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신학자인 오강남 박사에 의하여 씌여진 예수는 없다이후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나오고 다빈치 코드등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저서들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출판물은 보고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에 의하여 널리 퍼지고 진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 모든 책들은 한마디로 근거가 없으며 허접한 책이다.

먼저 예수는 없다는 이미 20세기 신학자들에 의하여 논파된 19세기 불투만 쉬트라우스 슈바이쳐의 신학을 가지고 주장한 것에 불과하다.

예수는 없다라는 책은 겨우 60-70 페이지 정도 그것도 제한된 분야에 대해서만 예수를 논하고 있으면서도 예수는 없다라고 주장한다.

 

불트만류의 19세기 예수 연구가 이미 폐기된 이론이라는 사실은 시카고 트리분 지의 신문기자였던 리 스토로벨(Lee Strobel)이 쓴 [예수 사건](두란노, 2000)을 읽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인구조사 영아학살등에 대한 자세한 역사적 기록에 대한 연구가 기술되어 있다.

그래도 부족하면, 아주 최근의 예수 연구의 결정판인 타이센과 메르츠의 공저 [역사적 예수](다산글방, 2001)를 읽으면 확인 사살이 가능할 것이다.

 

18세기 이후로 성서의 상호 모순된 기록을 역사적 비진정성의 근거로 주장하였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성서의 경우처럼 그 세부적인 모순이야말로 그 사건 자체를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관점에서 기술한 것이므로 그 역사적 진정성이 더욱 확실한 근거로 해석하게 되었다. 날조된 역사일수록 그 내용이 일사불란하다는 문서비평의 결과인 것이다.

 

예수는 오시리스 신화의 표절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예수의 역사적 생애는 오시리스 신화와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수의 생애와 고대 이집트의 신화적인 인물 오시리스(Osiris)의 생애가 여러 면에서 유사하다는 이유로 예수를 오시리스와 같은 신화적인 인물이라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형태적 유사성만 부각하여 본질적인 상이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궤변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의하면 오시리스는 땅의 신 게브(Geb)와 하늘의 신 누트(Nut)의 아들로 누이동생 이시스(Isis)와 결혼하였는데 후에 형의 지위를 노린 아우 세트(Seth)에게 살해되고 그의 시신은 14조각으로 토막나 온 나라에 흩어져버린다. 이시스는 그 시체 조각을 다시 찾아 맞추어 최초의 미라를 만들고 그의 성기(性器)를 살려내어 관계하여 아들 호루스(Horus)를 낳았다.

 

그리고 오시리스의 소생을 위한 의식을 거행한 결과 그가 소생하여 죽은 자들의 사후 세계의 왕이 되고 호루스는 산 자들을 통치하는 현세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종교학자 R 내시는 오시리스 재생 신화와 예수의 부활 신앙을 비교해보면 다음과 같은 분명한 차이점이 드러난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죽는다는 점 자신에게 속한 사람들을 위해 죽는다는 점 단 한번의 죽음이지 반복된 죽음이 아니라는 점 역사적 실제사건으로 처형당해 죽는다는 점 자발적인 죽음이었다는 점 그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였다는 점이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위 오시리스 신화와 예수의 탄생 활동 죽음이 전혀 비슷한점이 없다.

저 둘의 이야기가 비숫하고 표절이라면 아마 세상의 모든 저작물이나 가요등은 표절이 될 것이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근거는 서기 70년을 전후하여 예수의 역사적 생애를 기록한 4복음서 외에도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가 서기 7679년 사이에 쓴 유대고대사유대전쟁사나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서기 55/56120년쯤)가 쓴 연대기에서도 유대 총독 빌라도에 의해 나사렛 사람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당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서기 170년께 헬라의 풍자 작가인 루시안도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현자(賢者)”라고 기록하고 있다.


나그함마디 문서와 영지주의

 

1946년 나그 함마디에서 발굴된 영지주의자들의 문서들을 인용하면서 예수는 고통을 겪지도,피를 흘리지도,죽지도 않았으며 따라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것이 아니라고 적고 있다. 특히 영지주의 문서인 빌립 복음서에 기록된 먼저 죽고난 다음에 다시 살아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틀렸다죽고 나서 부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부활해야만 한다는 영적 부활론을 기독교의 본래적인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저명한 신학자인 몰트만은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한국신학연구소?1979)이라는 책에서 고대 그리스의 미스터리아 신앙과 영지주의의 신관과 성서의 하나님 신관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명쾌하게 제시하였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타나는 신은 고난과 죽음을 겪지 않는 무감정의 신’(God of Apathos)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하감하시고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고난당하는 백성과 함께 하시는 인정이 많으신 하나님’(God of Pathos)이다.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시므로 그 고난과 죽음을 극복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부활신앙이 아닌 기독교 신앙은 기독교적인 것도 아니고 감히 신앙이라고 일컬을 수도 없다고 단언하였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테라의 사생아이다?

 

이 주장은 예수가 아버지인 로마병사 판테라와 마리아 사이의 사생아일 확률이 높다는 켈수스(Celsus)의 주장에서 출발한다.

헬라 철학자 켈수스는 최초의 안티 기독교 서적인 참 진리(178)에서 예수가 간통으로 태어났는데 이를 감추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한 것처럼 꾸민 것이라고 하였다.(96)

그러나 켈수스의 이러한 가설은 이미 초대 교부인 오리겐의 켈수스 반박(247년경)이라는 책을 통해 알려진 것이고 낱낱이 반박된 낡은 주장이다.

성서신학자 부루스와 클라우스너는 로마 군인 판테라’(Panthera)처녀를 의미하는 헬라어 파르테노스(parthenos)의 와전(訛傳)이라고 한다.

처녀(parthenos)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리니”(1:23)라는 말씀에서 유래한 파르테노스(동정녀)의 아들이라는 표현에서 rn의 위치를 바꾸어 판테라(Panthera)의 아들로 변조되었다.3)

 

그리고 라틴어 판테라(Panthera)는 표범을 뜻하며(표범의 學名이기도 하다), 당시 로마 군인에게는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로마군인 판테라의 아들로 변조되었고 그래서 사생아설로 증폭된 것이다.

 

또한 예수가 사생아라는 책의 주장은 각각의 주장이 서로 모순되어 그냥 여러마리 참새에게 돌을 던지면 맞은넘이 내가 겨눈넘이 된다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당시 유대지방에서 사생아에 대한 관습을 보면 사생아 출신인 예수가

감히 선지자 행세를 하고 다닐수가 없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로마병사의 사생아라면 이미 마리아가 예수를 출산하기전에 돌맞아 죽거나 고향인 나사렛으로 돌아가 살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