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다른 나라들을 다녀보니 비행기가 공항에 무사히 착륙하면 승객들은 별로 오래 기다리지 않고 주섬주섬 짐을 챙겨들고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타고 간 비행기는 모스크바 공항에 내린 뒤에도 당장 승객들을 내려주지 않았다. 아마 30분 가량은 그렇게 비행기 안에서 대기했던 것 같다. 다른 승객들도 거기에 익숙해진 듯 누구도 별다른 불평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경험이 없었기에 별로 이상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창밖만 부지런히 구경했다.

창밖에는 크고작은 비행기들이 여기저기 서있었다. 그때 나는 아마 러시아 알파벳을 띄엄띄엄 읽을 정도는 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밖에 서있는 비행기들의 동체에는 '아에로플로트'라고 쓰여 있었다. A사장이 내게 일러주었다.

"아에로플로트가 그냥 항공사라고 알고 있죠? 그런데 실은 저 회사가 항공기 제작도 하는 회사에요."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얘기였고, 신기했다. 그런데 지금도 아에로플로트가 항공기 제작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 내가 그때 타고 간 것은 '자랑스러운 국적기' 대한항공이었다. 나는 가져간 카메라로 창밖의 아에로플로트 항공기를 찍어보려 했지만, 카메라 렌즈 초점이 창밖의 비행기가아닌 창문 유리 자체에 맺혀지는 바람에 결국 촬영에는 실패했다.

비행기 트랩을 내리기 전에 A사장은 일행들에게 쏘련에서 주의해야 할 것을 몇가지 간략하게, 하지만 매우 강한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그 중 기억나는 것은 "쏘련이 아직도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것이었다.

"요즘 한국 사람들이 쏘련에 많이 오가고 쏘련 사람들이 잘해주고 그러니까 긴장이 풀려서 한국이나 미국에서 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조심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여전히 공산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나라에요. 우리나라에서처럼 공산주의를 비난하거나 쏘련 체제를 비하하는 발언은 절대 하지 마세요."

A사장에 의하면 한국의 기업인들 가운데 쏘련에 와서 경험하는 몇 가지 부정적인 경험을 근거로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 자신있게 씹어대는 이야기를 쏘련 사람들에게 했다가 곤욕을 치르는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로서야 그 반대의 우려 즉, 사회주의 종주국에 와서 너무 사회주의 체제를 고무 찬양하다가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해꼬지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크다고 봐야 했지만 아무튼 A사장의 경고는 긴장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A사장은 아마 "공항에 있는 군인들 사진도 찍지 마라"고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분명치는 않다.

아무튼 좀 지루한 기다림 끝에 트랩을 내려 모스크바공항 구내로 들어갔을 때 비로소 "사회주의 국가에 왔구나"하는 느낌을 주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젊은 군인들의 모습이었다.

나라의 관문이랄 수 있는 국제공항에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여기저기 서 있는 모습도 어딘지 위압적으로 느껴졌지만, 그 옷차림이나 얼굴 표정도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공항에 군인들을 근무시키려면 단정하고 근엄한 모습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모스크바 공항에 있는 러시아 군인들은 무척 어려보이는 인상에 옷차림도 삐딱했고, 마치 상의가 바지 허리춤 밖으로 삐져나온 듯한(실제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습이었다. 게다가 얼굴 표정은 마치 우리나라 유흥가 뒷골목에서 쉽게 봄직한, 불량스러운 느낌이었다.

저런 불량스러운 태도가 사회주의 특유의 강철같은 질서와 결합하면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이것은 실제 사회주의 국가인 쏘련에 와서 내가 처음으로 느낀 현실적인 공포였다. 이념의 희생물이 아니라 무질서의 희생물로 잡혀가서 이념의 희생물이라는 명찰을 달고 몇년 또는 몇십년 고스란히 삶을 망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닐 것 같다는 공포심이 다가왔다.

선경의 C차장이 내게 속삭였다.

"쏘련 남자애들은 인상이 모두 KGB 같고, 쏘련 여자애들은 표정이 모두 인터걸 같다더니 정말 그러네요."

A사장이 들었다면 별로 좋은 말이 나오지 않았겠지만 다행히 C차장은 나보다 더 눈치가 빨라서 조용히 소근거렸을 뿐이었다.

입국 수속을 하는 사람도 여자 군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인상은 공항을 어슬렁거리는 어린 남자 군인들보다 차갑고 냉철해보였다. 하지만 불쾌한 인상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그 눈길이 어딘지 나를 살피는듯한, 꿰뚫어보는 것 같았던 기억이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디알로그 사에서 사람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우리는 짐을 모두 차에 옮겨 싣고 모스크바를 향해 출발했다.

당시 우리나라에도 김포공항 외에 지방에 공항들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스크바에 공항이 두 개 있다는 사실은 그때 처음 들었다. 아마 지금 인천과 김포공항처럼 국제용과 국내용으로 나누어 사용했던 모양이다.

공항에서 모스크바까지는 승용차로 30분 이상 걸렸다. 차량이 그다지 붐비는 편이 아니어서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달렸던 것을 고려하면 최소한 서울과 김포 이상의 거리였던 것 같다.

인상적인 것은 모스크바까지 가는 길 주위의 풍경이었다. 띄엄띄엄 인가가 눈에 뜨일뿐, 거의 대부분 무성한 자작나무 숲이 이어졌다. 농경지나 들판이 아니라, 키가 십여 미터 이상 되는 자작나무 숲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대도시 교외가 아니라 머나먼 들판의 숲속을 달리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몇 년 전에 모스크바를 다녀왔다는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모스크바도 이제 공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그 숲들이 모두 사라지고 주택이나 건물들이 들어섰다고 한다.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서자 길가 양쪽의 건물들은 서울의 길거리 또는 기타 영화 등에서 봤던 서양의 그것에 비해 훨씬 허름하게 보였다. 낡고 우중충했다. 중심가는 다니는 차량도 많았고 그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도 심한 것으로 보였다. 차도가 무척 넓은데도 차선이 제대로 그어져 있지 않았다. 신기해 하는 나에게 A사장은 "그래도 저렇게 오래 살아서 그런지 별로 교통혼잡은 없는 편"이라고 일러주었다.

우리는 디알로그 직원의 안내로 먼저 숙소에 가서 짐을 꾸렸다. 그런데, 이 숙소가 또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당연히 호텔 정도를 예약했을 것으로 짐작했던 나를 그들은 전혀 뜻밖의 건물로 안내했다. 처음에는 무슨 학교 기숙사 건물인 줄 알았다. 주위에 나무들이 우거진, 낡은 2층 벽돌 건물이었다.

안내를 받아 2층 방으로 들어서니 우선 높은 천장이 눈에 띄었다. 그때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이후에도 나는 두번 다시 그렇게 높은 천장의 방에서 잠을 자본 적이 없다. 물론 호텔의 연회장 등은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천장도 많다. 하지만 보통 숙박시설의 객실 천장이 그렇게 높다니... 우리나라 보통 건물의 2개 층을 털어서 만든 듯한 느낌이었다. 천장을 보려면 고개를 뒤로 젖혀야 할 정도였다.

왜 이렇게 쓸데없이 천장을 높게 만들었을까 하는 내 의문에는 B이사가 대답해주었다.

"잘은 모르지만 원래 고급 건축물일수록 천장이 높다고 하더군요. 저게 실은 건축비도 훨씬 많이 들고 기술적으로도 어렵대요. 그리고, 천장이 높은 방이 훨씬 쾌적하답니다."

듣고 보니 그럼직도 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높은 천장에는 열대지방의 건물 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풍기처럼 생겨서 천천히 돌아가는 환풍기(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가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급 기술과 비싼 비용을 들였을 것으로 짐작되는 고급 객실의 기타 시설은 허술했다. 바닥에 깔린 것은 분명 양탄자(카펫트)는 양탄자일 텐데, 얼핏 보기에는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 한켠에 켜켜이 쌓아놓고 파는 캐시미어 이불의 무늬를 연상시켰고, 의자나 탁자도 어딘지 아귀가 맞지 않아 삐걱대는 느낌이었다. 실은, 그냥 느낌일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조금씩 삐걱거렸다.

그 객실은 2개의 별도 객실과 하나의 거실로 구성돼 있었다. 2개의 객실에는 욕실도 하나씩 딸려 있었다. 구성만으로 보자면 우리나라 고급호텔의 스위트룸이라고 할 만 했다. 다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렇게 고급스러운 느낌을 갖기는 어려웠다.

알고보니 그 시설은 노동자용 숙소였다. 우리가 갔던 무렵은 쏘련에서도 휴가철이었다. 쏘련의 경우 휴가철이 되면 모스크바 노동자들은 멀리 시골로 휴가를 떠나고, 시골의 노동자들은 모스크바로 휴가 여행을 온다는 얘기였다. 우리 일행이 머물게 된 숙소는 그렇게 시골에서 올라온 노동자들이 모스크바에 머물도록 만들어 제공하는, 노동자용 숙박시설이었던 것이다.

A사장은 아무래도 일행에게 미안한 듯, 변명처럼 얘기했다.

"쏘련에 와서 비까번쩍한 서양식 호텔에 머무는 것보다는 이런 곳에 머무는 것이 더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서 제가 그냥 이곳이 좋다고 했습니다."

사실 그의 배려가 아니더라도 나로서는 반가운 결과였다. 비싼 호텔방이야 언제든 돈만 내면 이용할 수 있지만, 쏘련의 이런 시설은 이렇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내가 결코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나로서는 이런 곳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사실 우리 일행을 초대한 것이 국영 소프트웨어 업체인 디알로그 사였기 때문에 이런 시설을 얻을 수 있었고, 외국인이 이런 곳에 숙박하는 것은 원래 허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도 나중에 들었다.

아무튼 결코, 고급스러운 시설은 아니었다. 호텔메이드 역시 고급호텔 직원들의 세련된 느낌과는 거리가 있는, 둥그런 몸집의 중년 아주머니였다. 이 아주머니는 우리 일행을 볼 때마다 싱긋싱긋 웃어보이기는 했지만 고객 감동을 목적으로 우리에게 자발적인 친절을 베풀어줄 의향은 전혀 없어 보였다.

우리 일행은 방에 대충 짐을 풀어놓고 좀 쉬다가 그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쏘련에서 처음 먹어보는 식사. 메뉴는 소박 소탈 그 자체였다. 갈색빵과 베이컨, 그리고 순대 비슷한 음식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게 정말 순대였는지 소시지였는지, 기억이 아슴푸레하다. 나로서는 그냥 먹을 만했고, 별로 불만이 없었다. 쏘련에 머무는 동안 나는 쏘련 사람들이 자기 나라 음식에 대해 갖는 불만을 여러차례 들을 기회가 있었고, 그때마다 이 사람들이 뭔가 착각하는 건지 아니면 내가 뭔가 오해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는 경험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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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숙소의 식당 벽 메뉴(판인 듯) 옆에 나란히 걸려 있는 레닌 사진. 당시에는 신기하고 대견해서 찍었습니다. 하긴, 요즘은 모스크바에서도 레닌 사진 보기 어렵게 된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촌스러운 느낌의 벽지나 벽의 마감 등에서 제가 말한 숙박시설의 분위기를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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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역시 숙소 식당 벽에 붙어있던 노동자들의 생활 사진. 혁명전쟁과 2차세계대전 당시의 사진도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는 나와있지 않군요.



저녁을 먹고 우리는 다시 차를 타고 디알로그 사 사옥으로 이동했다. 멀리에서 온 우리를 위해 파티를 준비했다는 얘기였다. 디알로그 본사에서는 20여 명의 직원들이 넓은 강당에 테이블과 음식, 술병을 벌여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어도 잘 안 되는 내가 그들과 무슨 대화를 제대로 나눴을 리는 없다. 아무튼 나도 소개를 받았고 여러 사람이 인사말을 했고, 또 많은 사람이 다가와서 다정하게 악수도 하고 껴안기도 했다. 하지만 나야 뭐 그다지 편한 자리는 아니었다. 차라리 술이나 열심히 마시는 게 나로서는 제일 편한 행동일 수밖에... 하지만 술로 이 친구들을 상대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전략이었다.

거의 논스톱으로 술잔을 비우는 친구들 덕분에 나도 꽤 빨리 취했던 것 같다. 고래처럼 마신다는 표현은 좀 과장이라 해도 아무튼 강철같은 체력이라는 느낌은 들었다. 게다가 쏘련 친구들은 원래 주당으로서의 자세가 몸에 배인 듯, 술자리가 무르익자 어떤 친구가 기타를 들고 나왔고, 노래가 이어졌다. 거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자 춤판이 벌어졌다. 동구권 민족들이 즐기는 그런 춤, 그러니까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빙글빙글 돌고 또 한쪽 방향으로 마치 군인들처럼 착착착 발길질을 하며 걸어가다가 갑자기 방향을 홱 바꿔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민속춤 가까운 형태였다. 뭐라고 그 이름을 들은 적도 있을 텐데, 아무튼 그 이름이 뭔지는 중요치 않았다.

나는 원래 춤이니 뭐니 하는 것에 질색인 편이지만 쏘련 친구들이 억지로 끌고 나가는 바람에 그 부자연스러운 동작을 선보여야 했다.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고, 박수를 쳐대는 그 분위기에서 더 이상 사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A사장이 또 "뭘 그리 뺍니까?" 이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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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디알로그 사 강당에서 가졌던 파티 장면입니다. 이제 보니 이 친구들 별로 안주도 없이 깡술 먹었던 것 아닌가 싶네요... 제 기억에는 제법 잘 먹었던 것 같은데, 사진에는 그냥 깡술 파티 같은 모습이군요...ㅎㅎㅎ 얼굴이 그대로 나오는데 설마 초상권 주장하는 친구는 없겠죠? 20년 전인데... 은퇴한 사람이 꽤 많을 것 같기도 하구요. 쩝~



아마 12시 넘어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던 것 같다. 나는 나중에 그 자리에서 그냥 잠이 들어서 디알로그 사 직원 하나가 나를 업고 숙소까지 데려다준 것으로 들었다.

아, 하나 신기했던 게 있었다. 술자리를 시작한 것이 저녁 8시가 훨씬 넘은 시간인데도 바깥이 훤했던 것이다. 신기해하는 나에게 A사장이 일러주었다.

"D기자, 백야라고 몰라요?"

이런, 설마 내가 백야를 모를까. A사장에게 나는 졸라 무식한 기자로 포지셔닝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어쨌든 백야였다. 백야라니,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쏘련이었구나. 더 신기했던 것은 저녁 10시가 넘어가자 어느 한 순간에, 어스름 황혼이니 뭐니 하는 중간 형태 없이 순식간에 마치 검은 보자기를 덮어씌우듯 천지에 어둠이 내려덮이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순간, 천지가 한꺼번에 어두워지는 그 순간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쏘련에 있는 내내 그랬던 것 같다.

1991년 7월, 쏘련, 모스크바의 첫날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