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네 식구들을 만났습니다.

사촌동생의 딸 그러니까 제 조카딸이 중학교 2학년인데 이 녀석(A)이 아주 공부를 잘한답니다. 작년에는 전교 1등을 했다고...

A와 이번에 얘기를 해보니까 수학 과학은 아주 좋아하는데 국어나 사회과목 즉, 인문사회 쪽 과목은 무척 싫어한다는군요.

억지로 공부를 하기는 하고, 성적도 잘 나오는 편인데 그래도 너무 싫답니다.

수학은 복잡하게 구조화된 문제를 풀어서 명쾌한 답변이 딱 나오는 게 너무 기분 좋은데,

국어의 경우 특히 애매모호한 결론, 이 사람 저 사람 다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런 막연함이 너무 싫다네요.

사촌동생(B)도 한 마디 거듭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이랑 무쟈게 싸웠어요. 왜 느낌이란 걸 강요하느냐구요. 사람마다 느낌은 다 다른 건데 왜 획일적인 해석을 강요하느냐고 싸웠죠. 실은 그 선생님과 친했는데, 친하면서도 싸우고, 싸우면서도 친해지고... 그랬죠."

미투 : 그 국어선생님이 너의 반박에 뭐라고 답변하더냐?

사촌동생 :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시험 볼 때는 니 생각보다 배운대로 답변하라고 그러더만요.

부전여전, 공통적으로 자연과학 계열인 두 사람에게 인문학 전공자로서 뭔가 한 마디쯤 변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대충 정리해서 답변을 했습니다. 다음은 그 답변 요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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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국어선생님이 뭐라고 답변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B의 불만은 일률적인 해석의 강요보다는 문학 작품에 대한 수업 그 자체에 대한 반발 같다. 특정 작품에 대한 고유한 해석 능력을 가진 사람은 "그런 해석이 아니라 이런 해석이 더 맞는 것 아니냐?"고 반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B는 "왜 느낌을 강요하느냐?"고 반박했다. 이것은 자기만의 고유한 해석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실은 문학 작품의 이해와 해석이라는 노력 자체를 부인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고, 나아가 문학 작품 자체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고픈 심리의 발로라고 본다.

B가 간과한 것은 '감정과 감성도 훈련에 의해 세련되고 강화되고 다듬어진다'는 점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서나 감성이 태어나면서부터 현재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정서나 감성을 풍부하게 키워나갈 내적 요인(모순)을 갖고 태어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별다른 노력이나 연습, 훈련 없이 키워지고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훈련과 노력이 필요하고, 우리가 흔히 문화라고 말하는 인문학적 요소들은 그런 감성/정서의 훈련에 필요한 교재이자, 그러한 훈련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을 참고서적으로 추천한다.

A에게는 "리더가 되려면 인문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해주고 싶다. 지나친 단순화일지 모르지만, Generalist와 Specialist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스페셜리스트는 애매모호한 대답보다는 자기 분야에서 최대한 명쾌하고 가시적인 결론을 이끌어내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즉, 칼로 자르듯이 분명한 논리적 가시성과 결론이 특성이자 미덕이다.

하지만, 제너럴리스트에게 저렇게 칼로 자르듯이 똑 부러지는 논리적 가시성과 결론을 요구하는 것은 위험하다. 다양한 분야의 결론과 요구를 종합하여 유일무이한 결론이 아니라 최선도 못되는 차선 심지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입장에서 저렇게 다른 모든 결론을 배제하는 논리적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 본질적으로 제너럴리스트에게 그렇게 명쾌한 결론은 철저한 사유의 부족 또는 의도적인 사기의 결과물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인문학의 특성과 존재 근거가 있지 않을까? 칼로 자르듯이 명쾌한 결론만을 추구하는 자연과학의 특성은 스페셜리스트의 업무에는 적절하지만, 다양한 영역의 문제의식과 이해관계, 특성을 종합하는 제너럴리스트의 업무에는 어딘지 불안하다는 느낌을 준다. 자연과학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어리석어 보이는 인문학의 특성이야말로 실은 제너럴리스트의 영역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 아닐까?

굳이 비유하자면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특성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자연과학이 디지털, 인문학이 아날로그의 특성에 더 가깝겠지.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영역을 점점 더 잠식해가는 추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디지털이 아날로그의 영역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문제는 저러한 추세가 인간 생활과 정서의 심각한 불균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사이코패스의 가장 큰 특성이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의 부재'에 있다고 한다.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지만, 칼로 자르듯 명쾌한 결론의 세계, 애매모호한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문제 해결 방식은 결국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다른 사람의 감정과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하는 경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왜냐하면 실존적인 차원에서 인간에게 타인은 지옥일 뿐이고, 영원한 미지의 대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이 문제를 바라봤으면 한다. 칼로 자르듯이 자연과학적 성향, 수학적인 특성으로 충만한 인간은 없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모두 뒤섞여 있는 존재이고, 각 개인이 나타내는 주도적인 성향이라는 것도 사실은 51:49 정도의 내면적 차이가 표면적으로 한 개인의 압도적으로 우월한 개성으로 나타나는 것 아닐까?

A가 국어와 문학 등을 싫어하는 것도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좋은 교사를 만나지 못한 결과일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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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가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인문학의 존재 이유를 인정하는 사람이 매우 드문 것 같더군요. 요즘은 기업에서도 인문학적인 소양을 강조한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실제로 인문학적 소양이 어디에 어떻게 필요하다는 것인지 분명하게 밝혀주는 얘기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충 정리해봤습니다.

자연과학 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매우 불쾌한 얘기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너무 불쾌해하지는 마시고 많은 의견과 지적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