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원래 하려던 얘기라는 게 별 것은 아니고... 책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어서 별다른 이야기를 추가하거나 빼고 싶지 않게 되어 있다. 하지만 9장 충직 딜레마 부분에서 ‘선대의 책임’ 항목은 약간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는 역사적으로 발생한 부당행위에 대해 “앞선 세대가 저지른 잘못을 현 세대가 속죄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을 나름 진지하게 취급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그런 취급을 받을 자격이 없다. “우리는 자신이 한 행동만 책임질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나 내 힘이 닿지 않는 일은 책임질 수 없다”는 소리를 그는 도덕적 개인주의라 부르며 ‘강력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개념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비교적 쉽게 반박을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사회적 경제적으로 높은 지위에 도달했을 때 그 사람 자신만의 힘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집안의 배경이 그의 뒷받침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집안이 과거에 발생한 범죄나 부당행위로 인해 이득을 얻었는가는 반드시 따져야만 될 문제이다. 조상들이 행한 과거의 범죄로 인해 이득을 얻은 사람이 혜택은 혜택대로 누리고 그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은 너무나 뻔뻔스러운 소리다. 왜 이 부분을 왜 짚고 넘어가지 못했는지 모르겠다. 원래 이 책은 강의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논의에서 가능한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을 빠짐없이 짚고 넘어가는 편이다. 하버드대의 학생들이 여기 대해서는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물론 이와 약간 연관되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다. 그는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개인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인간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어떤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개념을 소개한다. 또한 그는 애국심과 같은 일종의 사회적 연대감정을 무시하지 않으며 정의에는 이러한 윤리 및 도덕 문제를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사실 내가 보기에 그는 ‘정의를 생각하면서 도덕적 선을 거론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다’는 그 자신의 도덕 개념을 말하기 위해서 이 주제를 언급했던 것이다.

매킨타이어의 관점에서는 인간은 서사적 존재이므로 도덕적 행위 이전에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 더 구체적으로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한다. 즉 자신의 삶의 궤적을 해석하고 앞으로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하는 것이다. 최근 이 보드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역주의 문제를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 영남 사람들의 경우 스스로 영남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끼는가에 달려 있는 듯 하다. 자기 자신을 영남인으로서 자부심을 갖는다면 영남인이 지금까지 저지른 악행들에 대해서 공동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책임에는 사죄 및 배상 등 여러 가지의 행위가 포함된다. ‘나는 영남에서 태어났을 뿐 박정희 쿠데타에 가담한 적도 없고 광주에서의 학살에 손가락 하나 보탠 적 없는데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나?’하고 억울하게 생각해 봐야 아무 소용없다. 만일 자신이 거기 대해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면 스스로 영남인이라는 개념 자체를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영남에서 한나라당을 열심히 찍어주는 사람들은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인들 역시 마찬가지. 2011년 대한민국에서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혜택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자신이 기독교도로서의 정체성을 갖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갖고 있을 경우 볼썽사납게 행동하는 기독교인을 볼 때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정당하기도 하다.

여기까지가 샌델이 동의하는 매킨타이어식 도덕론이고... 내 생각으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그의 배경으로부터 주어진 혜택은 본인이 받고 싶지 않다고 해서 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재용이 갑자기 홰까닥 돌아가지고 “나는 나 자신일 뿐이다. 삼성왕조와 나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해서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뭐 물려받은 재산을 전부 어디에다 기부한다면 또 모를까...) 아무튼 개인의 정체성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결정하는 비율은 아주 낮은 것 같다. 타인이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한데다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바꿀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한민국에서 영남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쪽 사람들의 행태가 완전히 바뀌기 전에는 어쩔 수 없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되겠지만 뭐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