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는 국가 주도의 개발주의 경제 시스템이 기업의 자율성이 강화되는 신자유주의 경제 시스템으로 바뀌는 계기였다. 그런데 한국에 이식된 신자유주의는 영미 신자유주의의 자유주의적 뿌리를 결여한 기득권 옹호 프로파간다의 측면이 컸다. 진보 좌파의 신자유주의 담론이 생명력을 잃은것은 신자유주의의 자유주의적 뿌리까지 겨냥하는 서구식의 반신자유주의 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반면 개발주의 관치경제에 대립하면서 신자유주의를 긍정한 중도 개혁 세력의 오류도 있다. 경제사회적 특권 계층을 조성하고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개발관치 경제와 시장만능론 신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특히 imf극복에 치중했던 김대중 정부와 달리 노무현 정부는 개발주의 관치경제와 한국적 신자유주의를 모두 극복하는 경제 사회 아젠다를 내놓을 시대적 사명을 방기했다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노무현의 양극화 해소 실패에 실망한 국민들이 전통적인 트리클 다운 효과를 기대하고 이명박 정부를 선택했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개발 관치 경제의 우파 공동체주의로 대기업을 압박해 낙수 효과를 거두기에는 경제 권력이 지난 10년동안 너무 강화되었고, 경제사회 시스템이 촘촘해졌으며, 법치주의가 강화되었다. 정부가 할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가 폭등으로 인한 분노의 증기압을 뺄만한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 7,80년대와 다른 경제 상황에 놓인 정부의 고민이 아닐수 없다.
 
시장 만능론 신자유주의와 개발주의 관치경제를 극복하는 경제 사회 아젠다를 내세우고 현실속에서 관철하는 능력을 입증한 세력이 앞으로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할 공산이 크다고 본다. 이런 흐름에서는 손학규나 박근혜와 같은 정치인 개인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날이 갈수록 정당의 씽크탱크로서의 역량이 요청되는 것이다. 연대라는 정치 공학에 허비할 시간과 정력을 앞으로의 20년을 준비하는 지적 작업에 투입
하는 것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