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권위주의 정부에서 퍼뜨린 지역주의 담론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에게 차용되고 이용당했는지에 대해 보기로 하자.

사실 이 부분은 "만들어진현실.pdf "의 3김 청산론과 관련된 부분을 보면 잘 나와 있다. 나아가 노무현이 민주당 간판으로 당선 된 이후 갑자기 민주당을 지역당으로 호도하고 지역주의 청산이 정치의 모든 본질인양 이야기했던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실제 노무현이 집권기 동안 등용했던 인물중에는 바로 3김청산론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음을 본다. 결국 노무현은 집권 이후 한국정치의 본질이 (망국적) 지역주의라는 조선일보의 주장을 리바이벌하여 그것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 된다. 나아가 3김 청산론의 지역주의 양비론을 차용해 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서는 "만들어진 현실"의 내용을 잠시 소개하는 정도로 그치고자 한다.

우선 3김 청산론은 다음과 같은 의미 구조를 갖는 것이라고 한다.

(1)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를 제약하는 요인은 지역당 체제다. 이는 3김이라고 하는 해당 지역의 지배 엘리트가 유권자의 지역감정을 경쟁적으로 자극하여 만들어 낸 지역 할거주의의 내용을 갖는다.
(2) 지역주의는 출신 지역이 동일한 정치 엘리트를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전근대적 의식 행태로, 유권자의 정치적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지역주의의 중심 내용은 영호남 간의 망국적 지역감정이며, 이 때문에충청도와 강원도에서도 반사적 지역주의가 만들어졌다.
(3) 3김은 유권자의 지역주의를 볼모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따라서지역당 체제의 극복을 위해서는 3김 청산과 같은 구정치 엘리트의 퇴출과 함께 유권자의 탈지역주의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3김 청산론의 담론적 기원을 80년대부터 보고 있다. 즉 신군부가 정치적으로 등장하면서 가장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3김을 타겟으로 만든 담론이 바로 3김 청산론 이라는 것이다.
 
1980년 조선일보의 보도를 보면 다음의 3가지 담론적 요소가 주목된다. 우선 지역감정을 주제로 한 기사는 모두 야당인 신민당 내부의 갈등을 다루는 소재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야당의 지구당 위원장 선출을 둘러싼 폭력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다. 둘째, 야당의 정치 지도자 3김을 정치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정치 질서의 대변자이자 퇴진해야 할 세력으로 정의했다는 점이다. 셋째, 이런 정의의 다른 측면은 유신 체제를 재생산하고자 했던 전두환을 ‘새정치 세력’으로 의미 부여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1980년 8월 14일 김영삼의 야당 총재직 사퇴에 대해 이례적으로 1면에, “구정치 질서 공식 종언”이라는 제목의 해설 기사를 실었던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3김 청산론은 87년 대선을 앞두고 노골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조선일보에 의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주필이 쓴 몇가지 칼럼을 보도록 하자.

우선 “지역감정”이라는 제목의 8월 2일자 김대중 칼럼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모두가 걱정스러운 눈치고, 심지어 두려움 같은 것을 느끼는 사람도 많다. 이러다가는 나라꼴이 엉망이 될 것이라고 개탄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그것은 지역감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 간의 적대적 감정이고,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경상도 정권에 대한 전라도 사람들의 한 맺힌 피해 의식이다. ……최근에 와서 지역감정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는 경향이 노골화 ……게다가 영호남의 지역감정의 틈바구니를 겨냥한 움직임의 조짐도 엿보이는 실정이다. ……지금 우리 유권자들에게 가장 잘 먹혀 들어가는 한마디는 ‘전라도에 정권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을 것이냐’인 것 ……어느 쪽이 먼저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상황은 서로 꼬리를 물고 상대방을 자극해서 악순환의 고리에 불을 댕길 것이며 그것이 경우에 따라서 어떤 폭력적 양상으로까지 발전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지역감정에 호소하거나, 그것을 자극하는 따위를 삼가도록 하고 또 국민들도 특정인의 정치적 이익에 추종하는 행위를 거부하도록 하는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반지역감정 운동의 선봉을 대학생들이 맡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어 8월 16일자 “당신은 누구 편인가”라는 제목의 “김대중 칼럼”은 훨씬 직설적이다.

지역 간의 감정도 갈수록 심화되어 이제는 ‘xx도 놈’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낯설지가 않아졌다. 그런 현상의 결과로 …… 무슨 글 한줄 쓰면 ‘근로자 편이냐 기업주 편이냐’는 희롱조의 힐문이 되돌아오고, ‘민주화 편이냐 반민주화 세력이냐’라는 서슬이 시퍼런 비난이 여기저기서 날아온다.

이런 내용이 갖는 정치적 성격은 9월 13일자 “돌아온 ‘3K’”라는 제목의 “김대중 칼럼”에 잘 나타나 있다.

오늘의 상황이 어쩌면 적어도 외견상 1980년 4~5월의 상황과 그렇게 비슷하게 돌아가는지 기분 나쁠 정도다. …… 물론 그때의 상황 여건과 오늘의 상황 여건이 같지는 않다. 권력의 공백기에서 그 공백을 메우려는 숨 가쁜 질주들이 앞을 다투었던 그때와 하나둘씩 절차를 밟아 권력의 양도를 다짐하는 지금의 상황이 우선 같지 않다.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통령에의 꿈을 버리지 않고, 오로지 매진하는 ‘그때 그 사람들의 지금 모습’인지도 모른다. ……3김 씨의 80년 재연을 덮어놓고 사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한가하지가 않다. ……두 김 씨의 이름이 결코 우리 정치의 마법이 아니고 두 사람 아니면 우리는 일어서지도 못할 것 같은 맹신이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두 사람의 추종자들이 깨닫도록 하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물론 87년 대선에서 집권당인 권위주의 세력은 이러한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유포하며 선거운동에 이용을 한다. 그렇다면 3김은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

김대중 후보의 경우 지역주의는 호남 이외의 지지 시장을 확대하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비호남 유권자가 지역주의에 의해 영향을 받을수록 그 피해자는 김영삼과 김종필 후보가 된다. 이들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은 유권자가 지역주의의 영향을 받을 경우,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집권당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1987년 13대 대선 과정에서 야당의 세 후보가 집권당의 지역주의 이슈를 회피하고자 했던 전략적 근거다.

11월 초 김대중의 부산 집회가 괴청년들의 반대 시위에 부딪히고, 김영삼의 광주 유세가 무산된 직후 두 후보 진영 사이에 논란이 있었지만, 곧바로 양 진영은 집권당의 지역감정 동원에 대해 공동으로 대처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두 후보 진영의 일관된 태도는 지역주의 동원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상대 지역에서 유세했을 때 벌어진 폭력 사태에 대해 김대중은 “정보기관의 공작”이라고 비판했고 김영삼은 “민정당 정부가 고의적으로 만들어 낸 조작 행위”라고 보았으며, 따라서 “지역감정에 좌우되는 것은 노태우 후보를 도와주는 것”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나아가 상대 후보가 자신의 지역 기반에서 유세를 할 경우, 두 당은 지구당을 통해 유세 방해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기로 했다.

김종필 후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그의 정치적 기반이 충청에 국한되어 있다고 판단했다면 지역주의 동원은 합리적 수단이 된다. 그러나 그는 지역주의를 동원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13대 대선에서 그의 전략적 목표는 당선이 아니라 정치 시장에 진입 혹은 잔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13대 대선이 아니라 뒤이은 총선에 전략적 초점을 두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선이 아니라 총선에서 표와 의석을 극대화하는 데 있었다는 말이다. 둘째는 지리적으로 그의 지지 기반은 충청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경기‧강원‧경북을 포괄하는 것이었다. 이는 13대 총선 결과를 통해 분명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그가 지역주의를 동원했다면 당장 대선에서는 충청권에서 좀 더 많은 표를 얻을 가능성은 있어도 총선에서는 충청 이외 지역의 잠재적 지지 시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았다. 셋째는 지역주의의 개입이 그의 지지 기반인 보수층과 고연령의 유권자로 하여금 집권당을 지지하게 만드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3김 청산론은 지극히 권위주의 세력이 자신들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동원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이렇듯 권위주의 세력에 의해 동원된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과 3김 청산론은 90년대에는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90년 이른바 3당합당을 계기로 기존의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에 대항하여 새로운 담론이 등장하게 되는데 바로 지역 패권주의 담론이 그것이다.(나중에 저항적 지역주의 담론이나 지역등권론등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 당시 민주화세력의 일원이었던 김영삼이 권위주의 세력과 하나가 되면서 영남이라는 지역패권성이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지난 반세기동안의 불균형성장과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특정지역편중이라는 객관적인 역사적 팩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 현실 설명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에 비해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은 전라도에 대한 인격적 비난을 기반으로 하는 (유사) 인종주의 담론의 성격이 강했다.

더구나 웃긴 것은 (망국적) 지역주의니 3김 청산론이니 이런 소리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나중에는 권위주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모두 입당했다는 사실이다. 한때 민주화운동을 했던 노동운동을 했건 상관없이 모두 똑같았다. 그런데 민주당이 지역당이라 함께 할 수 없다면서 정작 자기들의 논리데로라면 영남당에 해당되는 한나라당에는 어떻게 입당할 생각을 했는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것은 심상정 노회찬으로 대변되는 진보운동그룹이 김대중하고는 노선이 달라서 절대로 비판적 지지를 할 수 없다고 했으면서 지난 경기도지사 선거에서 유시민 지지를 선언한 것과 똑같이 논리적 파탄을 수반하는 처신들이었다.

물론 "만들어진 현실"의 저자가 잘 지적했듯이 지항적 지역주의 담론이 사실 지향해야 할 바는 근본적으로 권위주의 vs 민주주의 또는 수구보수 vs 개혁진보의 프레임안에서 그리고 함께 사고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면에서 기존에 지역주의 문제로 생각했던 대부분(70정도)은 권위주의 vs 민주주의 또는 수구보수 vs 개혁진보의 틀안에서도 설명될 수 있고 솔직히 저항적 지역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중에 깨어 있는 상당수는 이미 그것을 전제하고 정치를 보고 있다고 본다.  다만 한국정치에서 30정도 지역주의 프레임 특히 저항적 지역주의 담론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특정지역의 정치 경제 언론패권이 권위주의 독재권력과의 연계속에서 매우 장기간의 기간 독점적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수, 개혁, 권위주의, 민주주의 상관없이 권위주의 세력이 만들고 유포했던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 3김 청산론(그러면서 실제로는 김대중만 죽일놈이고 민주당만 지역당이라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소위 유빠언론이나 유빠사이트에서 지금도 이런 민주당은 지역당이라는 구호가 횡횡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에 어떻게 포섭되었는지를 보도록 하자.

그것은 95년 김대중의 정계복귀 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시점을 계기도 다시 주류 언론은 3김 청산론을 부각시키기 시작했다. 주류 언론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기사주제인 현실 정치인(특히 개혁적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자극하고  덫 씌우기는 것과 딱 맞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주류언론의 보도만으로 이른바 망국적 지역주의론이나 3김 청산론이 지역주의에 있어 지배적 틀이 되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3김 청산론이 모든 언론의 지배적 틀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야당과 사회운동진영이 조선일보의 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앞서 지적했듯이 야당 정치 엘리트와 지역주의를 동일시하는 3김 청산론이 지배적 해석의 지위를 갖게 된 데에는 1995년 김대중의 정계 복귀가 큰 계기가 되었다. 우선 김대중의 정계 복귀는 주류 언론이 선호하는 대표적인 기사 주제인 현실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자극하는 소재로 기능했다. 이런 접근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전이 아니라 1995년이후에서야 3김 청산론이 지역주의에 관한 지배적 해석 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여기에 새로운 담론 생산 집단이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야당과 사회운동 진영으로부터 왔다.

주류 언론은 이들의 담론 행위를 보도하는 형태로 3김 청산론의 대대적인 유통자 역할을 하게 된다. 우선 김대중의 정계 복귀는 야당 내 이른바 평민당계 세력과 자민련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반면, 이기택을 중심으로 한 민주당 당권파 세력, 그 밖에 동교동계의 역할이 커지는 데 반대하는 동시에 당권 세력과도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비주류 세력의 이해관계와 충돌한다. 따라서 김대중과 평민당계 세력이 새정치국민회의로 분당해 나갔을 때 민주당 잔여 세력은 이들을 공격하고 비판하기 위해 3김 청산론을 수용하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 3김 청산론을 가장 적극적으로 동원한 세력은 정치 세력화 혹은 정계 진출을 지향했던 재야 사회운동 그룹이었다는 점이다. 3김 청산론을 공식적인 견해로 내건 최초의 재야 사회운동 조직은 ‘정치개혁시민연합’이었다.7) 대체적으로 이들은 1987년 대선 당시 ‘후보단일화파’로 분류되었던 그룹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여기에 장기표‧송운학‧노회찬 등 민중당 혹은 진보정치연합 출신이 결합되었고, 이들은 1995년 말 개혁신당으로 재결집하게 된다.

1996년 4월의 15대 국회의원 총선이 다가오면서 3김 청산론을 근거로 정치 세력화를 모색한 이들 재야 세력은 민주당과 통합하게 된다. 선거 경쟁에서 통합민주당의 정치 동원 전략이 갖는 성격은 원내총무(이철)의 설명에서 잘 나타난다.

최대 과제를 ‘3김 정치 청산’에 두고 있다. …… 바로 ‘3김 청산’이야말로 망국적인 ‘지역주의 청산’이라는 과제와 동전의 양면이 된다. …… 지역주의의 병폐는 실로 엄청난 것 …… 정치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최대의 암적 요인이다. …… 3김의 ‘지역 나눠 먹기’가 기승을 부리는 현실(에서) …… 지역을 볼모로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기어이 온존하려는 자(를) …… 국민은 결코 속지 않고 심판할 것이다.(한국일보 1996년 2월 24일)

결국 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개혁신당+민주당)은 대립적 관계하에 있게 되었고 통합민주당쪽 사람들이 권위주의 세력의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을 수용하게 되면서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은 정확한 통계나 사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고 정치 엘리트들간 대립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5대 총선에서 이들 통합민주당은 고작 9석정도를 얻는 정도에 그치게 되고 당 지도부와 재야세력이 모두 낙선하게 된다. 그래서 결선된 것이 바로 통추이다. 이 통추에 참여한 인사가 바로 노무현이었는데 노무현의 지역주의 담론이 어디서 형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

현실 정치에 진출하려던 시도가 좌절된 재야 세력은 그 원인을 지역주의적 3김 정치에서 찾으면서,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전개될 정계 개편과 연합의 정치에서 기회를 얻고자 또 다시 독립적 조직을 결성하게 된다. ‘통추’로 약칭되는 ‘국민통합추진회의’이다..

이 시기 가장 흥미로운 것은 과거 민주화 투쟁의 과정에서 권위주의 집권 당과 대립했던 재야 세력의 독자적 정치 세력화 시도가 3김 청산론을 근거로 추구되었다는 사실, 나아가 이들의 시도가 좌절되었을 때 상당수가 권위주의에 기원을 둔 집권당에 입당했고, 동시에 3김 청산론은 집권당 후보의 선거 슬로건으로 전환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만큼 한국 정치에서 이념적 차이가 갖는 진정성이 얼마나 취약한 기반 위에 서있는가를 보여 주는 예도 드물다. 동시에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에서 이 시기만큼 지역주의에 대한 하나의 해석이 민주주의든 진보든 개혁이든 모든 이념과 세력을 압도하는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경우는 없다. 이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3김 청산의 담론 동맹을 단순화하면 <그림 2-4>와 같다

노무현의 민주당 간판으로 집권 후 보여주었던 민주당 파괴정치의 그 이론적 근거인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과 3김 청산론이 사실은 권위주의 세력의 집권전략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참으로 개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3김 청산론은 어떠한 담론 효과를 가지는 것일까?

3김 청산론의 이데올로기적 효과

민주화 정초 선거에서 동원된 지역주의 담론은 권위주의 재생산의 위기에 직면한 지배 연합의 선호를 반영하는 것으로, 다른 무엇보다도 조선일보의 담론적 기획에서 그 성격이 잘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 의미 구조의 핵심은 상식의 세계를 지배하는 현실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내지 도덕주의적 편견에 기초하여 지역주의와 야당을 동일시하는 3김 청산론이었다. 

둘째는 권위주의 집권 연합의 세력 기반을 확대시키는 한편 그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분해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3김 청산론은 민주화와 관련된 이슈의 강도를 약화시키고 그 원인을 야당 후보들의 지역주의 경쟁 때문인 것으로 환원하는 담론 효과를 가졌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1996년 15대 총선을 전후한 시기, 정치 세력화를 모색했던 재야 세력은 결과적으로 권위주의 지배 연합과 나란히 3김 청산론의 담론 정치를 전개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집권당의 선거 승리와, 통합민주당과 재야 출신 후보의 낙선과 좌절이었을 뿐이다

3김 청산론의 정치적 효과

셋째는 민중당 지도부 혹은 재야 운동 출신이 집권당인 신한국당(후에 한나라당)에 참여할 수 있는 담론적 루트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이들이 이념적 거리를 뛰어넘어 정치 활동의 장을 옮기는 데 있어서 3김 청산론은, 정당 연합론에서 말하는 일종의 정거장(connectedness) 효과를 가졌다는 것이다. 3김 청산론의 담론적 효과를 알리바이로 이들은 권위주의에 기원을 갖는 보수정당에 참여하는 자신들의 정치적 선택을 정당화하려 했고, 반대로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DJ주의자로 몰아붙였다

넷째는 민주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이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 간 파당적 정치 경쟁이 중심이 되는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3김 청산론은 현실 정치 세력이 정파적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부도덕한 것으로 정의함으로써 민주정치의 존재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효과를 갖는다. 요컨대 3김 청산론은 권위주의 통치에 봉사했던 주류 언론이 민주화 이후에는 정치의 부도덕성을 공격하고 비난하는 것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찾고자 했던 대표적인 지배 담론이었다.

물론 실제 17대 대선에서 3김 청산론을 내세웠던 집권당은 정권 교체론을 앞세운 야당에게 패했다. 하지만 그 당시 아이엠에프를 일으킨 집권정당이 거의 박빙의 승부를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3김 청산론이라는 지역주의 담론이 있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 역시 3김 정치의 후계자로 공격받았던 노무현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했지만 노무현은 대통령이 당선되자 마자 민주당은 지역당 이다라는 3김 청산론 안의 주장을 다시 반복하게 된다. 그 결과 3김 청산론의 논리에 따라 대북특검이 용인되었고 나아가 실제로는 전국정당임에도 노무현의 머리속 생각에 의해 지역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은 분당을 하게 된다. 나중에는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똑같다며 대연정을 주장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에도 바로 권위주의 세력이 유포한 3김 청산론이 자리잡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정작 노무현 사망 이후 민주당이 지역당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사라지자 민주당은 어느덧 지지율 34프로대의 전국정당이 되어있다.(그것도 얼마전에 정당지지율 1위로 등극했다.) 그들의 논리데로 민주당이 지역당이라면 국민이 바보가 아닌이상 어떻게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으며 지역당이라는 민주당이 다시 34프로대의 지지율을 가질 수 있겠는가?

결국 원래 민주당은 호남을 기반으로 하지만(요즈음은 이것조차도 흐릿하다. 현 지도부는 수도권으로 모두 교체되었다.) 엄연히 전국정당임에도 자꾸 호남을 부각시키기 위해 권위주의 세력이 만든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을 가지고 나오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정치인들간의 내부 파벌 싸움 때문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또다시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을 유포하고 있는 세력은 누구일까?

우선 조선일보의 박지향 칼럼을 보듯 전통적인 권위주의 수구보수 세력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은 정치에 환멸을 느끼게 하는 효과를 가진 지역주의 담론을 유포하는 것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또 한 세력이 있다. 바로 유시민과 그의 아바타 유빠들이다. 유시민이 주구장창 외치고 있는 것이 바로 민주당은 지역당이라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감안해 볼때 조선일보에서 유시민을 은근히 띄우는 기사를 내보내는 것도 우연인 것 같지 않다. 얼마전 동아일보의 김순덕은 칼럼에서 유시민에게 한나당 입당을 권유하기도 했다. 우선 조선일보는 유시민이 주장하는 민주당은 지역당이라는 전통적인 3김 청산론적 구호가 민주게혁세력 분열시키는 효과에 주목한 것 같다. 그리고 동아일보의 칼럼은 그런 유시민에 대해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연선택을 유도하므로써 야권 내 유시민의 지지율을 어느정도 유지시켜 민주당이 내부공격에 시달리게 하려는 속셈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으로 (망국적) 지역주의 담론은 수구기득권에게 매우 유리한 프레임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유시민을 칭찬할 정도이니 더 이상 말을 해서 무엇하겠는가?

적의 허구적 프레임을 가지고 아군을 공격하는 자야 말로 가장 비겁한 자가 아닐까 질문해본다. 나아가 그 자가 진정 아군일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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