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크게 붐이 일었던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정찬용 저)의 책내용과 비슷한 얘기를 하시네요. 

영어는 언어이고 언어는 공부하듯이 하는 게 아니라 갓난 아기가 언어를 배워가듯 네이티브가 사용하는 용례들을 충실히 따라해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영어사용의 감각을 익히는 것에만 주력해야하고, 지금과 같은 문법위주의 교육은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는 것, 고로 영어공부(=문법공부) 절대로 하지마라던 그 얘기..

책 보면 정말 그럴 듯 하게 들리고 또 그런 식으로 공부한 정찬용이 영어는 물론 독어도 네이티브 수준으로 정통했다고 하니, 다들 꺼뻑 넘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당연히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의 방법론 얘기가 자주 화제가 됐었죠. 한동안은 문법책 끼고 보는 구식공부하는 게 미친 짓으로 폄하되기 까지 했으니..ㅋㅋ

하지만 얼마안되서 그의 방법론 대로 해봐도 안되더라는 독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진짜)네이티브 수준의 영어고수들이 정찬용이 엉터리 영어를 구사한다고 공개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한참이 지난 후 웹검색을 하니 정찬용 사기꾼론 부터 해서 송사에 휘말렸다는 소식까지도 들려오던데..^^ 

뭐 정찬용의 말이 틀렸다기 보다는, 저는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얘기를 하고 싶네요. 

우리가 한국말 배울 때 문법같은 거 하나도 모르고도 잘만 배워서 읽고 쓰고 말하고 듣고 다 할 수 있으니, 영어도 한글 배워온 과정처럼 하면 된다는 것은 원론적으로야 맞는 말이죠. 그러니 문법에 매달리기 보다 실제로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언어사용환경에 노출되고, 그러면서 (왜?라고 문법적인 이유를 따져 묻기 이전의) 실제 네이티브들의 사용례 자체에 익숙해져 버리면 된다는 거..

그래서 문법책은 내버리고, 스스로 그런 환경부터 만들라고 조언하며 책과 테잎속에 그런 식의 공부를 유도하는 가상적인 상황을 만들어 줬던 그가 유명인사가 될 수 있었던 거겠죠..

하지만 문제는 그런 식의 방법이 결코 실천하기에 쉬운 게 아니라는 겁니다. 당장 영어점수 획득이 중요한 수험생들이 장기적으로 영어에 정통해 가기 위한 그 코스를 밟는다는 것이 가능한가의 문제는 차지하더라도, 그런 시간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이들에게 조차 정찬용의 방법은 별로 실천가능한 선택지가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면 여기는 주변에 영어사용자가 거의 없는(=피드백 해 줄 만큼 제대로 된 영어사용자는 거의 전무한..)한국땅이기 때문이죠. 영어사용환경을 인위적으로 만든다고 해봐야 고작 네이티브의 음성이 녹음된 테잎에 의존하는 방법밖에 없을텐데(=실시간으로 피드백 해 줄 수 있는 외국인 친구가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외일 것이니..), 그 테잎을 듣고 따라해 보고 그 테잎이 제시해 주는 상황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거죠.    

현실세계는 너무나 광범위하고, 그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네이티브들의 손과 입을 통해 글과 말로 끊임없이 발화가 되면서, 신조어도 탄생하고 언어사용의 문맥도 새롭게 가공되고.. 그러니 그 모든 상황에 익숙해 지기 위해서는 실제 그 환경속에 들어가야만 하는 거지, 가장 기초적인 생활상의 언어사용례 일부만 네이티브의 음성으로 녹음해 둔 그 영어공부 테잎 몇개 듣는 것으로 어떻게 완벽한 영어구사가 가능하겠습니까? 

실제 외국에 거주하며 교민을 대표한 경험들이 있는 외교부 직원들 조차 FTA조약문을 발로 번역하여 국제적인 망신을 사는 판에, 외국물 먹을 일이 거의 없는 평범한 일반인들이 정찬용식 영어로 영어의 마스터가 된다라는 것은, 글쎄요, 원론적으로야 맞는 말일지 몰라도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얘기라는 생각은 안듭니다.(=물론 언어에 타고난 감각과 재능이 있는 소수의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만..)

그점에 동의하신다면, 가급적 많은 영어지문을 읽고 쓰고 듣고 말하며 영어사용 자체에 익숙해 지기 위한 전방위적 노력을 유지하되, 그 과정에서 영문의 구성원리(=문법)의 도움을 받아 한결 수월하게 영어문장을 이해하고자는 고전적인 노력은 꽤나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까지 교육이 수험을 위한 문법의 단편적인 지식의 암기에만 치중해서, 그 지식이 전체 영문구성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던지(=영작시켜 보면 한줄도 못적고 어버버하는 경우), 혹은 영문구성의 원리에는 정통해서 읽고 쓰는 것은 잘하는데 상대적으로 듣고 말하기 경험이 전무해서 외국인 앞에만 서면 죄다 헤매고 만다던지..뭐 그런 부작용이 있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것이 곧바로 문법무용론으로 이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죠.

전자는 문법공부를 제대로 안해서 그런 것 뿐이고, 후자는 문법공부에만 치중해서 그런 것이니 이런 경우는 듣기와 말하기 비중을 점점 늘려가면서 해결하면 되는 것이겠죠(=토익의 취지가 바로 그런 것이겠고..)

아마 미뉴에님의 글에 문법이 그래도 중요하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고 있는 분들은, 점수따기식 수험용 주입식 문법교육에는 당연히 비판적이지만, 그것 때문에 문법 자체가 폐기되어야 할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것이겠죠. 그게 영어를 익혀서 실제 어느정도 구사하고 있는 자기의 경험과도 배치되기 때문에 더더욱 미뉴에님의 얘기를 납득할 수 없어 하는 것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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