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반이니까 지금부터 10년도 넘은 옛날에 써서 이름없는 잡지에 실었던 글입니다.

 

그냥 우연히 눈에 띄어서 실어봅니다. 심심풀이로 읽어주시면 감사.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전남 담양군 담양읍 관방제 숲

 

늙은 나무들이 영원 속에 서 있는 곳
관방제 숲 官防堤林


말없는 땅의 한줌 흙은
이미 너무나 강력한 패배에 길들고 말았다.
세계의 씩씩한 사람들은 오고 있지만
흙은 늦었어 너무너무 늦고 말았어.
이성부의 <자연> 중에서

 

1. 형과 동생

 

"어이 동생, 자네 그거 앙가?"

 


차가 광주를 벗어나 담양 수북으로 접어들자 운전석의 형님이 내게 고개를 돌리고 묻는다. 번역을 하자면 '혹시 그것 아느냐?' 정도의 의미이다.

질문의 내용은 없이, 질문한다는 메시지부터 전하는 것이니 굳이 대답할 이유는 없다. 듣고 있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시선을 마주치는 것으로 충분하다. 형님의 본론이 이어진다.

 

"옛말에 말이시, 임금이 머무는 땅을 산남수북(山南水北)이라고 하는 것이네. 그랑께 산의 남쪽, 물의 북쪽이라는 야그지. 근디 안 있능가? 우리 본적이 수북면 남산리란 말이시."

 

산남수북이라고 하면 특별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다른 표현 정도다. 그리고 이름 그럴싸한 고을이 대한민국 천지에 어디 한두 곳인가? 하지만 형님은 이런 설명에 별로 수긍하는 눈치가 아니다. 이럴 때 형님의 사고 방식은 아들을 왕위에 올리기 위해 전국의 명당을 찾아 헤맸다는 대원군의 집념과 닮은꼴이다.

 

카오디오에서 형님이 좋아하는 붉은군대 합창단의 러시아 민요가 흘러나온다.

 

"얼마 전 케이블티비에서 <닥터 지바고> 해주는디, 저 음악 나오드만. 정말 조옿대."

 

 

어이 동생, 얼마나 눈부신가?

 

 

닥터 지바고가 라라와 함께 도피했던, 시골 별장의 설경이 떠오른다. 형님에게 '닥터 지바고 설경 촬영을 어디서 했는지 아시느냐'고 물었다. '핀란드 같은디?'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스페인'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정말?'하고 놀란다.


 

"스페인은 솔찬히 더운 데 아닌가? 근디 거그서 설경 촬영을 했다고?"

 

"겨울이 되면 눈이 많이 오는 지방이 있다고 그럽디다."

 

"그래 잉~?"

 

나 같으면 이쯤에서 누구 말이 옳으니 그르니, 내기라도 하자는 둥 한바탕 논쟁으로 발전시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형님은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동생의 말에 반박하지 않는다. 옆에 초등학교 4학년 딸이 동행했지만, 이런 대목에서 나는 아직 형님의 철딱서니 없는 동생일 뿐이다. 이야기가 닥터 지바고 역의 오마 샤리프로 건너뛴다.

 

"형님, 오마 샤리프 그놈도 이집트 놈 아니오? 그 더운 나라 놈이 러시아 시인으로 나온 것이랑 비슷한 것이것지라우…."

 

"글씨, 그렁갑네. 추운 데랑 더운 데랑 통하는 모양이시. 허기사 눈 내리고 거기에 햇빛 비추면 얼마나 눈부신가?"

 

 

2. 선배와 후배

 

 

서울에서 여성 동지(?)들과 함께 광주로 내려오면서 "담양 여행은 우리 형님이 안내해줄 것"이라고 미리 얘기했다. 사람 부담스럽게 만드는 내 인상에 따른 선입견 때문일까? 일행들은 '형님이 무서울 것 같다'며 지레 겁을 먹었다. 하지만 필자는 일행들에게 장담했다.


 

"걱정 마시라. 우리 형님은 스타일이 나와 정반대니…."

 

큰소리부터 친 것 아닌지 걱정도 됐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50을 앞둔 형님의 미모(?)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닥터 지바고>가 화제에 오르면서 여성 동지들은 형님에게 "오마 샤리프 같다"며 어마어마한 구라 공세를 퍼붓는다. 허~ 어제 저녁 광주에 도착해 형님이 안내한 전라도 한정식집 음식이 위력을 발휘하는 모양이다.

 

70년대 초, 형님의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는 프랑스 영화가 자주 상영됐다. 그 프랑스 영화의 스타가 아랑 드롱 - 한참 미모와 재주가 빛나던 형님은 갱으로 분장한 아랑 드롱이 쓰는 중절모에다 롱코트를 걸치고 광주 시내를 누비곤 했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아랑 드롱 아닌 ‘아나 드롱’이었다. 아랑 드롱? 아나~ 드롱이 좋겄다… 이죽거림으로 표현했지만, 그 별명에는 형님에 대한 찬사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정작 오마 샤리프를 닮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형님이 사랑하고 존경했던, 고등학교 문예부 선배였다. 그 선배는 시를 썼다. 시인과 작가를 많이 배출해 명성이 자자한 그 고등학교 문예부에서 그리고 광주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두 사람은 스타였다.

 

 

아랑 드롱과 오마 샤리프

 

 

고등학생이 글을 쓰면 얼마나 쓰고, 유명하면 얼마나 유명할까. 그렇긴 하다. 하지만 어린 고등학생들만의 세계이기에 그 좁은 세계의 명성과 광채는 성인 세계의 어떤 명성이나 지위도 감히 따라잡기 어려운 정서적 강렬함이 있다. 기껏 3~4년이면 사라질 명성과 영광이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 아무리 성공해도 영원히 차지할 수 없는 특별한 훈장이나 마찬가지이다.

 

나도 ‘오마 샤리프’ 선배를 사랑하고 좋아했다. 그의 시는 내게 얼마나 경이로웠던가. 서울로 유학(?) 와서 만난 작자들, 속물 근성 만땅인 주제에 잘 뺀질거리는 것을 유능하고 세련된 행동으로 착각하는 작자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광주의 내 거인들, 아랑 드롱과 오마 샤리프가 그리웠다.

 

서울에서 친해진 시 쓰는 친구에게 선배의 시를 보여주었을 때 그 친구는 신통치 않다는 반응이었다. 별로 충격적일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그 뒤로는 사람들에게 아랑 드롱과 오마 샤리프의 작품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게 됐다. 내게 그들을 변명할 능력과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하고 세계의 씩씩한 사람들은 진작 와서 이 세상의 영광을 다 차지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아랑 드롱과 오마 샤리프는 고향의 흙 속에서 너무 늦어버린 것일까. 그들의 영광은 19세기 절대왕권과 비슷하게 소멸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과 다르고자 했다. 하지만 차라리 나는 그들과 함께 고향의 흙 속에서 풍화돼야 하지 않았을까.

 

 

3. 빛과 어둠

 

 

인공위성이 밤에 찍은 한반도의 사진이 공개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불야성을 이룬 남쪽과 달리 북쪽은 불빛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평양 근처와 몇몇 곳이 희미하게 빛날 뿐, 북쪽 땅은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빛이 그만큼 흔해진 것일까. 남한 땅에서 어둠은 그다지 진하지 않다. 어둠의 순도가 떨어졌다고나 할까. 하늘에 달과 별이 없는 밤,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어디선가 빛이 스며든다. 이 땅에서 어둠은 순결을 지키기 어렵다.

 

하지만 내 어릴 적 어둠은 훨씬 농도가 진했다. 어느날 밤 관방제(官防堤) 근처의 할아버지 집을 찾아가며 나는 내 발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경험했다. 내 발이 땅을 딛고 가는 것인지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어둠 속을 헤쳐간 끝에 만난 호롱불도 그 진한 어둠을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인 것처럼 보였다. 그날 밤 꿈조차 위태로웠다.

 

다음날 신새벽 빛은 어둠 속에서 할아버지 집 마당의 노적가리를 두들겨 깨우고 나를 대문 밖으로 불러내 관방제 늙은 나무들에게 데려갔다.

나무들은 담양천의 흐르는 물을 지키고 있었다. 그 나무들을 바라보며 나는 비로소 지난밤 어둠이 이 세계, 내 시간 속 어디에 자리잡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무들은 영원에서 영원으로 흐르는 시간 가운데 그대로 멈춰선 것 같았다. 나는 어디선가 영원한 음악을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승용차를 타고 다시 찾은 담양천과 관방제에서 옛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새로 다리를 놓는 현장에서 포크레인이 늙은 나무들 위로 팔을 높이 치켜든다. 철근과 파일 더미들, 공사장 거푸집 등이 어수선하다. 여기서는 빛도 빛이 아니고, 어둠도 어둠이 아니다. 그저 잡답(雜沓)이 목청을 높일 뿐이다.

 

 

늙어버린 ‘영원한 나무’

 

 

관방제 숲을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존했다지만 살벌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시멘트 건물들이 관방제 주변에 늘어선 모습과 관방제 늙은 나무들의 대조가 처참하다. 영원 속에 멈춰섰던 늙은 나무들은 시골 장터에서 초라하게 시들어가는 촌로들의 모습을 닮았다.


 

관방제에는 푸조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음나무, 개서어나무, 곰의말채나무, 벚나무, 은단풍 등 낙엽성 활엽수들이 공들인 조각처럼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나무처럼 조형적인 것도 흔치 않다. 그리고 잎을 떨구고 줄기와 가지를 통해 뒤틀린 세월의 두께를 드러내는 모습처럼 나무의 조형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도 없다.

 

관방제는 담양천과 함께 담양 읍내를 반달 모양으로 빙 둘러싸고 있다. 담양은 대나무로 유명하다. 내 어릴 적 기억에도 대나무는 빠지질 않는다. 관방제의 풍경에도 멀고 가까운 어디엔가 대나무 밭이 빠짐없이 자리하고 있었다. 형님이 느닷없는 얘기를 꺼낸다.

 

“담양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음기(陰氣)가 센 곳이라네. 그래서 인구 비율로 따져 정신병자가 제일 많다고 안 그렁가?”

 

확인할 수 없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대나무숲 속 서늘한 바람이 머리에 떠오른다. 대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 고개를 들어 보면 높은 곳에서 스산하게 흔들리는 자태… 그것이 내가 본 담양의 ‘음기’ 아니었을까?

 

찬란하게 빛나던 관방제 늙은 나무들이 시들어간 것처럼, 담양 읍내에서 이제 대나무 밭을 찾기는 힘들고 대나무골 테마공원에서나 비슷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빛은 빛이어야 하고, 어둠은 어둠이어야 한다. 관방제 나무들과 대나무 밭이 다 멀쩡하게 보존됐다면 정신병자 숫자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지 않았을까?

 

 

4. 아버지와 딸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찌라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 오래 전 세대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구약성경 전도서 1장 8~11절)

 

 

이번 여행에 따라온 내 딸에게는 상당한 임무가 있었다. 여행의 인상적인 장면을 잡아 그림으로 그리기로 약속한 것이다. 어른이라면 긴장감을 느껴야 마땅한 임무이다.


 

하지만 관방제 근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로 유명한 24호 국도에서 한 살 위 언니, 여성 동지의 딸과 함께 마냥 즐겁게 뛰어노는 우리 딸의 모습에서 그런 긴장감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일행이 서울로 먼저 올라가고, 나는 딸과 함께 광주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시인 선배를 오랜만에 뵙고 싶었다. 일정을 마치고 한 곳에 자리를 잡으니 멀고 가까운 친척들에 관한 온갖 얘기와 소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덮는다.

 

누구는 결혼을 하고 아파트를 사고 차를 사고 외국에 나가고 골프를 치고 유럽 여행을 가고 취직을 하고 시험에 통과하고… 누구는 병들고 죽고 사고를 치고 싸움을 하고…

 

기억도 못할 만큼 많은 이야기를 흘려듣다가 저녁을 먹고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과 나, 선배 세 사람이 선배네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선배는 나에게 낯설기만 한 이름, ‘첨단’이라는 동네에서 살고 있다. 원래 인터넷 등 첨단산업을 유치한다는 의도에서 조성된 신시가지였는데, 정작 들어선 것은 술집과 음식점뿐이라고 한다. 다만 업소들의 규모와 영업형태가 과거에 비해 무척 ‘첨단화’된 것만은 사실인 모양이다.

 

상당한 거리를 차로 달려 찾아간 그곳에서 선배를 만났다. 반갑게 악수하고 안부를 묻고, 선배와 형님은 너무 자연스럽게 근처 찜질방에 가기로 합의한다. 거기서 뭘 하느냐고? 도중에 만화방에 들러 만화를 빌려 읽는다는 것이다.

 

 

무엇을 설명할 수 있으랴

 

 

만화를 20권 넘게 빌리니 이것도 큰 쇼핑백에 가득이다. 이걸 들고 새로 문을 열었다는 ‘첨단’ 찜질방에 들어간다. 들어가자마자 샤워도 생략하고 찜질방에서 땀을 빼며 만화를 읽기 시작한다. 그 다음에는?

 

만화를 읽다 음료수를 마시고 라면을 먹고… 그러다 보니 선배는 잠이 들었다. 잠자리가 편하지 않은 것 같다. 땀 흘리는 모습이 무척 피곤하고 힘겨워 보인다. 도저히 깨울 용기가 생기질 않는다. 형님도 만화를 보다 말고 잠들었다.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우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찜질 자체도 목적이 아니다. 만화조차 읽지 않는다. 오직 하룻밤을 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의 추억에게 예의를 차리는 모양이다. 나는 졸린 눈을 부비며 만화를 꾸역꾸역 다 읽었다. 다음날 서울로 올라오기 때문에 읽지 않으면 손해라는 계산 때문이다.

 

선배와 형님은 다음날 모두 출근이다. 새벽 6시에 사우나에서 몸을 씻고 찜질방을 나와 다시 연락하자는 인사를 나누고 어머니 집으로 왔다. 딸은 할머니와 함께 잠들었다. 잠깐 눈을 붙였다 일어난 나에게 딸이 “아빠, 술 마셨지?”하고 추궁한다.

 

어제 밤에 술 한 방울 입에 대지 않았다고 대답하려니 정말 말이 궁하다. 술도 마시지 않았으면 지난밤에 도대체 무엇을 했다는 것인가? 나는 설명할 자신이 없다.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도대체 무엇을 설명할 수 있으랴?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에서 나는 부족한 잠을 보충해야 했다. 딸은 이것저것 물었지만 나는 거의 대답을 해줄 수 없었다. 고속버스 안이 너무 더워서 깊은 잠을 이루기는 어려웠다. 아무래도 딸에게 그림 얘기는 하지 못할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