 모두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뿐입니다.

여기서 감각 정열 감동과 같은 의식의 상태가 지각인데 이 지각은 인상과 관념으로 이루어져 있고 인상의 단순한 모사가 관념이라고 합니다

흄에게 있어서는 인식론과 존재론이 모두 지각으로 통일됨을 봅니다. 존재론으로는 정신과 물질을 모두 부정하는 무원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흄의 회의론은 결과적으로 불교의 공사상과 매우 비슷합니다. 실재하는 것은 지각일 뿐인데 이 관념의 근원으로서의 정신의 실체성(또는 영혼의 실체성)도 부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지각을 멸절시켜야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고대의 경험론자에는 밀레토스학파, 헤라클레이토스, 원자론자(데모크리토스), 소피스트, 에피쿠로스 학파, 스토아 학파가 있고 중세에는 유명론자들을 들 수 있습니다.

밀레토스학파는 최초의 자연철학을 한 사람들이며 그들은 자연을 관찰하여 변화하는 현상계를 꿰뚫고 있는 불변적 통일성을 탐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철학은 질료의 철학으로 불립니다. 세계가 원질로부터 생겨나와 원질의 변화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모양을 지난 숱한 물질이 생겨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탈레스(물) 아낙시만드로스(아페이론) 아낙시메네스(공기)를 들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의 철학은 자연의 관찰이라는 감각적 지각에 주로 의존했다는 측면에서 경험론이면서 세계를 물질로 보았다는 점에서 자연 발생적인 유물론으로 볼 수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는 표현에서 보듯 변화의 철학을 주장했던 사람입니다. 그가 살았던 에베소서는 경제적 발전과 더불어 민주제도를 열망했던 상인과 수공업 계층이 씨족 귀족제의 기반을 무너뜨리던 시기였습니다. 그의 철학에는 변증법과 유물론이 역사상 최초로 구상되었다고 평가받습니다.(그 결과 마르크스 엥겔스에 의해 극찬을 받습니다.) 만물의 생성과 소멸을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에 근거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불과 로고스를 세계 이성 혹은 신적 원리로 표현하기도 했기 때문에 종종 그를 관념론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가 말한 세계 이성은 세계 밖에 존재하는 원인으로 세계를 조성하는 신비적인 비물질적인 힘이 아니라 자연 내부의 영원한 생성 과정으로, 자연 속에 작용하는 대립물들의 끊임없는 투쟁의 합법칙성으로 이해함이 맞다고 봅니다.

이러한 로고스는 자연 현상에 국한된 세계 법칙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인간을 지배하는 법칙으로 이성적 사유이며, 나아가 인간들이 모인 사회를 지배하는 법칙으로 노모스(nomos; 도덕률, 법률)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스토아 학파에게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스토아 철학이 기본적으로 견유학파와 헤라클레이토스의 결합이기 때문입니다.(러셀의 서양철학사 p 365 참조)

다만 헤라클레이토스의 인식론은 밀레토스 학파의 감각적 지각을 넘어 인식론적 반성을 상당정도 받아들였습니다. 즉 파르메니데스가 감각적 지각과 사유를 상호 대립시키고 감각적 지각은 doxa 즉 주관적 억견에 불과한 변화의 세계이고 사유만이 객관적 진리(episteme)가 속하는 존재의 세계로 본 반면, 감각적 인식과 사유의 권리는 모두 인정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는 종합론적 성격도 가지는 경험론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로크와 상당히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로크는 관념의 기원은 감각적 경험이고 이 감각적 경험의 원천은 실제 대상을 아는 감각과 우리 정신의 내적 작용인 반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관념<=감각적 경험=감각+반성) 

 한가지 더 그의 인식론에서의 특징을 들자면 비유적으로 표현된 변증법적 상대주의입니다. 개별자의 인식은 일정한 구체적인 조건 아래에서 상호 대립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그가 든 예를 보면 바닷물은 가장 깨끗하면서 가장 더러운 것이다. 물고기에는 마실 수 있고 유익한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마실 수 없고 해로운 것이다.)

이제 데모크리토스를 보기로 합시다. 데모크리토스 역시 인식론에서 헤라클레이토스나 로크와 같이 종합론적 성격도 가지는 경험론자입니다. 나아가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받아 불변의 존재인 원자를 생각했다는 점에서 그 종합론적 성격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하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외부 대상에 대한 감각적인 지각을 인식론의 기본으로 삼았습니다. 즉 외부 대상은 끊임없는 에이돌라라는 유출물을 방출하는데 이것이 인간의 감각기관과 접촉하여 감각적 인식을 가능케 한다고 합니다. 물론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받아 이성적 사유도 감각적 지각과 함께 인식과정에 참여시키지만(파르메니데스는 감각적 지각과 사유를 대립적으로 봤다.) 이 이성적 사유는 그 기초가 되는 감각적인 지각과의 연관성을 상실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사유 작용을 구성하는 원자는 감각 작용을 구성하는 원자보다 보다 더 미세하고 인간의 육체 전체에 널리 퍼져있다고 합니다.)

나아가 로크와 매우 유사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제 2성질과 제 1성질의 구분) 우선 그는 파르메니데스와 같이 감각적인 지각중에 색 맛 소리는 주관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그렇게 보일 뿐 대상의 객관적인 속성이 아니라고 합니다.(여기서 로크와는 달리 데모크리토스는 자신이 인식론적 주체로 상정한 영혼이라는 것 역시 원자라는 물질로 구성된다고 봄으로 주관적인 것의 독자성을 결과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다만 영혼의 원자들은 육체의 원자와 달리 보다 둥글고 미끄러우며 불과 같이 운동이 밀활하다고 합니다.) 그에 비해 감각적인 지각중에 형태 크기와 같이 양의 차이를 갖는 것은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것(즉 자연 그래로의 것) 을 알려준다고 합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는 파르메니데스의 영향을 받아 궁극적 실체로서 원자를 상정합니다. 다만 이 원자는 물질적인 것이고 다원론자들의 것과 달리 질적인 구별은 없습니다. 즉 순수하게 양적인 규정에 의해서만 구별됩니다. 여기서 양적인 규정이라는 것은 행태 위치 배열의 차이를 말합니다.(원자들의 양적 차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문자에 비교하면서 A와 N은 형태, AN과 NA는 배열, N과 Z는 위치의 차이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양적 규정만을 가지는 무수한 원자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튕겨나가거나 서로 붙어서(원자들이 갈고리 모양을 하거나 다른 어떤 식으로 들어 맞아서) 복합체 즉 사물을 만들어 낸다고 봅니다. 한가지 더 다원론자들과 차이가 있다면 빈 공간의 존재를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원자들이 서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운동이 가능하고 그 결과 충돌을 통해 튕기거나 붙을 수 있기 때문니다. 나아가 이러한 빈 공간은 (칸트에서 선험적 감성 형식으로 받아들여진) 시간과 공간중에서 공간과 관련된 철학적 해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암튼 "원자들은 양적인 규정에 의한 차이만 있을 뿐이다"라고 봄으로써 자연에 대한 모든 과학적 설명을 기하학이나 수적인 관계에 의해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근대 자연과학도 사실 이러한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공헌의 자취를 찾을 수 있습니다.(물론 실험에 의해 확인이 되었음)

나아가 원자론은 원자 외부에 운동의 원인을 설정하지 않고, 운동을 원자에 내재하는 속성으로 파악합니다. 즉 자기운동이라는 것이죠. 이러한 자기운동과 관련하여 나중에 에피쿠로스는 원자의 양적 규정에 무게를 포함시키므로써 부분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자연과학에서는 자기이동을 설명하기 위해 양성자 중성자 전자 이런 개념이 등장하는 듯 하다. 물론 실험적으로도 확인이 되었다. 수소원자는 한개의 양성자와 한개의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함.)

세계 생성의 시초로 여겨지는 소용돌이 역시 원자들이 연속적으로 충돌함으로써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데모크리토스는 종합론적 성격도 가지는 경험론자이면서 영혼조차도 원자라는 물질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유물론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기계적 유물론)

이러한 원자론은 자연에는 인과성이 없으며 합목적성이 지배한다는 목적론과 달리 자연에 있어서 객관적인 인과성, 필연성, 그리고 합법칙성의 승인하게 됩니다. 나아가 원자라는 궁극적 실체를 물질적인 것으로 보았고(데모크리토스와 파르메니데스와는 차이가 여기에 있음) 무로부터는 어떤 존재도 생기지 않는다고 봅니다.(데모크리토스와 파르메니데스와 같은 점은 여기에 있음. 다만 파르메니데스와 데모크리토스는 논리적인 사유를 통해, 근대자연과학은 실험을 통해)

데모크리토스의 선의 궁극적인 본질을 추구할 때에, 선이란 결국 유쾌함이라고 대답함으로써 일종의 쾌락주의적인 전통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에피쿠로스에게 원자론과 함께 전해집니다.

참고로 스토아 학파의 제논은 경험론자이고 나아가 전형적인 유물론자인데 신을 인정합니다. 여기서 신은 화적인 세계정신으로 물질적 세계를 통해 흐른다고 봅니다. 그런데 신 조차도 물질적인 것으로 봅니다. 어찌보면 존재론에서 제논과 스피노자와 매우 유사한데(범신론적 유물론) 인식론에서는 제논은 경험론자이고 스피노자는 합리론자로 서로 달라집니다.

참고로 후기 스토아학파는 유물론적 색채가 거의 사라지고 플라톤적인 색채로 변화합니다. 스토아학파의 창시자인 제논은 영혼불멸설을 부정했지만 후기 스토아학파는 영혼과 사후의 생에 대해 인정합니다. 그리고 후기 스토아학파의 견해는 그노시스(영지주의)와 매우 유사합니다. 그럼에도 스토아학파로 묶이는 이유는 모두 윤리학을 가장 으뜸으로 보았다는 점에 있습니다.(가치론의 우위)

에피쿠로스 역시 경험론자(그의 스승은 데모크리토스 학파의 나우시파네스였고 그는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기본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다만 원자에 무게가 있다는 점을 추가합니다. 이것은 후세에 원자량의 발견을 미리 선취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이면서 전형적인 유물론자입니다. 다만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했습니다.(인간의 주체성 인정) 

그의 철학의 특징은 개인주의적 철학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스토아학파도 기본적으로 개인주의 철학에 속합니다. 이것은 그 당시 시대적 상황을 반영합니다. 따라서 근대를 예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덕을 쾌락을 추구하는 과정의 사려라고 보았고 그 결과 사회계약설의 효시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나아가 공리주의 역시 그와 통하고 있습니다. 

3. 저는 개인적으로 로크와 흄을 거친 칸트의 철학을 지지합니다.

법학을 공부하보면 특히 칸트에 대해 많은 매력을 느낍니다.

오성(=지성=이해)의 선험적 형식인 개념(범주)과 감성(=수용)의 선험적 형식인 직관(시공)으로 받아들인 감각재료구상력과 선험적 통각으로 결합 종합 통일하여 인식을 만들어 내듯이 법학은 현실사건(=물 자체)이 발생했을때 일정한 소송법적 절차를 통과한 사실자료와 증거자료에 의해 재구성된 사건과 실체법적인 이론을 법관 결합 종합 통일하여 실체법적 정의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실체법적 정의는 실천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결과 자연법적 정의가 실천 이성처럼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시민혁명과 같은 저항권의 행사나 시민 불복종운동을 하라고 말입니다. 그 결과 이루어진 정의는 실체법으로 하여금 현실타당성을 갖게 만듭니다.

칸트는 이론 이성을 통해 근대자연과학의 성과를 지지합니다. 나아가 실천 이성을 통해 소크라테스의 문제의식인 실천개념을 부활시킵니다. 그러나 그 부활은 인간 내면의 선천적인 형식으로서의 정언명령을 통한 부활이지 초월적인 어떤 이데아의 부활이 아닙니다. 그의 도덕법칙은 사실상 양심의 법과 같은 것입니다.(율법(실정법)<도덕(자연법)<양심)

자연과학은 이론이성을 통해 알게 되는 '현상'일 뿐이지 '실재'가 아닙니다.. 현대물리학에서 원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자꾸 더 쪼개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존재 단위를 산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론의 산물입니다. 그것은 초월적 형이상학으로 우리는 그런 형이상학 즉 물 자체는 알 수 없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인간의 이성이 발전함에 따라서 더 작은 단위는 꾸준히 발견될 수 있다고 보며 이것은 끝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칸트 철학에는 유물론과 관념론 간의 화해를 시도함으로써 유물론은 유물론 되도록, 관념론을 관념론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칸트는 종교(신 영혼 자유)를 요청으로서만 인정했습니다. 왜냐하면 물 자체는 알 수 없으므로 다만 요청되는게 최대한의 한계가 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성으로 종교는 알 수 없고 다만 계시만을 통해 알 수 있음을 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계시를 기반으로 하는 종교의 성립을 인정합니다.( 당연히 이성을 기반으로 하는 종교는 부정합니다.) 불교의 경우 진여 즉 물 자체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아뢰아식에 축적된 관념을 제거하므로써 물 자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므로 칸트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봅니다.(깨달음은 어떤 경지에 도달이지 인식이 아님)

그의 요청개념의 전개과정을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실천 이성 영역에서 선험적인 형식인 정언멍령은 감성적 충동과 같은 인과법칙에 따라 살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고 그러한 인과법칙적 필연성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자유입니다. 따라서 자유라는 것은  요청됨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바로 그 인과법칙적 필연성에서 벗어나도록 요구하는 선험적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서양 모두에서 이런 주장이 발견됨)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입니다. 대부분 그러한 요구에 따라서 살지 못합니다. 따라서 그러한 요구에 따라서 완벽히 살아가는 것은 현세의 짧은 삶에서는 불가능하므로 영혼의 불멸이 요청됩니다. 나아가 영혼이 불멸이기 위해서는 영혼의 불멸을 가능케 하는 신의 존재가 요청됩니다. 여기서 그 신은 기독교적인 신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기독교는 이 생이 마지막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가 계시종교를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칸트는 나름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헤겔의 변증법(모순을 그안에 내포함으로써 대립과 투쟁이 일어나 정 반 합으로 발전한다는 주장)도 나름 매력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역사법칙과 같은 경직된 이론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이부분은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서 보이는 역사법칙화도 마찬가지로 지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나아가 로크의 (맹아적) 국민주권론이나 (대의) 민주주의론은 개인에서부터 정초된 경험론적 산물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상당히 부족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사실 로크는 유물론자로 단정하기 예매한 면이 있습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유산을 이어받은 스토아철학은 로크의 철학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데모크리토스의 철학도 나름 매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사유 속의 존재론을 가져와서 물질의 기본단위인 원자의 존재론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물 자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미묘한 결합인데 형이상학적 존재론을 형이하학적 물질의 기본단위인 원자에 갖다 붙임으로써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의 기묘한 결합을 보게 됩니다. 물론 그는 유물론자입니다. 하지만 그의 계승자인 에피쿠로스가 나중에 자유 의지를 인정했다는 점은 그의 유물론이 가지는 원초적인 불화를 보여줍니다.  칸트에 의하면 자유는 요청된 개념으로 이론 이성의 산물이 아닙니다. 인간에게는 선험적 형식으로 정언명령이 내재해 있는데 실제 삶에서 정언명령데로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정언명령대로 행할 것을 요청하게 되고 그 요청대로 했을때 진정 자유로운 존재가 됩니다. 즉 감성적 충동과 같은 인과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됩니다. 현대과학에서는 다시 원자보다 더 작은 단위로 쪼개지고 있습니다.(양성자 중성자 전자, 양성자는 다시 쿼크로) 나아가 이미 기계적 유물론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한계에 봉착한 상태입니다. 나아가 메모크리토스의 빈 공간 개념이라는 것은 칸트에 의하면 선험적 감성 형식으로 직관의 형식에 해당됨을 봅니다. 원자와 빈 공간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유의 존재론을 가져온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현상으로서의 자연과학을 믿을 뿐 그것이 물 자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나아가 기계적 유물론의 다른 표현인 진화론(18세기 로크의 경험론이 프랑스에서 가서 생김) 즉 유물론적 진화론 역시 현상적인 진리일 뿐이라고 봅니다.

cf) 가치론 부분은 담 기회에 시간이 나면 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