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분 골수 노빠네요. 당연히 저와 생각이 다른데...읽다가 뭐랄까. 형언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동영상 보는 순간 깊은 허탈감이.

전 앞으로 유시민 비판 안할 것 같습니다. 은근히 머리 한켠에 내가 왜 그리 유시민을 싫어할까 의문이 있었는데 이 글을 보는 순간 풀렸어요. 유빠들은 더더욱..... 그냥 안스러운 마음 뿐입니다.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3&uid=50214


“노무현 씨종자는 지켜야 한다. 기죽지 말고, 10명만이라도 살아남아라!”

어느새 아득한 일인 것만 같은 ‘개혁청와대’의 마지막 겨울 끝 무렵. 퇴임을 한 달여 앞둔 노짱님이 청와대로 노사모를 초청했다. 퇴임 전에 이렇게라도 한 번 꼭 해주고 싶었다면서, 수백 명의 노빠들과 함께 아직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등산로를 따라 북악산에 올랐다. 그분과 함께할 때는 왜 그리도 늘 추운지…, 삭풍이 부는 북악산 정상에서 노짱님의 긴 말씀 흐뭇하게 듣고 내려와서는 노짱님 단골집의 삼계탕 한 그릇씩으로 언 몸을 녹였다.

이곳 서프에도 그 산행 함께하시고 그 징표로 노짱님과 함께 찍은 사진액자와 ‘노짱시계’ 하나씩 가보로 간직하고 있을 분들 제법 계실 게다.

나는 그 샛노란 황금빛의 봉황문양 포장지에 차마 손도 댈 수 없어서,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깊게 묻어두고 지금도 그분이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곤 한다. 아들한테도 안 물려줄 거다. 나중에 나중에… 노짱님 뵈러 소풍 가는 날, 드디어 열어서 몸에 지니고 갈 거다. 나 알아보실 수 있도록.

노빠들과의 만남 마지막 차례는 참평포럼과의 만남이었다.

청와대 영빈관, 다과를 곁들인 대통령님과의 대화. 그가 늘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노사모의 ‘시민주권 노빠들’과는 또 좀 다르게 참평포럼은 ‘선수급(?) 노빠들’이라 생각해서였을까. 한 달 전 대선 패배의 쓸쓸함에 더하여, 불과 두 달 후면 맞닥뜨려야 할 총선의 무거움이 우리를 누르고 있던 상황에서 그는 이날 작심한 듯 노무현가문의 후손들에게 대통령으로서의 마지막 당부를 남기셨다. 절박하고 비장하게.

긴 말씀이셨지만 요약하면 딱 이 두 마디다.

“기죽지 맙시다!”
“살아남아야 합니다!”

목숨 걸고 하는 것이 민주주의고 필연코 패배를 동반한다. 목숨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패배를 인정하고 패배자로서 행동할 때 민주주의가 시작된다. 국민들은 실패를 보면서 평가한다. 오락가락하다가 국민들에게 들키지 말고 있는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라.

그러셨다.

구심이 될 세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현실에서 ‘어디든 될만한데 가서 붙어라’ 하셨다. 서럽고 어려운 일이 ‘비주류’ 하는 것이지만, 비주류 잘하는 것이 정치에서 중요하다며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하라’ 하셨다. 친노가 주홍글씨 되어 뭉치지도 못하는 딜레마 잘 아신다면서 ‘어디든 공천받을 수 있는 당에 가서 살아남으라’ 하셨다.

민주당과 통합 전야의 대통합민주신당이 손학규를 새 대표로 선출하던 즈음이다.

에두르거나 애매하게 말할 줄 모르시는 노짱, 지금은 혼미한 각개전투 상황이라며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살아서 ‘10명만이라도 당선시킵시다!’ 하셨다. ‘살아남으라’는 말만 스무 번 이상 들었던가…? 그 말에 묻어나오는 와신상담이 서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늘한 각오를 다지게 해주던 그날의 안타까운 당부.

이후, 틈날 때마다 ‘노무현의 씨까지 말리지는 말아달라’는 그 눈물겨운 ‘종자보존론’으로 지원사격 하셨다.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 귀향길, 밀양역 앞마당의 ‘노무현 대통령 귀향 환영식’도 예외 없었다.

“다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그냥 예쁘게 봐주십쇼. 귀하다 생각하면 예쁘게 보이지 않겠습니까? 또 좀 밉게 보이다가도 내 새끼다 싶으면 또 예쁘게 안보이겠습니까?”

“(지난 지방선거에서) 저랑 당을 같이한 사람들이 이 경남에서 대부분 떨어졌는데요. ‘종자’ 하나 받으라고 (밀양시장은) 밀양시민 여러분들이 당선시켜 주셨어요. 정치인 ‘노무현 종자’도 길게 보면 제법 괜찮은 종잡니다. 종자 씨 말리지 말고 계속해서 사랑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폐족입니다. 그리고 민주당은 나의 정당입니다”

노짱님 말씀처럼 비주류는 서럽고 어려웠다. 죽어도 민주당에서 죽는 게 정도라 믿으며 민주당의 구석진 방 한켠을 겨우 차지한 폐족 생활이었다. 그런데….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백만년불복’ 이인제와의 일전에 출사표를 던졌던 안희정이 아예 공천에서 배제됐다. 참여정부 5년 내내 당, 내각, 청와대 그 어떤 곳의 말석 하나도 얻지 못했던 참여정부 탄생의 일등공신. 그러나 비운의 개국공신, 노무현의 ‘좌희정’.

논공행상은커녕, 노무현 대선자금 모금의 모든 책임을 홀로 지고 단 하루의 감형도 없이, 에누리없는 감옥살이 끝에 만기출소한 그였지만, 민주당은 어이없게도 그것을 유일한 이유로 하여 그의 공천장을 빼앗아 갔다. 그런 민주당의 삽질 덕에 이인제는 또 금배지를 달 수 있었고….

한없는 고마움과 미안함 때문에 노무현이 울어야 했던 두 남자 중의 한 명, 안희정.

주변에서는 민주당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며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강력하게 권했지만, 노짱님의 서럽고 비장한 당부를 가장 우직하게 따르는 후손은 역시 ‘좌희정’이었다. 그 선거의 끝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 같아선 전문을 가져오고 싶지만 일부다.

“민주당은 나의 정당입니다”

그 이름이 수백 번 바뀌고 당 지도부가 골백번 바뀐다 해도 나는 이 정당을 나의 정당으로 인정하고 나의 정당으로 만들려 노력할 것입니다.

민주화 정부 10년이 저는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60년 헌정사에서 유일하게 존경받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민주당을 나의 정당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민주당에 충성할 것이고 이 민주당이 오류를 범한다 할지라도 그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 책임지고 노력할 것입니다.

나의 어떤 의견이 소수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라 해도 나는 이 당을 나의 당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지금의 민주당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들은 이런 저의 말씀을 참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이 땅 보수특권세력의 맞은 편에 서 있는 우리의 진영은 지금 민주당입니다.

새로운 당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하십니다. 서로가 서로를 쫓아내야 할 대상이라고 여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소수자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당을 쪼개고 당을 새로 만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처한 위치에서 상대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결별을 선언해서도 안 됩니다. 당에는 언제나 주류가 있고 비주류가 있기 마련입니다. 지금 만약 내가 비주류라 한다면 주류가 되어 당의 지도노선을 새롭게 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을 미워하는 분도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창당을 분당과 배신이라 비판하는 분도 있습니다. 당신들은 탄핵을 주도한 세력 아니냐고 맞고함을 치기도 합니다. 비민주적 구태정치, 정치적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정치를 향한 개혁에 저항했지 않았느냐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저는 우리 모두에게 제안합니다. 우리 모두 지난 여름에 서로가 서로에게 행했던 그 모진 마음, 그 모진 삿대질을 이제는 용서하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경쟁합시다. 국민과 이 당을 지지해 온 수많은 지지자들 앞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 따라 경쟁합시다. 그리고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힘을 모아냅시다. 공정하고 투명한 규칙 속에서 경쟁하고 그리고 그 결과에 승복함으로써 우리는 국민 앞에, 지지자 앞에 책임 있는 정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민주당의 총선 참패 후, 그는 최고위원에 선출되어 민주당을 이끌었고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당당히 충남지사에 당선되며 노무현가문의 부활을 쏘아 올렸다. 당선 일성으로 그는 자신의 승리가 ‘이명박에 대한 심판이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복권이며 위로’라면서 ‘대통령님이 무척 좋아하실 것’이라 말했다.

안희정, 그가 위로해 준 사람이 대통령님만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2017년에 ‘대통령님이 더 좋아하실’ 일을 위해 그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것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2008년 총선, 그분의 뜻에 따라 어떻게든 있는 자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후손들의 노력은 처절했지만, 살아남은 노무현의 ‘종자’들은 겨우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더 그분의 당부대로 부활의 ‘씨’를 지켜 준 그들이 고마웠다.

백원우, 이광재, 서갑원…. 너무 고마웠고 지금도 계속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 알아주시라.


(나레이션) “나는 노빠다!”

‘효자’ 이야기는 여기까지. ‘5월은 노무현’이다 보니 새삼 그리워져 길어지고 말았다. 지금부터는 어느 가문에나 한두 명은 있다 했던 ‘탕아’ 이야기다.

마음 한켠 시리긴 해도 고마운 이야기 뒤에 낯부끄럽고 속 틀어지는 이야기를 이어 붙이기가 송구스럽긴 하다. 실제로…, 어디 감히 유시민을 노짱님과 비교하느냐며 그런 불경스러운 대목 즉시 삭제하라고, 오프에서 나를 무섭게 혼내는 사람도 있다. 대문에 걸리고 나면 수정이 안 되더라 답했지만 지금도 수시로 욕먹고 있다.

수많은 댓글유빠들이 나를 유시민 ‘염꾼’ 취급한다. 봉팔닷컴에서는 누가 나를 정치꾼이라 했다가 그게 아니라 정치인, 정당 차원의 개입 같다고 하더라. 정말 크게 웃었다. 나 정치인 아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짓도 아니다.

“나는 노빠다!”

‘그분’ 계신 곳이 내가 사는 곳이던 10년 노빠생활 끝에 그분은 역사가 되고 나는 폐인이 되어 이제는 어지간한 사람들 다 있다는 변변한 명함 한 장 지니지 못한 대한민국에 흔하디흔한 2002년산 늙은 ‘노뼈’다. 그동안 어떤 서바이벌에서도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평생을 그렇게 살다 죽어버릴 ‘백만년노빠’다.

유시민 죽이기 하는 염꾼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게 할 일이 없나? 노빠질 할 시간도 모자라 죽겠다. 하지만, 유시민 벗기기는 끝을 볼 때까지 할 거다. 유시민을 다시 노무현가문과 민주개혁진영에 가두어 놓거나 유시민이 노무현 이름표를 내려놓고 제 갈 길 갈 때까지! 가문의 도굴범을 더는 이대로 놓아두지 않을 거다.

유시민은 우리에게 빨리 끝을 보여줘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참여정부 끝 무렵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쌓여 온 당신의 모든 배신의 기록들이 실록 다큐멘터리로 차례차례 쏟아질 거다. 나 홀로 건립해 놓은 사설 ‘노무현 기록관’, 비록 초라하지만 하드디스크만큼은 용량 제한이 없다.

이어지는 글은 다소 길고 독할 거다. 임산부 유빠나 노약자 유빠, 병들고 심약한 유빠는 이쯤에서 ALT+F4 하기 바란다.


한 편의 부조리극… ‘유시민, 시민과 유빠를 낚다’

‘헌신하는 지지자에게 단 한 번의 승리도 화답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더 이상 섬김의 대상일 수 없다. 지지자 무서워할 줄 알고 소중히 여길 줄 안다면 매번 그렇게 잘못된 선택과 무익한 전략 전술 구사로 패배만 반복할 수는 없는 거다. 지지자를 소중히 하지 않는 지도자는 나쁜 지도자고,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면 무능한 지도자다.’

‘난 유시민 그가 유빠들에게 젖은 눈빛으로 고맙다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3년 전 대구총선 유세현장, 수백 명의 지지자들을 모두 길바닥에 엎드리게 해 (유권자들에게) 함께 절을 시키는 값싼 장면에서 난 그의 바닥과 시민광장의 끝을 봤다.’

내가 지난번 썼던 글의 한 토막이다. 정치인 팬클럽과 연예인 팬클럽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 자신을 위해 몸과 마음과 돈과 시간을 바쳐 헌신하는 자발적 지지자들을 한낱 사생팬 스토커나 구태정치의 소모품쯤으로 취급하는 그 사람의 철학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했던 경험담이고, 그때, 나는 비로소 그를 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둥 뭔 피학증후군 환자 같은 댓글유빠들의 궁시렁이 이어진다. 그쯤에서 끝내려 했던 것인데 부득이하게 2008년 총선, 그의 대구출마를 한 번 더 들여다보자.

그간 숱한 언론인터뷰에서 빠지지 않던 질문 두 개가 있다.

“뜬금없이 대구로 간 이유, 노무현 따라 하기 아닌가?”
“떨어져도 고향 대구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키겠다 하셨는데, 말없이 주민등록을 옮겨 떠난 이유는?”

유시민이 답하길, 전자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아니다!’ 했고, 후자에 대해서는 노코멘트하거나 그저 ‘죄송하다.’ 정도였다. 그랬는데…, 이에 대해 모처럼 솔직한(?) 그의 답변이 있다.

영상으로 보자. 무척 자랑스러웠던지 자신의 홈페이지에 지금도 걸려 있는 동영상이다.

“당선되리라고는 ‘단 일 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떨어지려고 간 거죠.”

‘떨어지러’ 갔단다. 대통령님 퇴임과 함께 정치 그만두려면 ‘꼭’ 떨어지고 싶은데, 자신에게 두 번 연임으로 국회의원 시켜 준 ‘고양’은 이번에도 혹 붙을지 모르니 ‘확실히’ 떨어질 수 있는 ‘대구’로 간 거란다.

‘지역주의 여전히 심각하다’는 것을 주제로 ‘폼나게’ 낙선공연 한 거란다. 노무현 대통령이 5년간의 ‘인기 없는’ 공연을 막 마치셨는데, 아직도 남아서 앵콜을 외치는 소수의 청중이 있어 유시민이 친노의 주연배우를 자처하여 참여정부의 막을 완전히 내리는 ‘커튼콜’ 앵콜공연 한 거란다.

하는 말마다 불경스럽다. 생각이 가벼우니 말이 저리 가벼운 거고 하는 짓도 늘 가벼울 수밖에 없는 거다. 적통 참칭이 몸에 뱄다. 당신보고 노무현을 대신해 커튼콜 해달라고 앵콜 외친 청중, 나는 보지 못했다. 정치 그토록 그만두고 싶었으면 김한길처럼 그냥 불출마 은퇴하면 되지 왜 ‘꼭’ 고양시민 배신하고 대구시민 기만하고 지지자들 고문하는 ‘부조리극’ 낙선공연이 필요하지?

대한민국 정치가 당신의 즉흥 모노드라마 리허설하는 곳인가? 당신을 찍어준 33%의 소중한 표, 그 대구 수성 유권자들을 당신 공연의 엑스트라로 본인들 동의 없이 캐스팅한 거 맞지? 그분들 낚인 거지? 선거민주주의 파괴 상습범이다. 김해시민 무시하는 ‘업둥이선거’가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닌 거다.

웬 생뚱맞은 지역감정? ‘30년 만에 돌아온 대구남자 유시민, 수성 현대시장 담배집할매 둘째아들 유시민, 끝까지 대구와 의리를 지키겠습니다!’가 당신 선거슬로건 아니었나? 유세 때마다 빠짐없이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 박근혜’라며 찬양하던데, 박사모가 밀어주는 강기갑이 그리 부럽던가? 2008년 ‘대구 수성을’ 낙선공연 마치고 난 후, 2000년 ‘부산 북강서을’에서처럼 부산(대구)시민들이 제 가슴을 치는 지역감정의 벽에 대한 ‘울분이 소낙비처럼’ 쏟아지던가? ‘고담대구’라는 유빠들의 저주만 가득하더라. 지역감정 굳히기 하느라 수고 많았다.

하다못해, 한나라당에서 공천학살을 당한 친박들도 ‘살아서 돌아오라’는 박근혜의 교시를 좇아 곳곳에서 친박신당으로, 무소속 친박연대로 생환을 보고하던 18대 총선.

‘노무현 종자 씨 마르면 안된다. 어떻게든, 그곳이 어디든, 될만한데 가서 살아남아라. 10명만이라도 살아남아라.’ 서럽고 비장한 대통령님 당부에 따라 가문의 후손들 누구 하나 빠짐없이 처절하게 싸워 살아남거나 죽어나가고 있을 때, 대통령님의 당부를 따르지 않은 가문 안 단 한 명의 후손.

‘확실히’ 떨어질 수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 대구시민과 무뇌유빠들 낚아서, 당선되리라고는 ‘단 일 초도’ 생각하지 않으면서, 유유히 낙선공연 펼친 친노(?) 정치인. 노무현의 ‘한때’ 경호실장, 노무현의 ‘참칭’ 유일 적자, 유시민이다.

압권은 동영상 마지막에 나온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를 보고 ‘이제 우리(?)는 다시는 공직에 나설 수 없겠구나’, ‘앞으로 대구뿐 아니라 어디에도 출마할 일 없고 출마해도 당선 안 된다’ 판단하고 주민등록을 옮겼다는 유시민의 말. 거짓말이다. 유시민은 검찰수사 1년여 전부터 수시로 신당창당 진행상황을 보고받고 있었고 대통령님께서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하신 다음 날, 봉하사저를 방문해서 ‘신당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서거 직전의 노짱님에게 말이다.

이제 아시겠나? 왜 강금원이 유시민은 ‘친노’ 아니라고 잘라 말했는지!

“저한테 자원봉사하러 많은 분들이 오셔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절’도 하고 길거리에 쓰레기도 줍고 다 했는데, 그분들도 제가 당선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을 안 했을 겁니다.”

당시 서프와 시민광장이 연대하여 대대적인 유시민 지원유세 자봉했다. 그 헌신적이고 아름다웠던 광경, 모두들 생생히 기억하실 거다. 어디 춤과 노래와 절 뿐이랴. ‘사무실에 표 없고 골목길에 표 있다!’, 그때 고은광순이 외쳤던 구호다.

전국에서 모인 천여 명의 지지자들이 저마다 쓰레기봉투와 나무젓가락을 들고 나 홀로 혹은 2인 1조로 골목길마다 시장통마다 산개하여 담배꽁초 줍고 국밥 대구막창 일부러 사먹어 가면서 대구시민들과 1:1로 눈맞추는 ‘유시민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4.27 김해와는 비교조차 불가능한 풍경이었다. 오죽하면 대구시민들이 ‘살다 살다 이런 선거 처음 본다’고 했을까.

자, 누구든 대답해보시라. 불과 3년 전 일이다. 그렇게 했던 유빠들 중에 당선되리라고는 전혀 생각 안 했던 사람? 낙선될 줄 뻔히 알았지만 일부러 자기 몸 혹사해가면서 마음과 돈과 시간을 함께 바쳐 헌신했던 사람? 아무런 대가 바라지 않는 자발적 지지자로서 유시민에게 존중받기는커녕 오히려 그에게 낚여 의도된 낙선공연의 소품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알았던 사람? 한 명이라도 있으면 손?

개표방송 있던 날 밤, 후배 유빠 한 명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 울먹였다. ‘전 정말 당선되는 줄 알았어요. 뒤집기의 기적이 찾아올 거라고 진짜 믿었다니까요. 안 그랬으면 그렇게 못 했죠.’ 난 그저 ‘마음이 사무치면 전봇대에도 꽃이 핀다’지만 그 말을 유시민이 하면 믿지 마라, 그렇게 위로해주고 말았다.

유시민 대표, 그러시는 거 아니다. 천 번을 양보해서 떨어지러 갔으면 그냥 혼자 조용히 떨어지실 일이지, 순진한 지지자들에게 그렇게 잔인한 동원령 내리는 거 아니다. 낙선인사도 대대적으로 했지 아마. 그거라도 안 시켰어야지. 하겠다 해도 말리셨어야지. 그 모든 거, 노사모에서 시작된 ‘자발적 참여민주주의’에 대한 테러이자 ‘참여정치’의 씨를 말리는 일이라는 거 잘 아시지 않나.


‘적자 프레임’ 깨졌다… ‘진영 프레임’ 넘어라

예고는 했지만 너무 길다. 하는 수 없이 본론 생략하고 바로 결론으로 간다. 누구든 ‘반대신문’ 하고 싶은 분들의 반박 있으면 별도의 글로 또 장문테러 해 드리겠다.

유빠들은 작금의 유시민 비판을 ‘민주당빠 대 국참당빠’의 대결이라고 강변한다. 심지어 ‘정빠 대 노빠’의 싸움이란다. 틀렸다. ‘노무현가문 바로 세우기’가 본질이고 따라서 ‘노빠 대 유빠’의 싸움이다.

국참당과 시민광장에 노빠가 있다는 것 인정한다. 정확하게 말해서, 자신이 노빠라고 확신하는 유빠 있다는 것 인정한다. 그래도 ‘노빠 대 유빠’의 싸움이다. 그들 입장에서 이 모순을 해결하는 유일한 처방은 노빠와 유빠 두 개의 이름표를 가진 ‘변종노빠’ 분들이 어서 유빠를 지우고 다시 온전한 노빠로 돌아오는 거다.

노빠들의 당파성을 시험하고 노무현세력을 유린했던 ‘국참’ 서바이벌 전투가 두 번 있었다.

국참 시즌1은 궁.물 듬뿍 배어 있는 정동영의 품에 안긴 ‘미키’가 주도했다. 미키무리들은 ‘국참연(국참1219)’에서 한동안 노빠와 정빠 두 개의 이름표를 가진 변종노빠로 지내다가, 온전히 ‘노까정빠’가 되면서 전투를 종결했다. 그들의 지금 서식처는 ‘정통’이며 스스로도 더 이상 노빠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국참 시즌2는 ‘유시민’이 직접 주도했다. 유시민의 미키는 유시민이다. 현재진행형이다. 유시민무리들은 아직까지는 ‘국참당과 시민광장’에서 노빠와 유빠 두 개의 이름표를 가진 변종노빠로 지내고 있지만, 차근차근 ‘노까유빠’로 이행하고 있다.

국참당 창당 전야부터 이해찬, 한명숙을 구전홍보로 씹기 시작하더니, 당 대변인이 전당원 메일로 ‘민주친노 원로친노 그자들이 지금 유시민을 죽이고 있다’며 노골적으로 선동하자, 권양숙 강금원 가리지 않는 패륜을 거쳐 ‘김경수 주저앉히기’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갔다. 참칭적자 유시민이 ‘나는 노무현과 다르다’, ‘나는 노무현과는 다른 길을 갈 것이다’ 하는 것도 다 그런 이행의 증상들이다.

설마 노까까지야… 싶은가? 시즌1과 판박이다. 시작은 ‘노무현을 정동영으로 계승한다’였지만, 정동영 대통령에 장애가 되자 곧 노무현을 부정했다. 시즌2의 시작은 ‘노무현을 유시민으로 계승한다’였지만, 유시민 대통령에 장애가 되면 노무현가문 누구하고나 맞짱뜨다가 그예 노무현마저 부정하는 가롯 유다가 유시민과 유빠들의 운명이다.

시즌1 전투의 최대 손실은 노빠로 상징되는 ‘자발적 지지자’의 전투력에 깊은 상처를 입은 일이다. 자영업자를 포함한 이전까지의 직업정치인들에게 노사모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하나회도 월계수회도 아니고, 민산도 연청도 아닌 그들에게는 ‘일개’ 노사모가 청와대를 접수하자 조선일보마저 놀랐다. ‘노무현 대통령 탄생의 1등 공신은 노사모’, 2002년 12월 20일 조선일보 헤드라인이다. 그러나 노사모의 극히 일부가 노사모 전체를 참칭하며 정동영에 투항하자 아군진영 전체가 희화화되면서 정치자영업자들까지 우리를 우습게 보기 시작한 거다.

현재까지 시즌2 전투의 최대 손실은 노빠진영의 일도양단이다. 시즌1의 손실은 노사모 초기부터 1219 승리까지를 주도했던 핵심 명망노빠에게 당한 상처였지만 그 수가 적었기에 최소한 수적으로 큰 손실을 입지는 않았었다.

시즌1 전투도 시즌2 전투도 아군 진지는 서프다. 시즌1 전투에서는 아군이었던 그들이 왜 지금은 적군이 되었을까? 호환 마마보다도 무서운 유시민의 ‘노무현 적자 프레임’ 때문이다.

그 뿌리가 깊고, 최소한 참여정부 끝 무렵 이전까지는 큰 문제 없는 프레임이었기에 노빠들 자신조차 본인이 변종노빠가 되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다. 여기에 더하여, 5·23 이후 노무현에 대한 깊은 부채의식으로 복수심에 불타는 신진노빠들이 이 ‘노무현 적자 프레임’에 대거 걸려들었다. 그분들, 엉뚱한 곳에 가서 지금도 열심히 헛발질하는 중이다.

4.27 직전까지, 비록 노빠진영과 노무현세력이 큰 손실을 입긴 했지만 그 프레임이 마침내 깨졌다. 오죽하면 강금원이 나서고 독고탁은 친위쿠데타를 일으켰을까만, 결국 그 프레임을 깨준 건 국민들이었고 누구보다도 대통령님의 고향사람들, 김해시민이었다.

그렇다면 왜 싸움이 종결되지 않고 있을까? 왜 수많은 팩트들을 보면서도 그들은 요지부동일까? 혹, 머리가 나쁘거나 천성이 불량한가? 아니다! 바로 구제역 광우병보다 무섭고, 대지진 쓰나미보다 무서운 ‘진영논리 프레임’ 때문이다.

진영논리, 별거 아닌 것 같을 거다. 이론도 쉽다. 적군이든 아군이든 공평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것, 아군일지라도 잘못이 있으면 가차없이 까야 한다는 것, 만약 잘못이 심각하면 안면몰수하고 처발라야 한다는 것, 그게 다다. 봉팔닷컴에서 친목질 금지하는 것도 이와 같은 거다. 그런데 정말 이 프레임 무서운 것이 한번 갇히면 아무것도 안보이고 아무 말도 안 들린다.

나도 이 프레임에 갇혀 있었을 때, 그 유명한 오마이뉴스의 유시민 인터뷰 동영상, ‘화염병을 들고 바리게이트에 다시 달려드는 절필선언’ 동영상에 함께 들어 있는 DJ를 향한 저주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분수를 알아야 해요’, ‘나 같으면 하야해요’라는 패륜발언 말이다. 너무 감동해서 그 절필선언 동영상을 수십 번 보면서도 그 순간부터 강력하게 작동하기 시작한 진영논리에 갇혀 그 발언을 본능적으로 씹어버렸다. 내가 그 프레임을 깨고 나왔을 때 비로소, ‘아, 그때 이거 분명히 봤었는데 왜 내 감정도 논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을까’ 자각하면서 진저리를 쳤다.

진영논리가 더 무서운 것은 이 프레임은 본인 스스로가 직접 깨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눈, 귀가 기능 하지 않기에 누구도 대신 깨주지 못한다. 그래서 시간도 오래 걸리고 대부분 그러다가 손을 놓고 만다. 화려했던 날들을 뒤로하고 잠수타거나, 아픈 기억과 상처를 지닌 채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노무현을 내려놓고….

말씀드리다 보니 새삼 몸서리가 쳐져서 오늘은 더 드릴 말 없다. 송구스럽게 길고 길었던 글, ‘두 줄 요약’으로 마친다.

“노빠들이여, 총단결하라!”
“마지막 남은 진영논리 프레임, 스스로 깨고 어서 돌아오라. 노무현가문으로!”

ps - 아래는 역시 서프에서 쎄벼온 강풀 26년후의 한 대목. 해석은 알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