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가 쓴 제국의 위안부란 책이 있습니다. 작년 8월에 출간된 책이니 비교적 최근에 출간된 책인데, 제가 나름 믿는 분이 '강추'하시길래 한번 읽어 봤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얼마 전 한번 대충 훑어보고 요새 천천히 재독하고 있는 중입니다.

 읽어보면 실제로 취할만한 장점도 제법 있는 책입니다. 그러나 이건 위험하다, 망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여겨지는 점도 장점 못지않게 수북한 책입니다. 취할 건 취하고 가릴 건 가려서 읽어야 할 책인데요, 바로 이 단점과 관련해 제가 박유하의 위안부론에서 가장 심각하달까, 문제라고 본 점이 바로 아래 인용한 구절에 나타나는 '조선인위안부-일본군의 동지적 관계'론입니다. 책의 2부 4장에 나오는 대목. (이하, 모든 인용문에서 굵은글씨 강조는 인용자)  


 """  앞에서도 본 것처럼, 일본인・조선인・대만인 '위안부'의 경우 '노예'적이긴 했어도 기본적으로 군인과 '동지'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다시 말해 같은 '제국 일본'의 여성으로서 군인을 '위안'하는 것이 그녀들에게 부과된 공적인 역할이었다. 그들의 성의 제공은 기본적으로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뿌리와 이파리, 2013, 176쪽  """



 위안부와 일본군이 맺었던 관계가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였으며, 위안부에게 성의 제공은 일본 제국에 대한 '애국'의 의미를 띄는 행위이기도 했다라...

 우선 이 주장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적어도 저한테는 그래요). 감정적 거부감도 불러 일으키는 주장이고요. 그러나 거기까진 좋습니다. 제 아무리 듣기 거북한 주장이더라도 위안부의 실태가 그러했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죠. 받아들여야죠. 덧붙여 지적해두고 싶은 건, 현재 피해자들이 일부나마 생존하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만약 이 주장이 위안부가 처한 상황 및 겪은 경험과 어긋난다면, 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모욕적인 발언이 될 소지가 농후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그만큼 신중을 기해 해야할 주장인 셈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박유하는 조선일을 포함한 위안부 및 일본군인들과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였다는 주장을 정당화하는데 실패했어요. 그 대신 거의 횡설수설에 가까운, 종잡기 어려운 소릴 늘어놓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는 인용문의 "앞에서도 본 것처럼"에 해당하는 내용을 조목조목 따져보면 됩니다.

 "앞에서" 도대체 뭘 봤다는 걸까? 이건 이 책의 1부 2장을 살펴보면 나옵니다. 2장 서두에서 박유하는 어느 일본인 "자원" 위안부의 증언을 인용합니다. 증언의 내용인 즉슨, 그 일본인 자원 위안부가 전방인 남방전선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을 때는 그 부대 군인들과 거의 침식을 같이 하다시피 하면서 "고생한다" 등 인정어린 말을 병사들로부터도 곧잘 듣곤 한 탓인지 자신도 그 사람들을 위로해줘야겠다는 의무감을 느꼈는데, 그 뒤 후방의 다른 부대로 이동했을 때는 상황이 돌변, 그 곳 병사들로부터 말 그대로 공동변소취급을 당해 인간적 모멸감을 느꼈다는 증언입니다.

 이 일본인 자원 위안부의 증언을 인용한 뒤 박유하는 이런 해석을 내립니다 .

 """ 자원한 '위안부'들은 처음부터 자신의 역할이 군인의 '위안' -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것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몸'이 되었다고 자기 자신을 비하해야 할만큼 사회의 차별적인 시서을 받아온 그녀들에게, 군인을 상대하는 '위안부'란 처음으로 자기의 앉을 자리를 '양지'에 내받는 일이기도 했다. (59쪽) """


 '자원'을 했던 위안부들은 자신의 역할을 나라를 위한 일임을 인지했고, 또 그 역할이 그네들에겐 '양지'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우선 저 '자원' 일본인 위안부 단 한 명의 증언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한 해석인지, 또 타당한 해석이라 하더라도 자원 위안부들 대다수에게 일반화가 가능한 해석인지부터 심히 의문이 듭니다만, 여기서는 편의상 그렇다고 해 둡시다. '자원'한 위안부들은 대개 자기의 역할이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명확이 인지하고 있었다고 일단 가정해 둡시다. 편의상 말이죠.

 이렇게 일본인 자원 위안부의 경우를 한번 건드린 뒤, 본격적으로 조선인 비자원 위안부와 일본군인과의 관계를 거론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전 자원이 아니라 '비자원'이라고 했습니다. 이걸 강조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자원이 아니라, 모집업자의 사기 및 사실상의 강박 등의 방식으로 모집된 '비자원' 위안부들의 경우라면, 박유하가 주장하는 "성적 서비스 제공에 관해 자원 위안부가 가졌던 인식"이 그대로 통용되리라는 보장이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의 상황을 노예적 상태로 인식했을 개연성이 훨씬 더 높다고 봐야겠죠.

 실제로 박유하는 본인 스스로 이를 인정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군이 하나같이 짐승같았던 것은 아니고 그 중에는 성욕해소는 커녕 그냥 얘기나 하면서 같이 눈물을 흘려주고 선물을 주고 떠나는 등 인간적인 호의를 베풀어주는 일본병사도 가끔 있었다는 어느 조선인 비자원 위안부의 증언을 인용한 뒤 박유하는 이렇게 말합니다.

 """ 물론 이런 기억들은 부수적인 기억일 수 밖에 없다. 설사 보살핌을 받고 사랑하는 마음을 허한 존재가 있었다고 해도, 위안부들에게 위안소란 벗어나고 싶은 곳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67쪽) """


 그렇죠. 적어도 사기, 강박 등의 방식으로 모집되어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며 감금상태에서 살았던 위안부들에게 이런 기억과 경험들은 어디까지나 사인과 사인 간에 잠시 잠깐 더러 일어나는 인간적인 감정교류일 뿐이지, 구조적이고 전반적인 상황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사에 반해 일본군들의 성욕해소에 자신의 신체가 이용되는,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겁니다 . 

 이게 취업사기 및 강박 등으로 모집된 비자원 조선인 위안부들이 일본군과의 관계에 관련해 처했던 '기본적'인 상황이죠. 설사 자원 위안부들의 경우라면 박유하의 말대로 자신의 역할을 나라를 위한 애국적 일로 인식하며 그 일에서 어느 정도나마 '양지'를 찾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이 점도 자원 위안부 전반에 일반화가 가능한 얘기인지 심히 의문이라고 이미 지적했습니다), 박유하는 '비자원' 조선인 위안부의 증언들 가운데서, 앞서 나온 일본인 '자원' 위안부의 증언과 내용이 유사한 것을 어느 하나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자원 여성 위안부의 상황이 어떠했는가의 문제와는 별개로,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된 비자원 위안부의 일반적 상황이 어떠했는지는 사실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박유하 본인이 직접 인용하는 조선인 비자원 위안부의 증언들을 보면, 오히려 박유하 본인의 논지에 불리한 증언들 투성이.

 상황이 이런데도 박유하는 바로 위 인용문에 곧 이어 이런 말을 해요.

 """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사랑과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였기 때문이다. (67쪽) """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다시 정리를 해봅시다.

 일본인 병사들 가운데는 '간혹' 위안부들을 동정하며 인간적으로 대해주는 병사들도 있곤 했었다는 조선인 위안부의 증언이 있습니다.
 그리고 박유하는 이런 경험이 조선인 '비자원' 위안부들에게는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경험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인정합니다.
 그런데 대뜸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였다는 극히 일반화된 주장을 선언합니다.
 
 자가당착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말인데, 그래도 억지로나마 박유하가 하려는 말을 이해해주려고 하면 이런 해석은 가능할 겁니다.

 위안부가 처했던 부대 및 전황과 관련된 때와 장소, 또 위안부가 접한 일본군 병사에 따라 인간적 감정교류가 더러나마 일어났던 것은 증언을 통해 분명한 사실인데, 이 사실을 설명으로서 "조선인 위안부-일본군 동지관계"설 외에 달리 더 좋은 설명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호의적인 해석을 해주더라도 파탄이 나는 건 여전한데, 동지관계가 아닌, 주인-노예관계에서도 인간적인 감정교류가 일어나는 경우야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로마시대 노예제 사회에서, 또 조선시대 노비제도하에서, 미국의 백인 농장 노예주와 흑인노예 간에서 설마하니 백이면 백, 날이면 날마다 주인이 노예나 종에게 채찍질이나 하는 관계만 있었겠습니까? 이런 노예제도하의 주인-노예 관계더라도, 그것이 장기간 코 앞에서 얼굴을 서로 맞대고 사는 직접적인 '대면관계'라면, 상황 및 각 개인의 인격에 따라, 주인과 노예 간에 서로 인간적인 감정교류가 일어나는 일은 그리 드물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의외로 많았을지도 몰라요.

 요컨대, 물질적 혹은 정치, 이념, 종교적인 비물질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대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력하는 그런 동지적 관계가 굳이 아니더라도, 불쌍한 처지에 놓인 노예의 상황을 동정하며 같이 울어준다든지 기타 여러 방식으로 호의를 베풀어주는 일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어요. 

 사정이 그렇다면, 박유하가 저 책에서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식의 사랑과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때문"이란 단어을 동원해 인관관계로 둘을 엮어보려는 건 설득력이 희박하죠. 이건 억지에 가깝습니다.  

 이 설득력 희박한 박유하의 억지는 아래 대목에서도 반복됩니다.

 """ 가족과 고향을 떠나 머나먼 전쟁터에서 내일이면 죽을지도 모르는 군인들을 정신적-신체적으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는 역할. 그 기본적인 역할은 수없는 예외를 낳았지만, '일본제국'의 일원으로서 요구된 '조선인 위안부'의 역할은 그런 것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랑도 싹틀 수 있었다. (65쪽) """


 역시 횡설수설입니다. 우선 수많은 예외를 낳았다고 박유하 스스로 실토하죠. 수많은 예외를 낳는 걸 어떻게 '기본적'이란 말로 수식할 수 있는 건지,  그걸 전혀 모르겠습니다. 또 정신적-신체적으로 위로하는 (성적, 정서적 착취) 역할을 '요구'받았다고 말하고 있어요. 본인 의사에 반해 그런 역할을 수행하게끔 강요당했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박유하가 처음 밑밥으로 깔아뒀던 저 일본인 '자원' 위안부의 상황과는 성격이 판이했다는 뜻입니다. 일본인 '자원' 위안부야 남방 전선에서 일본군인들을 위로해줘야겠단 모종의 의무감을 자진해서 느꼈다지만 (나중에 후방의 다른 부대로 갔을 땐 거기서 공동변소취급당했다는 이야긴 박유하를 위해 일단 무시해줍시다), 조선인 '비자원' 위안부들은 박유가 스스로 실토하듯이 성적-정신적 위안역할을 하게끔 '요구'받은 사람들 아닙니까? 본인 의사에 반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박유하는 뭘 근거로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였으며, 또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사랑이 싹틀 수 있었다고 믿는 걸까?

 이건 어쩌면, 박유하가 상상력을 너무나도 과도하게 발휘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아래 인용문을 봅시다.

 """ 식민지가 된 조선과 대만의 위안부들은 어디까지나 '준일본인'으로서 제국의 일원이었고 (물론 실제로는 결코 '일본인'일 수 없는 차별이 있었다), 군인들의 전쟁 수행을 돕는 관계였다. 그것이 '조선인 위안부'의 기본 역할이었다. (중략) 국가가 일본인을 비롯한 '제국의 위안부'들에게 맡긴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성적 착취를 당하면서도 죽음을 앞둔 군인을 '후방의 인간'을 대표하며 '전방'에서 '위안'하고 그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역할. 말하자면 '위안부'들에게는 신체적 '위안'뿐만이 아니라 정신적 '위안'까지도 요구되고 있었다. 그녀들이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무슨 날이면 '국방부인회'의 옷을 갈아입고 기모노 위에 띠를 두르고 참여한 것은 그래서였다. 그것은 국가가 멋대로 부과한 역할이었지만, 그러한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 - 자기 존재에 대한 (다소 무리한) 긍지가 그녀들의 가혹한 생활을 견대낼 수 있는 힘이 될수도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


 그러니까 결국 이런 말입니다.

 일본군이 선정하고 모집을 요청한 모집업자들이 사기, 강박으로 조선인 비자원 위안부들을 모집했고, 그 위안부들은 본인 의사에 반해 감금상태에서 일본군에게 신체적 위안 및 정서적 위안을 할 것을 강요당했으나,  나 박유하의 상상속에서는, 아마 이런 처참한 상황에서 그녀들이 정신적 위안자로서의 역할에 (다소 무리한) 긍지를 가짐으로써 가혹한 생활을 견뎌내는 힘을 짜내고, 또 그리하여 일본군인과 간혹 인간적인 감정교류같은 것도 생겨났던 일도 얼마든지 있을 법한 일이라고 본다. 물론 이 상상을 뒷받침해주는 조선인 비자원 위안부의 증언을 제시할 순 없지만...

 네... 상상 속에서야 뭐든 일어날 수 있는 법입니다. 

 이미 말했다시피 취할 점도 제법 있는 책입니다. 제가 이 책에서 박유하의 위안부론을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망언'에 가까운 횡설수설도 적잖게 들어간 책이니, 독자가 주의깊게 취사선택하며 읽을 책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