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 원인으로 과도한 경쟁과 학습강도가 지목되었고 카이스트가 실시하는 차등 등록금제, 상대평가제, 영어수업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서남표 총장과 카이스트의 개혁이 세론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죠.

그런데 저는 여론과 언론, 특히 진보진영에서 이번 사태를 두고 카이스트를 비난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못합니다. 근본적으로 그 비난이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것보다도 비난이나 비판이 구체성이 없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말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것에 더 문제를 느끼고 있습니다. 총론에서는 원칙, 정서, 창의력, 인간성, 배려, 소양 등 좋은 말들이 난무하지만, 정작 구체적인 방법론에 들어가 실천방안에 대해 논의하려고 하거나, 비난 대상이 되었던 카이스트 제도가 실질적으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물으면 꿀먹은 벙어리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좀 더 생산적인 토론을 위해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카이스트제도들에 대해 여러분들의 구체적인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1. 경쟁의 정도와 학습 강도

여러분들은 학생들의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카이스트가 학생들을 과도한 경쟁으로 내몰았던 것으로 꼽고 있습니다. 저도 자살의 배경에 경쟁과 학습강도에 따른 부담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카이스트의 경쟁과 학습강도가 카이스트 학생들이 극복하거나 수용하기 힘들 정도의 수준이었냐는 것입니다. 이것을 객관화시키기는 무리이지만,  해외 대학의 사례나 국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비교해 보도록 하겟습니다.

프랑스 대학과 MIT 등 해외 유수 대학의 학생들이 겪는 경쟁의 정도와 학습강도에 비해 카이스트 학생들이 느끼는 부담이 커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국내 의과대학생들의 학습량과 강도에 비해 카이스트가 높다고 생각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들은 프랑스 대학이나 MIT 등 해외 유수 대학, 그리고 국내 의과대학들의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해외 유수 대학생들이나 국내의 의과생들의 자살도 심심치 않게 보도됩니다. 자살사건이 날 때마다 이들 대학들이 학습량을 줄이거나 제도를 손본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카이스트가 이들 대학들 보다 못한 경쟁과 학습강도를 주었는데도 비난할 수 있을까요? 카이스트는 이들 대학보다 못한 경쟁과 학습강도로 학생들을 교육시켜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2. 차등 등록금제

카이스트의 차등 등록금제는 앞서의 글에서도 이공계 장학금제도보다 실질적으로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유리한 제도임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일정 평점(평점 3.0)을 기준으로 하는 폐해인 All or Nothing의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경계선상의 학생들을 구제하는 합리적 제도임도 설명하였구요. 언론들이 “징벌적” 등록금제로 딱지 붙이기를 했지만, 실질적으로 Positive한 장학금제도이며, 그 수혜 대상도 늘려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비난하는 차등 등록금제가 여타 대학에서 실시하는 장학제도와 비교하여 비합리적이거나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하면 그 근거를 제시해 보십시오.

카이스트 학생들은 졸업후에도 국가(사회)로부터 아무런 의무도 부과 받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만 성적과 무관하게 전액 학비를 면제해 주어야 하는 것일까요? 일반 대학 이공계 학생 중에는 학비를 벌기 위해 하루 6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하고, 방학 때도 노가다를 뛰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르바이트로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 학점이 좋지 않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상황으로 내몰려 그 좌절감이 더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카이스트 학생들은 공부만 열심히 해도 등록금은 해결할 수 있는 특혜를 받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성적과 무관하게 전액 학비를 지원한다면 일반 대학의 이공계 대학생과의 형평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여러분께서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성적과 무관하게 등록금 전액을 지원해야 한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시오.


3. 상대평가제

카이스트가 상대평가를 실시하는 이상, 3.0 이하를 받는 학생은 나올 수밖에 없고 이들은 차등 등록금을 내어야 한다고 여러분들은 비난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 대학에서 벌어지는 실상을 보십시오. 절대평가로 인해 학점 인플레가 만연하고, 이것을 이용해 이공계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이 쉽게 계속 장학금 수혜를 받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이공계 장학생에 미선발된 학생들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장학제도의 취지와 목적이 훼손되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구요.

카이스트가 상대평가를 실시하는 것은 카이스트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 대부분의 학생들의 성적(실력)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오지 않고 A, B, C 등급간에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상대평가 효과로 대부분 학생들이 학교가 요구하는 수준까지 올라온다면 학교(교수)측은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비중을 높이게 될 것입니다. 이 판단은 전적으로 학교(학생과 교수)에서 할 것이며, 우리는 이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카이스트의 상대평가가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입니까? 아니면 우리 나라 대학 현실에서 필요한 방식이며 교육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서울대가 절대평가로 A 학점을 50% 주는 것이 인간적이고 교육적이라고 아직도 생각하시는지요?


4. 영어수업

카이스트의 전면 영어수업은 조금 무리한 측면이 있고 수정, 보완할 사항이 있다는 것은 저도 지적했습니다. 하지만 그 방향 자체는 계속 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어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영어실력을 배양해 주는 방법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교양 영어로 끝 낼 수도 있고, 토플 등 영어 프로그램을 별도 개설할 수 있고, 아니면 가가자 알아서 영어학원에서 해결하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교수와 학생들이 따라와 준다면 영어로 수업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입니다. 아마 카이스트의 영어수업을 비난하는 분들도 영어수업 그 자체보다 카이스트 여건(학생과 교수의 영어실력)이 그것을 시도하기엔 무리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일정 부분 여기에 동의합니다. 만약 우리 나라 대학에서 아무리 학생과 교수들이 무리없이 영어수업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영어로 수업하는 것은 반대한다면 더 이상 저도 할 말은 없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나라에서 영어수업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대학은 카이스트, 포공 등 단과대학들입니다. 이들 학교 학생들이 영어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학생들의 실력이 균일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서울대도 현 여건에서는 학부에서 영어수업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단과대학별, 학과별로 학생들의 영어수준의 차이가 심하고, 학과 내에서도 농어촌 특별전형, 지균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사실 영어실력이 대체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효과적인 교육이 되기 힘듭니다. 카이스트는 무학과제도로 선발되기 때문에 학생들이 대체적으로 영어실력의 편차가 심하지 않아 다른 대학들보다 영어수업을 실시하기 용이합니다. (서울대가 아너스 프로그램인가를 만들어 최상위 그룹의 학생을 별도로 교육하는 제도를 검토한다고 하는데 아마 이 프로그램이 개설되면 영어수업을 시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영어수업은 당장은 다소의 무리가 있다고 하나, 앞으로 신입생들의 영어실력도 나아지고 교수들도 젊은 교수로 대체되거나 기존 교수들의 영어전달력과 발음도 향상되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금 카이스트의 영어수업의 장애는 학생보다는 사실 교수들의 영어전달력과 발음이 더 문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영어수업은 교수들이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실제 학생들의 설문조사에도 영어수업의 폐지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 수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상의 4가지 항목이 이번 카이스트의 문제점으로 지적된 사항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분들의 구체적인 반론을 기대합니다.



* 사족 : 저도 진보스럽게 보이고 싶고 원칙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나는 진보다고 선언한다고, 또는 총론에서 원칙, 평등과 배려를 주장한다고 해서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 실질적으로 무엇이 원칙적이며, 공정한 방식인지 살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며, 진보 뿐 아니라 보수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태도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