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NeoJCJ님께서 바울의 동성애 관련한 시각을 기호학적으로 설명해 놓으셨는데 그건 그렇게 어렵게 설명될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동성애에 대한 시각을 나타내는 키워드는 'arsenokoitai'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을 기독교에서 '동성애'로 바꾸어서 동성애를 죄악시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선, 예전에 썼던 글의 일부가 있어 'sodom'의 어원의 변천 및 각 버젼의 성경에서 어떻게 해석했는지 언급하겠습니다.



원래 Sodomite는 동성애라는 뜻이 없었어요. 그런데 15세기인가? 영국에서 동성애라는(일반적인 의미보다는 비하적 표현으로) 표현으로 sodomy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 어원을 sodomite에서 따와 졸지에 sodomite는 동성애(비하적 표현인 비역질)라는 의미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sodomite의 원래 뜻은 소돔 사람이라는의미이죠.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의 상징이고 야훼가 불기둥으로 내리친 것은 동성애에 대한 응징으로 해석한 것은 한마디로 웃기는 이야기라는 것은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상관한다'라는 표현이 동성애 표현이라고 우기는데 물론, 그런 해석도 가능은 합니다만 반드시는 아닙니다. 이런 논란은 히브리어의 yada라는 뜻의 해석의 차이입니다. yada는 영어로 know(안다)라는 의미인데 이 부분은 여러가지로 해석이 가능한데 그걸 기독교(천주교+개신교)에서는 '동성애'로 '콕 찝어' 해석을 해버립니다. 지배 이데올로기 활용 차원이죠.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개역한글]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개역개정] 

그자들하고 재미를 좀 보게 끌어내어라.[공동번역] 

우리가 그 남자들과 상관 좀 해야 하겠소." [표준새번역] 

bring them out unto us, that we may know them. [KJV] 

Bring them out to us so that we can have sex with them." [NIV] 

Bring them out to us that we may have relations with them." [NASB] 


(이 빨간 부분은 제가 주해를 단 것입니다)'상관한다'라는 표현은 기독교에서 동성애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yada의 뜻인 know를 제대로 번역한 것은 KJV 버젼 밖에는 없습니다. 한국 번역성경에서는 전부 동성애로 번역했습니다.



그 다음에 arsenokoitai라는 단어의 뜻.

그리고 바울은 '사랑과 성교'에 대한 보다 더 확실한 뜻을 부여하기 위하여 성서 원본의 희랍어인 malakos인데 이걸 바울은 arsenokoitai로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malakos는 '부드러운'이라는 뜻으로 '방탕한'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arsenokoitai'은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관계에서의 성교'를 의미합니다.


과연, 단어까지 바꾸어 뜻을 강하게 전달한 바울이 '동성애는 죄악이다'라는 것을 명시하려면 'arsenokoitai'라는 단어 대신에 '동성애'라는 뜻이 확실히 포함된 희랍어 단어를 썼을 것입니다.


arsenokoitai....라는 단어를 바울이 쓴 이유는 바울이 살았던 서기 1세기의 로마의 성풍속도를 알면 쉽게 이해가 됩니다. 당시 전성기였던 로마 시대..... 점점 쾌락을 넘어 방종으로 치닫게 되는 로마는 희랍에서부터 용인된 '동성애'(아킬레스가 동성애자라는 것은 예전에 포스팅 했습니다만).....를 넘어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그러니까 변태적이고 반인륜적인 '사랑과 성교'가 범람하기 시작했고 그 풍토를 바울은 경고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동성애에 대한 경고를 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가 '동성애'를 용인하는 사회였으니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성관계'가 동성애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바울이 '동성애'라는 희랍어를 몰랐을까요? 그래서 'arsenokoitai'라는 단어를 썼을까요?



여기까지는 제가 썼던 글이고요..... 



바울의 동성애 관련해서는 샘터교회의 정용석 목사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 시대의 동성애


바울은 로마서에서 동성애 문제를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인간이 이렇게 타락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부끄러운 욕정에 빠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자들은 정상적인 성행위를 버리고 남자까지 정욕의 불길을 태우면서 서로 어울려서 망측한 짓을 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스스로 그 잘못에 대한 응분의 벌을 받고 있습니다.”(롬 1:26,27, 공동번역). 



비록 바울이 동성애(homosexuality)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바울이 본문에서 동성애 현상을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설교자라고 한다면 텍스트를 꼼꼼하게 따져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 동성애를 죄(Sin)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죄의 결과라고 진술합니다. “인간이 이렇게 타락했기 때문에 ...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26절). 


인간이 타락한 결과로 이런 망측한 짓을 한다는 진술만 보더라도 바울은 여기서 동성애라는 주제를 다루는 아니라 훨씬 근원적인 것을 논증하기 위한 하나의 자료로 이 문제를 제시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이 근원적인 것은 죄, 곧 인간의 타락입니다. 그 타락의 결과는 동성애 이외에도 부정, 부패, 탐욕, 악독, 시기, 살의, 분쟁 등등,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본문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동성애를 다루고 있는 본문이 포함된 로마서 1:18-32에서 바울은 이방인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죄는 곧 우상숭배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똑똑한 체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습니다. 그래서 불멸의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에 썩어 없어질 인간이나 새나 짐승이나 뱀 따위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 욕정대로 살면서 더러운 짓을 하여 서로의 몸을 욕되게 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셨습니다.”(22-24).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하는 죄의 본질은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물들어 있는 이방인들이 동성애를 비롯해서 여러 가지 부패에 연루되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의 우상숭배만을 언급하는 게 아니라 유대인들의 율법주의까지 문제 삼습니다. 이방인들의 우상숭배나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나 한결같이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결국 모든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해줄 뿐이라는 게 바로 바울이 말하려는 핵심입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려는 바는 바울의 진술이 동성애 자체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설교자들이 성서 텍스트를 읽을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저자의 근본적인 의도를 놓치고 지엽적인 것을 중심적인 것으로 끌어들인다는 데에 있습니다.

(전문은 여기를 클릭)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를 남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