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0년 전만 해도 한국은 국민 소득이 아프리카 빈곤국 수준인 후진국이었습니다. 반세기 만에 경천동지할 문명의 격변을 겪은건데, 그래서 지역차별의 문제를 100년, 200년, 심지어 1000년 전으로 소급해 논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전근대에서 근대, 현대로 넘어가는 50년이 과거의 500년보다 중요합니다. 호남 차별 문헌이 끊임없이 발굴되고 논해지는 이유는 50년 단위의 지역차별 문제를 500년 단위의 까마득한 역사적 문제로 소급함으로서 그 정치사회적 맥락을 은폐하기 위함이죠.

여기에 대해서는 세가지 대응방안이 있는데, 하나는 같은 방식으로 영남 차별의 역사적 연원을 발굴하고 퍼트리는 겁니다. "경상도는 임진왜란 당시 왜구와 피가 섞이고... 영조는 영남토벌비를 세워서 어쩌고 저쩌고... 이순신 장군도 약무호남을 말하며 호남을 추켜세웠는데..."하는 거죠. 문제는 역사 환원론이란건 대체로 현실의 차별을 은폐하기 위한 보수적 기획이지, 현실의 모순을 타개 하기 위한 진보적 기획(?)과는 친화성이 별로 없다는 겁니다. 약자가 강자의 전략을 함부로 쓰다가는 역공 당하기 딱 좋죠. 이런 논리가 최종 도달하는 지점은 대개 반호남 인종주의의 정확한 거울상인 "반영남 인종주의"인데, 현실적으로 힘이 없는 호남이 반영남 인종주의를 가져봤자 소용이 없습니다. 결국 대한민국을 뜨자는 포기론이나 영남을 박살내자는 테러의 논리로 전유될 공산이 큽니다.

또 하나는 근대 계몽사상의 이성주의적 관점에서 역사환원론을 비판하는 겁니다. 정치사회적 맥락을 일정부분 거세하고 역사환원론의 파시즘적, 보수적 부분을 논리적으로 공박하는건데, 지금 진중권이 트위터에서 박지향을 까는 모습이라고 할수 있겠죠. 이 전략은 역사환원론에 대해 이성적 제3자가 취할수 있는 가장 정확하고 균형잡힌 자세라고 할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현실의 영남 패권에 대한 자각과 인식으로 발전되지 않을때의 위험성입니다. 피해자 호남만을 특정하는 담론에서 영남은 결국 은폐되는 거거든요. 진중권의 결론도 "박지향이 개섀끼"라는, 맥락이 결여된 일종의 성품론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진중권은 영남 PD적 관점의 강력한 지역주의 양비론을 견지하며 호남 정치를 폄하해온 인물입니다. 계몽주의적인 역사환원론 비판이란 대개 현실의 힘의 관계를 건드리지 않는 책상위의 논리 조작으로 끝날 공산이 큽니다.

마지막으로는 역사환원론을 그냥 쌩까고 현실 정치에서 영남 지역주의를 타격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것이라고 할수 있겠죠. 역사환원론을 붙들어 봤자 "영남것들은 왜구"라는 퇴행적 인종주의, 혹은 "박지향 개인이 미친놈"이라는 허무한 결론 이상으로 발전이 안됩니다. 역사환원론의 현실적 토대인 "영남 패권"을 겨냥할때 비로소 역사환원론은 거세될수 있는거죠. 더 구체적으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싸우면서 영남의 특혜를 제거하는게 되겠군요. 그런데 아마 진중권은 현실의 호남 정당이 현실의 힘의 관계를 재정립 할때 앞장서서 반대할겁니다. 진중권 같은 사이비에 속아서는 안되는 이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