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론(nativism)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개인차와 관련된 선천론은 주로 행동 유전학자들이 연구한다. 행동 유전학은 개인차 중 어느 정도가 유전자의 차이로 설명되고 어느 정도가 환경이나 경험의 차이로 설명되는지를 해명하려고 한다.

 

둘째, 인간 본성과 관련된 선천론은 주로 진화 심리학자들이 연구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적인 것들 중 어느 부분이 선천적인지를 가리려고 하며 그 선천적인 것이 왜 생겼는지를 알아내려고 한다.

 

따라서 백지론(tabula rasa, blank slate) 또는 후천론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개인차가 순전히 환경이나 경험에 의해서 생긴다고 보는 주장이 그 하나이고, 선천적 인간 본성이란 거의 없으며 거의 모든 것이 환경, 경험, 학습, 사회화에 의해 생긴다는 주장이 다른 하나다.

 

백지론자와 선천론자가 논쟁을 벌일 때 이 두 가지 측면 중 어느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혼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른 차원에서 살펴보자. 백지론과 선천론은 이번에도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첫째, (거의) 순수한 백지론 또는 (거의) 순수한 선천론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둘째, 백지론적 경향(또는 편향) 또는 선천론적 경향(또는 편향)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행동 유전학이 (거의) 순수한 개인차 선천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진화 심리학이 (거의) 순수한 본성 선천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두 학문에는 유전자 결정론이나 생물학 결정론이라는 딱지가 붙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딱지는 터무니 없다. 행동 유전학에는 유전율(heritability)이라는 개념이 있는데 개인차 중 유전자의 차이로 설명되는 비율을 말한다. 거칠게 이야기하자면, 유전율이 70%라면 30%는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행동 유전학자가 유전율이 100%라고 이야기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 유전학을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는 비판자가 무식하거나 양심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이유를 도저히 생각해 낼 수 없다.

 

진화 심리학이 (거의) 순수한 본성 선천론이라는 비판 역시 터무니 없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후천적인 것들을 기꺼이 인정하며 모든 것을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의미의 유전자 결정론이 아님을 늘 이야기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 심리학을 유전자 결정론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경우에도 내가 보기에는 비판자가 무식하거나 양심이 없기 때문이다.

 

 

 

논적을 희화화한 다음에 공격하는 이런 허수아비 논법(straw man argument, 허수아비 공격법)은 반대쪽으로도 행해지고 있다. 나는 반대 방향의 허수아비 논법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그런 공격의 빌미를 훨씬 더 많이 제공하는 것 같다.

 

행동 유전학자들은 유전율을 알아내기 위해 쌍둥이 연구나 입양 연구 등을 활용한다. 그러면 행동 유전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런 연구에 결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인간의 정신적인 측면에 대한 연구는 물리 실험에 비해 결점이 훨씬 많다. 그리고 그런 결점을 지적하는 것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 할지라도 의미가 있다.

 

문제는 행동 유전학 연구에 결점이 있다며 연구 결과를 통째로 거부하는 사람이 부모 자식 사이의 상관 관계를 무턱대고 환경론적으로 해석하는 연구는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진화 생물학의 결점을 지적하면서 훨씬 터무니 없는 기독교식 창조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비슷하다. 부모의 행태와 자식의 행태 사이에 상관 관계가 있다면 그것 중 어느 정도가 부모가 자식에게 제공한 유전자 때문이고 어느 정도가 부모가 자식에게 제공한 환경 때문인지를 따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동 유전학자들이 마련한 불완전하지만 쓸모 있는 연구 방법론을 적용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턱대고 그런 상관관계가 환경적 요인 때문이라고 결론 내리는 경우가 많다. 행동 유전학자들의 연구가 불완전하다면 환경적 요인이라고 무턱대고 결론 내리는 것은 완전히 엉터리다. 그러니 백지론자라는 비아냥을 받는 것이다. 스피븐 핑커의 『빈 서판』에 그런 사례가 몇 개 소개되어 있다.

 

 

 

본성과 관련된 순수한 백지론을 일관되게 주창하는 사람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20세기에 많은 학자들이 (거의) 순수한 백지론을 일반론의 수준에서 주창했다. 생물학은 인간의 정신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을 거의 또는 전혀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감각, 운동, 식욕, 성욕 등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것이 학습, 사회화, 경험의 산물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동물과 인간이 완전히 달라서 동물은 본능에 의해 움직이지만 인간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일반론을 펼 때와는 달리 구체론을 펼 때는 온갖 선천적 인간 본성을 가정한다. 이 때 보통 본성에 대한 가정은 명시적이지 않고 암묵적이며 자신이 인간 본성을 가정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마디로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체로 일관성이 없다. 일부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들의 말 중에서 순수한 백지론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들을 인용하면서 순수한 백지론자라고 공격한다. 그런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비판은 온전하지도 공정하지도 못하다.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일반론을 펼 때 어떻게 순수한 백지론에 가까운 주장을 하는지도 인용해야 하지만, 그들이 구체론을 펼 때 어떻게 온갖 인간 본성을 가정하는지도 같이 인용함으로써 그들이 어떻게 오락가락하는지를 보여주어야 제대로 된 비판이다.

 

 

 

가끔 그렇게 보일 때도 있긴 하지만 실제 논쟁은 순수한 백지론과 순수한 선천론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20세기 이후의 논쟁에서 순수한 백지론을 일관되게 주창한 사람도 순수한 선천론을 일관되게 주창한 사람도 사실상 없다. 상대적으로 백지론에 가까운 사람과 선천론에 가까운 사람 사이의 논쟁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논쟁이 주로 이루어졌던 주제는 백지론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다고 느끼는 것들이다. 개인차와 관련해서는 IQ, 공격성(또는 범죄성) 등이 문제였고, 인간 본성과 관련해서는 질투, 공격성, 친족 사랑, 의붓자식을 덜 사랑하는 것, 강간, 외집단에 대한 혐오, 전쟁, 근친 상간 등이 문제였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한 문제들만 논쟁이 되었다는 점은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학적 기준(논리적 일관성과 실증적 검증)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였음을 암시한다.

 

예컨대, 물체가 눈 쪽으로 갑자기 다가올 때 눈을 감는 현상을 진화 심리학자가 인간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 갑자기 물체가 다가올 때는 눈을 감도록 진화했다. 즉 갑자기 물체가 다가올 때 눈을 감았던 우리 조상이 그렇지 않았던 우리 조상에 비해 더 잘 번식했기 때문에 자연 선택에 의해 인간은 그럴 때 눈을 감도록 설계되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보통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질투했던 남자가 그렇지 않았던 남자에 비해 더 잘 번신했기...라는 식의 설명처럼 뭔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해 보일 때에만 비판하려고 기를 쓴다.

 

사실 인간 본성 가설 또는 적응 가설이 제기될 만한 것들 중에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촉각 등을 비롯한 감각 기제들, 온갖 근육의 통제와 관련된 운동 기제들, 체온 조절 기제, 하품 기제, 위에서 이야기한 눈 감기 기제, 눈부심과 관련된 눈 감기 기제, 군침 기제 등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후보들에 대해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보통 시비를 걸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진화 심리학자들에 비해 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며, 일반론을 펼 때 순수한 백지론에 가까운 주장을 할 뿐이다. 실제로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들은 선천론에 훨씬 더 가깝다. 왜냐하면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하지 않아 보이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본성론이나 적응론에 별로 반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11-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