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사람들에게 영남패권주의가 "보편적"으로 드러난다는 말도 저는 좀 의아합니다. 정치권에서 영남인들의 세가 강하고, 그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 영남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패권적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고 하면 동의하겠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정치권 일각의 문제이지, 그게 영남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소시민들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 권력자를 너네 영남인들이 다 뽑아주니까 하는 소리가 아니냐..고 해도, 선거 때 마다 정책투표 보다 지역기반의 투표를 해 온 것은 영남사람들 고유의 문제가 아니라 유권자 전체의 문제가 아니였나요? 이게 한국 선거문화의 고질적인 병폐가 되다보니 망국적 지역주의라는 말도 유행하게 된 거고 영남의 책임이 두드러지는 것은 순전히 영남의 인구수 비중이 타지역에 비해 훨씬 크기 때문인 건데..(=영호남은 대권주자를 배출한 탓에 그 문제의 심각성이 더 크게 불거진 것 뿐이지 그외 지역민들도 기본적으로는 다 지역기반 투표를 하고 있죠.) 

애초에 이념이나 정책에 관심을 두고 지지하는 후보자가 있는 극소수 정치 마니아들(=주로 진보진영의 유권자들이겠죠) 빼고, 누가 누군지 잘 알지도 못하는 후보자들이 나와서 유세를 하고 있다면 그나마 자기와 지역기반이 같은 동향사람에게 한표를 던진다는 게 물론 바람직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이해못할 바도 아닌 거죠(=사실 후보자들에 대한 불충분한 정보를 갖고 선택해야만 하는 거니 그나마 동향사람을 뽑는다는 게 리스크가 가장 적은 합리적인 선택이기는 하죠. 문제는 그 합리적인 선택이 언제나 사회적 최선이 안된다는 비극에 있는 거지만..)
 
마찬가지로 영남 사람들이 영남후보에게 묻지마 한표를 던지는 것도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인간 일반의 심리적 속성에 기인한 거고, 그 이면에는 동향사람을 찍으면 아무래도 내가 사는 지역에 뭐 하나라도 득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바램 정도가 섞인 거지, 무슨 거창한 영남패권주의의 실현 같은 것을 바라고 하는 짓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대단한 착각이라고 밖에는..

또 정치권의 문제를 봐도 그렇습니다. 영남패권주의에서의 방점은, 영남이 아니라 패권주의에 있어야는 게 아닐까요? 힘있는 사람이 권력을 사유화해서 자기와 자기 주변인들의 이권을 위해 남용하는 것은,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나 일반적인 행태라서 그 사례를 굳이 나열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죠. 그게 옳지 않음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옳지 않다고 말하는 그 모두가 그 권력의 위치에 올라서면 똑같은 짓을 반복하게 된다라는 피할 수 없는 딜레마..그래서 보혁갈등의 구도가 형성되고 새로운 시대정신에 편승한 개혁세력이 승리를 쟁취하더라도, 시간이 지나게 되면 그 개혁세력 역시도 권력의 패권적 속성에 젖어들어 점차 기득권으로 변모해 가고..이런 일들의 반복으로 점철되어 있는게 어제의 역사이자, 오늘의 현실이며, 내일의 예측가능한 미래인 거지, 그게 딱히 특정지역의 문제인 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니 타격해야 할 일차적인 목표는 권력의 패권적 속성이 되어야는 게 아닐까요? 현재 시점에서 그 패권을 쥐고 있는 세력이 영남이기 때문에 전술적 의미에서 영남패권의 타격을 말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것을 넘어 영남(+영남인) 자체에 대한 증오를 키우는 지역/인종주의적 논리를 가공해 내는 것이 대한민국 정치발전에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또 영남박멸에 성공해서 호남(혹은 기타지역)이 집권하게 되더라도, 권력의 패권적 속성이 여전하고 그에 기생하는 권력자들의 권력의지가 여과없이 정치권을 지배하게 된다라면, 결국 끼리끼리 이합집산하여 지역기반 혹은 이해관계 우선의 정치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그렇게 되면 유권자들의 삶이 지금과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겠죠. 그 정치실세들의 지역기반이나 이해관계와 맞닿아있는 주위의 가까운 인맥들, 또 계급적으로 상층부에 속해 있는 일부 사람들만이 혜택을 볼 것이고, 그것과 무관한 대부분의 서민들은 지역불문하고 전혀 그 수혜의 대상이 아닌 것이죠. 현재 영남인사 주축의 한나라당 정권에서도 그 수혜범위가 영남인구 전체가 아닌 극소수 일부로 한정되어 있는 것은 마찬가지고, 향후 어느 지역기반의 대권후보가 정국을 장악하든, 권력의 패권적 속성이 제어되지 않는다면 한나라당의 구태정치는 집권정당과 지역기반만 달라진 채 그대로 연장될 것임도 불을 보듯 뻔한 것이죠. 

그러니 일개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그놈이 그놈이다는 정치불신의 말들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고, 그렇다면 차라리 가까운 내 지역사람이나 뽑아줄란다..정서에 빠질 수 밖에 없고, 사실 그간 지역주의가 팽배해 왔던 현실도, (제 눈에는)이미 유권자들이 정치인과 정치지형의 일그러진 속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묻지마 표심에 쉽게 편승하게 된 면들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물론 영남(및 기타 지역 중장년층들)의 경우 순수 지역주의에 기반한 묻지마 표심말고도 반공주의 때문에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정책 투표를 한 유권자들의 수도 무시할 수 없이 많을 건데, 그렇게 보면 영남에서도 그나마 합리적인 투표를 한 분들이 많다고 봐야겠죠. 그 선택의 안습함 문제는 차지하고라도..

그러다 최근들어 지역을 넘어서 세대와 정책이슈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 것은, 정책의 문제가 당장의 내 생활(=특히 집 값)과 직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유권자들의 판단 기준이 변해서 그런 걸텐데..당장 이 부동산 불로소득 문제를 어떻게 "개혁적으로 해결할 것인가?"의 이슈 앞에서 민주당이 어떤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정치권의 캐치프레이즈성 구호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집값 폭락을 막기 위한 규제완화의 조치가 늘상 의도하지 않았던 투기를 부추겨 수도권 개발지대 바깥에 사는 대다수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왔음을 생각할 때 (정치적으로 힘이있는 중상위층)일부 유권자 vs (전국에 광범위하게 분포한 서민층)다수 유권자의 구도속에서 민주당의 개혁성을 시험받는 측면도 있을 거고..그러면서 정부개입과 규제완화 사이의 그 시장주의 VS 반시장주의의 이념논쟁에 휘말릴 소지도 있을 거고(=특히 민주당이 부동산 부양정책으로 방향을 잡게 되면 진보측에서는 시장근본주의, 신자유주의 딱지를 붙이며 한나라당2중대라고 공격을 하겠죠), 또 정치권이 실무를 맡아보는 관료들과 각을 세우지 않고 정국을 운영하는 노련한 운영의 묘가 시험받는 측면도 있을 거고..(=이거 잘못하면 개혁세력들은 입만 살았지 정국운영의 실력이 없다고 주구장창 까일테고..)아무튼 각 항목들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되던 반대세력의 태클에 봉착하게 될 것임은 이미 참여정부 시절의 경험으로 다 지켜봤던 것이고..

그렇다면 유권자들의 실제 생활과 맞닿아 있는 이런 정책적 문제들을 일부 특권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기득권 논리에 빠지지 않고, 보다 많은 유권자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결정하려는 그 정치적 노력에, 굳이 영남박멸(=그것도 영남유권자들 까지 포함된..ㅎㄷㄷ~)이 거론되어야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영남박멸이 소위 난닝구와 빽빠지의 싸움에서 등장하는 증오의 수사인 것을 감안하면, 결국 이 논의는 시종 정치권 내부의 권력투쟁에서의 지분싸움에 불과한 거지, 그 어디에도 실제 정치가 보듬어야 하는 유권자들의 삶이 고려되고 있지는 않은 것 같은데, 유권자로서, 특히나 영남유권자로서 왜 이런 가공할 인공주의적 수사에 노출되어야 하는지도 의문이고, 더 웃긴 건 실제 정치권에서 지분투쟁에 힘쓰는 인사들도 아닌 다같은 유권자들이 모인 이 공간에서 왜 이런 식의 (무의미한)책사질 비평들만 난무하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물론 정치비평을 취미삼아 즐기기 때문이겠지만, 타인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건들면서 까지 이런 식으로만 얘기가 진행되는 것은, 제가 정치에 대한 열정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해가 잘 안가는 대목이네요. 

화제가 된 부산저축은행건만 해도 그렇습니다. 후순위 채권이 이자율은 높아도 원금보장이 안되는데, 이미 저축은행의 부실이 분명해진 시점에서 그 사실을 아는 은행 내부 관계자들이 그 부실을 예금자들에게 떠넘기라는 지시를 내렸고, 일선의 은행원들은 그 명령을 하달받아 후순위 채권의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고지없이 후순위 채권을 반강제로 팔았고, 결국 은행의 부실을 수많은 소액 예금자들에게 떠넘겼습니다. 동시에 그 후순위 채권을 산 소액 예금자들의 예금은, 마찬가지로 저축은행에 예금한 일부 수백억 자산가들의 원금을 보장하는 것에 충당되었지요. 그 과정에서 은행 내부 관계자들과 정치권 인사, 고액예금자간의 댓가성 커넥션이 있었을 테고..한마디로 심각한 도덕적 해이로 인한 대표적인 금융비리 사건인 거죠.. 

근데 여기서 왜 "부산"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일까요? 부산이 아닌 광주나 대전, 혹은 서울이라면 이 사건의 본질이 달라지기라도 하는 건가요? 이 사건은 은행 부실에 책임이 있는 관계자들의 불법적(=후순위 채권이라는 금융상품의 내용과 그 위험에 대한 법적 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측면에서) 농간에 의해 지역 내 수많은 소액 예금자들이 피해를 본 금융사기사건에 가까운 겁니다. 하루하루 고생하며 자기가 번 돈 저축하다가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상황이 된 예금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항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설마 타지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그 지역민들은 자기 생돈 날렸는데도 그런가 보다..하고 가만 있는 것이 아닌 바에야 여기서 부산과 영남지역민이 굳이 부각될 필요는 없는 거지요. 그리고 지역민들의 표심을 고려하는 그 지역 정치권 인사가 감정에 치우쳐 선심성 입법을 발의한 것도, 물론 그것이 불가한 법적 논리적 이유로 반박을 하는 것은 옳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인지상정의 발로에서 나온 그 일개인의 판단의 패착인 거지, 그걸 무슨 죄다 영남종자라서 그런 거다라고 몰아부치면..대체 그 말을 누가 수긍하겠습니까?

호남인은 뒷통수를 잘친다..제가 이 말을 듣게 되는 경우는, 누군가가 자기 군대시절 경험을 얘기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내가 군생활 하면서 느꼈는데 호남애들은 진짜 뒤통수 쩔더라..블라블라..

그러면 제가 묻습니다. 갈구고 뒤통수 치고 책임 떠넘기고..뭐 이런 게 없을 수 없는 군대 생활을 하면서 왜 넌 하필 너 갈군 고참, 너 뒤통수 친 선후임..에 죄다 전라도 사람만 생각이 나는 거냐고..그게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군대에 너 말고 다 충청도 사람, 다 경기도 사람, 다 서울사람만 있는 각각의 상황들을 가정하고, 너가 그 속에서 누군가에게 갈굼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라. 그러면 그 갈군 개인이 문제인 거냐? 아니면 거기 충청도 사람(혹은 경기도나 서울 사람)만 모여있다는 사실이 문제인 거냐? 그러면 그 누군가는 말합니다. 충청도 사람들 모여있는 게 뭔 문제냐, 그 갈군 새퀴가 개새퀴인 거지..

그러면 제가 다시 반문합니다. 너가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건 알겠다. 근데 위 사례에서 하필 그 지역명이 전라도로 바뀌게 되면 너는 왜 갈군 개인이 문제가 아니라 전라도가 문제라는 미친 소리를 하는 거냐? 그러면 다들 말문이 막혀서 우물쭈물 하지요.

우리 사회에 흔하게 그런 편견이 유포되어 있어서 그 누군가도 별뜻없이 한 말이겠지만, 그게 인종주의를 조장하는 악의적인 편견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요.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아크로에 오면서 부터는 그와 비슷한 상황들을 제가 꽤 자주 접하게 된다는 겁니다. 위 사례에 잇대어 말하자면,저 지역명에 영남이 들어가게 되는 상황에서는 나쁜 놈이 그 개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늘상 영남 지역(혹은 영남민) 전체가 되는 기묘한 논리를 접한다는 것인데, 아크로의 분들은 왜 이런 희한한 사고방식에 관대한 건지 모르겠군요. 영남패권주의..그럴 때 마다 이 말의 의미도 한껏 퇴색되어 가는 것만 같습니다. 올곧은 정의관념에 입각한 말이 아닌, 한 갓 특정진영의 이데올로기를 포장한 정치적 수사인 것만 같아서.. 개인적으로 그런 점이 못내 아쉽다는 생각이 드네요..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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