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요 며칠 중독 증세인데 빨리 극복해야 겠다고 스스로 다짐하면서, 마지막으로...

오늘 문득 이정희 생각이 나더군요. 저 자신 한때 싹수가 노랗다고 깐 적도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결과를 보니 제 판단이 잘못된 것 같더군요. 뭐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지자체랑 이번 보궐 선거 결과를 봅시다. 당장 보궐선거에서 원래 강원도 전지사가 이광재라는 점을 감안하면 민주당이 이번에 새로 얻은 곳은 분당 하나입니다. 반면 민노당은? 국회의원 하나와 구청장 하나.

지자체 선거도 그랬죠. 워낙 그전 총선을 죽 쑤는 바람에 민주당이 부각되서 그렇지 당세에 비해 가장 실속 챙긴 쪽은 단연 민노당입니다. 거기에 단일화를 계기로 민주당 출신 장 있는 자치 단체 곳곳에 '협의회'라는 틀로 자치 단체 운영에 참가하고 있죠. 이런 저런 거 감안하면 지금 민노당은 과거에 비해 훌쩍 성장했죠.

그런데...그걸 사람들이 모릅니다. 저도 오늘에야 갑자기 느꼈어요.

이거 국참당 및 유시민과 비교돼죠. 가령 이번 보궐선거 과정과 결과 보면 그래요. 언론의 주목도로 따지면 이정희는 유시민과 비교가 안됩니다. 그런데 결과는? 역시 비교가 안되죠. 반대 방향에서.

이게 더 황당한게 사실 원칙적으로 보면 순천을 단일화, 김해을 못지 않게 비판받을 여지가 많습니다. 최소한 제가 보기엔 그래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순천을 단일화 비판하는 사람들 타겟이 주로 어디냐...민노당보다 민주당입니다. 황당하지 않나요?

물론 이해되는 구석도 있어요. 저도 이 이야기 전해듣고 조금 찡했습니다만...사실이 어떤지는 모르겟지만 저번 지자체 선거에서 민노당 서울 지구당이 헌신적이었다는군요. 후보도 못내 심드렁한 조직원들을 위에서 다그치며 동원했답니다. 그러다 마지막 선거일날 민노당 서울시 지부당이 울며 그랬다는군요. "정말 미안하다. 다음엔 우리 후보 선거 운동하자."

그리고 순천을과 김해을을 비교해도 그렇습니다. 들은 말로 이정희는 민주당 당원 및 조직에 정말 헌신적으로 협조를 구하러 다녔다네요. 반면 김해을의 국참당은?

그런데 여기서 이정희와 유시민의 캐릭터를 비교하니 재밌습니다. 유시민이 법대 갈 수 있었는데 법대는 체제도구라 안갔다, 수학 이해가 안돼 그냥 외워서 고득점 얻었다, 뭐 이런 이야기들 널리 퍼져있습니다. 반면 이정희가 서울대 여학생 전체 수석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안알려졌죠.

특히 지금 제 뇌리에 인상깊게 떠오르는건 전에 언젠가 어느 신문에서 있었던 유시민과 이정희 대담입니다. 그때 유시민은 이정희보고 '진보 정당은 이념과 함께 마키아벨리스트의 현실 감각을 갖춰라'고 훈계 했습니다. 이정희는 '맞는 말씀인데 진보정당이라 그러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받아 넘겼죠. 그때는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조낸 웃긴겁니다. 왜냐? 이정희는 국회의원 및 구청장 다수를 거느린 당 대표입니다. 반면 유시민의 국참당은 한명도 없죠. 이건 매출 실적 0원인 회사 대표가 상장사 대표보고 '자본주의 사회 적응하세요' 하고 있고 상장사 대표는 그 앞에서 '에휴, 그래도 회사 창업할 때 다짐한 뜻이 잇는데 돈만 보고 회사 경영할 수 있나요?'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돌이켜보니 우리가 미처 모르는 이정희의 리더쉽이 정말 만만치 않다 싶더군요. 어렴풋이 짐작한 적은 있었습니다. 당대표 취임직후 인터뷰보니 이정희가 전대표 강기갑을 거의 멘토처럼 추켜 세우더군요. 아무리 인격자라도 자리 내놓으면 섭섭한 법인데 그런거 다 세심하게 배려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아무튼 유시민은 마키아벨리스트적인 현실 감각 익히라고 훈계했지만...글쎄요. 지금 생각에 이정희의 수가 훨씬 더 높은 것 같습니다. 물론 당 대표라는 점에서 그렇죠. 출세라는 점에선 유시민이 훨씬 앞섰죠.

그런데 또 다른 측면에서 그 대담을 보면 유시민과 이정희 모두 원하는 걸 얻었겠죠. 주식시장에서 승자와 패자 모두 자신이 원하는 걸 얻는다는 유명한 말 처럼.

ps - 귀찮아서 삭제했는데 하하하님이 원하셔서 찾아 올리는 사진. bmp를 jpg로 바꾸는 막대한 수고까지 했음. - -;;;
제목 없음.JPG 

2. 하하하님 말씀도 일리가 있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꼭 그렇진 않아요. 어디라고 말씀은 안드리겠습니다만 원내 다수 정당에 책사가 드글거렸음에도 우왕좌왕하다 반조각난 정당도 있고 또 참여당은 꼭 인재가 없느냐, 선거하는 모양보면 완전 아마추어지만 중앙 일간지 부장 출신 이백만(그러고보니 서영석도 부장출신. 쿨럭), 청와대 대변인 출신 천호선을 비롯해 행정관 등등 출신 다수...즉 스펙만으로 보면 참여당이 민노당에게 아주 꿀린다고 말할 기 어렵죠. 특히 참여정부 홍보 담당자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는 걸 감안하면 김해을 선거의 아마추어틱한 모습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봐야죠. 묘하게도 참여당이라는 브랜드에선 그게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만 말입니다. 

또  결과만 놓고보면 민노당의 단결된 모습이 처음부터 그런 것 같지만 사실 민노당이라고해서 그 내부에 민주당과의 연대를 반대하는 흐름이 없었겠습니까? '우리가 민주당 시다바리가?'하는 동건파, '민주당이 흘려주는 선거구가 그리도 탐나더냐?'는 수일파 등등 있었을 겁니다. 그게 자연스럽구요. 민노당은 워낙 작고 균일한 조직이라 통일된 행동이 가능하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지만 더 작은 진보 신당보면 아직도 우왕좌왕 좌충우돌 내부 입장 정리조차 못하는 거 보면 그러한 반발 무마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이끌어내고 성과까지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정희의 리더쉽을 무시할 수 없다고 봐요. 더구나 이정희는 몇년전까지 민노당 내에서도 무명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죠. 매스컴의 주목은 다 차지했지만 선거구는 하나도 못건진 유시민, 스타들은 다 모였지만 조직내 입장 정리도 못하는 진보신당과 비교하면 더더욱 이정희가 도드라지죠.

아무튼 싹수가 노랗다고 이정희 깠던 사람으로서 쑥스럽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어쨌든 이정희 리더쉽을 인정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학습 능력도 그렇고 조직적 결의와 행동을 끌어내는 것도 그렇고 그 과정에서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래요.  어떤 점에서 이정희는 부드러운 솜으로 가려진 쇠몽둥이 같다고 할까요? 반면 유시민은 은 도금된 플라스틱 칼들고 화려하게 춤추는 배우랄까?
 
만약 몇년내에 한국 진보 정당사를 다시 쓸 인물이 나온다면 그건 이정희일 것 같습니다. 화려하디 화려한 진중권, 심상정, 노회찬이 아니라요. 이거 열라 까왔던 사람으로서 정말 쑥스럽기 그지 없습니다만....만약 저보고 누굴 보스로 모실 수 있냐고 물으면 이 글에서 언급한 사람 중에선 이정희 밖에 없습니다.

ps의 ps - 마키아벨리즘적 현실 감각 원문을 찾아보니 이렇네요.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인지, 유 대표의 발언은 점차 ‘훈계조’를 띠어 갔다. 그는 “마음이 깨끗하면 (정치에서도) 진심은 통하지 않겠느냐”는 이 대표를 향해 “권모술수와 암수가 판치는 정치판 현실을 냉정히 직시해야 한다”며 “때로는 뱀의 교활함으로 익숙하고 안온한 사고방식과 결별할 수 있어야 2012년 권력교체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469642.html

간단히 말해 유시민은 국참당과 민노당이 합쳐야 권력 쥔다는 이야기이고 이정희는 완곡히 거부한 건데...제가 이정희면 '뱀의 교활함'이란 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그랬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 내가 받아주는 척을 해야 민주당과의 딜에 가장 효과적일까?" '교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폼을 얻은 유시민, 그런 유시민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한 이정희, 누가 더 교활한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