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雲燦(정운찬) 총리 내정자의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

한글+漢字는 세계최강이다!!!


아래 글은  李平宇 전 건국대 교수의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는 글이다.


이 글의 하단부분에 鄭雲燦(정운찬) 총리내정자가 서울대總長 재직 당시 2004년 新入生부터 漢字敎育을 集中的으로 徹底히 교육시켜 學科成績에 反映하겠다는 方針을 세운 점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있다.


그리고 趙甲濟 대기자님의 아래 글처럼 鄭雲燦총리 내정자께서 한글전용교육으로 망가진 우리 한국어를 살리는 큰 대업의 礎石을 쌓아 주기를 기대해 본다.


물론 한글전용론자들의 막무가내식 거센 저항이 당연히 따르겠지만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趙甲濟 대기자님의 ‘鄭雲燦 내정자가 본인과 스승의 평소 소신대로 漢字복원에 의한 韓國語 정상화를 이룩하는 길을 연다면 대통령감이란 평을 듣게 될 것이다.’ 란 말처럼 鄭雲燦총리내정자 뿐만 아니라 李明博대통령 또한 진정 歷史에 남는 대통령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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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雲燦 총리 내정자와 韓國語 정상화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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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李平宇


 

李平宇

世亞製鋼 相談役/前 建國大學校 敎授

本聯合會 共同代表

元曉大師와 義湘大師의 逸話


다음은 李箕永 先生이 著述한 元曉思想硏究에 실린 元曉와 義湘이 入唐留學길에서 겪은 逸話이다.

當時 新羅는 佛敎가 公認된지 百年도 못 되었다. 佛敎工夫는 唐나라에서 들어오는 書籍에 依存할 뿐이었다. 따라서 佛道修學에 뜻을 둔 사람에게는 唐나라 留學이 最上의 꿈이었다.


政治人, 學者, 僧侶할 것 없이 唐나라의 制度, 風習, 思想이 新羅에 絶對的 影響을 주고 있었다.

唐나라 留學길에 오른 元曉와 義湘은 黨項城(당항성)을 향해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元曉 33歲, 義湘 25歲였다. 前에 두 사람은 陸路를 通해 入唐하려다가 高句麗의 巡察隊에 잡혀서 新羅의 諜者(첩자)란 疑心을 받고 獄살이 끝에 新羅로 追放 당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은 入唐留學의 初志를 굽히지 않고 이번에는 海路를 擇해서 船便을 찾고 있었다. 어느 날 海邊에 나갔다가 해가 저물어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았다. 움집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지친 몸을 쉬며 잠이 들었다.


元曉는 잠결에 甚한 渴症을 느꼈다. 마침 방 한구석에 冷水가 가득한 바가지 하나가 손에 잡혔다. 元曉는 단숨에 이 물을 들이켰다. 渴症을 가시게 하는 甘露水였다.


날이 밝자 두 사람은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두리번 살펴보았다. 그들이 잠든 곳은 움막이 아니라 古塚(고총, 낡은 무덤)의 한 구석이었다. 더욱이 元曉가 놀란 것은 어젯밤 어둠 속에서 그렇게도 달게 마셨던 冷水가 다름 아닌 骸骨(해골) 바가지에 고인 썩은 물이었다는 사실이다. 元曉는 비위가 틀리고 口逆질이 났으나 꾹 참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는 불현듯이 깨달았다. 과연 淨·不淨, 好·不好, 善·不善 등의 모든 分別境界는 自身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지, 實物 그 自體의 屬性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것이 客體에 있는 것이 아니고 主體의 마음 속에 있다는 唯心의 眞理를 大悟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元曉는 入唐留學을 斷念하고 義湘과 作別했다. 後日 元曉는 獨自的으로 唯心無?(유심무애)의 境地에 이른 學問思想體系를 成就하였다. 元曉思想의 硏究가 韓國에서 보다는 日本에서 훨씬 深化旺盛하다는 것을 付記해 둔다.


萬物이 마음心에 달려있다.

따라서 마음心을 眞·善·美로 채워야 한다.


一切唯心造는 華嚴經에 나오는 佛家의 法語이다. 一切는 萬物을 뜻한다. 唯는 오직, 心造는 마음이 짓는다는 뜻이니, 天下萬事萬物은 오직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心은 하늘天보다도 높고, 땅地보다도 넓고, 바다海보다도 깊은 無邊廣大(무변광대)한 無量無?(무량무애)한 그릇이다. 神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 存在가 左右된다. 神이 있다고 마음먹으면 神은 存在한다. 神을 마음속에서 믿지 않으면 神은 存在하지 않는다. 이렇게 거의 全能한 마음心을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서 마음心은 限없이 善한 創造的 天使가 되기도 하거니와, 그것이 惡의 影響下에 있다면 참으로 可恐한 破滅的인 惡魔의 使者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人間이 태어나서 敎育을 받기 以前에는 人間의 마음心은 白紙와도 같다.


善惡을 區分하는 識別心을 이 白紙狀態의 마음心 속에서 訓育해야한다. 우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것, 日本 사람들은 어린애들에게 經을 읽듯이 되풀이해서 이 말을 들려준다.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은 消極的일지 모르지만 善惡識別心의 初步가 된다. 日本漢字에 ?(シツケ·시쓰께)라는 字가 있는데, 좋은 禮節習性을 몸身에 訓育한다는 것이다. 어린애의 깨끗한 白紙같은 마음心의 바탕에 眞·善·美의 그림을 그려 넣고 惡이 들어설 餘地를 없게 하는 것이 眞正한 敎育이다.


UNESCO 憲章의 一切唯心造


國際平和와 人類共同의 福祉를 追求하기 위해서 組織된 國際聯盟 U·N이 그 目的을 達成하기 위해서 UNESCO를 設立했다. E=EDUCATION 敎育, S=SCIENCE 科學, C=CULTURE 文化, O=ORGANIZATION 組織이다. 이 國際聯盟敎育科學文化機構의 憲章前文에는 다음과 같은 句節이 있다.


“戰爭은 人間의 마음 속에서 생김으로, 平和의 防壁을 세워야 할 곳은 人間의 마음속이다.”

“서로의 風習과 生活方式에 대한 無知는 人類歷史를 통하여 世界國民들 사이에 疑惑과 不信을 招來한 共通의 原因이며, 이 疑惑과 不信 때문에 그들의 不和는 너무나도 자주 戰爭을 일으켰다.”


人類를 破滅의 危機로 몰아가는 戰爭도 人間의 마음心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人間의 마음 속에 平和의 防壁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戰爭의 原因이 되는 마음속의 疑惑과 不信과 憎惡는 서로의 風習, 生活樣式, 文化에 대해서 無知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敎育을 通해서 相互 남의 文化를 理解하고 交流하면 戰爭의 불씨인 疑惑, 不信, 憎惡는 解消되고, 그 대신 마음 속에는 남에 대한 信賴와 理解, 愛情이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서울大學校 總長의 一切唯心造


先天的으로 人間의 本性은 힘든 일을 하기보다는 먹고 놀기를, 힘들게 착한 일을 하기보다는 放縱한 惡의 誘惑에 弱할 수도 있다.


敎育은 强制와 訓練이며 反復에 의한 習性化로 始作한다고 한다. 그러나 近來, 열린敎育이니 참 敎育이니 하는 自由放任主義가 熱病처럼 퍼지고 있다.


曰, 敎育需要者인 兒童學生의 個性을 尊重하고 自由放任하여 獨創性을 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①억지로 가르치지 말 것. ②야단치지 말 것. ③버릇들이고 고치려 들지 말 것. 宿題는 負擔을 주니 주지 말 것이요, 九九단을 외우는 것도 必要없는 努力이요, 圓周率도 3.14가 아니라 3以下 小數는 暗記할 必要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漢字는 힘들게 배워서 무엇에 쓰느냐는 式이다. 이래서 學校와 敎室이 崩壞하고 敎育은 漂流하게 되었다. 오늘날 世界到處에서 尖端科學으로 名聲을 떨치고 있는 印度의 젊은이들은 九九단이 아니라 十九×十九단을 暗誦한다고 한다. 열린敎育論者들은 暗記는 不必要하고 創意敎育을 해야 한다고 主張한다.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인가!

語文은 單語를 暗記하지 않고는 成立되지 않는다. 數學도 公式을 無條件 暗記해야 問題를 풀 수 있다. 모든 科目이 높은 基礎事項을 可能한 限 많이 暗記해야 文理가 트여서 創造性에 到達한다. 知識의 水準은 暗記量에 比例한다는 것은 古今의 不變한 眞實이다. 다만 덮어놓고 暗記하는 것보다는 暗記學習의 方法을 興味롭게 指導한다는 것은 別途의 問題이다.


中國의 淸華大學은 朱鎔基(주용기), 胡錦濤(호금도) 等 現代中國의 最高指導者를 수많이 輩出한 名門 工科大學이다. 이 大學의 敎育方針은 工科大學임에도 不拘하고 먼저 確固한 人文敎養을 쌓은 人格形成의 基礎위에 專門科學技術者를 敎育한다는 것이다. 올바른 마음心과 精神을 가꾸고 나서 均衡잡힌 人格의 科學者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이 大學에 入學하면 卒業時까지 學校에서 指定한 100卷의 古典을 讀破해야한다. 四書三經을 비롯한 中國古典 70卷, 希臘·로마의 哲學, 文學書籍을 包含한 西歐의 古典이 30卷이다. 참으로 驚異的이고 부럽다. 人文敎養을 重視한다는데는 美國의 名門工科大學 MIT도 同一하다.


누가 무어라 해도 이 나라 韓國에서는 서울大學校가 最高名門임을 아무도 否認못할 것이다. 最近에 들은 朗報하나는, 이 大學의 鄭雲燦 總長이 2004년 新入生부터 漢字敎育을 集中的으로 徹底시켜 學科成績에 反映하겠다는 方針을 세웠다는 것이다. 晩時之歎이나, 이제 서울大學에 總長다운 總長이, 아니 이 나라의 大學敎育界에 總長다운 總長이 비로소 出現했으니 큰 意味있는 慶事가 아닐 수 없다.


한글專用論者들의 無知莫道한 陰謀的 暴擧로 이 땅에서 漢字敎育이 中斷된지 30餘年에, 大學을 卒業하고도, 父母 이름도 學校名도 漢字로 적지 못하는 漢字文盲이 量産되어왔다. 그들은 在學中에 敎養國語敎科書를 理解는커녕 읽지도 못하고 卒業을 했다. 名色이 大學國語에는 高級思考思想을 表現하는 高級文章과 古典文學의 遺産이 編輯되어 있을 것이다. 따라서 80%以上이 漢字語로 된 文章에, 基礎的인 漢字도 모르는 文盲들이 接近이라도 했겠는가?


國語科 敎授들은 恨歎만 하고 無策이었던 것 같았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鄭 總長의 一切唯心造에 따라서는 우리 大學生들도 傳統文化를 繼承하고 民族文化의 暢達에 參與할 수 있을 듯하다. 鄭 總長에게 一步前進해서, 新入生들에게 苟且(구차)하게 漢字授業을 하느니 보다는, 入學試驗 自體에 漢字試驗을 必히 넣도록 熱心히 建議한다.


淸華大學生들은 100卷의 古典을 讀破해서 마음心에 豊富한 滋養을 주어 人格을 가꾸는데, 天下의 서울大學校 新入生이 ‘하눌天 따地 가물玄 누루黃’을 하고 있다는 것은 恥辱스럽지 않은가!


鄭 總長이 唯心造的 決心만 한다면, 餘他 大學들이 틀림없이 뒤따르고, 高校生들은 自進해서 漢字學習에 專念할 것이다. 뒤이어 中學生들이, 初等學生들이 漢字學習에 熱中할 것이다. 所謂 한글世代의 犧牲이 되어 漢盲을 免치 못했던 敎師들도 自愧心을 禁치 못해 漢字晩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漢字敎育이 復活만 된다면, 30餘年의 敎育 空白은 短時日에 復元되어 荒廢했던 情緖와 精神은 潤澤하고 豊饒롭게 涵養될 것이다.


禮節바른 健實한 靑年들은 正心을 바탕 삼아 祖國의 장래를 떠받치는 굳건한 棟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