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안 오다가 정치의 계절을 맞이하야 종종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ㅎㅎ


댓글 중에, 유시민의 장점이 뭘까 하는 말씀 있더군요. 그러니까, 무슨 장점이 있길래 “본선”에선 번번히 깨지면서도 “야권내 예선”은 항상 이기는가, 그걸 알아야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대책을 세울 것 아닌가, 그런 말씀이신데요.


듣고 보니 정말 유시민의 장점, 정확히는 “예선 경쟁력”이 뭘까를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근데 의외로 떠오르는 게 많아서 한번 써 봅니다. 덤으로 박근혜도. ㅋㅋ



1. 유시민과 박근혜의 매력



1-1. ‘비정치인’ 이미지와 전설


이택광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인들은 정치를 너무 혐오해서, 정치인처럼 보이지 않는 정치인을 선호한다더군요. 그래서 이명박, 박근혜처럼 정치인 이미지가 희박한 사람이 인기라고... 저도 동의합니다. 비극이죠.


그러고 보니 유시민도 바로 이쪽인 것 같습니다. 정치인(또는 정치꾼) 같지 않은 정치인. 


헌데 오랜 세월 정치를 하는데도 비정치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줄 수 있는 것는, 그들에게 “전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봐요. 정치입문 전사(前史)를 빛내는;; 전설. 


이명박에겐 TV 드라마가 각인시켜준 고속승진 신화가 있죠. 기업인은 정치인과 거리가 멀다는 기본 인식도 있고요. 박근혜는 뭐 말할 것도 없이 전설속의 공주님이시죠. 이는 그를 정치인을 뛰어넘는 “지도자”로 인식케 하는 대단한 전설이죠. 그것도 모태 지도자. 박정희는 물론 올림머리 육영수의 전설까지 중첩된... ㄷㄷㄷ 


유시민의 전설은, 꽤나 영향을 끼친 베스트셀러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재야 베스트셀러;; “항소이유서”가 있죠. 그래서 유시민의 이미지는 정치인 이전에 “지식인, 민주투사, 논객”이고요. 백토 진행도 했고. 탁월한 언변이 전설을 키워주는 것은 당연하고요. 게다가 그의 정치 입문사도 전설을 도약시킵니다. 다른 386들이 민주당에 대충 뭉쳐있을 때, 유시민은 개미당-개혁당을 만들고는, 그야말로 개미만한 정당 간판으로 국회에 입성합니다. 거기에 빽바지까지... 완전히 차별되죠. 이 정도면 손색없는 전설입니다. 이런 전설은 종국에는 유시민을 ‘권력 따위 조금도 관심없지만 오로지 나라를 위해 한 몸 희생해서 더러운 정치판에 뛰어든 투사’의 자리까지도 올려놓을 수 있습니다. 


극렬 지지자 하면 빠질 수 없는 노무현도 역시 전설입니다. 하지만 인권변호사니 이런 것보다도, 청문회 스타 - 이의있습니다 - 부산 낙선시리즈 - 대선 역전홈런~ 으로 이어지는, 정치 역정으로 빚어진 전설이니, 훨씬 상식적이고 타당한 전설이라고 봐야죠. 무엇보다 노무현은 인간적 매력과 (그 방향이 옳건 그르건)진정성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게 노무현이 예선뿐 아니라 본선도 휩쓸어버린 비결이겠지요.



그들이 지닌 전설은 그들을 비정치인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낳는 동시에, 일반적인 지지자 이상의 극렬 지지자를 만들어 냅니다. 전설에 매료된 사람들에게 그들은 절대적 존재죠. 비판? 폄하? 금물입니다. 그들이 ‘현재’ 어떤 실책과 모순을 보여줘도 ‘전설’인 그들이 잘못을 한 것이라고는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 이유가 있고 명분이 있고, 잘못은 남에게나 있습니다. 그나마 노무현, 이명박은 결국 최고통치자라는, 다각도로 & 총체적으로 시험받고 평가받는 자리에 올랐기에 전설이 상당 부분 훼손됐죠. 하지만 미완인 박근혜 유시민의 전설은 현재진행형입니다. 


문제는, 전설은 한계가 뚜렷하다는 겁니다. 이랬건 저랬건 그들의 실체는 정치인일 뿐이고, 한계를 지닌 인간이니까요. 또한 전설이 먹히는 층과 안먹히는 층이 확연히 갈라진다는 치명적 단점을 지닙니다.


유권자를 간편하게 개혁층, 부동층, 수구층으로 나눠서 얘기해보죠.


일단 전설의 파워로 보면, 박근혜의 전설은 정말 대단하죠. 한 사람이 무려 18년 동안 왕처럼 나라를 거느리던 시절에 왕녀 노릇을 했으니까요. 유시민은 댈 것도 아닙니다. 개혁층이 급격히 늘었는데도 여전히 현격한 유시민과 박근혜의 지지율 차이도, 전설의 크기만큼의 차이가 아닐까 싶고요. ㅎㅎㅎㅎ 아무튼 그런 전무후무한 전설도, 그게 통하는 수구층에게는 압도적인 무게감으로 다가오지만, 개혁층에게는 거꾸로 “독재자의 딸”이란 최고의 비난거리가 될 뿐입니다. 


유시민도 그렇습니다. 개혁 지식인이며 투사라는 전설은 개혁층에나 통할 뿐, 수구층에겐 선동가, 싸움꾼이라는 최악의 평가를 낳습니다. 그의 정치 활동조차 강성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죠. 부동층에게도 그런 류의 전설은 별 의미 없고요. 박근혜, 이명박의 전설에 비하면 임팩트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야권 예선을 가르는 여론조사는 기실 개혁층 위주로 이뤄진다고 봅니다. 수구층의 역선택 말씀도 있었는데, 글쎄요. 실제 선거도 아닌 한쪽 정파의 예선전인데, 과연 수구층이 전략적 역선택씩이나 하는 적극성을 보일까요? 저라도 이 바쁜 세상에 전화와서는 “한나라당의 듣보원과 친박연대의 듣보투중에서 누가 좋으세요?” 하면 “뭐래?” 하고 끊어버릴 거 같아요. 부동층 역시 그리 적극적으로 임하진 않겠죠. 


그러니 예선은 자연히 유시민의 전설이 통하는 개혁층 위주로 결정되리라 봅니다. 이 부분에서, 유시민의 “예선 승리 + 본선 실패” 가 설명될 수 있지 않나 해요.



1-2. 약자 포지셔닝 / 강자 포지셔닝


유시민과 박근혜의 장점 또 하나는, 그들의 포지션이 좋다는 겁니다. 특히 유시민은 현저하게 약자 포지셔닝을 취해왔어요. 개미당부터 시작해서 ‘캠프가 망했어요~’에 국민참여당까지. 개혁층에게는 이런 약자 포지션이 먹힙니다. 지지자들은 그의 정당성을 한층 더 공고히 믿게 되고요. 더불어 민주당은 크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악’이자 ‘외부의 적’이자 ‘탄압세력’이 될 수 있죠. 유시민은 약자라서 높은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탄압받는다는 가설이 쉽게 진실로 받아들여집니다. 


반면 박근혜는 강자죠. 수구층에겐 강자라야 먹힙니다. 그 앞에선 언제든 고개를 조아릴 수 있을 듯한 그의 ‘성골 신분’은 수구층에겐 매력입니다. 게다가 항상 꼿꼿하고 품위있는ㅎㅎ 자세를 유지해 왔으니 흠잡을 데가 없죠. 친박연대의 난리부르스에도 탈당은 커녕 복당 복당 하면서 한나라당을 떠나지 않은 것 역시, 그의 강자 포지션을 확고하게 해 주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1-3. 선명성 / 모호성


박근혜에겐 모호성이란 매력이 있습니다. 그는 일단 정체성에 관한 한 200% 300% 확실한, 다름 아닌 박통의 딸이니, 수구층으로선 따지고 자시고도 없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면 됩니다. 헌데 박근혜는 꾸준히 조용하고 차분하고 모호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것도 수구층에겐 매력이죠. 진중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줍니다. 그렇다고 항상 묵언수행만 하느냐? 아니죠. 평상시 신중하고 모호하던 사람이 한번씩 “참 나쁜 대통령” “약속은 지켜야 한다” 툭 던져주면 팬들은 아주 꺄르르 자지러지며 쓰러지는 거죠. 요새 아이돌들이 팬 조련한다 그러는데, 박근혜야말로 팬 조련질의 원조일 겝니다. 아님 말고. ㅋㅋ


유시민은 반대로 개혁층에게 매력적인 선명성으로 끝내줍니다. 정치행보가 항상 선명하고 시끌벅적했죠. (선명하게 일관성 있었다는 말이 아님. 스타일의 선명성) 토론 스타이기도 하고요. 적들을 아주 잘근잘근 짓밟고 짓이겨버리는 날카로움. 말로만이 아니라 아주 온몸으로 말이죠. 백토에서 전여옥을 와작와작 씹어먹을 듯 노려보던 눈빛과 표정... ㅎㅎㅎ 이런 게 그 견해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겐 쏠쏠한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진중권 인기의 비결이기도 하죠. ㅋㅋ 


헌데 이런 모호성도 선명성도, 사실 정치인으로서는 심각한 결함이죠. 하지만 전설 기반의 지지자들에게는 거꾸로 대단한 매력으로 어필되는 겁니다.


그걸 매력으로 받아들이다보니, 저런 날카로운 선명성이 실은 안티와 타정치인의 반발을 부른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죠. 그저 똑똑한 놈 잘 되는 꼴을 못봐서. 모난 돌이 정맞으니까. 인기를 질투해서. 뭐 이런 이유가 나오십니다. 




2. 현재 상황


그렇지만 유시민도 이번에는 좀 타격이 크죠. 경기지사만 해도 옆에서 한명숙도 같이 지는 바람에 다행히(?) 묻어갈 수 있었건만. 따지고들면 정말 할 말 없는 패배지만요. 한명숙이야 어쨌거나 법원 들락거리는 모습 보여줬고, 현안 하나도 몰라서 토론회에서 신나게 까였고, 또 강남3구라는 결집력 높은 비토도 있었고. 하다못해 티끌만한 득표지만 노회찬까지..... 얼마든지 패배의 원인을 댈 수가 있죠. 하지만 유시민은 후보단일화 바람까지 탔고, 토론 잘만 했고. 심상정 반란표 어쩌구 하지만 노회찬 득표수보다 더할 리 없고. 대체 문제가 뭐죠? 이런 지경인데도 당시엔 한명숙 패배와 겹치는 바람에 제대로 분석되지 못했죠.


하지만 이번엔 전혀 다르죠. 모두가 이기는 가운데 혼자 졌습니다. 것도 봉하에서 양파김에게. 제대로 직격탄이죠. (박근혜는 선거 여왕으로 불리는 판인데 말입니다. 약발이 나날이 줄고 있긴 해도.)


그래도 극렬 지지자들에겐 여전히 유시민은 무죄일 테지만요. 그 어떤 비판도 다 ‘유시민 죽이기’일 뿐... 하지만 극렬자의 비율이 줄어들겠죠. 소극적 지지자에겐, 김해가 유시민에 대해 좀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였을 거구요. 실제 경기지사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요.


하여튼 유시민은 대구에 올인했어야 해요. 그게 사는 길인데. 대구 총선때만 해도 괜찮았어요. 어쨌든 사지로 들어갔으니까. 그래서 경기지사 패배때 ‘대구시장에 나갔어야...’ 했더니 아주 버럭거리는 사람도 있더군요. 유시민이 고작 대구시장이나 할 사람으로 보이냐 이거죠. 아니 서울 경기가 암만 대단해도 대구도 명색이 제3의 도시인데 이건 뭐... 그럼 ‘노무현 정신’을 함부로 들먹이질 말던가. 기껏 흉내내는 척 하다가 재수도 안하고 바로 패대기쳐놓고도 쪽팔린 줄을 몰라요. 딴 데도 아니고 고담 대구를 우직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면 개혁층 물론 부동층도 언젠가는 상당히 돌아설 텐데 말입니다. 죽을 길 갔다 살아 돌아온 사람이 벌써 노무현, 김두관, 손학규 셋이나 나왔건만....




3. 앞으로 어떻게?


제 얘기에 얼마나 동의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이런 분석이 맞다고 치면, 유시민 지지가 합리적 사유만을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기에, 그 허구성을 깨는 것도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김해라는 결정적 증거가 있으니 좀 낫죠. 


유시민의 흠결을 따지는 것은 그다지 효과적일 것 같지 않아요. 그보단 본선 경쟁력 없음을 강조하는 게 낫겠죠. 뭣보다 부동층의 ‘존재’를 알려야 합니다. 개혁층은 내가 옳다는 정당성 때문에, 정상인이라면 한나라당 엠비 근혜 같은 터무니없는 족속을 당연히 기피해야 한다고 철썩같이 믿는 경향이 있죠. 그 쪽 좋아라 하는 수꼴은 그냥 인간도 아닌 거고, 부동층은 아예 보지도 못합니다. 엠비의 이 삽질에도 부동층이 존재한다는 현실을 인식하기 힘든 거죠. 


하지만 분명히 부동층이 있고, 부동층 자체도 유동적이며, 유시민은 부동층에 약하다는 결정적 약점이 있음을 부각시켜야죠. 지지도도 그렇습니다. 그냥 “대선후보 아무나” 여론조사 말고, 여야 1대1 대결 조사가 실효성이 있죠. 


뭐.....어차피 제가 잘못 짚은 거라면 다 그냥 헷소립니다마는. 헷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