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공정 - 카이스트 사태를 보면서


카이스트 사태가 진정 국면을 맞으면서 대중들의 관심도 멀어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건과 관련하여 몇 차례에 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소위 진보진영으로부터 뭇매를 맞다시피 했습니다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글을 쓸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고, 각오도 했던 일이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제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과 심층적이고 세부적으로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래서 본 사태를 마무리도 할 겸, 못다한 이야기도 풀어 놓을 겸 마지막 글을 올립니다.


KAIST 서남표 총장을 위한 변명1

KAIST 서남표 총장을 위한 변명2

서남표 총장을 조금 더 변호하지요


저는 이번 사태를 경쟁과 공정의 관점에서 바라다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가 경쟁이 심해서 문제인지 공정하지 못해서 문제인지를 말입니다.

이 문제를 논하기 전에 저의 입장부터 먼저 밝혀야 하겠군요. 저는 기본적으로 시장경제주의자이며, 경쟁이 사회의 발전 동력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다만 경쟁에서 탈락한 자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을 요구하고 그들에게 패자부활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또 경쟁은 공정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참여자는 그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공정한 경쟁“을 지향하는 것이죠. 저는 우리 사회가 경쟁보다는 공정하지 못한 것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고, 소위 진보진영은 ”경쟁“ 그 자체가 문제인 것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이번 카이스트 사태도 이런 관점의 차이로 인해 저와 진보진영이 극명하게 대립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공정한 법의 집행이 최대의 복지이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이건희 일가의 상속문제, 재벌가의 폭행사건 등을 보면 여전히 이 사회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부조리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력과 능력 대신 지역과 학벌, 성별이 승진과 선발에서 막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무산 계층과 호남 출신인들, 그리고 여성들이 이러한 공정하지 못한 요소들에 의해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여러분들도 많이 목격했을 것입니다. 공무원 시험에 지방대 출신과 여성들이 많이 응시하는 이유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최근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도 경쟁의 공정성에 목말라함을 보여주는 것이고, 거꾸로 이야기하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정하지 못한가를 반증하는 것이겠죠.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를 주자 대중들이 강력하게 반발한 것도 공정한 룰을 깨는 것에 대한 분노입니다.


* 나는 가수다 사태와 관련한 필자의 글 - 이상과 일상의 괴리-" 나는 가수다"를 보고


사설이 길었습니다.

카이스트 사태와 공정/경쟁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반문하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이번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의 주범으로 차등등록금제와 상대평가제가 지목되었습니다. 이 제도들은 분명히 경쟁을 부추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공정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봅니다. 경쟁의 필요성은 학교(카이스트)가 판단하는 것이고, 그 판단에 따라 도입된 제도는 이미 입학 전에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고지가 된 상황이었지요. KAIST의 제도와 분위기를 사전에 파악 못했다면 그 책임을 카이스트에 물을 수 없다고 봅니다. KAIST의 제도 하에서는 평점 3.0 이하의 학생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이들은 차등 등록금을 내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도전해 볼만 하고 충분히 자기 자신이 경쟁해서 이겨낼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거나, 설사 차등 등록금을 납부하더라도 그것을 수용하면서 나름의 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카이스트를 지원해야 합니다. 카이스트도 이런 학생들의 지원을 바랐을 것이고, 이렇게 해야 우수한 자원이 확보되고, 이들의 실력을 배양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에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교수들의 자질과 능력이 학생들의 실력 향상에 절대적이라 판단하고 테뉴어 심사도 강화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카이스트 입장에서는 지리적 핸디캡(대전)과 과학고생들의 서울대 선호에 따른 우수 자원의 유출을 막고,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라고 봅니다. (만약 제가 카이스트 총장이라면 저도 이런 조치들을 취했을 것입니다.)

카이스트가 이 제도를 편법적으로 혹은 공정하지 못하게 운영했다면 비난받아야 하겠지만, 소급 적용을 한 것도 아니고, 성적 외의 다른 요소를 평가한 것도 아닌 이상 비판받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다만 입학사정관제로 뽑은 로봇 영재처럼 도저히 수업을 따라갈 수 없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지 않은 점은 비판받아야 하고 앞으로 시정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봅니다.

고인들과 유족들에게는 대단히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생각이 때문인지 저는 자살사건이 안타깝긴 했지만 솔직히 완전히 감정이입은 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의 일본의 쓰나미를 보고 감정이입이 되어 선뜻 성금을 송금했던 것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었지요.


카이스트가 과도한 경쟁으로 학생들을 내몰아 비극적인 사태를 맞았다는 여론과 언론의 분석에 제가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카이스트의 경쟁의 정도가 해외의 다른 대학에 비해 과도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대학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일정 비율의 학생을 탈락 혹은 유급을 시킵니다. 상대평가로 차등 등록제를 실시하는 카이스트보다도 프랑스 대학 학생들은 더 심한 경쟁에 노출되며, 탈락과 유급은 카이스트 학생의 차등 등록금보다 본인들에게는 훨씬 가혹하고 더 큰 좌절감을 줄 수 있습니다.

MIT도 수업의 강도나 학습량이 카이스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으며, 학점도 후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경쟁의 압박도 카이스트보다 못하다고 볼 수 없겠지요.

그렇다고 우리는 이들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가혹하게 한다거나 제도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카이스트의 새로운 제도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며, 그것을 우리(학생과 학부모, 교육관계자 등)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산적으로 유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카이스트가 운영하는 차등 등록금제와 상대평가제를 “공정”의 문제에서 한번 평가해 보겠습니다.

그 전에 “이공계 장학금”에 대해 먼저 알아보도록 하지요.

*국가 이공계 장학금제도

이 제도는 2003년에 우수한 학생들의 이공계 진학을 유도하기 위해 대학 입학시에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발하여 등록금(수업료+기성회비) 전액을 4년간(8개 학기) 지원하는 장학제도입니다. 계속 장학금을 받으려면 직전 학기의 성적이 3.5/4.5만점, 3.3/4.3만점(B+) 이상을 받아야 합니다. 선발인원은 수능성적 우수자 2,000명, 수시성적 우수자 1,000명, 이공계 전문대학(카이스트, 포공, 울산과기대, 광주기술원) 1,0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도 이 이공계 장학금의 수혜 대상이며 카이스트는 이 제도에 준하여 학생들에게 장학금(3.0 이상자 학비 면제)을 주게 되고 3.0 이하자에게는 기성회비 150만원에 0.01점당 6만원의 등록금을 부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카이스트(학생)이 다른 대학의 이공계 학생들보다 이공계 장학금 이외에 더 많은 특전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만약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형평성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하지만 재능이 있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여 등록금에 신경쓰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카이스트 설립 초기의 환경과는 지금은 많이 다릅니다. 카이스트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경제적인 수준이 일반 타대학의 이공계를 진학하는 학생들의 경제적 수준과 별반 다르지 않을 뿐아니라, 이런 학생들은 이미 이공계 장학제도로 해소를 하고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이공계 장학생으로 선발되면 등록금 외에 매학기 180만원을 생활보조금을 지급합니다. 학생(학부모)의 경제적인 문제로 카이스트가 모든 학생들에게 학비를 전액 면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은 명분이 없게 된 것이죠.

카이스트를 졸업하면 의무적으로 국가기관에 재직해야 하거나 일정한 성과를 산출해야 한다는 의무도 없습니다. 사관학교나 경찰대학은 국비로 지원하는 대신 일정기간의 의무복무기간이 있습니다. 하지만 카이스트는 아무런 조건이나 의무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카이스트 대학원을 진학하면 병역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집니다. 이런 측면에서도 카이스트 학생들이 성적과 관계없이 등록금을 전액 면제 받아야(면제해 주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카이스트도 이공계 장학금(제도)에 따라 학생들에게 학비 지원을 하면 되는 것이죠. 오히려 일정 성적(3.0) 이하가 되는 학생들에게도 일정한 장학금을 실제로 지급하는 것이 카이스트의 차등 등록금제도입니다. 차등 등록금제는 실질적으로 이공계 장학금제도보다도 카이스트 학생들에게는 전체적으로 유리한 제도입니다. 다만 2.0 이하의 학생들에게 국립대 등록금보다 과도하게 부과하는 것은 시정될 필요가 있겠지요.


다음은 카이스트의 상대평가제도를 보지요. (실제 카이스트는 100% 상대평가라기 보다 절대평가를 어느 정도 반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상대평가가 과연 교육에 도움이 되는지 이공계 장학제도의 취지를 살리는 평가방법으로 상대평가가 나은지, 절대평가가 나은지 살펴봅시다. 이공계 장학생 선발은 입학 당시에 수능성적과 수시전형 성적을 기준한다고 앞에서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장학생 선발 이후에 장학금 지급은 직전 학기 성적(B+ 이상)으로 계속 지급 여부를 결정하는데 이런 기준 설정 목적은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입니다. 장학생으로 일단 설발이 되면, 성적과 관계없이 무조건 4년간 지급한다면 학생들의 긴장도도 떨어지고, 장학금 지급의 의미가 상실될 뿐 아니라, 입학 당시 이공계 장학생으로 선발되지 못한 학생들에게 장학금 수혜 기회를 박탈하게 됩니다. 이공계 장학금 제도는 각 대학들이 입학 당시에 선발된 인원에서 성적이 나빠 탈락하게 되면 탈락한 인원 수만큼 미선발된 학생에게 기회를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공계 장학금제도의 취지와 목적을 살리려면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 어느 것이 현실적으로 유효하겠습니까? 왜 서울대학이 A학점 비율이 50% 정도 되는지 그 이유가 조금 알 것 같습니까? 서울대는 가장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이 지원함으로 이공계 장학생으로 선발되는 인원도 가장 많습니다. 이들에게 장학금 수혜 혜택을 계속 주려고 한다면 학교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국장학재단의 이공계 장학금 지급 규정을 충족해야 함으로 학점을 후하게 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대학 입장에서는 외부(한국장학재단, 이공계 장학금)로부터 장학금 혜택을 많이 받아야 내부 장학금을 미선발 학생에게 많이 줄 수 있다는 현실적 계산도 작용했겠지요. 물론 학생의 진로와 취업에 있어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학점 인플레가 발생하는 것도 있지만, 당장 재학중에도 학교나 학생의 입장에서 학점을 후하게 주고, 학점을 쉽고 높게 받는 방법을 강구할 이유가 있는 것이죠.

이공계 장학금에는 보다 더 열심히 하는 학생에게 추가의 지원금을 주는 제도도 있었습니다. 바로 교재 장학금인데요, A- 이상의 성적을 받는 학생은 등록금 외에 학기당 50만원의 교재 장학금을 지급했었지요. 그런데 이 교재장학금은 2010년부터 폐지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하는 학생들에게 Incentive를 제공하는 바람직한 제도인데 왜 한국장학재단이 이 제도를 없애버렸을까요? 그 이유는 제가 답하지 않겠습니다. 

자, 이제 절대평가의 문제가 눈에 보이십니까? 카이스트가 상대평가를 통해 이공계 장학제도의 취지를 공정하게 잘 실현한다고 이야기해야 될까요, 아니면 상대평가가 비인간적이고 비교육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서울대의 절대평가에 의한 학점 인플레가 인간적이고 교육적으로 보이시나요?


이번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사건을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지 않으면 자칫 엉뚱한 해결책으로 개악을 할 우려가 있습니다. 학생들의 자살에 차등 등록금제와 상대평가제, 그리고 영어수업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근원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고 봅니다.

자살한 학생들이 자기 고민을 털어놓을 동료나 선배가 없었다고 하는데, 이는 과도한 학습량으로 인해 학생들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것에도 연유하지만, 카이스트 특유의 무학과 무학년제도와 복수전공이 더 큰 이유라고 재학생들은 이야기합니다. 카이스트는 2학년 때까지 자기 전공 학과를 결정하지 않고 자기 진로에 대한 탐색기간을 줍니다. 이 기간 동안 자기의 적성에 맞는 전공이 무엇인지, 자기가 결정한 진로가 자기 생각한 바대로 문제가 없는지, 생각하지 못했지만 관심이 가는 분야가 있는지 등을 탐색하게 됩니다. 복수전공은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키고 학문의 융합, 통섭에 있어서도 도움이 됩니다. 카이스트는 복수전공을 용이하게 하고 또 권장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두 제도가 상기의 좋은 장점이 있는 반면에 학생들이 학과 소속감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학과의 동료, 선후배의 관계가 일반 대학과 다르고, 굳이 학과를 구분하고자 하는 생각도 없기 때문에 과 MT 등 학과 단위의 행사가 전무합니다. 이로 인해 학내에서 자기 고민을 쉽게 털어놓을 친구나 선후배가 많지 않게 되는 것이죠. 과학고 출신들은 그나마 고교 선후배가 있어 과학고 출신별로 어느 정도 선후배, 동료간의 모임도 있어 그나마 낫지만, 일반고나 전문계고 학생들은 고등학교 동료나 선후배가 없는 상태라 더 힘든 사정이 되지요. 이 부분은 고학년이나 대학원생을 멘토로, 저학년을 멘티로 하거나, 지도교수 담당제를 강화하고 카운슬러를 확충하는 등, 보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 하나 카이스트 학생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는 학교 주변 환경입니다. 미국의 MIT를 비롯한 명문대학들은 캠퍼스가 도시 내에 존재하여 주변에 편의, 위락시설들이 있어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풀 공간이 있습니다만, 대전 카이스트 주변은 외로이 떨어진 섬처럼 학생들이 카이스트 내에서 온종일 생활해야 합니다. 이런 주변 환경에서 무학과 제도로 인한 선후배, 동료도 적은데다 학습량은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고 성적은 생각대로 나오지 않게 되면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급기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는 것이죠. 주변 환경이야 카이스트가 어찌 할 수 없더라도 학내에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풀 공간을 인위적으로 조성해 주는 방법을 대학측에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자살한 학생들은 2009학번 이후의 2,3학년들입니다. 차등 등록금제가 2007학번부터 시행되었는데 자살자는 2009학번부터 발생했습니다. 2007학번이나 2008학번은 오히려 차등 등록금제의 존재 자체도 모르고 입학했을 수도 있어 어찌 보면 이들이 차등 등록금제의 충격이 더 컸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면 영어수업도 도입된 지 얼마되지 않아 2009년 이후 학번보다 영어수업에 준비도 덜 될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초기의 적용 대상자인 07학번과 08학번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 학생이 없는 반면, 그 이후 학번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런 점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이유들이 발견됩니다. 09학번 이후로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일반고와 전문계고 학생들의 입학생 수가 늘어나고, 차등 등록금제도 2009년에 납부방식이 변화되었습니다. 과학고 출신들은 고교 때부터 경쟁에 익숙해 있고, 수학, 과학 분야에서 심화, 선행학습이 되어 있는 반면, 일반고와 전문계고 출신은 이 점에서 불리하지요. 그리고 고교 동문들도 거의 없다시피 하구요.

2009년 이전에는 모든 학생들이 등록금(기성회비)를 일단 납부한 후에 나중에 학교에서 다시 돌려주는 형태였는데, 2009년부터 이 방식이 번거러워 직전 학기 성적에 따라 3.0 이상은 처음부터 등록금을 내지 않고, 그 이하의 성적에 대해서만 등록금을 차등 납부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입니다. 실질적인 내용면에서는 바뀐 것이 없는데 납부 방식이 바뀜에 따라 학생들의 인식이 바뀐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모든 학생들이 등록금을 내고 사후 환급받을 때는 차등 등록제가 외부에 표시가 나지 않았는데, 납부방식이 바뀌어 등록금을 내는 학생과 내지 않는 학생으로 드러나게 됨에 따라 두 그룹의 구분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차등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에게 심적 부담을 주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방식은 다소 번거럽더라도 예전의 방식으로 환원하는 것도 학교측이 한번 검토해 봄직하다 생각됩니다.


토론 프로그램이나 국회에서 카이스트가 학점 0.01점당 6만원의 차등 등록금을 부과하는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점당으로 금액을 계산하는 고스톱 판과 비유하면서 카이스트측의 쪼짠함을 조롱하고 교육철학이 결여되었다고 사뭇 배포 있고 근엄한 표정을 짓더군요. 저는 그 발언을 듣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무책임함을 느꼈습니다. 저는 카이스트의 방식이 훨씬 합리적이고 교육적이며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토론 패널이나 국회의원들 말처럼 3.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은 등록금 전액 지원, 그 미만은 장학금 혜택이 전무한 것으로 한다고 합시다. 이럴 경우 평점 3.00은 수혜를, 2.99는 아무런 수혜를 받지 못합니다. 단 0.01점 차이가 수혜 정도를 극명하게 갈라 놓지요. 전혀 무의미한 0.01점 차이로 인해 All or Nothing의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옳을까요? 2.99와 2.0은 엄청난 차이이지만 똑같은 금액의 등록금을 내고 3.00과 2.99는 0.01점 차이이지만 한쪽은 전액 장학금을, 한쪽은 등록금 전액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인 제도일까요?

예전의 무상급식과 관련한 제 글에서 제가 무상급식을 전면적으로 실시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선별급식은 기준점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문제를 야기한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선별급식 대상을 월소득 100만 이하의 가정의 학생으로 정한다면 101만원의 가정은 급식비를 내야 하고, 99만원의 가정은 급식비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101만원과 99만원의 가정은 어렵기는 마찬가지로 그 차이는 무의미한데 선별급식은 어쩔 수 없이 기준점을 정할 수밖에 없고 그 경계선상의 계층들이 수혜(?) 여부가 갈리데는 불합리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차등 등록금제도 이런 경계선상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개발된 것이고, 이것이 열공의 분위기 조성에도 좋고 더 교육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카이스트는 차등 등록금제와 상대평가 외에 초과학기 등록금 부과, 3과목 이상 재수강 금지, 중간고사 이후 수강 Drop 금지 등의 제도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 총학에서는 초과학기(9학기부터)에도 학비 지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무리한 요구이며 타당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공계 장학금 규정도 8개 학기만 지급하도록 되어 있으며, 초과학기에 대해 학비 지원을 하게 되면 다른 학생이나 교수들이 상대적 불이익을 받게되고, 학생들이 학점관리를 위해 재수강이나 수강과목을 적게 하는 편법을 쓸 여지를 주게 됩니다.

중간고사 이후 Drop 불허도 공정한 경쟁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상대평가를 기본으로 하는 이상, 중간에 Drop을 하게 되면 남은 학생들이 상대적인 피해를 보게 됩니다. 또 Drop이 인정되면 재수강과 초과학기 수학도 늘어나게 되는 문제도 생기게 되지요.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카이스트의 차등 등록금제, 초과학기 등록금 부과, 상대평가제, 3과목 이상 재수강 금지, 중간고사 이후 Drop 불허는 합리성과 타당성을 가졌을 뿐아니라 형평성과 공정성 제고 차원에서도 시행해야 하는 제도들입니다. 물론 이런 제도들이 카이스트 학생들 입장에서는 불리한 것들이긴 하지만 카이스트의 발전을 위한 조치들이며, 궁극적으로 학생 자신들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이번에는 짧게 쓸려고 했는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욕심 때문에 또 글이 길어졌습니다.  제가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구구절절히 사설을 늘어놓는 이유는 카이스트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른 해결방안이 제기되기를 바라며, 또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대학의 올바른 개혁방향도 진지하게 논의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4명의 학생과 1명의 교수가 자살로 아까운 생명을 잃었고, 수 주간 여론과 언론의 갑론을박으로 홍역을 치른 이번 사태가 아무런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 이건 본론과 관계없는 여담이지만, 학생이나 학부모가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 조건과 목적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지 거창하게 민족과 인류를 위한다거나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개인적인 선택들이 국가와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의 작동 메카니즘은 아니러컬하게도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적, 사회적 행위를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발전과 타인의 생활에 도움을 주게 된다는 것이죠. 우리가 풍성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농부들의 이해관계가 만든 것이지 농부들의 선의와 양심이 아니며,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생활의 편익을 얻는 것은 삼성이나 애플이 자기 이익을 추구한 결과이지 그들이 사회적 기여를 하겠다는 의지 때문이 아닙니다.

솔직하게 저도 제 자식들에게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일하라는 말을 하거나 강요하지 않습니다. 카이스트에 진학해도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앞세우기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 자기가 행복할 수 있는지를 우선하라고 합니다. 카이스트를 나와도 해외에서 활동하는 것이 자기를 위해 좋다면 의무감 때문에 일부러 국내로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 때문에 카이스트가 다른 이공대학처럼 특별한 특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왕 다른 대학보다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면 그것을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겠으나 그것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해도 불만을 가질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