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님이 쓰신 <정의란 무엇인가> 독후감에서 흥미있는 주제가 언급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저 책을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상태라서, 본격적으로 저 주제에 대해서는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운데요...

하하하님의 글에서 정치문화랄까, 동서양의 차이에 대해서 언급하신 부분에 관심이 가는군요. 이미 미뉴에 님도 언급을 하신 것 같은데... 댓글로 썼다가, 용기를 내서 본글로 올려봅니다.

이 주제로 많은 분들이 글을 올려주셔서 제가 좀 배웠으면 합니다. 사실 꽤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사안인데, 공부도 짧고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내가 자료를 찾아 읽을 여유도 없어서... 그냥 혼자 생각만 하고 있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공짜로 배웠으면 한다는 욕심이 생기네요...^^




명확하게 근거를 대기는 어렵지만, 저도 하하하님이 말씀하신, 서양과 동양의 정치문화(뿐만 아니고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 전반)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입니다.

이게 과연 증거가 될지는 모르지만, 중국의 경우 기본적으로 주변 민족과 공존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원래 황하 중류의 작은 세력이었던 화족이 중국 대륙 전체를 동화시켜가는 과정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그 사회 구성원들의 악의에 기인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시스템이 그렇게 돼 있다는 것이죠.

저는 그 원인을 두 가지 정도로 판단합니다. 실제로는 하나의 원인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일단 두 개로 나눈 것입니다.

첫째, 마르크스가 말한 동양적 생산방식의 특수성에서 이 문제가 기인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황하 치수의 요구 때문에 동양(중국)은 고대부터 대규모 인력동원과 관리를 위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의 등장이 요구됐습니다. 이러한 정치 경제적 요구가 사실은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의 사상적 체계화로 이어졌고, 이러한 정치문화의 유산이 그 뒤로도 중국 나아가 한중일 등 동양 3국의 정치문화 또는 사회문화 전반을 규정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양의 경우 동양처럼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의 관계가 일방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것은 왕권 등 중앙권력의 크기에 의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차이가 있다고 느낍니다. 이런 관계는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동양의 경우 정복자가 피정복자를 완전히 수탈해서 끝장을 내는 문화가 일반적이죠. 하지만 서양은 그게 아닌 것 같아요. 땅덩어리로만 보면 중국보다 훨씬 작은 유럽에서 수많은 민족국가가 여전히 존속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 아닐까요?

둘째, 저는 계약의 문화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동양의 경우 아무리 뛰어난 법전을 마련해도 그 법전보다 우위에 선 것이 절대권력자의 의지입니다. 이런 경우가 더 일반적이라고 봅니다. 반면 서양은 그렇지 않은 것 같더군요. 지배-피지배 관계가 일종의 계약의 정신 위에서 성립하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이러한 계약의 정신이 살아있으면 강자와 약자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는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이 계약의 문화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구약성경은 사실 하나님과 인간의 계약에 대한 스토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당시 중동 지방에서 계약의 사회적 문화적 기반이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었던 증거 아닌가 생각해보는데, 명확한 것은 잘 모르겠습니다. 즉, 히브리 민족의 고유한 계약 정신이 점차 중동 및 서양문명 전반에 영향을 끼친 것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제가 보기로는 중동 지방에 애초부터 계약의 문화가 확실한 사회적 인프라로 자리잡았을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습니다만...

고대 지중해 국가들이 활발하게 해상 무역에 의존했던 것도 계약문화의 발달에 기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동양에서도 교역이 서양에 비해 적었다고 볼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육상로를 통한 무역과 해상무역은 기본 질서가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즉, 육상 무역은 아무리 정밀하게 계약을 맺는다 해도 계약 당사자들의 힘의 우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파기될 수 있습니다. 어제 계약을 맺었다 해도, 오늘 자신에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이 생긴다면 당장 군사들 이끌고 가서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해상무역의 경우는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출병에 따른 부담이 너무 크고, 결국 경제적으로 손실이 나는 행동이 되기 쉽죠.

또, 동양은 기본적으로 중앙집중형 전제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그만그만한 세력들의 평판을 별로 의식할 필요가 없지만, 지중해 문명의 경우 절대적인 권력이 존재하지 않고 바닷길 여기저기에 자리잡은 소왕국 또는 도시국가들 사이의 평판이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됩니다. 로마와 카르타고가 대립한 포에니 전쟁의 궁극적인 승부를 가른 것은 위대한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역량이 아니라 바로 두 나라를 지지하는 지중해 도시국가들의 향배였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