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이 늘 그렇듯 즉흥적이고 우발적이며 우연히 떠오른 잡상들을 그냥 낙서하듯 쓰는 것이라 대부분 치밀한 계획이 없다. 우리사회의 괴물들이란 연재 역시 그런 것의 일환이고 그때 그때 눈에 걸리는 것들을 즉흥적으로 쓰는 것이라 완성도가 매우 떨어진다. 이 점은 아크로 릴레이 기획으로 다른 분들이 동참해주셔도 좋고, 댓글 토론으로 내 글의 부족한 점들, 어설픈 점들을 보충해주셔도 좋을 것같다. 


조선일보. 두 말하면 잔소리다. 
얼마전 언급된 조선일보의 칼럼. 지난 지방선거에 이어, 보궐선거의 분위기가 매우 안좋은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우리사회의 괴물들이 전방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타이밍도 절묘하게 참 뜬금없는 칼럼이 하나 등장했다. 아크로에서도 언급된 박지향의 개소리 향연. 그리고 그 댓글에서 보여준 우리사회의 추악한 괴물들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부산일보의 이 기획시리즈... 부산정치비화 60년. 

김영삼의 자식 서석재를 '아름다운 정치신사'로 미화하고 있다. 영남부족주의자들의 '깡패의리'는 국가의 발전보다도 중요하고, 정치적 신념보다도 중요하며, '망국적 지역감정'보다도 중요하다. 왜 깡패의리라고 할까? 아래 기사를 확인해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조직의 보스의 결정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하고 나라경제를 도탄에 빠뜨린 정권의 실책도 깡패조직, 부족의 우두머리보다 중요하지 않다. 

[부산 정치비화 60년] 14. '아름다운 정치 신사' 서석재
"동료의원 5명 위해 정치 기반 희생하고 국민회의 입당"

1997년 이회창 대선후보 지지 철회 뒷얘기

97년 민주자유당(민자당) 대선후보 경선 무렵. 이회창이 1등, 이인제가 2등을 달렸다. 이후 이회창 후보는 아들 병역 비리로 지지도가 급락했다. 이회창 후보 측이 서석재 측에 지원요청을 했지만 서석재 측은 "YS의 뜻이 밝혀질 때까지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서석재는 당 사무총장으로 당내 가장 큰 조직인 정발협(정치발전협의회)의 회장이었다. 당시 서석재의 보좌관이던 이종혁 현 한나라당 의원은 "이회창 후보가 '내가 집권하면 서 총장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메시지까지 보내왔다. 그러나 어른께선 '이 후보와는 멘탈리티가 맞지 않다'며 측근들에게 지원해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전했다. 

그러다가 이인제가 탈당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 서 총장은 한중의원친선협회 회장 자격으로 이회창 후보를 데리고 중국에 갈 생각까지 했다는 것. 그러던 중 민자당의 대선 활동인 '구미필승전진대회'에서 이 후보의 지지자들이 "경제를 망친 주범"이라며 YS의 모조인형을 몽둥이로 때리는 퍼포먼스가 지상파 방송의 9시뉴스를 타고 보도됐다.

이종혁 의원은 "당시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어른께서 '봐라 저 사람하고는 안 된다 안카더나'며 노발대발했고, 곧바로 이회창 지지를 철회하고 탈당과 함께 이인제 지지를 선언하게 되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의원은 "당시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인제 후보가 대선 출마를 하지 않았고, DJ(김대중)도 대통령이 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얘기도 전해졌다. 당시 개인사무실 특보로 있던 안운환 현 NCS 하우징 대표이사는 "어른께서 모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로부터 이 후보가 민주계를 향해 '○○를 갈아먹겠다'는 심한 욕을 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이를 이 후보에게 직접 확인했는데, 이 후보가 답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사실이구나' 생각하게 됐죠. 아무래도 평소 이 후보가 거짓말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는데, 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정한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 같았어요."



1998년 '김대중당' 입당 사연은

서석재는 탈당후 이인제와 함께 국민신당을 창당했다. 국민신당은 98년 DJ집권 후 당시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국민회의에 사실상 흡수 통합됐다. 부산출신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던 그로선 30년 정치생명을 건 사건이었다.

당시 그는 한 월간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입당을 결심하면서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부산출신 의원으로서 어려운 부산경제에 도움이 되어야 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동서화합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면 정치생명이 끝나도 좋다는 것이다. 나의 선택이 망국적 지역감정이 벽을 허무는데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이와 관련, 안 대표는 "당시 어른께선 지역정서 때문에 국민회의에 합류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잔류하려 했다"면서 "그러나 국민회의 측에서 '서석재 빠지면 통합은 없다'는 얘기를 해 어쩔 수 없이 선택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함께 입당한 의원 5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희생한 셈이다.

그의 입당을 두고 지역구 주민들은 "실컷 뽑아줬더니 왜 김대중당에 가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한나라당 민주계에서도 "서석재는 이제 부산에서 끝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같은 그의 선택은 실제 2000년 4월 16대 선거에서 '족쇄'로 작용했다. 당시 보좌관이었던 박재호 전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은 "출마를 앞두고 어른께서 '부산서 내 평이 어떻더노'라고 물으셨는데, 지역민들의 냉담한 반응에 적잖게 상심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때 이후로 어른께서 몸이 많이 아팠던 것 같습니다. 당시 선거득표율도 낮게 나왔구요."



'오뚝이' 정치인

서석재의 정치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바로 89년 8월 동해시 보궐선거와 95년 전직 대통령의 4천억 원 비자금 폭로다.

전자는 김영삼 총재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이 88년 13대 총선에서 제2야당으로 전락한 뒤, 노태우 대통령의 중간평가를 내세우며 동해 보선에 '올인'하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그러나 당시 통일민주당은 후보 매수 사건에 휘말려 급기야 사과성명과 함께 김영삼 총재의 오른팔격인 서석재 사무총장이 탈당했다. 이후 대법원까지 간 끝에 서석재는 유죄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재미있는 것은 당시 법원 판결을 받고서도 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부산 사하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는 점이다. 상대후보자들은 "재판에 계류 중이고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을 국회에 보낼 수 없다"고 공박했으나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던 것.

후자는 95년 8월 당시 총무처장관이던 서석재가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한 발언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다.

"전직 대통령중 한 사람이 4천여억 원의 가·차명 계좌를 갖고 있는데 정부에 2천억 원을 줄 테니 나머지를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느냐고 물어왔다"는 요지의 발언이다.

서 장관은 이후 "전직 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사태는 일파만파로 커졌다. 결국 서 장관은 사퇴했다. 당시 서 장관은 청와대 비서실장, 민자당 부총재로 물망에 올랐던 터여서 그의 낙마에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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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해보자. 
1. 서석재는 김영삼의 재가가 떨어지지 않아서 이회창의 지원요청에 침묵했다. 
2. 그리고 겨우 낸 핑계가 이회창과 멘탈리티가 맞지 않아서 이회창을 지지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3. 그런데 이인제가 탈당하자 이회창을 지지하기로 결심한다. 
4. 그러다, 이회창이 '나라경제를 망친 주범'이라고 김영삼 인형 화형식을 하자, 노발대발하며 이회창 지지를 철회한다. 
5. 그리고 탈당 후 이인제와 국민신당을 창당한다. (그리고 부산일보는 김대중 정권의 탄생에 '기여'한 이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이런 서석재에 대한 평가를 보자. DJ 집권 후 국민회의에 국민신당이 사실상 흡수통합되는 것을 두고, '30년 정치생명을 건 사건'이라고 하면서도 영남의 지역주의가 문제임을 말하지 않는다. 그의 결단은 희생이지만, 그들마저 안으려는 김대중의 노력은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한다. 

그런데 서석재가 정말로 '망국적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김대중당으로 옮긴 것일까? 30년 정치적 생명을 걸고 '김대중 당'으로 옮겨간 그의 변명, '망국적 지역감정을 없애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정치생명이 끝나도 좋다'는 그의 변명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그가 정말 그런 정치적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면 애당초 망국적 지역감정을 심화시킨 김영삼의 3당야합에 동참하지 말았어야 했다. 더구나 초원복집 사건따위는 뇌속에서 지워버리는 이 편리한 종자들의 인식수준이란... 

더구나 서석재를 '어른'이라고 꼬박꼬박 부르는 당시 그의 비서의 발언을 보면, 그는 인터뷰에서 주절댄 '망국적 지역감정 해소'엔 별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30년 정치인생을 희생할 생각도 없었다. 그는 그저 자기 똘만이들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당시 정권을 잡은 여당으로 당적을 옮긴 것뿐이다. 오히려 영남정치인인 그를 포용하여, '망국적 영남지역주의'를 해소하려는 김대중과 국민회의의 눈물겨운 노력이 있었을 뿐이다. 그에 대해 부산사람들이 뭐라고 평했다고? '기껏 뽑아줬더니 '김대중 당'으로 옮긴다'며 비난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그의 '정치생명은 끝났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한다. 

이게 우리사회가 말하는 '망국적 지역감정'이라는 가면을 쓴 '영남지역주의, 패권주의'의 실체다. 반김대중, 반민주당, 반호남... 이런 지경이지만 우리 사회는 한번도 그 실체 앞에 당당하게 맞서지 않는다. 조선일보의 박지향과 같은 쓰레기 지식인들의 펜을 빌어 반김대중 반민주당 반호남을 부추기고, 국가부도 사태 앞에서도 오직 '김영삼'의 똘만이였던, '망국적 지역감정'이라는 양비론을 들고 자신의 똘만이들의 정치생명을 연장시키려 했던 정치인인 서석재에게 '정치신사'라는 찬사를 보내는 부산일보 같은 언론들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안타까움에 보답하여 서석재는 1년이 좀 지나 총무처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또 오뚝이 정치인 서석재를 회고하는 부분에 이르러선 할말을 잃게 만든다. 상대후보를 매수하는 부정선거의 주범이 유죄판결을 받고 나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뻔뻔함, 그런 사람을 당선시켜주는 부산시민들. 참, 끝내주는 인정이고 의리요 정의감이다. 서석재의 말실수(?)로 터진 비자금 사건에 이르러선 헛웃음만 나올뿐이다. 서석재에 대한 평가에서 이 비자금 사건 '폭로'는 우리사회의 중요한 진보를 가져온 '업적'으로 회자됨과 동시에, 이 어이없는 '폭로'로 낙마한 그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글들과 김용철의 폭로에 대한 평가를 비교해보자. 우리사회가 얼마나 개같은지, 쓰레기 같은지 알 수 있다. 

서석재는 2002년 대선 즈음에선 정몽준의 국민통합 21로 다시 옮겨가지만, 노빠들 친노들 누구도 이런 서석재를 동교동계 후단협처럼 비난하지 않는다. '망국적 지역감정'을 해소하겠다며 나선 노무현에 맞서 '30년 정치생명을 걸고 망국적 지역감정을 해소'를 위해, '김대중 당'으로 당적을 옮겼다는 서석재가 정몽준의 캠프로 날아갔지만, 우리사회의 '망국적 지역감정'을 말하며 반김대중, 반민주당, 반호남을 말하고,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자고 악다구니를 쓰는 김영삼의 자식들 중 누구도 서석재의 이런 행태를 비난하진 않는다. 그는 온화하고 의리있는 '정치신사'일 뿐이다. 

서석재를 보면서 나는 문재인이 떠올랐다. 서석재는 '정치신사'라 상찬하고, 문재인 '선비'라 상찬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쏟아지는 찬사들은 양아치들 사이에서나 존경받을 법한 '의리'와 '영남(부산경남)'을 위한, 영남에 의한 정치만이 존재할 뿐이지만, 이런 쓰레기들마저 포용해 부총재의 자리까지 안겨주며, 정말로 망국적인 '호남차별'과 '호남고립'을 벗어나고자 몸부림 쳤던 김대중은 지역감정의 최대 수혜자요, 지역감정의 원인제공자, 지역감정의 원흉일뿐이다. 그리고 그런 김대중의 흔적이 있는 당은 영원히 '호남당'일 뿐이다. 우리사회의 '망국적 지역감정'을 없애자며 반김대중, 반민주당, 반호남 정서를 유포하는 김영삼의 자식들은 김영삼의 자식들인 영남출신에게는 관대하지만 영남출신이 아닌 정치인엔 한없이 집요하고 잔인한 낙인을 찍는다. 

위선적 '망국적 지역주의' 철폐론자들... '영남'개혁세력을 입에 담는 김영삼의 자식들. 당신들이야 말로 진짜 '영남' 지역주의자들 아닌가. 이제 그 가면을 벗자. 더 이상 속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