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니 집사람이 넋을 놓고 나가수 재방송을 보고 있네요. 집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엄격하게 통제를 하고 있어, 가끔 내셔널 지오그래픽 보여주는 정도. 일요일에는 1박2일, 기분 좋으면 개콘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나가수를 직접 본 적은 없었는데 아내의 다짐, 다음 주에는 꼭 나가수를 보겠다고 합니다. 그 핵심에는 임재범이 있습니다. 저도 인터넷에서 찾아서 몇 번 보았습니다. 첫 번째의 <너를 위해>는 1등을 할 정도로 매우 감동적이었고, 두 번째 <빈 잔>는 4위를 했네요.
      
한국음악과 이태리 음악은 대부분 가락을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죠. 그러니까 멜로디가 확실히 잡히지 않는 노래는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게 반도국가의 특성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모르겠네요. 저도 멜로디가 안 잡히는 드뷔시나 라벨은 좀 그렇더라고요. 멜로디가 잘 안 잡힌다는 것은 따라 부르기가 힘들다는 것이죠. 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이딸리안이나 한국 사람들의 정서로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빈 잔>은 편곡을 너무 심하게(?)해서 가락을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아마 40-50대 청중들에게는 좀 부담스러운 노래가 아니였을까 합니다. 4위를 한 것은 평가자들에게도 경향을 보였다고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는 뽕짝과 같이 너무 가락이 잡히면 유치하다고 하므로, 적당히 변화도 있게 잡혀야 성공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인터넷을 보니 임재범 때문에 아주 난리네요. 이 현상을 아주 재미있고 보고 있습니다. 경쟁만큼이나 나가수에 얽힌 사회적 현상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음악에서 <음> 자체가 가지는 의미보다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주변 정보>가 더 큰 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역할이라고 말하니 좀 이상한데... 인터넷에 보면 <음> 그 자체에 대하여 엄청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특히 오디오 관련... 최근에 읽은 글 중에서 거의 저를 넘어가게 한 분의 주장에 의하면, <pi-fi에서 Window 7에서 패치를 깔지 않고 원판 그대로에서 음원을 틀면 훨씬 더 정갈한 맛이 난다> 이라고 하는데 정말 할 말을 잊게 만드는 주장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임재범이 부른 <너를 위해>가 인터넷에 공개된 판이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락 보컬같이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고, 징이 박힌 가죽 잠바(chain mail?)같은 것을 입고 부른 판이 있습니다. 그것과 이번에 빡빡머리로 부른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번 나가수에서 부른 임재범의 <너를 위해>는 약간 조락한 이전의 스타, 허름한 양복과 셔츠, 세속에 시달리는 식구들, 능력없는 아버지에 대한 회한 등이 공연 비디오에 기가 막히게 드러났습니다. 특히 저는 그의 빡빡머리와 허름한 셔츠가 가장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우리 주위에서 징 박힌 가죽잠바를 입고 다니면 약간 반-또라이 취급을 받는데 비해서 나가수에서 보인 임재범의 모습은 일상의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에 훨씬 더 공감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간에 보인 눈물을 닦는 여성관객의 모습과 더불어 그 감동의 최고조로 올라갔습니다. 그 동영상에 달린 댓글 중에 나이든 어른, 주로 여성분들이 그것을 보고 울었다는 사연이 많은데 제가 보기에도 그 노래는 그런 감동을 주고도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 제가 들은 가장 감동적인 노래는 후배 아버님이 부른 노래인데요, 놀러간 집에서 6.25 이야기가 나왔어요. 빨치산이며 사람들 죽은 이야기, 아이를 굶어죽게 내버리고 간 이야기.. 정말 한 두시간 그 리얼다큐에 홀딱 빠져서 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구 당시 산에서 부른 노래를 하나 들려주셨는데요. 약간 줄이 안맞는 기타에, 단선율로 띵띵 치시면서 연주하면서 부른 노래는 그 자체로는 유치했지만, 그 노래와 사연의 이중주는 감동 그 자체. 음으로만 본다면 100점 만점에 20점도 안되지만, 그 노래에 얽힌 사연과 슬픔..으로 그 소리를 들어니 소름이 쫘악 끼쳤습니다. 일본의 3줄짜리 사미셍 악기는 악기의 수준으로 본다면 어린이 장난감보다도 못하는 진짜 허접한 원시악기이겠지만, 그 노래 가사를 잘 이해할 수 있다면 감동을 충분히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미셍은 가야금이나 하프보다 훨씬 저질의 악기다 이런 주장을 한다면 그것 본인의 답답한 내면만 드러내 줄 뿐이죠.
   
음악은 <음, 그 자체>와 <그를 둘러싼 사연> 으로 구성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깔끔한 음은 가요방에서 나오는 반주인데요, 그야말로 전자음 칩으로 구성해낸 그 음은 이론적으로는 깔끔하기 이를데가 없지만 사람들은 그보다는,  생음악, 비록 좀 틀릴지라도 기타반주에 훨씬 더 고무되어 노래를 즐거워 하면 합니다(적어도 저는). 그 약간의 잡음은 음이라는 본질보다도 더 중요한 구실을 합니다. 예를 들어 귀머거리 베토벤의 사연이 있는 9번 교향곡이라든지, 암에 걸린 Dinu Lippati의 마지막 브장송 피아노 연주 등은 그 음악을 훨씬 더 의미있게 만들어 주고, 가치있게 만들어주고,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과 인간미로 공감을 이끌어 줍니다. 일찍 타계한 기형도의 시라든지. 그래서 음악을 더 잘 이해하고 감동을 받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정보에 대한 공부가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음악에 대한 사연을 찾아서 그것을 음미하면서 들어보면 감동이 오죠. 헤어진 연인이 즐겨듣던 그 노래,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시계, 장애인이 부른 미사곡 등등. 그래서 오디오나 음원에 몰두하는 것보다는 음악사나 연주가 작곡가 개인에 대한 전기를 읽어보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는 입장입니다. 예를 들어 브람스 전기를 읽어보면 그의 곡이 전혀 새롭게 들리죠. 그 음악을 둘러싼 context를 모르면, 자연히 다른 내용에 대하여 트집(ㅎㅎ)을 잡기 시작합니다. 지휘자가 누구고, 음이 빠지네, 허덥하네 늘어지네, 대충 연주를 한다는 등 이런 따위의 황당한 불평을 늘어 놓기쉽니다. 밑에 행인님이 말하신대로 켐프의 일대기를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훌륭한 연주가인지, 그 연주가 얼마나 단정하고 아름다운 연주인지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글렌굴드나, Sokolov나 이런 독특한 사연의 연주가들은 언제나 감동을 주죠.  혹 여유있으신 분은 <브람스> 전기를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의 모든 곡 하나 하나을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완전 새롭게 들을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연이 있는 음악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다음 주가 기대가 되는데 식구들이랑 같이 볼까 합니다. 이번에는 1박2일은 못보겠네요. 롯데 야구도 나가수에 밀려나지 싶습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사건입니다. 아빠가 롯데 야구를 안본다는 것은요. 박정현인가 하는 여성도 노래를 참 잘하지만, 좀 불만인 것이, 위탄이나 슈스K나 모두 너무 미국적 창법을 지향한다고나 할까요 ? 저는 뒤를 R&B식으로 말아 올리는 창법을 몹시 싫어합니다. 그냥 이태리 가수나 80년대 프랑스 샹송 가수들같이 두텁게 툭툭 내지르는 담백한 창법을 좋아합니다.  굵은 크레용으로 시멘트 바닥에 거칠게 글을 쓰는 기분으로 부르는 당당한(?) 창법을 좋아합니다. 이태리 노래를 보면 이런 식으로 부르는 가수가 많은데, 이런 유러피안식 창법도 좀 인정을 받았으면 합니다. R&B를 몰아내자는 것은 아니지만 평가자들이 그런 식으로 목청을 과하게 써서, 기교적으로 부르는 가수만이 평가를 받는 것은 다양성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번 임재범 때문에 그간 숨어있던 팬들이 몰려 나온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덕분에 소녀시대 등, 댄스가수들의 위세가 한 풀 꺽인 것은 정말 다행스럽고도 다행스러운 것이라고 봅니다. 그 중 어떤 댓글이 기억나는데요, “SM 사장 이수만 보아라. 그렇게 젊은 알라들 벗겨서 돈 벌어먹고 사니 기분이 좋냐 ? 자신 있으면 나가수에서 함 붙어보자” 참 재미있는 주장입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가수는 노래를 잘 해야죠. 노래를. 감동을 줄 수 있는 노래를 할 수 있어야죠. 노래와 특공무술이 섞인 지금의 댄스 가수 또는 그를 부추키는 사람들은 좀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지금의 노래를 잘 하는 가수들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많다는 사실도 파악을 했으면 좋겠네요. 
  

몇 년 전에 잠시 본 흑백 다큐를 보니 프랑스 가수가 나와서 진짜 열심히 노래를 하든데, 곡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들린 반복 후렴구는 “쏠로노이, 쏠로노이..” 이렇던데. 그 진지함이 오랫동안 두고두고 생각이 계속 납니다. 이런 나가수를 통해서 정말 노래를 잘하는  숨어있는 고수들이 소개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단지 유명세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정치판에서 유리한 위치를 계속 점하는 것이 정치를 피폐화하듯이. 세상에 변웅전이나  옮기영이 잘 알려졌다는 사실만으로 정치인으로 성공한다는 것은 정말 말이 안되는 서실이죠. 이수만의 정치력으로 일부 아이돌 가수들이 유명 가수가 되는 것은 좋으나 그것으로 다른 재능있는 가수를 매체에서 밀어낸고 독식을 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비판받고 견제를 받아야 마땅합니다.   >> 노래 잘하는 가수가 인정받고 잘 사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하면서 한번 써 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