눼. 그렇습니다. 코블렌츠님 글에 대한 '반박' 되시겠습니다. 사소한 데에 목숨 좀 걸겠습니다. (누가 뭐랬나ㅋㅋ)

노래하는 사람의 사연이 그 노래를 빛나게 한다는 말씀은 분명 지당하지만, 
노래가 주는 감동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기에는, 좀 지엽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가수다> 임재범의 사연을 예로 드셨지만, 그것도 사실 재밌는 부분이 있습니다.
막상 경연에서 임재범의 라이브를 듣고 1등으로 표를 던진 청중평가단은
임재범의 구체적인 <사연>을 전혀 듣지 않았다는 거죠.

그 사연은 TV를 본 시청자들만 본 거였습니다.
노래 가사가 자신의 실제 경험담이라는 것.
딸아이 때문에 방송에 나왔다는 것, 뭐 그런 것들...
청중평가단은 아무것도 들은 게 없었어요.

( 이 프로그램은 이상하게 그 중요한 청중평가단한테 너무 설명이 없더군요.
1차 경연때도 선곡이 '몇년도쯤의 노래중에서 랜덤으로 뽑힌 거' 라는 걸 전혀 말하질 않아서
김건모 김범수 등은 선곡이 올드하다는 것때문에 더 반응이 안 좋았다는 증언;도 있더라고요.
하다못해 랜덤인지 본인 선택인지 정도라도 알려줘야 평가할 기준을 잡을텐데 말이죠. )

그래도 임재범 부인이 암이라는 얘기 정도는 인터넷에 이미 나와 있었지만
그걸 모든 평가단이 알 수도 없는 거고, 또 안다 하더라도 
임재범 본인 입으로 말하는 <사연>을 듣고 곧이어 노래를 들은
TV 시청자들이 느끼는 감흥과는 도저히 같을 수가 없죠.

물론 <사연>이 방송으로 나간 다음부터는 좀 다르겠지만, 어쨌든 임재범의 첫 1등은 <사연>없이 이뤄졌던 겁니다.


또 사연이 필수가 아니라는 단적인 예로....

임재범 등장 직전 경연에서 <제발>을 부른 김범수는,
노래 외적인 요소 거의 없이, 노래의 느낌을 최대한 끌어올려 왈칵 쏟아내는 (편곡 및) 창법 하나로 
압도적 표차의 1등을 차지했죠. 

근데 그 <제발>은 <사연>이 만든 노래의 대표격에 속한다는 게 또 재밌는 겁니다. 물론 김범수가 아닌 이소라 말이죠.
이소라 노래 상당수가 이소라의 연애와 삶에서 토해진 거지만, <제발>은 특히 이소라의 매우 사적인 노래죠.
그래서 주인공인 이소라가 불러야 비로소 완성되는 노래이기도 하고요.

그런데도 이 사적인 <사연 덩어리>의 노래를, 전혀 상관없는 김범수가 불렀는데도
그게 그렇게 사람 마음을 울리더란 말입니다. 혹자들이 절창이라고까지 할 만큼.

저는 심지어, 이소라가 다 꺼내놓지 못한 감정의 바닥까지를 김범수가 남김없이 뱉어버린 것같은 후련함마저 있더군요. 
처음 중간평가에서 그 노래를, 아니 그 절규를 듣던 순간의 그 찌르르한 느낌, 어우...... 충격이었습니다요.



아무튼,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 느끼건데, <사연>은 노래를 더 기름지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일단은 노래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제대로 갖춰져야, 노래가 사람 마음을 울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적절한 선곡. 

가수의 음색을 십분 살려주는 곡과, 역시 가수에게 적절하면서도 유려한 가사,
여기에서 감동의 한 80% 이상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

천하의 임재범인들, <마법의 성>으로 감동을 주는 건 도대체 상상이 안 되는 거죠.
윤도현이니까 그나마 덜 말아먹었지. ㅋㅋ
임재범에겐 역시 처절하면서도 파워풀하고, 또 약간은 올드한 곡이 딱이고요,
박정현에겐 맑고도 드라마틱한 곡이, 
김범수에겐 지하 150미터 암반수도 길어올릴 절절한 마이너 곡이 제격이겠죠.

가사도 정말 중요한 게, 이소라가 화려한 리듬과 댄스에 묻혔던 <넘버1>의 훌륭한 가사를
딱 캐치하고 소화해내자, 노래도 가수도 같이 빛을 발하지 말입니다.
반면 윤도현은 소녀시대의 대책없이 얄팍한 가사에 깔려죽기 일보직전이고 ㅋㅋㅋㅋ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세인 임재범의 경우, 이건 또 <사연>을 빼고 얘기할 수가 없단 말이죠.

한데 제가 보기엔 사연이 앞장서서 임재범 노래를 살린다기보다는,
사연많고 굴곡많고 자의식 강한 임재범의 삶의 면면이, 
임재범의 노래에 한올 한올 촘촘히 배어나와서, 
결과적으로 감동을 배가시킨다는 게 더 맞는 표현 같습니다.

실제로 임재범의 사연을 전혀 몰랐지만 노래 듣고 이상하게 울컥했다는 사람들이 존재하거든요.

그건, 1차적으로 임재범의 목소리와 음색 자체가 워낙 특수하고 독보적인 것이 중요한 원인이죠.
아시아인에게선 나오기 힘든 목소리라는데요,
조용필도 타고난 미성을 로드 스튜어트 같은 소리로 바꾸고 싶어서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약간 거친 목소리를 '만들었다'는데
임재범은 저렇게 묵직하니 마음을 깊게 파고드는 목소리를 그냥 타고 났으니, 첨부터 절반은 먹고 들어가죠.


하지만 물론 이게 전부가 아니죠.
임재범에겐 그 삶에서 우러난 듯한 강한 야생성이 있어요.
이건 비슷한 음색을 가진 박효신, jk김동욱 등의 젊은 가수들에게선 느껴지지 않는 요소예요.
노래 가사중에도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라고 나오지마는,
임재범의 노래에선 왠지 모를 불안불안한 기운이 뻗쳐요. 누구도 길들일 수 없는 야생 호랑이의 느낌.

이젠 임재범도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으니, 그 야생성이 풀이 죽었느냐...?
그게 아니라 오히려 남이 아닌 가수 '스스로에 의해' 적절히 통제되고 재해석된 야생성이,
한층 더 강력하면서 보다 보편적인 호소력을 띄는 것 같아요.

이건 임재범이란 사람의 개성과도 연결되는 건데.....
임재범은 최민수가 연상될 정도의 마초성을 지녔으면서도 동시에 공격적이거나 폭력적인 느낌이 없어요.
예전엔 달랐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분명히 그래요. 
그래서, 애도 잘 보고 분리수거도 열심히 한다는 증언;도 꽤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단 말이죠.

강한 남성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폭력성과 가학성은 제거된 스타일,
이거 정말 요즘 세상에 희귀하면서도 나름 괜찮은 성향인 거예요.
나이가 50인데도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는, 아니 새로운 트렌드를 제시하는 느낌이 있어요.


이런 복합적인 남성성과 진일보한 야생성이, 굵고 거칠면서도 찰진ㅋ 목소리와 만나니,
여성이고 남성이고 중장년이고 10대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고루 심금을 울리고 매력에 반하게 하는
오늘의 결과가 나오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 어떻게 보면, 임재범의 재발견은, 현대인들이 세파와 이기심속에서 잃은 
아름다운 남성성과 야생성에 대한 환호인지도 모릅니다.



또 한가지는......

임재범의 노래는, 연기로 치면 전형적인 메소드 연기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나라의 메소드 연기의 발군 김명민이, 장군도 됐다 의사도 됐다 지휘자도 됐다 환자도 되듯이
임재범은 가사 한음절 한음절마다 자신을 그대로 실어 빙의시켜 담아냅니다.
노래가 임재범이고 임재범이 노래예요. 스스로 넋두리라고 폄하할만큼 말이죠.

이와 상극으로 대조적인 가수가 바로 김연우죠.
김연우는 연기로 치면 완전 비메소드 연기. 노래와 가수를 분리합니다.
그는 그저 청자들에게 노래를 이야기하듯이 선사해줍니다. 
임재범이 '가수로서 노래를 한 사람은 김연우다' 라고 찬사했듯이요.

그러면 듣는 사람 각자가, 노래를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에 대입해서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죠.
가수가 노래의 사연에 자신을 담지 않고 뒤로 물러섰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김연우가 유명세도 없이 담담하고 조용한 노래만으로도 많은 열혈팬을 가질 수가 있었던 거죠.
김연우에게서 선물받은 '나의 노래'를 통해 위로받고 치유받은 사람들이 그간 알게모르게 많았던 겝니다.
창칼이 휘날리는 경연에선 그럴 겨를이 없는지라 묻히고 말았지만 말이죠.

그러고 보면, 김연우와 임재범은 그 삶도 대조적이라서 재밌습니다.
김연우는 그저 성실하고 착실하게 한눈팔지 않고 심지어 학구적으로 노래를 연마해온 장인이고,
임재범은 좌충우돌하더라도 목표나 체면보단 자신의 감성과 호오에 충실하게 살아온 천재죠.


아무튼, 자신을 통째로 담아 드러내는 임재범의 메소드 연기식 노래법은
그의 사연많은 삶의 무게감을 실어내는 효과도 극대화시킵니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묵지근하게 다가오고 사람을 쉽게 울컥하게 만들죠.

이번에 예고에서 잠깐 나온 노래 <여러분> 한소절만 듣고도 
많은 사람들이 이유없이 눈물이 나게 만드는, 괴력의 메소드 가수 임재범.



좋은 노래, 좋은 목소리에 실려오는 가수들의 치열한 감성과 삶의 무게감.
이 멋진 걸 푸짐하게 만끽할 수 있어서 즐겁고 흥미진진한 요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