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학 게시판
'악마의 예상에 의한 표절'은 환타지 소설 '퇴마록'에 실제적인 역사 사실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 주제를 가지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면이 나오죠.
즉, 예언록의 내용이 '악마의 예상에 의한 표절이 아니냐'라는 의심을 퇴마록의 주인공들이 한다는 것으로 야훼처럼 전지전능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는 악마가 미래의 시점에 어떤 일을 예상하여 과거의 특정 시점에서 기록들을 조작, 생산한다는 뜻이죠.
그런데 예수는 오시리스 신화의 표절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많은데요...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분들이 한결같이' 쏙 빼먹는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그 것은 바로 유스티누스 순교자(Justin Martyr, 서력 100년~165년 경 - 는 초기 기독교 변증가로서 2세기 로고스 이론의 최초의 해석가로 간주) 등이 오시리스 신화를 보고는 '악마의 예상에 의한 표절'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었는데, 이 참에 성서의 대가 흐강님이 그 이유를 좀 설명해주실래요?
백이숙제는 "以暴易暴"를 남겼고 한그루는 "以寂易騷"를 남기고 간다.
한그루/ 저야 관망자입니다만.
그 것은 바로 유스티누스 순교자(Justin Martyr, 서력 100년~165년 경 - 는 초기 기독교 변증가로서 2세기 로고스 이론의 최초의 해석가로 간주) 등이 오시리스 신화를 보고는 '악마의 예상에 의한 표절'이라고 호들갑을 떨었었는데,
여기에 대한 근거는 한그루님이 일단 대셔야 얘기가 성립합니다. 어떤 책/인터넷 페이지/신문기사에서 읽으신 것인가?
위키 페이지에서 볼 때는 오시리스나 이집트 신화에 대한 내용이 없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http://en.wikipedia.org/wiki/Justin_Martyr
오마담님/
1. 님께서 과거 제가 큰 헛발질을 했을 때 '세심한 배려에 의한 지적'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아직도 가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이후의 '논거의 증명'에서 좀더 세심해지고 주의를 기울인 것이(그렇게 타인에게 느껴졌다면) 님이 큰 역할을 하신거 맞습니다.
2. 그런데 이 건에 대하여는 수긍하기 힘드네요. 지금 저는 교리논쟁을 하자는게 아닙니다. 교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이중잣대를 시전하는 흐강님의 비논리성을 지적하는겁니다. 물론, 제가 교리논쟁을 하는 것처럼 비추어졌다면 제 표현의 문제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거 아니거든요?
3. 님께서 환단고기 언급을 하셨는데 예, 바로 그 시점입니다. 오해하실까봐 예전에 minue622님과의 사례를 들자면 minue622님께서 저에게 '환빠'라고(또는 그런 뉘앙스로) 말씀하시는걸 보고 제가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당시, 제가 환단고기를 언급한 것은 환단고기에 대한 이중잣대를 이야기한겁니다. 처음에는 일본의 역사로 알려져 신봉하던 식민지사관학자들이 그 환단고기가 한민족 역사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쓰레기통에 처넣은 그런 이중잣대를, 지금 흐강님이 시전하고 있다는 것이 제 주장의 요지입니다만.
글쎄요... 환단고기나 성서교리나 그 분석에 있어서의 이중잣대를 지적한건데 제가 왜 환빠가 되어야 하고 교리논쟁을 하고 있다고 비추어지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디즈레일리님/제가 지금 짜증나는 부분은.....
저는 신의 존재 유무를 따지는 것에는 관심없습니다. 저는 신은 있다...라고 생각하니까요. 단지, 지배이데올로기로 변질된 역사를 호도하면서 그 것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박박 우기는 작태가 짜증이 나는겁니다.
한그루/ 솔직히 좀 실망입니다.
난 요새 인터넷 공간을 통한 소통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이 많이 들고 있었는데, 한그루님까지 이러니 맥이 풀리네요.
일단 님이 위에서 단 댓글은 관심법 시전의 적절한 예입니다.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한그루님 맘대로 갖다 붙이고 있습니다.
나의 의도도 아니거니와 한그루님 주장을 공격하려고 하는 티도 최대한 아ㄴ 내려고 하였습니다.
솔직히 내가 말했듯이 난 고ㅏㄴ망자이기 띠문이지요.
다만 오시리스 신화에 대한 초기 기독교인들으ㅏ 혼란은 내게는 금시초문의 정보였고
궁금해서 그 출처를 캐물었을 뿐이고 그 출처가 마ㄴ족스럽지 않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얼마 전에 권은희 파ㄴ결 때였나. 한그루님이 길벗늘 몰아붙였던 기억이 납니다.
주장에 대한 근거를 부ㅌ이지 않았다는 이유에선데오. 그건 한그루님한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죠.
그런데 출처에 대한 의문을 더ㄴ지자마자 마치 내가 한그루님의 원래 주장에 적대적인 것처럼 인식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건 조ㅁ 아닌 겁니다.
사실 제가 요즘 글을 자ㄹ 안 쓰는 거ㅅ도, 출처 따지도록 교육받아온 주제에 아크로에서는 출처 단 글을 거의 쓰지 아ㄴㅎ았다는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좀 있으면 전에 썼던 글들도 다 지울 겁니다.
디즈레일리님,
한그루님의 관심법에 대해 항의하는 건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문제의 발단이 된 디즈레일리님의 이 댓글,
어쨌든 남에게 어떠어떠한 주장을 공박하라고 할 때에는 그 주장이 자신의 주장인지, 남의 주장인지 밝혀주셔야 합니다.
그게 남의 주장일 때에는 출처를 밝혀주셔야 토론하기가 좋구요.
한그루님이야 검색왕이니까 남들도 다 즉석에서 검색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인데
우리는 '도대체 이런 주장이 어디서 나왔어?'라고 생각하니까 말입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훈장질이 아닐런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 토론하는데, 디즈레일리님의 출처 요구에 한그루님이 전문 및 관련 부분을 캡쳐해서 올리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저는 느끼고, "출처를 올려주어서 땡큐"하고 넘어갔을 것 같습니다. 한그루님도 애초에 그 정도로 기대하셨을 것 같고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 "훈계 (훈장질)"를 하니까 한그루님께서 다소 오해를 한 것 같습니다.
천재가 아니라면 범인의 방식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이걸,
학술적 글쓰기가 아니라면 인터넷 게시판의 방식으로 소통해야 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으로 바꾸어서 들려 드리고 싶습니다. 출처를 일일히 밝히는 방식으로 디즈레일리님께서 글을 쓰신다면 그건 훌륭한 일이고 본받을 일이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남을 비난할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내 방식을 남에게 강요할 순 없습니다.
한그루님,
결국 같은 논리네요. 일단 거짓이다...라고 결론을 내놓고 그 결론에 맞게 주장하는거.
한그루님,
사실 그 흐강님의 주장은 애초에 한그루님께서 언급하셨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저도 헷갈립니다. 저는 이 글이 흐강님의 " 19세기의 낡은 주장과 상업성이 결합한 예수는 없다. "와 관련이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갖고 오신 댓글은 "성경은 재 해석되어야 한다.", 이 글이네요.
어쨌거나, 한그루님께서 지칭한 흐강님의 글은 단지 추측으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추측에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건 좀 아니라고 봅니다.
최소한, 본문에 흐강님의 글 중 문제제기하고 싶은 일부라도 인용하시는 친절을 베푸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가 흐강님의 글을 다 읽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고, 써 놓고 보니 제가 양비론으로 흐르네요..
겟살레님/예. 님의 지적은 타당합니다. ㅋㅋㅋ 이제야 일부 이해가 되었네요. 디즈레일리님께서 왜 저에게 '천재놀이'를 한다고 비야냥 되었는지...<-- 써놓고도 제가 짐작하는 부분과 맞는지는 확신이 안섭니다만.
그런데 말입니다. 흐강님의 이 주장이 얼마나 사악한 것인지, 그리고 제가 왜 '이 문단 이하는 읽지 않았다라고 했는지 설명을 드리죠.
"교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펙트의 문제인데 이 부분도 교회사학자들이 일부로 감추거나 왜곡한건 없습니다."
저 흐강님의 발언은 '악마의 논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라는 선언입니다. NeoJCJ님이 애쓰시는데.... ㅉㅉㅉ 악마의 논쟁에 걸려드신 NeoJCJ님께 위로의 말씀을.(논란을 차단하자는 의미에서 NeoJCJ님의 주장을 저는 다 믿지는 않습니다. 50%는 맞는 말이고 20%는 아닌거 같고... 30%는 금시초문인거 같고<-- )
빈 말이 아니라.... 제가 '아크로에서 논리적으로 주장하는 분들'로 피노키오님, minue622님, 디즈레일리님 그리고 겟살레님(오마담님도 그렇다...라고 판단합니다만 오마담님의 주장글은 별로 보지 못해서.) 등인데 그런 겟살레님께서 답변을 한번 주시기 바랍니다.
'악마의 논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당사자'를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제가 아는 한)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이중잣대의 시전을 지적하는 것인데 흐강님은 먼저 글에서 악마의 논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선언하시고는 다음 글에서 이중잣대를 시전하시길래 본 글의 예를 든 것입니다"
혹시, 악마의 논쟁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당사자의 논리를 깰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으면 한 수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만.
부가하자면, 흐강님이 다음 글에서 든 세가지 예는... 에휴.... 정말... 소리 나옵니다.
한그루님,
저는 교회사에 대해서 사실 잘 몰라요^^ 그래서 내세울만한 별다른 의견도 없고, 제가 뭐라고 하기도 어렵네요.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아크로 토론의 주요 주제에 대해서 제가 아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논리의 허점을 찾아서 찌르는 것 말고는 할 게 없기도 합니다^^
사실 밑에 디즈레일리님 말씀처럼,
"교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펙트의 문제인데 이 부분도 교회사학자들이 일부로 감추거나 왜곡한건 없습니다."
가 설득력이 조금 더 있다고 보긴 합니다. 디즈레일리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좌우간 저는 일단 관전자 모드로 들어갈까 합니다.
한그루님/ 그루님이 댓글을 남겨주시니 저도 응대를 해야 맞겠지요.
제가 댓글을 단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건 댓글을 달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굳이 한그루님이 말씀 안 해주셔도.
오죽했으면 제가 제 모습을 가리켜 꼴사납다, 훈장질이다고까지 말했겠습니까.
한그루님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자아비판이 꽤 잘 되는 사람입니다.
근데 이런 부분 읽다 보면 답답합니다.
완벽한 신성의 '완벽한'을 입증하기 위해 '대체로'라는 단어로 입증하기에는 너무 허접스럽지 않습니까?
뭐, 님께서 '나는 선언한다, 그러니 한그루는 아닥해라'라고 하신다면 아닥하고 있겠습니다만.
첫 댓글에서도 이미 말씀드렸는데. 전 한그루님을 무조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고 흐강님에게 동조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전체적인 내용이 틀렸거나 편향적이라도 그 중 한 문장문장만 떼놓고 보면 맞는 말은 있을 수 잇지요.
그런 차원에서 말씀드린 것이고, 실제로 한그루님은 관련 분야에 대해 침착하게 접근하진 않고 계십니다.
마치 이명박을 공격하는 나꼼수의 모습을 본다고 해야 할까요.
'까려면 제대로 까라. 나꼼수처럼 덤비지 말고'가 제 메세지입니다.
위에서 오마담님도 말씀하셨지만 특정주제에 접근할 때에는 이상한 잡 책보다는 보다 학문적으로 인정받는 자료로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개소리를 하건 그건 관계없어요. 나도 그 수준까지 굽히고 싶지 않은 이상에야.
한그루/
저의 님에 대한 폭력만 말할 게 아닙니다. 님의 남에 대한 폭력도 언급해야돼요.
도대체 제 말이 어떻게 약탈국가성 논리입니까?
누가 기독교 주류에 의해서 사라진 경전들을 들고 오랍니까?
남의 말을 눈으로 읽는 건지 발로 느끼는 건지.
난 분명히 얘기했습니다. 충분히 학술적인 근거를 갖고 개신교 주류의 위선과 거짓을 까발기는 책들이 많다고.
그런데 이상한 잡 책 들고 오셔서 주장하셔서 제대로 된 근거를 갖추시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무슨 신자유주의가 어쩌고 약탈국가가 어쩌구 아리스토텔레스가 어쩌구....
좀 단순하고 핵심적으로 말합시다.
그래서 한그루님은 위에서 인용한 책이 학술적으로 흐강님이 인용하는 책들에 비해서 우월하다고 주장하는 겁니까?
아니면 동급? 아니면 퀄리티가 떨어지는?
이건 오마담님이 위에서 잠깐 말씀하셨는데. 마치 환단고기를 동원해 식민사학에 반론하는 꼴이라니까요.
상대방의 주장에 반대된다고 아무거나 갖다 쓴다고 능사가 아닙니다.
디즈레일리님/1.누가 기독교 주류에 의해서 사라진 경전들을 들고 오랍니까?
이 주장은 뭥미? 기독교 주류에 의해서 사라진 경전 가지고 오라는게 아니라 충분히 학술적인..... --> 지금 그 이야기 하고 있는거거든요?
2. 아, 미안해요 잡책 들고와서 잡스런 주장을 하는 나는 잡놈이겠군요. 말 돌리지 말고 직설법으로 이야기합시다.
3. 그런데 이 잡놈이 이야기하는 것도 이해 못하시나요? 내가 언제 환단고기를 동원해 식민사학을 반론했나요? 아무거나막 걸치면 비유되나요?
도대체 '논리적 오류 종합세트'인 주장을 어케 해야하나.... ㅋㅋㅋ
한그루/
2천년 동안 기독교 majority가 지배하면서 이단으로 몰린 책들이 살아남았을 것 같나요?
윗 댓글은 님의 이 '문제제기'에 대한 나의 '해석'입니다
미안하지만 지난 50년간 기독교 majority의 지배 하에서도 이단으로 몰린 책들이 꽤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니까 굳이 저런 잡책 들고 오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내가 언제 환단고기를 동원해 식민사학을 반론했나요?
신뢰성이 의심스러운 책을 이용해 흐강님의 개신교 정통신학을 비판하는 거나...환단고기로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거나 거기서 거깁니다.
제가 볼때는.
겟살레님, 오마담님, 그리고 디즈레일리가 모두 님과 반대의 입장을 취할 때는 한번정도 더 생각해보심이 어떨까 합니다.
디즈님/출근해야 하니까... 나중에 님이 어떤 반칙을 하고 계신지 그리고 님의 글의 논리적 오류 또한 님의 그 이상한 소망(?)을 같이 묶어서 답변을 드리죠.
어쨌든... 힘찬 일주일 보내세요.......... & everybody........
/한그루님
대략적인 그림을 그리자면 이런식이죠..
사실과 과장의 미묘한 경계에 대해서.. 역사적 증거들이 지지하는 수위를 확인하는 문제라고 할까요.. 그런 문제쯤으로 보면 대략 맞을듯 합니다.
티모시 프리크나 피터겐디등의 글은 100% 거짓이 아니고.. 그들의 글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그렇게 비판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근거없는 추론과 과정이 너무 많이 삽입되어져서 자신들의 이론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왠만큼 당시의 역사적 흐름과 전개를 일일이 알고있는 학자들이 아니라면.. 어디까지가 역사적 증거에 의해 확인되는 사실의 영역인지.. 어디까지가 사실을 교묘히 비틀어버리는 왜곡의 영역인지 글 경계를 정확하게 분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들 하죠..
그러니 이 그림을 이해하는 것은 단순하게보다는 조금더 미묘한 것들을 감안해야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실은 역사는 늘 이런걸 해오고 있죠..
다만 대중들을 향해서는 큰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서 단순화된 얘기들로 역사적 교양을 제공하는 식이겠지만.. 역사적 전개에 대해 다른 시나리오를 가지고 증거보다 자신의 심증을 역사에 투사한 것을 역사로 제시할 경우 (티모시 프리크나 피터겐디등의 글이 그렇죠..) 그 미묘한 지점들은 대중들로 하여금 사실인지 아닌지의 혼동을 불러일으키곤 하는 문제가 되곤합니다.
대략 인정되는 것들을 확인해보자면 이렇습니다.
우선 오리시스든 디오니소스든 고대신인들과 예수사이에서 유사성을 발견한 것은 사실입니다.
이런 유사성에 대해서 기독교인들이 반대한다거나 사실이 아니라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부정하기는커녕 고대의 신인들과 예수간에 존재하는 이런 유사성을 가지고 예수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설득력있는 담론도 있죠..
바로 예수나 고대신인들의 유사한 패턴에서 인류문명안에 내내 존재해온 욕망과 폭력의 사슬구조를 지적한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이론이 그렇습니다.
지라르는 인류사에 존재해온 폭력의 구조를 고대신인들과 예수의 패턴에서 읽어내리고 있는데요.. 조금 덜한 폭력으로 최악의 폭력을 회피한다..라고 하는 인류안의 공식화된 폭력의 희생양구조를 예리하게 지적했죠..
지라르는 이런 희생양구조라는 유사한 패턴속에서 고대신인들과 예수와의 차별성을 발견하는데요.. 관습화된 폭력의 희생양구조에서 예수는 모든 고대의 관습화되고 제의화된 폭력구조를 근원적으로 끊어내는 폭력의 단절을 성취했다고 그 차별점을 지적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지라르의 이론의 관점에서.. 붓다 또한 고대사회의 희생양구조안에서 제의적 존재로 존재한다..라고 지적한 [붓다와 희생양]이라는 책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기독교인들이 고대신인들과 예수간에 확인되어지는 유사성을 전면적으로 부인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런 유사성과 차별성에 대한 이해는 희생양이론같은 문화이론이 나올만큼 이미 공공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확인되어지는 유사성과 티모시 프리크나 피터겐디등이 주장하는 유사성은 그 차원이 전혀 다른데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제가 다른 댓글들로 여러 학자들의 견해를 소개했다시피.. 고대신인들과 예수와의 형식적 유사성은 그 의미의 성격이 사뭇 다른 것입니다. 고대신인들이 다시금 재생되어지는 심상의 의미는 농업계층에게 유의미한 차원에서의 의미, 즉 계절의 순환에 따른 자연적 되살아남으로서의 심상이지만.. 예수의 부활은 그런 차원과는 전혀 거리가 멀죠..
그 차별적 성격을 적절히 지적하지 못한다는 점과 또 유사성목록을 늘리려고 억지해석을 부여하는 경우가 너무 잦다는 점에 대해서.. 학자들은 이런 티모시 프리크나 피터겐디의 주장에 큰 신뢰성을 부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와 고대신인들사이에 가장 중요한 차이점으로 지적해야하는 것이 예수이야기에는 성적제의로서의 "신성결혼"의 심상이 전혀 없다는 것도 중요한 점입니다.
"신성결혼"이라는 이 개념은 고대신인들에게 있어서는 창조와 풍요로운 생산을 의미하는 중요한 차원을 띄는 것인데 예수이야기에는 전혀 그런 신성결혼의 심상이 없은 고대신인들과 예수를 차별화하는 중요한 대목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에게 고대신인들에서 중요한 신성결혼의 이미지를 부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예수의 아내설이 나오는겁니다.. 예수아내설의 이유는 바로 고대신인들처럼 예수 또한 신성결혼을 하는 고대의 신들같은 제의적 신화로서 바라보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자.. 그럼 유스티누스등의 "예상에 의한 표절"로 돌아가봅시다..
이런 사실 자체가 있었는가에 대해.. 유스티누스의 저런 얘기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티모시 프리크나 피터겐디가 말한 예수이야기가 고대신인들의 이야기를 카피한것을 증명해주는 이야기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유스티누스 또한 자신의 시대에서 확인한 고대신비종교사이의 기독교와의 유사성 자체가 고대적 근원을 가지는 것으로 착각했음을 알려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자들의 대부분은 고대신비종교가 기독교와 유사한 교리와 이론을 갖추게된 것을 2-4세기 경의 일로 확인된다고 말합니다.. 후대로 갈수록 유사성이 짙어진다는 것이죠..
즉, 기독교가 헬라세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전 1세기경, 즉 기독교의 형성기에서 볼때.. 티모시 프리크나 피터겐디가 말하는 방식으로 고대신비종교가 기독교와 유사성을 띄는 흔적이 발견되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티모시 프리크나 피터겐디의 주장이 무너지는것도 이 대목입니다. 기독교와 경쟁하기전에 고대신비종교가 기독교와 유사한 교리나 제의적 체계를 가졌던 것으로 확인되는 역사적 증거가 사실상 없다는 것이죠..
모두가 기독교와 본격적인 경쟁하는 시기에 확인되는 근거들이며 후대로 갈수록 그 유사성의 흔적은 더 뚜렷해진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일반적인 관점에서 인정되는 유사성.. 고대신인들의 희생제의적 형태나 시간에 따른 재생의 그런 패턴적 유사성은 이전으로부터도 인정되어야 하겠지만..
[시대정신]류나 티모시 프리크나 피터겐디가 주장하는 수없이 많은 목록들로 확인되는 그런 식의 유사성은 모두가 2-4세기의 일들로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 정교하게 닮아가는 것이죠..
그래서 티모시 프리크나 피터겐디가 내미는 유사성목록을 증명해주는 역사적 증거라는 것들은 기독교가 형성되던 시기 즉 1세기의 역사적 증거가 거의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언제나 후대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역사적 증거를 고대신비종교가 원래부터 그런 모습이었던것처럼 역투사해서 과장하는 식의 트릭을 쓴다..라는 것이 티모시 프리크나 피터겐디의 주장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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