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선배 한 사람이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입학시험을 치렀는데, 보기좋게 미끄러졌다.

후배들 몇 사람이 위로 겸해서 그 선배 집에 찾아갔는데, 마침 선배 아버님이 계셨다.

시험 결과 얘기가 나오자 선배 아버님이 코가 석자나 빠진 선배에게 대갈일성

"자식아, 그렇게 공부 안하고 팡팡 놀았으니 합격할 리가 있냐? 사필귀정이여, 사필귀정~~"

선배에게 미안한 심정도 사라지고 다들 배꼽을 잡고 웃었다. 사필귀정~~~^^



객관적으로 따져보면 도무지 기대하기 어려운 선거였는데도 불구하고 최문순이 이길 것 같다고 예상했던 것에는 좀 엉뚱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최문순의 얼굴 그리고 엄기영 얼굴과의 비교였다.

관상을 보거나 그러는 것은 아닌데, 사람 얼굴 보면서 좀 느낌을 받는 편이고, 상당히 정확하다는 소리를 듣곤 한다.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는 "점장이 수준"이라는 얘기가 돌아서 해명하느라 좀 고생한 적도 있었다. 나, 점치고 그러는 것 무쟈게 싫어한다. 머리털 나고 내가 점집이란 데를 찾아간 것은 딱 한번이었다. 그것도 가족들이 끌고가는 바람에 마지못해 간 것이고, 그 뒤로는 전혀 관계없이 살고 있다.

아무튼 최문순의 얼굴을 보면서 느낀 것은,

얼핏 봐서는 상당히 찌질해보이는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의외로 저런 얼굴(노인네 같은 인상, 찌그러진 하회탈 같은 인상)이 심지가 굳고, 내공이 있는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표현으로 '진국'에 해당하는 경우이다. 이런 사람들은 눈에 번쩍 띄거나 많은 사람들에 깊은 인상을 주는 화려한 행보를 보이지는 않는데, 어떤 어려운 고비, 위기 상황에서 뒷심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최문순의 이런 특징이 가장 잘 발휘되는 상대가 있다. 바로 엄기영 같은 경우이다. 찌그러진 하회탈 같은 최문순의 얼굴과 매우 대조적인 얼굴이 엄기영이다. 엄기영은 반듯하고, 비교적 섬세하고 수려한 얼굴이다. 최문순이 거무튀튀하고 못생긴 목침, 그렇지만 손때가 배어 단단한 질감을 가진 목침이라면 엄기영은 포근한 솜을 넣은 화려한 꽃베개같은 질감이랄까... 어느쪽이 더 우월하냐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이번 재보궐 선거처럼 둘 중 하나가 쓰러져야 하는 정면대결의 막장 승부에서는 최문순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나는 최문순과 엄기영의 퍼스낼리티는 이런 대조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준 것 같다. 최문순은 적극적으로 점수를 따기 보다 큰 실수를 하지 않으면서 상대방이 잃은 점수를 차근차근 자기 것으로 챙기는 스타일의 선거 운동을 했다. 애초부터 그런 식으로 전략을 설정한 것은 아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양상이었고, 이것은 최문순의 장점이 가장 잘 발휘될 수 있는 방식이었다고 본다.

엄기영은 유리했던 자신의 입지를 계속 까먹는 식의 행보를 거듭했다. 하지만 이것은 선거운동의 실패라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MBC 사장 시절부터 보여온 엄기영의 위선적인 모습이 전혀 자기 점검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선거판에 그대로 투영된 결과인 것이다. 즉, 사필귀정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엄기영이 특별히 악랄한 인간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기질적으로 매우 허약한 인간인 것은 분명하다고 본다. 저렇게 허약한 인간이 적당한 두뇌와 얄팍한 눈치, 양심의 무감각증을 결합해 상당한 출세를 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 결말은 대개 뻔하다. 자신의 캐파(capacity) 전체를 거는 승부에 부닥치면 비참하게 박살이 난다. 이런 인간형은 저런 승부를 최대한 피해야 하는데... 엄기영은 자신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게 이번 강원지사 보궐선거에서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깨지면 회복이 어렵다. 정치적인 의미에서나 사회적인 의미에서나, 어떤 측면에서건 엄기영은 이번 선거를 계기로 그냥 끝났다고 본다.

최문순의 경우 정치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상당히 좋은 자질을 가진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자신을 이끌어줄 좋은 보스를 만나거나, 자신을 보좌해서 제대로 밀어줄 좋은 참모를 만나거나... 두 가지가 다 충족되면 최선이지만, 둘 중 하나만 이뤄져도 최소한 야권의 중진급 리더로는 성장할 것 같다. 둘 다 이뤄지지 않는다면 대충 일회용 대타로 끝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