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강님께서.... ㅠ.ㅠ;;;



나를 NeoJCJ님과 동급으로 쳐주시다니...... 나야 영광이지만 NeoJCJ님은 기분 꿀꿀하지 않을까?


이야기했지만 나는 NeoJCJ님 주장의 50%는 '맞다'고 판단하고 20%는 '아니다'라고 판단하고 30%는 '금시초문'이라고 했는데 흐미~



어쨌든 나를 높게 쳐주신 흐강님께 감사...........................는 페이크이고.................... ㅎㅎㅎ



흥분하신 것 같은 흐강님께 '알레고리'와 관련되어 있는 글 몇 개를 링크한다. 각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글로 간다.



성경을 알레고리와 모형론으로 해석해도 될까? 


상기 글에서 언급된 모형론에 대하여는 taxi님과 NeoJCJ님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신 글이 있으니 참조...


id: taxiid: taxitaxi

예표학이라는 것은 성서에 대한 분석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나오던 것이지요.

성서들이 언제 어떻게 기록, 구성되었는지가 밝혀지고 난 다음에는 의미가 상실되었다고 봅니다.

댓글
2012.08.23 20:44:31
id: NeoJCJid: NeoJCJNeoJCJ

맞는 말씀입니다. 


신약을 본체로 그리고 구약을 그림자로 보는 예표라는 개념은 기독교가 예수를 메시아로 규정하고 난 이후에 고정된 시각에서 성경을 해석하면서 나타난 개념입니다. 한 마디로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형성된 개념일 뿐입니다. 성서 특히 신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문헌학적 그리고 사본학적 연구가 발달되기 시작한 것이 19세기이고 요즈음에 와서야 여러 사본들의 발굴에 의해 초기 기독교의 형성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했으니 예표라는 개념은 점점 사라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의 출현을 예표하는 구절이라고 생각했던 구약의 구절들은 고정된 시각으로 인해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도 밝혀졌지만 보수주의의 신학적 이론을 뒤집어 엎기에는 이미 때가 늦은 것 뿐이죠. 동정녀 탄생설을 예표한다고 믿었던 이사야서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는 구절도 사실은 처녀가 아니라 여자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 정확한 번역이라고 밝혀졌고 따라서 이 구절은 예수의 탄생을 예표하는 문장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속에서 해석되어야 할 문장이라는 것이 지배적인 성서학자들의 해석이죠.


구약만 가지고 본다면 예수라는 인물은 상상할 수 없는 내용이 바로 구약입니다. 언약의 완성이 신약의새언약이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를 메시아로 여기는 사람들의 주관적 해석일 뿐입니다. 구약에 메시아 사상은 발견할 수 있지만 그 메시아가 예수라고 주장한 초기 정통주의자들이 종교적 각축장에서 승리를 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들의 주관대로 세워놓은 해석학적 기준이 지금까지 내려 온 것 뿐이죠.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학문적 연구결과가 지난 날의 오류를 바로 잡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로서의 기독교는 이런 사실을 쉽게 수용할 수 없는 상태인지라 아직도 구약은 그림자고 신약은 본체라는 주장을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과 같이 신학을 순수한 학문의 한 분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는 말이죠.

(출처는 질문 - 성서 해석론으로서의 예표학.... written by 숨쉬는 바람님)



성서를 알레고리로 해석해야 한다는 스웨덴베르그에 대한 설명


천국 체험을 주장한 스웨덴보르그에 대해(영성신학 비교종교학)


이 글에서 발췌....


과거 일부 사람들이 알레고리와 모형 해석을 확대 적용하여 그릇된 성경 해석으로 나아가는 바람에 알레고리와 모형 해석에 대한 일부 반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성경에는 알레고리와 모형적 요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만 이들 알레고리와 모형에 대한 바른 해석이 중요하다. 물론 성경 전체가 알레고리나 모형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책도 아니다. 일부가 그렇다는 말이다. 여기서 신앙의 학문인 신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대두 된다. 과거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던 이단들과의 치열한 싸움에서 성경 해석의 중심을 잡아 준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탁월한 신학자들이었다. 


본문 중 마킹한 부분...은 흐강님이나 NeoJCJ님이나 같은 입장인데 왜 싸우게 되었을까?




그리고 제목에 부응하는 악마의 숫자 '666'에 대한 길고 긴 설명.....


666比較 考察과 컴퓨터 "666" 主張에 대한 反論.................. written by 이영제 목사



요한과 노스트라다무스가 미래를 보면서 바다 수면 밑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잠수함을 어떻게 묘사했을까?



이런 의문은 역으로 적용이 가능하다.



우리가 당시 문자문화가 아니었던, 하다 못해 파피루스 값이 비쌌던 당시에 문화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얼마나 기록되어 있을까?



이런 의문을 알레고리를 들어 설명할 때 자주 거론되는 성경 문구가 '어미 젖소로 새끼 젖소를 삶지 마라'라는 것이다. 음식문화에 대하여 전혀 판이한 우리에게 이 성경문구는 그대로 적용이 될까? '뭥미' 소리 나온다.



물론, 요한계시록에 묘사된 것들이 현대적 무기는 전혀 없다....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요한이 계시록을 쓸 때와 현재는 최소한 2천년의 시간 간극이 있고 이 시간 간극은 더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어쩌면...... 지구의 종말은 실제 서기 5천년에 발생할 것이고..... 그 때 살고 있는 인류는, 21세기의 우리가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요한계시록의 묘사들을 '실시간'으로 체험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이런 말을 한 적도 있다. 기억들 하시려는지 모르겠지만....



천재들의 세기나.... 인류의 과학이 폭발했다는 20세기는...... 인류가 계속 문명이라는 것을 누리고 있다면... 그래서 한 40세기 쯤 20세기를 돌아본다면 그 40세기의 문화역사학자들은 20세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문명의 진보가 늦었던 과거 시대에.... 인류가 비문명을 벗어나려고 참으로 몸부림을 쳤던 이십세기...라고 적혀있지 않을까?


즉, 현재의 당신과 나는 미래의 관점에서 비문명인이라는 야그. 그러니 너무 문명인인 척 하기 없기.




더 이상 성서에 관련된 이야기는 내 입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아는 것도 별로 없고.....



-The End-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