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읽어보시라고 가져왔습니다. 근데 그냥 퍼와도 될런지 모르겠네요. 문제되면 내리겠습니다.

책은 이거네요 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BOK0001078842411

전에 썼던 건데 이 부분도 같이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이에크와 자생적 질서 그 미혹의 세계에 대해서 


 

『좌우파 사전』, 위즈덤하우스, 2010



시장과 국가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



1. 시장과 국가의 궁합


2008년 가을 미국의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탄을 계기로 돌연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했다. 그 사태의 원인을 둘러싸고 논의가 분분했지만, 경제활동 특히 금융에 대한 그동안의 과도한 규제완화를 반성하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았다. 시장에 맡기면 경제가 저절로 잘 굴러갈 것이라 생각하고 국가가 자신의 역할을 방기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장과 국가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의 파도에 휩쓸린 한국에서도 당연히 시장과 국가의 관계를 재음미하게 되었고, 특히 시장과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1997년 말 외환위기 사태를 겪은 바 있는 처지라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은 남달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위기대처 방식은 나라마다 달랐고 특히 미국과 한국에서 그 차이는 두드러졌다. 미국의 오바마 정권은 파산위기에 처한 시티그룹, 에이아이지(AIG)나 지엠자동차(GM)에 대해 일시적이나마 국유화에 가까운 조처를 취했고 금융에 대한 규제도 강화하려 하고 있다. 그리고 해묵은 과제인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추진하면서 사회주의자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반면에 이명박 정권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물가단속에 나선다든가 4대강 사업을 강행하는 등 국가주도의 개발독재 행태를 보이는 한편,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감세를 단행하는 등 미국이 반성하기 시작한 시장만능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이처럼 차이는 존재하지만 오늘날엔 어느 나라건 시장과 국가는 경제활동을 조정하는 양대 축이다. 때로는 ‘시장과 국가’ 대신에 ‘시장과 정부’로 표현하기도 하는데, 엄밀하게 구별하면 정부는 ‘행정부’, 국가는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3 권부(權府)로 구성된 시스템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사용하는 국가의 개념은 시장의 대칭이라는 점에서 정부와 별로 다르지 않다.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에 걸쳐 주로 국가의 계획에만 의거하던 이른바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했고, 그 마지막 요새인 북한에서조차 요즘엔 시장이 인민생활에서 막중한 역할을 담당하게끔 되었다. 다른 한편 미국의 레이건대통령이나 영국의 대처수상처럼 “국가는 해결책이 아니라 골칫거리다”라면서 국가역할 축소를 부르짖는 시장만능주의가 위세를 떨칠 때에도 국가의 경제적 기능을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좌파 즉 진보파와 우파 즉 보수파의 구별은 이러한 시장과 국가의 궁합 즉 조합방식을 둘러싼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만 남북한이 대치하는 한국에선 좌파라면 북한체제를 동경하는 ‘빨갱이’를 연상시키기 때문에 많은 진보파들은 좌파라는 용어의 사용을 기피한다. 그리고 보수파들은 사람들이 진보파를 ‘빨갱이’와 동일시하도록 일부러 좌파라는 용어를 즐긴다. 하지만 좌파나 우파라는 단어가 유래한 서구의 용어법에서는 ‘좌파=진보파’이고 ‘우파=보수파’이다. 남북한이 통일되고 나면 아마도 좌파라는 용어를 좀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여기서 대체로 좌파는 시장보다 국가를 더 선호하며 우파는 그 반대다. 좌파가 ‘큰 정부론’, 우파가 ‘작은 정부론’에 가까운 셈이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정도의 문제며 상대적인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민주당은 공화당에 비해선 좌파지만 북유럽의 우파와 견줘보면 그 정책은 더 우파적이다. 그리고 나치나 박정희 시대엔 국가가 크고 강력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좌파정권이라 부르기는 힘들다. 기본적으로 노동보다 자본의 이해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좌파와 우파의 구별은 시장과 국가의 상대적 크기(量)뿐만 아니라 국가가 누구의 이해를 더 존중하는가와도 관련된다. 큰 국가라 하더라도 사회복지보다 자본축적을 더 중시할 때는 우파로 간주해야 한다.


한편 한국의 정치세력이나 지식인에 대해 그 사상과 정책을 평가하는 경우엔 <그림 1>에서처럼 ‘좌와 우’라는 기준과 별개로 ‘개혁과 수구’라는 기준도 필요하다. 개혁파는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두 개의 수레바퀴인 시장과 국가의 질(質) 즉 성숙도를 높이려는 세력이고, 수구파는 여기에 저항하는 세력이다. 시장의 질을 높인다함은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경쟁을 발전시키는 것이고, 국가의 질을 높인다함은 국가의 민주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2. 한국의 현실과 좌우파의 주장


1) 규제와 시장경쟁


현실-규제완화의 추세

한국자본주의의 특징은 압축적 불균등 성장이다. 선진국에서 수백 년 걸린 자본주의화 과정을 수십 년으로 압축했고, 그래서 홍콩, 싱가포르, 대만과 함께 신흥공업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사회 각 부문 간의 발전이 불균등했다.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제품들을 보유하고 있는 한편에 재벌의 황제경영과 낙후된 정치문화와 같은 전근대적 양상이 병존한다.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가 선진국에 비해 두드러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장 질서를 보면 선진국과 달리 어지럽고 불투명하다. 대·중소기업 사이의 하청관계나 주식시장이 바로 그렇다. 또한 국가의 규제는 박정희 개발독재체제의 유산을 이어받아 시대착오적인 경우가 적지 않으며 특정집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 결과 공정한 시장경쟁, 환경보존, 노동자의 안전과 인권에 관한 규제 등이 적절한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 편이다.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는 ‘민간주도’, ‘규제완화’의 바람이 불고 국가에 비해 재계 특히 재벌의 헤게모니가 상대적으로 강화되어 갔다. 국가의 비호 아래 성장한 재벌이 점점 국가의 규제를 거추장스럽게 여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추세는 30대 재벌의 절반이 파탄을 맞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때 잠깐 반전되었으나 그 이후 다시 원래의 경향성을 회복하였다.


또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기간에는 한나라당 등이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 제기한 중요한 이슈가 규제완화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산업자본의 은행지배 차단, 거대 신문의 방송겸업 금지와 같은 여러 규제를 무더기로 완화·철폐해가고 있다. 다만 부동산투기를 우려해서 ‘총부채 상환비율’(DTI) 등 아직 손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우파-규제 완화해야 기업하기 좋은 나라


일반적으로 우파는 규제완화를 추구한다.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자율성을 확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해서 기업에게 최대의 효율성을 보장하고자 한다. 노동자 해고나 안전에 관한 규제, 오염물질 배출에 대한 규제, 재래시장 지역에 대한 대형마트 진출 규제와 같은 것을 완화·철폐하기를 요구한다. 이리하면 기업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또한 적자생존의 경쟁원리에 따라 강한 기업이 약한 기업을 축출함으로써 사회적으로 효율이 제고된다고 한다.


다만 전경련 같은 수구적 재벌체제 대변세력과는 달리 경실련으로 대표될 만한 한국의 개혁적 우파는 규제완화에 좀 더 신중한 입장이다. 개혁적 우파도 우파이므로 관료의 경제개입에는 도끼눈을 뜨게 마련이고 시장에서의 경쟁을 강조한다. 하지만 바로 그 시장경쟁의 공정성을 위한 규제, 예컨대 재벌체제에 대한 규제에는 찬성한다. 즉 이들은 관료의 자의적 경제개입에는 반대하지만, 시장의 공정한 규칙(rule)은 중시하고 시장 내부의 견제와 균형을 확보하려 한다. 그래서 재벌의 은행지배를 저지하고 재벌총수의 황제경영을 바로잡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또한 자본의 생산적 활동에 장애가 되는 부동산투기를 규제하는 데도 찬성하는 게 개혁적 우파다.


좌파-자본에 대한 민주적 견제와 약자 보호가 필요


좌파는 일반적으로 자본에 대한 민주주의적 견제라는 차원에서 규제를 지지한다. 재벌체제에 대한 규제를 비롯해 환경과 산업안전 및 노동자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규제에 적극적인 것이다. 자본의 논리가 폭주하면 인간의 삶이 피폐해 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영세 상인을 압박하는 대형마트의 진출 규제와 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해가 충돌하는 사안에선 상대적 약자를 옹호하는 게 좌파라 할 수 있다. 나아가 자본가집단 내부의 약자만이 아니라 노동자집단 내부의 상대적 약자에게도 눈을 돌린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남용과 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규제를 도입하자고 한다.


다만 복지강화를 주장하는 좌파이면서도 유독 재벌체제에 대한 규제에는 반대하는 경우가 있다. 장하준, 정승일 박사와 같은 이들은 시장경쟁 자체를 우파적인 것이라며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그러다 보니 시장의 공정경쟁을 저해하는 전근대적 재벌체제까지 옹호한다. 이런 점에서는 수구적 좌파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운이나 연고에 의해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상대적으로 특권적인 지위를 획득하고, 나아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비정규직의 대기업노조 가입까지 거부할 정도로 노동시장 내의 공정경쟁에 저항한다면 이 역시 수구적 좌파인 셈이다.


2) 민영화와 시장개방


현실-민영화와 개방의 확대


박정희 정권의 국가주도형 개발독재 하에서는 많은 기간사업체가 국유기업으로 설립되었다. 민간 스스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막대한 자본을 동원할 역량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점차 민간자본이 축적되면서 유공(→SK에너지)이나 포항제철(→포스코)의 경우에서처럼 국유기업의 민영화가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현재는 전기, 가스, 석탄 등 에너지를 비롯한 일부 기간사업에다 부실화로 인해 정부가 일시적으로 소유권을 갖게 된 은행 및 과거 재벌기업이 국유인 상태다. 여기서 후자, 특히 과거 재벌기업의 민영화에 대해선 큰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 않고, 주로 전자의 민영화 여부가 쟁점이 되고 있다.


그리고 국내외 민간기업의 활동영역 확대라는 점에서 시장개방 문제도 민영화 문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한국이 유치산업을 보호하던 경제개발 초기엔 시장개방이 상당히 제한적이었으나, 점점 개방이 확대되어 오늘날엔 국제경쟁력이 취약한 농업, 영화산업 등 일부 분야에만 높은 관세율이나 수입물량 규제를 통한 장벽이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쌀 개방이나 스크린 쿼터 등이 커다란 쟁점이 되고, 세계무역기구(WTO)협상을 비롯해 한미자유무역협정(FTA)를 둘러싸고 좌우파 사이에 충돌이 벌어지곤 한다.


우파-민영화와 개방은 시장의 활력을 높인다


우파는 민영화를 지지한다. 우선 자본의 활동영역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현재 수익이 발생하고 있거나 장차 수익이 예상되는 부문을 가급적 민간이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전 민영화와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려는 행태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일본의 국철 민영화에서처럼 강력한 공공노조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민영화의 확대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 명분으로는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공기업직원의 고임금을 들고 나온다. 그리해서 사회 전체적으로 노조세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다.

시장개방에 대해 우파는 대체로 적극적이다. 특히 국내 농업시장을 개방함으로써 농산물가격을 떨어트려 그 농산물을 소비하는 근로자의 임금상승 요구를 억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만 일본과의 관계에서처럼 농민에게는 이익이 되고 자동차부품산업 등 일부 자본에 희생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한일자유무역협정엔 소극적이다. 다시 말해 자본에 이익이 되는 범위 내에서만 개방에 찬성하는 것이다.


외국자본의 진출에 대해선 그들의 힘을 시장질서 선진화에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개혁우파는 대체로 지지하는 쪽이다. 이에 반해 낡은 재벌체제를 견지하려는 수구우파는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한다. 재벌들이 국내시장에 안주해 있을 때에는 자신과 경쟁하는 외국기업의 국내진출에 반대했으나 재벌기업의 해외
진출이 진전된 요즘엔 해외기업의 국내진출엔 대놓고 반대하진 않는다. 다만 외국의 기관투자가가 주주총회에서 황제경영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선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좌파-민영화와 개방엔 신중해야


좌파는 민영화에 소극적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강령을 보면 공공부문 민영화를 중단하고, 은행을 국유화하며, 기간산업을 중심으로 공공부문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기업 노조는 고용안정을 위해 민영화에 반대한다. 다만 참여연대로 대표될 만한 개혁좌파의 경우엔 국유화 확대에 초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수도나 전기와 같은 네트워크 사업에서는 민영화를 해도 공적 독점을 사적 독점으로 전환시킬 뿐이므로, 효율성을 증진시키지도 못하면서 공공성만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또 영리병원 도입과 같은 의료민영화는 국민의 건강과 공공의료체계를 위태롭게 한다고 비판한다.


시장개방에 대해서도 좌파는 대체로 소극적이다. 물론 시장개방을 그만두고 세계자본주의와 단절하자는 좌파는 요즘엔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시장개방의 속도와 분야에 대해선 좌파일수록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사회적 약자인 농민의 이익보호를 위해 농업개방 확대에 반대하며, 한국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스크린 쿼터를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좌파성향이 셀수록 외국자본에 대해선 경계심이 강하다. 개혁좌파의 경우엔 투기자본에 대한 견제와 국가정책의 자율성 확보가 그 주된 동기다. 재벌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외국자본에 반대하는 수구좌파도 존재한다. 서구에서는 우파가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데 반해, 한국에서는 제국주의 침략을 당한 경험 탓에 민족주의가 좌파와 결부되어 있는 셈이다.


3) 세금과 재정지출


현실-위력은 있지만 규모는 작은 국가


한국의 국가는 선진국의 경우에 비해 힘은 센 편이다. 박정희 정권의 개발독재 하에선 국가는 사업 인·허가권에다 국유은행을 통한 자금배분권으로 기업활동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1980년대 이후 재벌체제가 강고해지면서 과거 국가 우위의 정경유착이 재벌우위의 정경유착으로 변모해 가고는 있으나 아직도 국가의 힘은 선진국에 비해선 막강하다. 국가의 자금배분권은 많이 약화되었으나 인·허가권이 상당히 남아 있고, 또 재계가 탈세나 횡령 등의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국가의 조세징수와 재정지출 규모는 선진국에 비해 작은 편이다. 2007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이 18%인 데 반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4%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은 30~40%대에 이른다. 그리고 같은 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대비 재정지출 규모는 22% 정도로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보다 10% 가량 낮다. 크기로는 작은 국가인 셈이다. 선진국 중에선 일본과 미국의 조세부담률이 우리와 비슷한데, 사실 그 나라들에선 장차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국가채무가 엄청나게 늘어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들의 실질 조세부담률은 한국보다 높다.


또한 조세와 복지지출을 통한 소득재분배효과도 4%가량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25%에 크게 못 미친다. 게다가 그동안 경기진작을 내세우면서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계속 낮추었고, 종합부동산세를 신설했다가 이명박 정권 하에서 무력화시킴으로써 분배구조에 악영향을 미쳤다. 재정지출에서 사회복지분야가 차지하는 비중도 노무현 정권 당시 20%에서 28% 정도로 꽤 늘기는 했으나, 이 역시 다른 선진국에 비해선 아직도 크게 낮은 형편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그 증가경향조차 불확실해지고 있다.


우파-세율인하로 근로의욕과 투자의욕 높여야


우파는 작은 정부를 선호하고 따라서 낮은 세율을 요구한다. 세금인하가 개인의 근로의욕과 기업의 투자의욕을 고취시킨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빌 게이츠나 조지 소로스 같은 “책임 있는 부자(responsible wealth)" 클럽의 우파는 과도한 감세정책에 대해선 계층 간의 위화감을 조성한다고 반대했다. 한국에서는 미국식의 책임 있는 우파는 찾아보기 힘들며, 많은 부자들이 세율인하를 지지하는 데서 나아가 탈세도 함부로 저지른다. 선진국과는 달리 탈세에 대한 조사와 처벌이 허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의 우파 특히 수구우파들은 재벌총수의 배임과 탈세가 높은 상속·증여세율 때문이라며 원만한 지배권승계를 위해 상속·증여세의 완화·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파는 일반적으로 정부지출 확대에 반대한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보면 우파의 이런 반대는 지출내역에 따라 달라진다. 즉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출엔 반대하지만 자본을 위한 지출엔 찬성한다. 예를 들어 석유자본과 군수자본을 위해 이라크전쟁에 막대한 군사비를 퍼붓는 데는 미국우파가 적극적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우파의 레이건과 부시의 공화당정권에서 세율은 낮추고 군사비지출은 늘려 재정적자가 늘어난 아이러니가 발생했고, 군사비지출을 줄인 클린턴의 민주당정권에서 오히려 재정적자가 줄어든 것이다. 이명박정권도 건설자본을 위해 4대강 사업 등을 벌이며 재정적자를 크게 늘리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한국의 우파는 좌파가 선호하는 북유럽 복지국가에 대해 비판적이다. 북유럽은 복지병에 걸려 있고, 또 나라 규모가 작아 한국이 모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의 경쟁대상인 홍콩이나 대만이 세금과 복지지출이 작다는 점도 강조한다. 다만 우파는 나라의 규모와 벤치마킹 가능성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는 설명하지 않으며, 선진화를 부르짖으면서도 선진국의 높은 복지지출 수준을 외면한다. 박정희시대 이래 우파들은 복지 즉 분배문제는 언젠가 나중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미루면서 성장에만 몰두해 온 관성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좌파-감세와 정부지출 축소는 사회적 약자를 외면한 조치


좌파는 조세를 더 거두어 공공서비스를 늘리자고 한다. 그리고 부동산과 주식의 거래를 통한 불로소득에 대한 감세는 근로의욕 고취와 무관하며 기업투자가 법인세율과 깊은 관련을 갖지는 않는다고 한다. 부자 감세도 부자들이 그 늘어난 소득을 국내소비에 충당하는 비율이 낮기 때문에 경기부양 효과가 미미하다고 한다. 상속세의 경우엔 각종 공제가 존재하기 때문에 재산상속자 중 납부대상자는 상층 1%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에 대한 세율도 10~50%로서 미국(18~46%), 일본(10~50%), 프랑스(5~60%) 등 선진국에 비해 높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또 세금을 제대로 내더라도 그룹에 대한 재벌총수의 지배권 승계가 별로 흔들리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한편 좌파는 감세가 복지지출의 재원을 압박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의 삶을 힘들게 한다고 주장하며 그런 맥락에서 이명박 정권의 감세정책을 비판한다. 북유럽 같은 복지국가를 이상적 모델로 생각하는 개혁좌파는 그 나라들처럼 세금 특히 부자가 부담하는 세금을 대폭 늘려 복지지출을 확대하자고 한다. 또한 인구대비 공무원 비중도 한국은 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7%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데, 이를 선진국 수준에 맞추기 위한 재정지출 확대에도 우파가 관심이 없다고 비판한다. 공무원의 확대는 고용을 늘리고 국민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강화할 수 있다고 한다. 다만 개혁좌파는 관료주의의 비효율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강조하는데, 개혁성이 취약한 좌파는 관료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희박하다.


3. 압축적 불균등성장, 한국사회의 미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 보수언론, 한나라당, 보수지식인들은  반시장적 좌파로 낙인찍고 반대로 진보언론, 민주노동당, 진보지식인들은 신자유주의(시장만능주의)라는 딱지를 붙이기 좋아했다. 이때 비판하는 측들은 왜 자신과 정반대의 비판이 다른 편에서 제기되는지를 따지지 않았다. 세계 선진국들을 늘어놓고 그 스펙트럼 상에서 보면 두 정권은 중도우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중도우파 정권도 극우파가 보기엔 자신의 왼쪽에 위치하며, 좌파가 보기엔 자신의 오른쪽 즉 극우쪽 방향에 위치하는 것이다. 


좌우파 구분이 이처럼 혼란스러운 것은 한국사회가 압축적 불균등발전을 겪어온 탓이 크다. 선진국에선 대체로 중상주의에서 자유주의를 거쳐 복지주의가 자리 잡았다가 그 반동으로서 시장만능주의가 출현했다. 그런데 우리는 개발독재의 중상주의에서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과도기에 처해 있고 따라서 개발독재, (구)자유주의, 중상주의, 시장만능주의의 갖가지 정책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그래서 시장과 국가의 역할분담을 둘러싼 논쟁에서 그냥 좌파와 우파로 나눠지는 게 아니라 수구좌파, 개혁좌파, 개혁우파, 수구우파 등 여러 갈래가 나타나는 것이다.


개발독재체제 하의 정경유착을 유지하려는 수구우파는 공정한 시장경쟁에 반대한다. 그리하여 시장의 실패를 악용하는 부동산투기에 대한 규제나 자유주의적 재벌개혁조차 좌파로 몰아붙인다. 반면에 1987년 이후 갑자기 상대적으로 강력해진 대기업 정규직노조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수구좌파는 공정한 노동시장 형성에 소극적이다. 그래서 2000년대 초 대우자동차에서처럼 부도난 대기업에 불가피한 구조조정까지도 시장의 작동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시장만능주의로 몰아붙인다. 사회안전망이 미비한 한국 현실에서 해고에 대한 저항은 일면 수긍할 수 있으나, 그렇다고 구조조정을 무조건 거부하는 것은 시장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다. 또한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인 북한체제를 동경하는 극소수 좌파나 박정희시대의 개발독재체제로 회귀하려는 일부 우파 모두 시대착오적인 수구파에 속한다. 이처럼 수구파가 나름대로 강하게 존재하는 것은 공정한 시장경쟁과 안정적 민주주의를 위한 자유주의 개혁이 더딘 한반도 현실을 반영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사회엔 하나의 모범답안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 유형이 경쟁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형과 북유럽형은 상당히 다르다. 둘 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전자가 시장경쟁·효율성·자기책임·성장을 상대적으로 더 중시한다면 후자는 민주주의·공정성·사회연대·분배를 더 중시한다. 즉, 상대적으로 미국은 시장을 더 강조하고, 북유럽은 국가나 사회를 더 강조한다. 미국과 북유럽 내에도 각각 좌우파가 대립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미국이 북유럽보다 더 우파적인 셈이다. 따라서 한국사회에도 미국형과 북유럽형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느냐가 좌우파의 구분기준이 될 수 있다. 특히 세금과 복지지출 면에서 그 차이는 분명하다. 그리고 미국이 북유럽보다 더 우파적인 데에는 흑인문제를 비롯한 인종갈등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식민지 치하를 겪었고 근대화 역사가 짧은데다 남북한이 극단적으로 대치하는 탓에 이데올로기 대립지형이 지나치게 오른쪽으로 치우쳐버려 북유럽의 좌파에 가까운 진보신당 같은 세력은 맥을 못 추고 있다.


미국형과 북유럽형의 성과를 비교하면, 성장이나 고용 면에서 1990년대 이후 미국경제가 앞서기도 했으나 빈부격차 등의 문제점 때문에 여전히 북유럽식 시스템을 선호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미국의 높은 성장률에는 젊은 이민자의 유입으로 노인인구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 작용하며, 높은 수감자 비율을 고려하면 실업률도 올라간다. 또한 미국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유럽보다 높지만 이는 미국의 노동시간이 더 긴 덕분이고, 시간당 노동생산성에선 유럽이 미국에 뒤지지 않는다. 일과 여가의 균형이 행복에 필수적이란 관점에서 각국의 시스템을 비교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인지 미국식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북유럽식 삶의 안정성을 결합한 덴마크와 네덜란드의 유연안정성(flexicurity: flexibility + security) 모델이 근래에 주목을 끌고 있다.


4. 사전적 정의


1) 시장과 국가의 역할


시장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 상품을 매매하면서 가격을 결정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남대문시장처럼 많은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맞대는 장소는 물론이고, 외환시장처럼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정보를 교환하면서 거래가 이루어지면 이 역시 훌륭한 시장이다. 이 시장을 통해 형성되는 가격과 거래량이 경제활동, 즉 생산, 교환, 분배, 소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다.


그런데 이런 시장에서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려면 시장이 정글이어서는 곤란하다. 국가가 나서서 거래계약이 이행되도록 보장해야 한다. 말하자면 거래규칙을 정하고 집행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규칙만 제정하고 시장에 경제활동을 그냥 맡겨두면 독점, 불평등, 불안정 등 여러 가지 폐해가 발생한다. 이를 시장의 실패라고 부른다. 다만 국가의 개입 역시 국가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옛 소련 동구권의 붕괴나 관치금융의 폐해에서 보듯이 국가도 전지전능하지 않고, 관료들이 올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유인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우며, 사회집단들이 돈이나 조직을 통해 국가의 의사결정을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시장과 국가의 역할분담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빚어지는 것이다.


2) 시장―국가 관계의 역사


시장과 국가의 역할분담은 역사적으로 변해왔다. 서구에서 중상주의 시대에는  우리나라의 박정희 개발독재 시대처럼 국가가 적극적으로 시장과 자본주의를 육성했다. 그러나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른바 야경국가 즉 치안과 국방만 담당하는 국가로 불릴 만큼 정부의 경제적 역할이 축소되었다. 그러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에 대처하고 2차 대전 이후 복지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케인스주의적인 국가의 경제개입 확대정책이 위세를 떨쳤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영국의 대처 수상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등장하면서는 다시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시장기능을 강화하는 시장만능주의 정책이 힘을 얻었다. 다만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를 맞아 시장만능주의에 대한 일정한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 상황이다.


3)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시장과 국가의 관계는 ‘양’적 크기만이 아니라 ‘질’적 성숙도도 중요하다. 시장이 공정한가 불공정한가의 차이와 국가가 민주주의국가인가 독재국가인가의 차이는 선진화의 잣대다. 좌파든 우파든 개혁파는 공정한 시장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수구파는 불공정한 시장과 독재를 유지하려 한다. 한편 좌파가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1인1표주의’의 민주주의와 우파가 상대적으로 더 중시하는 ‘1원1표주의’의 시장경제는 서로 다른 원리에 입각한 만큼 금슬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개혁과 수구의 대립이 좌파와 우파의 대립과 중첩되어 있는 한국사회에선 갈등이 첨예한 형태로 나타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