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oJCJ님의 주장 중....

현대인은 동성애 문제를 윤리적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대인은 이 문제가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합니다. 고대인은 성관계를 통해 남성우월주의를 상징적으로 형성하게 됩니다. 즉 성관계시에 남자가 여자에게 침투한다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이해가 되는 이유는 고대인은 인간의 몸의 각 부분에 상징성을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한자권의 동양 문화에서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한자에서 인간의 장기를 표현할 때에는 달 월(月)자를 사용합니다. 음양의 조화를 인체의 해부학에 적용합니다. 동양적인 상징성이죠. 마찬가지로 중근동의 고대에서도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자의 성기는 여자의 성기내로 침투(penetrate)하여 정복하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즉 남자의 성기를 침투하여 정복하는 공격적 상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처녀성이 중요하게 됩니다. 일단 정복 당하여 굴복한 여자를 또 다시 정복한다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에 한번도 침투 당한 적이 없어서 굴복하지 않은 대상을 처녀로 생각한 것입니다. 따라서 여자는 정복의 대상이고 남자는 정복의 권위를 지닌 존재로 여기게 되어 고대인들은 남자는 완전한 인간으로 그리고 여자는 불완전한 인간으로 생각합니다.
 
고대인들의 입장에서 동성애가 문제가 되는 경우는 남자들 끼리의 동성애, 즉 동일한 권위에 대한 충돌이 나타날 때입니다. 여자들끼리의 동성애는 정복이라는 개념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남색이라는 개념만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생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남색이라는 표현을 통해 질서의 문제에 대하여 상징적 표현이 나타나지만 여성들간의 동성애를 보여주는 상징적 표현은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만일 육적 동성애가 정말로 질서의 파괴라는 개념으로 죄라고 인정하고 있다면 남자들 간의 남색과 여자들 간의 여색도 동일하게 다루었어야 되는 것입니다.
 
고대에는 미동(美童)을 성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때에 미동은 남자 아이이지 여자 아이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정복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서는 그 대상이 동일한 권위를 지닌 남자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적 만족을 위해서 그들을 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정복자로서의 권위에 대한 확인과 과시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무슨 성적 만족을 느끼겠습니까?
 
이런 사고는 중세까지도 이어집니다. 루터가 여자에 대하여 어떤 발언을 했는지 찾아보시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남녀의 평등이란 말이 사회에 나타난 것은 백년도 되지 않은 일입니다. 고대의 사상이 초기 로마 사회에 이어지고 그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인 가운데 성경을 해석하여 기독교의 교리가 세워지고 그런 교리 아래 서구 문화가 성립이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경향을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고대 문화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해야 왜 성경에 성적인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에서 왜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규례를 세우고 신약에서는 남자와 여자를 교회 내에서 차별을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이건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스가 왜 비난을 받는지...를 설명하면 간단하게 써질텐데 말이죠.... 제가 한번 요약해볼까요?

고대 그리스에서의 남자 동성애는 '사랑'이라는 개념보다는 '정복'이라는 개념에서 용인이 되었다. 그런 개념은 남자 동성애를 나타내는 용어에서 잘 표현되어 있다. 


남자 동성애는 에로멘노스(eromenos)와 에라스테스(erastes)로 구분된다. 에로멘노스는 top, 그러니까 삽입자이며 에로멘노스는 bottom 즉 피삽입자를 의미한다. 즉, 에로멘노스는 정복자이고 에라스테스는 피정복자이다. 따라서, 여자동성애는 생리학상 정복의 개념이 없는(굳이 이야기하자면 평등한 성적 개념) 상태이므로 애초에 이야기거리도 되지 못했다.


트로이의 영웅 아킬레스가 후세 사람들에게 비난 받는 이유이다. 당연히 영웅이어야 할 아킬레스가 그의 부관 파트로클리스에게 엉덩이를 돌렸다는 사실 때문에 비난받는 것은 동성애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이 된 결과이다.


바울이 동성애를 죄악시 했다는 것으로 알려진 단어 'arsenokoitai'를 백번 양보하여 '동성애'라는 의미'만'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 동성애에는 '남자 동성애의 뜻만 있지' '여성 동성애의 뜻은 없다는 것'에서 잘 나타난다.



나머지 NeoJCJ님의 주장에 대하여 나는 지지를 보내는 입장이다. 아래 내 포스팅의 내용과 일치하고 성서적 해석에 있어 내가 인용한 샘터교회의 정용석 목사의 해석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물론, 바오밥님 지적대로 '상징을 해석하기 위해 상징을 덧댄 부분'은 당연히 지적을 받아야 하고... 내 주장의 요지는 간단히 쓰자..... NeoJCJ님은 그 부분을 많이 고민하셔야할 것 같다........라고 '감히' 충고질을 해본다. <--나는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물량프로토스'는 정말 시러... ㅠ.ㅠ;;;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