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일리의 설계 논거 – 신의 지적 설계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 1743-1805)는 『Natural Theology(자연 신학, 1802)』에서 설계의 논거(argument from design)를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잘 만들어진 시계를 보았을 때 지적 설계자(intelligent design)를 가정할 수밖에 없듯이 인간의 눈처럼 잘 만들어진 구조를 보았을 때에도 지적 설계자를 가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시계나 눈처럼 복잡하고, 정교하며, 어떤 기능을 잘 수행하는 물체가 우연히 생겼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시계를 설계한 존재는 지능이 있는 인간이다. 페일리는 인간을 비롯한 온갖 생물을 설계한 존재는 바로 신이라고 주장했다.

 

페일리의 논거는 상당히 강력한 것이며 자연 선택이 알려지지 않았을 당시에 그의 글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이 거부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윈도 젊은 시절에 페일리의 논거에 매혹되었다고 한다.

 

 

 

 

 

다윈의 자연 선택 – 눈먼 시계공의 설계
 

리처드 도킨스는 페일리의 글에서 힌트를 얻어서 자연 선택을 다룬 책 제목을 『눈먼 시계공』이라고 붙였다. 물론 여기서 눈먼 시계공은 자연 선택을 뜻한다. 지능이 있는 인간이 설계한 시계와 달리 자연 선택은 지능이 없는 무지막지한 과정에 불과한데 인간의 눈과 같이 놀라운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다윈을 비롯한 여러 진화 생물학자들이 설계의 논거를 매우 중요시한다. 특히 진화 심리학자들이 이 논거에 많이 의존한다. 내가 보기에는 거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 같다. 페일리가 주장했듯이 매우 복잡하고, 정교하며, 어떤 기능을 행하도록 잘 설계된 것 같은 구조에는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냥 우연히 그렇게 생겼다고 보기에는 말이 안 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현대의 어떤 학자의 비유를 빌리자면 쓰레기장에 허리케인이 아무리 많이 분다고 해도 보잉747기가 만들어질 가망성은 사실상 없다. 비행기처럼 매우 무겁고 커다란 문체가 하늘을 날 수 있다면 그런 구조의 기원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비행기의 기원에는 지능이 있는 인간이라는 설계자가 있다.

 

 

 

 

 

인간이 만든 도구는 순전히 설계에 빚지고 있는가?
 

윌리엄스(George C. Williams)가 『The Pony Fish’s Glow: and Other Clues to Plan and Purpose in Nature』에서 지적했듯이 인간이 만든 도구에도 시행착오(trial-and-error)가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다. 즉 현대의 시계 같은 정밀한 도구가 순전히 설계에만 의존해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렇게도 만들어보고 저렇게도 만들어본 다음에 그것을 사용해본 후에 더 잘 작동하는 시계를 선택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실수로 잘못 만들었는데 더 잘 작동해서 그런 구조가 선택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자연 선택과 거의 비슷한 상황이다. 자연 선택은 일종의 실수라고 볼 수 있는 돌연변이에서 시작된다.

 

자연 선택은 순전히 시행착오로 작동하는 반면 인간이 만드는 도구는 순전히 지적 설계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자연 선택이 어떤 지적 설계도 없이 순전히 시행착오로 작동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인간이 만드는 도구의 발달에는 지적 설계도 작동하지만 시행착오도 작동한다.

 

 

 

 

 

전지한 자연 선택
 

진화 생물학자 중에는 “자연 선택은 전지하다(omniscient)”라는 표현을 쓰는 사람도 있다. ‘전지전능(omniscience and omnipotence)’할 때 그 ‘전지’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표현이지만 그 의도를 잘 살펴보면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우선 어떤 식으로 오해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전지하다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만약 자연 선택이 전지하다면 미래의 환경까지 내다보고 미래에 멸종하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도킨스의 표현대로 자연 선택은 눈먼 과정이다. 즉 미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한다. 어떤 표현형이 당장 적응적이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선택된다.

 

만약 자연 선택이 전지하다면 어떤 표현형이 집단과 종에 끼치는 영향까지 고려할 것이다. 즉 집단과 종이 더 잘 번성할 수 있도록 자연 선택이 작동할 것이다. 이것 역시 말도 안 된다. 여러 집단 선택론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자연 선택은 집단이나 종의 번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어떤 표현형이 개체의 포괄 적응도에 유리하다면 그것이 설사 그 개체가 속한 집단이나 종의 번성에 방해가 되더라도 선택된다. 그래서 동종 유아살해가 진화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수컷이 자식을 전혀 돌보지 않는 종의 경우에는 암컷이 훨씬 많을 때 집단이 더 잘 번식할 수 있음에도 대부분의 경우 성비가 거의 50 대 50 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 진화 생물학자들이 자연 선택이 전지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어떤 유전자좌(locus)에 대립유전자(allele) A와 B가 있다고 하자. 길고 긴 인과 사슬을 거쳐서 A와 B는 그 유전자를 품고 있는 개체의 포괄 적응도에 영향을 끼친다. 자연 선택은 진화가 일어나는 환경 하에서 그런 영향의 평균적인 결과에 의해 좌우된다. 즉 만약 A가 B에 비해 평균적으로 포괄적응도를 더 높이는 효과를 발휘한다면 A가 선택된다.”

 

뻔한 이야기인데 왜 전지하다는 표현까지 쓴 것일까? 그것은 진화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연 선택이 전지한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는 단백질 합성에 영향을 끼치고 길고 긴 인과 과정을 거쳐서 결국 표현형에 이어진다. 그리고 그 표현형은 또 길고 긴 인과 과정을 거쳐서 포괄 적응도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인과 관계를 과학자가 몽땅 분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대립유전자 A와 B 중에 어떤 것이 평균적으로 포괄적응도를 높일지를 계산해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자연 선택은 정확하게 평균적으로 포괄적응도를 높이는 대립유전자를 선택한다(유전체내 갈등intra-genomic conflict을 비롯한 골치 아픈 문제들은 무시하기로 하자).

 

 

 

 

 

한의학 – 시행 착오라는 강력한 과정의 결과라면?
 

한의학을 옹호하는 사람들 중에는 여러 부류가 있다. 극단적인 옹호자들은 한의학의 이론적인 측면인 오장육부, 기, 음양 등에 대한 이야기들도 옳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한의학이 양의학(정확히 말하면 과학적 의학)보다 치료 효과의 측면에서도 우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 반대편에는 한의학을 매우 소극적으로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 따르면 오장육부, 기, 음양 등에 대한 이야기는 헛소리다. 또한 심장 수술, 장기 이식, 예방 주사 등을 비롯하여 한의학이 따라잡을 수 없는 양의학의 여러 측면이 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양의학이 훨씬 더 우월하다. 하지만 한의학에도 건질 것이 많이 있다. 왜냐하면 수천 년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거른 지식이 농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론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자연 선택이 순전히 시행착오를 거쳐서 인간의 눈과 같은 엄청난 성과를 이루었다면 한의학의 시행착오가 그에 준하는 무언가를 이루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이 만든 여러 도구의 경우에도 역시 시행착오가 커다란 기여를 했는데 의술의 분야에서 시행착오가 큰 일을 이루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한의학을 비롯한 온갖 민간 요법가들과 그들의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수천 년간 시행착오 실험을 해 왔다. 예컨대 어떤 증상을 보일 때 이 약초도 써 보고 저 약초도 써 본 다음 더 효과가 큰 약초를 고르는 식이다. 침이나 뜸을 놓는 위치도 그런 식으로 선택되었을 것이다. 설사 민간 요법가들이 알쏭달쏭한 동양 철학, 토템 신 등에 의존한 ‘이론적’ 설명을 시도했다 하더라도 시행착오의 유익한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행 착오가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 돌연변이가 부족할 때
 

시행 착오가 강력한 힘을 발휘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충분한 ‘돌연변이’가 필요하다. 둘째, 어느 정도 정확히 선택되어야 한다.

 

먼저 ‘돌연변이’의 측면부터 살펴보자. 유전체의 경우에는 돌연변이가 무한히 가능하다. 유전체는 네 개의 문자로 이루어진 긴 문자열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문자열 중 어디서나 복제 오류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의학을 비롯한 온갖 민간 요법의 경우에는 어떤가? 민간 요법가들은 해당 지방에서 구하기 쉬운 원료들을 이용해서 이것 저것을 해 본다. 물론 원료의 가공은 해당 문화권의 기술 정도에 의존한다. 한의사들이 약을 만들 때에는 여러 식물과 동물 원료를 섞고, 끓이는 등 원시적인 방식으로 가공하는 정도다.

 

반면 현대 의학은 어떤가? 현대 의학의 경우에는 지구 상의 온갖 지역에서 구한 원료를 사용한다. 또한 현대 의학에서 쓰는 가공 방법은 온갖 현대 기술이 동원된다. 즉 ‘돌연변이’의 수준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침과 뜸은 어떤가? 한의학에서는 시행착오를 거쳐서 침과 뜸을 놓는 위치인 경락을 찾아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돌연변이’의 측면에서 엄청난 제한이 있다. 만약 어느 곳에 침이나 뜸을 놓아도 효과가 거의 없다면 어쩔 것인가? 이것은 서양에서 옛날에 유행했던 피 빼기 방식에 비유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서양의 민간 요법가들이 수 천년 동안 피 빼기 방식을 사용해서 시행착오로 피를 빼야 하는 위치와 피의 양 등에 대한 결론에 이르렀다고 가정해 보자. 하지만 어떤 곳에서 피를 빼도, 어떤 양의 피를 빼도 효과가 거의 없다면 어쩔 것인가?

 

한의학에서 주요 진단 방법으로 사용하는 진맥은 어떤가? 수천 년 동안 진맥을 해서 시행착오로 진맥 방법을 갈고 닦았다고 치자. 하지만 진맥으로 알아낼 수 있는 정보 자체가 별로 없다면 어쩔 텐가? 현대 의학에서는 컴퓨터 단층 촬영, 자기 공명 촬영, 골수 검사를 비롯하여 온갖 검사 방법을 사용한다. 즉 진단의 ‘돌연변이’의 측면에서 현대 의학과 한의학은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다.

 

 

 

 

 

시행 착오가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 제대로 선택되지 못할 때
 

이번에는 선택의 측면을 살펴보자. 위에서 ‘전지’라는 좀 생뚱맞은 개념을 사용하기는 했지만 자연 선택의 선택은 정확하다. 즉 해당 환경에서 포괄 적응도에 평균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가 항상 선택된다.

 

현대 의학에서는 어떤 치료법이 효과가 있는지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가짜 약 효과(placebo effect)를 고려한 이중맹검법(double-blind test)을 사용한다. 예컨대 한 집단에는 가짜 약을 주고 다른 집단에는 진짜 약을 주는 식이다. 이 때 누가 진짜 약을 먹는지를 처방해주는 의사도 몰라야 한다. 왜냐하면 의사가 알게 모르게 환자에게 암시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진짜 약이 가짜 약을 뛰어넘는 효과를 보일 때 그 약은 효과 있는 치료약으로 인정된다. 만약 부작용이 심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나면 설사 왜 그 약이 치료 효과를 발휘하는지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그 약을 사용한다. 이것은 일종의 시행착오다.

 

한의학에서는 어떤가? 한의사들은 그런 엄격한 검증을 해 본 적이 없다. 최근에 지극히 미미한 시도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그냥 자신과 환자 그리고 선배들의 오랜 경험을 믿는다. 문제는 이중맹검법과 같은 엄격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으면 선택이 제대로 이루어지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이것은 동종요법(homeopathy)과 초능력 치료에서 잘 드러난다.

 

동종요법에는 나름대로 절차가 있지만 사실상 맹물을 먹이는 것이다. 정말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맹물을 먹여서 병이 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환자들과 동종요법가들이 동종요법의 효과를 확신하고 있다. 그들의 경험에 따르면 동종요법으로 치료할 때 병이 나았기 때문이다.

 

나 같이 초능력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초능력으로 병을 진단할 수도 없고 병을 치료할 수도 없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초능력의 진단이 정확하다고 혀를 내두르며 치료로 효과를 보았다고 주장한다.

 

20세기의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사고가 결코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수 많은 체계적인 관찰과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인간은 암시에 빠지기 쉽다. 인간은 대다수가 믿는 것을 무턱대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기억력은 편향되어 있어서 예컨대 점쟁이가 틀린 예언을 한 것은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적중한 예언은 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이 외에도 인간은 온갖 방식으로 사고 왜곡을 일으킨다. 요컨대 어떤 때에는 인간의 판단력이라는 것이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

 

 

 

 

 

한의학의 효과는 얼마나 될까?
 

이론적인 측면에서 볼 때 시행착오는 매우 강력할 수 있다. 자연 선택은 전혀 지능이 없어도 시행착오가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부족하거나 선택이 부정확할 때 시행착오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보기에는 한의학의 경우에는 ‘돌연변이’도 현대 의학에 비교했을 때에는 턱없이 부족하며, 선택도 엉망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그래도 약간의 ‘돌연변이’는 있었을 것이며, 부정확하지만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 선택도 있었을 수 있다. 따라서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치료법이 정립되었을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심지어 원시 부족의 주술적 치료의 경우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져서 현대 의학에 포섭된 경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나의 의학적 상식으로는 한의학의 치료법이나 보신법 중에 뚜렷한 효과가 있는 것은 거의 없는 것 같다.

 

한의학의 온갖 치료법을 과학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한의학 치료법으로 엄청난 돈과 시간과 기회(현대 의학으로 고칠 수 있는 병인데도 한의사에만 의존하다가 죽는 경우가 상당히 많을 것이다)가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시급한 일이다. 나는 정부가 거금을 투자하여 한의학 검증 프로젝트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럴 가망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지금으로서는 의사들(물론 양의학 의사)이 나서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의학 퇴출은 의사들의 이해 관계에도 도움이 된다. 한의학이 퇴출되면 한의사를 찾던 그 많은 환자들이 다 양의사에게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돈도 벌면서 착한 일(미신적 의술 타파)도 할 수 있는 한의학 검증에 하루 빨리 나서주길 바란다.

 


2009-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