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의 문제: 사회 다윈주의, 사회 진화론, 스펜서주의

 

social Darwinism사회 진화론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social evolutionism(사회 진화론)이라는 용어가 따로 있기 때문에 social Darwinism사회 다윈주의라고 번역해야 혼동을 줄일 수 있다. 어떤 학자는 social Darwinismsocial evolutionism을 동의어로 사용하지만 어떤 학자는 둘을 구분한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사회가 원시 공산주의,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를 거쳐 공산주의로 진화한다고 보는 마르크스의 역사 이론도 사회 진화론의 일종이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는 사회 다윈주의와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아예 사회 다윈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말고 대신 스펜서주의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허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가 다윈과 진화론을 들먹이면서 자신의 사상을 펼쳤고 다윈이 스펜서와 상당히 친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스펜서가 다윈의 이론을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도 않고 스펜서의 정치 철학이 다윈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도 스펜서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할 생각이다.

 

사회 다윈주의 또는 스펜서주의와 허버트 스펜서의 사상 사이에 간극이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스펜서는 엄청나게 방대한 저작을 남겼으며 생각을 조금씩, 때로는 많이, 바꾼 듯하다. 게다가 스펜서는 대체로 군국주의에 반대한 반면 스펜서주의로 불리는 사상에는 군국주의적 제국주의 정당화도 포함된다. 여기에서 이런 점들까지 상세히 다룰 수는 없다. 또한 온갖 횡설수설을 늘어놓은 스펜서의 사상의 변천 과정을 상세히 다루는 것이 큰 의미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이 글에서는 통상 사회 다윈주의로 불리는 사상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고?

 

스펜서주의자들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고 주장한다. 자연에서 적자생존의 살벌한 경쟁이 이루어지니까 인간 사회도 그래야 한다는 얘기다. 복지 제도는 그런 살벌한 경쟁을 완화하기 때문에 자연의 섭리와 모순된다는 주장이다.

 

스펜서주의자들이 말하는 살벌한 풍경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얼룩말을 잡아 먹는 사자, 암컷들을 차지하기 위해 피 터지게 싸우는 수컷 바다 코끼리들, 서로 햇빛을 더 많이 받기 위해 기를 쓰고 위로 올라가는 나무들, ...... 이런 것들을 보고 스펜서주의자들은 자연의 살벌한 경쟁을 모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펜서주의자들은 복지 제도에 의존해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을 기생충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가들이 기생충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둘 중 어느 쪽이 옳은지를 따질 생각이 없다. 대신 스펜서주의자들이 모범으로 삼고 싶어하는 자연을 살펴보자. 자연에는 온갖 종류의 기생 생물들이 있다. 따라서 자연을 모방하려면 기생해야 한다.

 

자연에는 병원이 없다. 큰 병에 걸린 생물은 보통 얼마 못 가고 죽는다. 자연의 이런 측면을 모방하려면 병원과 약국을 몽땅 없애야 한다. 자신의 자식이 큰 병에 걸린 스펜서주의자가 과연 자연을 모방하기 위해서는 병원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자연의 섭리를 따르라는 주장은 정말 웃기는 얘기다. 왜 우리가 자연의 섭리를 따라야 하는가? 그리고 자연의 수 많은 양상들 중 도대체 어떤 것을 따라야 한단 말인가? 공산주의적으로 사는 개미를 본받기 위해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야 하는가? 유아 살해가 통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고릴라 사회를 본받아서 아기가 자신의 유전적 자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여야 하는가? 강간을 밥 먹듯이 하는 오랑우탄을 본받아서 강간을 해야 하는가? 의태라는 속임수를 쓰는 여러 곤충들을 본받아서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아야 하는가?

 

 

 

복지 제도가 재앙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멜써스의 주장

 

토마스 맬써스(Thomas Robert Malthus)는 식량은 산술 수열(arithmetic progression, 등차 수열, 박성관은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에서 산술 급수적이라는 번역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로 증가할 수 있지만 인구는 기하 수열(geometric progression)로 증가하기 때문에 만약 복지 제도를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번식하게 하면 재앙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재앙을 막기 위해 복지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다.

 

콘돔의 발명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적어도 이론적인 수준에서는 나왔다. 그리고 심지어 인구가 줄어들 만큼 자식을 적게 낳는 나라도 있다.

 

또한 만약 콘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기를 마구 낳는다면 복지 제도가 있든 없든 결국 재앙으로 이어진다.

 

 

 

나은 인류를 위한 우생학적 조치

 

옛날에는 지위가 높은 사람이 (번식할 만큼 생존하는) 자식을 더 많이 보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20세기 들어서 오히려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이 자식을 더 많이 보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우생학 옹호자들에 따르면, 가난한 사람들은 대체로 머리가 나쁘거나 게으르다. 복지 제도 덕분에 가난한 사람들이 더 잘 번식하게 되면 결국 인류는 머리가 더 나빠지고 더 게을러질 것이다. 따라서 우생학적 조치가 필요하다. 복지 제도를 없애서 가난한 사람이 제대로 번식하지 못하게 하거나, 가난한 사람이 결혼을 못하게 하거나, 불임 수술을 통해 가난한 사람이 번식을 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우생학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개와 같은 가축은 품종 개량이 가능하지만 인간은 자연 선택 또는 인위 선택의 법칙을 초월했다고 믿는 듯하다. 이런 주장을 하는 진보주의자들은 신이 인간을 특별하게 창조했다는 기독교식 창조론에서 그리 멀어지지 못했다.

 

인간도 품종 개량이 가능하다. IQ가 높은 사람만 번식하게 되면 인간의 IQ가 점점 더 높아질 것이 뻔하다. IQ가 낮은 사람이 더 잘 번식한다면 인간의 IQ가 점점 더 낮아질 것이 뻔하다. 인간이 어떻게 침팬지보다 더 똑똑해졌는지를 생각해 보라. 머리 좋은 우리 조상이 그렇지 못한 개체에 비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이다.

 

나는 강제적 우생학적 조치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그런 조치로 인간을 품종 개량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반대하는 이유는 인류 품종 개량보다 결혼, 번식 등과 관련된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펜서주의는 자본가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을까?

 

자본가들 중에 스펜서주의에 홀딱 빠진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특히 미국에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듯하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20세기 초 미국의 자본가들 중 대부분이 스펜서주의를 받아들이기라도 한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 미국의 전체 자본가들 중에 스펜서주의에 호의적인 자본가의 비율이 30%라도 되었을지 의문이다.

 

스펜서주의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에 명시적으로 의존한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지금보다 기독교의 영향력이 더 강력했다. 당시에 많은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다윈의 이름만 나와도 흥분했다. 지금도 미국의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진화론을 인간에 적용하려는 진화 심리학에 분노하는 것을 보면 당시에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진화론을 인간에 적용하려는 스펜서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여기서 스펜서주의자들이 다윈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차피 기독교인들은 다윈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의 자본가들이 기독교를 얼마나 신실하게 믿었는지도 크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설사 실제로는 기독교의 신을 우습게 생각했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자본가들은 신실한 기독교인으로 보이게 행동했다. 그런 상황에서 스펜서주의가 아무리 자신에게 유리해 보이는 논리를 제공한다고 하더라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지금과 마찬가지로 당시에도 많은 자본가들이 자선을 통해 생색내기를 좋아했다. 성경 속의 예수도 자선을 하라고 이야기했다. 스펜서주의적 논리에 따라 복지 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면 자선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선은 복지 제도와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요인만 생각해 보더라도 20세기 미국 자본가 계급 사이에서 스펜서주의가 큰 인기를 끌었을 것 같지 않다. 물론 이것은 실증적 연구를 해야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문제다. 어쨌든 스펜서주의를 받아들인 유명한 자본가들 몇 명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치 당시 자본가들 대부분이 스펜서주의를 받아들인 것처럼 묘사하는 것에는 큰 문제가 있다.

 

 

 

2011-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