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태양이 우리 은하의 중심을 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에서 가만히 있다고 생각했다.

 

Copernican heliocentrism is the name given to the astronomical model developed by Nicolaus Copernicus and published in 1543. It positioned the Sun near the center of the Universe, motionless, with Earth and the other planets rotating around it in circular paths modified by epicycles and at uniform speeds.

http://en.wikipedia.org/wiki/Copernican_heliocentrism

 

 

 

만약 코페르니쿠스의 말이 옳다면 태양한테 가만히 있으라고 한 여호수아의 명령이 민망해진다.

 

그 때, 야훼께서 아모리 사람들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치시던 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야훼께 외쳤다. "해야, 기브온 위에 머물러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멈추어라." 그러자 원수들에게 복수하기를 마칠 때까지 해가 머물렀고 달이 멈추어 섰다. 이 사실은 야살의 책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가? 해는 중천에 멈추어 하루를 꼬박 움직이려고 하지 않았다.

(여호수아 10:12~13, 공동번역개정판)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수아 10:12~13, 개역개정판)

 

 

 

도자기로 만든 개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챈들러는 농담을 한 것이지만 태양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 여호수아는 진지했다.

 

Chandler: Hey look, are we gonna have to bring this out every time Ross comes over?

Joey: He paid a lot of money for it.

Chandler: I'm gonna hold him a different way. Look I don't understand, if you hated it so much, why did you buy it in the first place?

Joey: Well, I had a whole ceramic zoo thing goin' over there but now, without the other ones, it just looks tacky.

Chandler: Yeah with things like this more is always better. So is he housetrained or is he gonna leave little bathroom tiles all over the place? Stay. Good, STAY! Good fake dog(가만히 있어, 좋아, 가만히 있어, 잘했어 가짜 개야).

(<Friends>, Season 2, Episode 19: The One Where Eddie Won't Go)

 

 

 

실제로 루터가 여호수아를 언급하면서 코페르니쿠스를 비판했다고 한다.

 

The sharpest point of conflict between Copernicus' theory and the Bible concerned the story of the Battle of Gibeon in the Book of Joshua where the Hebrew forces were winning but whose opponents were likely to escape once night fell. This is averted by Joshua's prayers causing the sun and the moon to stand still. Martin Luther once made a remark about Copernicus, although without mentioning his name. According to Anthony Lauterbach, while eating with Martin Luther the topic of Copernicus arose during dinner on 4 June 1539 (in the same year as professor George Joachim Rheticus of the local University had been granted leave to visit him). Luther is said to have remarked "So it goes now. Whoever wants to be clever must agree with nothing others esteem. He must do something of his own. This is what that fellow does who wishes to turn the whole of astronomy upside down. Even in these things that are thrown into disorder I believe the Holy Scriptures, for Joshua commanded the sun to stand still and not the earth."

http://en.wikipedia.org/wiki/Nicolaus_Copernicus

 

그리고 교회 당국은 지동설을 철회하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갈릴레오를 협박했으며 갈릴레오는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지동설을 철회했다.

 

 

 

다윈의 진화론은 성경의 창조론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다윈이 『종의 기원』의 출간을 미룬 데에는 이런 사정도 한 몫 한 것 같다.

 

하느님께서 "바다에는 고기가 생겨 우글거리고 땅 위 하늘 창공 아래에는 새들이 생겨 날아다녀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큰 물고기와 물 속에서 우글거리는 온갖 고기와 날아다니는 온갖 새들을 지어내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하느님께서 이것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새끼를 많이 낳아 바닷물 속에 가득히 번성하여라. 새도 땅 위에 번성하여라!" 이렇게 닷샛날도 밤, 낮 하루가 지났다.

하느님께서 "땅은 온갖 동물을 내어라! 온갖 집짐승과 길짐승과 들짐승을 내어라!"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온갖 들짐승과 집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길짐승을 만드셨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셨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내려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를 돌아다니는 모든 짐승을 부려라!"

(창세기 1:20~28, 공동번역개정판)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들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라 땅 위 하늘의 궁창에는 새가 날으라 하시고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20~28, 개역개정판)

 

21세기에 천문학과 물리학에 시비를 거는 기독교인은 사실상 없지만 여전히 수많은 독실한 기독교인들이 진화 생물학에 시비를 걸고 있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종교와 과학은 교권이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종교에서는 도덕의 교권(당위의 교권, 정당화)만 다루고 과학에서는 과학의 교권(사실의 교권, 설명)만 다루기 때문에 둘은 사이 좋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 책에는 도덕적 명령도 있지만 사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창세기에는 신이 생물을 어떻게 창조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며, 마태복음에는 예수의 기적에 대한 온갖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는 도덕적 설교도 했지만 기적도 행했다.

 

따라서 성경은 현대의 윤리와도 충돌할 수 있으며 현대 과학과도 충돌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일부 기독교인들은 양쪽 면에서 충돌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동성애가 망측하다고 이야기한 성경 말씀을 따르려는 기독교인들과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과 차별에 반대하는 진보파가 충돌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과 진화 생물학자들이 충돌하고 있다.

 

여자와 한자리에 들듯이 남자와 한자리에 든 남자가 있으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하였으므로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 그들은 피를 흘리고 죽어야 마땅하다.

(레위기 20:13, 공동번역개정판)

 

누구든지 여인과 동침하듯 남자와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지니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레위기 20:13, 개역개정판)

 

 

 

도덕의 교권의 문제만 따지고 과학의 교권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하는 종교는 굴드의 머리 속 세상에만 존재하는 것 같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처럼 진화론에 약간은 양보하려는 기독교인도 꽤 있지만 영혼 즉 정신까지 진화의 산물이라고 보고 진화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진화 심리학에까지 양보하려는 기독교인은 훨씬 드물다.

 

인간의 몸이 그 이전에 존재했던 생명체에서 생겨났다 하더라도(If the human body take its origin from pre-existent living matter), 영혼은 하느님이 직접 창조하셨다. ...... 결과적으로, 영혼이 생명체의 힘에서 출현한다고 또는 생명체의 부수적 현상에 불과하다고 간주하는이것은 진화론을 부추기는 철학과 부합한다 - 진화론은 인간에 대한 진리와 양립하지 못한다. 또한 개인의 존엄을 뒷받침할 수도 없다.

(『빈 서판』, 332, page 186, 교황이 1996년에 했던 연설)

 

 

 

21세기의 기독교인들 중에는 현대의 윤리와 현대 과학을 거의 다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꽤 많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신의 말씀이라는 성경을 점점 더 많이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전을 중심으로 한 교리가 종교의 핵심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그들의 종교성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현대의 윤리와 과학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셈이다.

 

자유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은 위에서 인용한 성경 구절들처럼 매우 명료한 언어로 쓰인 구절도 “그냥 비유일 뿐이다”, “그냥 상징일 뿐이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여자와 한자리에 들듯이 남자와 한자리에 든 남자가 있으면, 그 두 사람은 망측한 짓을 하였으므로 반드시 사형을 당해야 한다”와 같은 구절이 그냥 비유이거나 상징일 뿐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면 예수의 존재나 기적도 비유나 상징일 뿐이라서 예수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거나 예수가 존재했다 하더라도 기적을 행한 적이 없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식으로 몽땅 상징으로 해석하면 이미 종교라고 보기 힘들어 보인다.

 

 

 

나는 종교가 과학의 발전을 조금이라도 가로막아왔으며 지금도 여전히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의 본질에서 나온 것이다. 종교의 경전은 신의 말씀이기 때문에 완벽해야 한다. “신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적어도 전지전능한 유일신을 모시는 체계화된 종교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기독교 성경과 같은 경전에서는 사실의 문제 즉 과학의 교권에 속하는 문제도 많이 다룬다. 그리고 그것은 당시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당시의 세계관이 과학적으로 볼 때 완벽할 리가 없기 때문에 온갖 오류가 들어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경전 속의 오류를 하나씩 까발리면 독실한 종교인의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따라서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의심을 금지하고 있다. 아래와 비슷한 구절이 성경에는 수도 없이 나온다.

 

조금도 의심을 품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하십시오. 의심을 품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흔들리는 바다 물결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주님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의심을 품은 사람은 마음이 헷갈려 행동이 불안정합니다.

(야고보의 편지 1:6~8, 공동번역개정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야고보서 1:6~8, 개역개정판)

 

신의 말씀이라는 경전을 중심으로 한 교리가 종교의 핵심이라면 “의심 금지”가 따라다니기 쉽다. “이 경전이 신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와 같은 의심이 퍼진다면 종교가 유지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심과 비판이야말로 과학 정신의 정수다. 따라서 의심을 금지하는 종교의 정신과 의심을 장려하는 과학의 정신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과학에서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 논리와 실증이 뒷받침하는 만큼만 믿으라고 가르친다. 과학은 그런 식으로 발전한다. 반면 예수의 기적이나 신의 기적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도록 가르친다면 기독교가 유지되기 힘들어진다.

 

 

 

종교가 과학 발전을 촉진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기독교가 유럽의 근대 과학의 발전을 촉진했다고 주장한다.

 

19세기까지 유럽의 지식인들은 사실상 모두가 다 기독교인이었다. 따라서 유럽의 근대 과학은 기독교인들의 노력 덕분에 발전했다. 하지만 “기독교인 덕분에”와 “기독교 덕분에”를 구분해야 한다.

 

뉴턴이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수학과 물리학에서 그런 대단한 성과를 이룰 수 없었을까? 오히려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성경 연구에 엄청난 시간을 바쳤으며 그런 시간 낭비 때문에 과학 연구에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진화 심리학자들은 호기심이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생각한다. 호기심이 종교의 산물이 아니라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오히려 호기심을 억누를 때가 많다. 뉴턴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호기심이 있었을 것이며 천재였을 것이다. 그리고 호기심, 천재성, 지위에 대한 욕망 등이 뉴턴의 위대한 과학적 업적으로 이어진 것 같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지위에 대한 욕망도 자연 선택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유일신이 창조한 세상이기 때문에 세상에 통일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통일성은 바로 법칙성이다”라는 생각 때문에 과학이 발전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굳이 유일신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봄-여름-가을-겨울과 같은 법칙성이 있으며, 돌멩이는 항상 아래로 떨어진다는 법칙성이 있으며, 해는 맨날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법칙성이 있으며, 인간이 200년 안에 죽는다는 법칙성이 있다는 점은 평범한 사람들도 다 상식적으로 알 수 있다. 과연 과학 발전에 대단한 기여를 한 천재들이 세상에 법칙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유일신이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에...”라는 생각이 필요했을까?

 

수백 년 전 유럽 지식인들은 유클리드 기하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온갖 과학을 익혔다. 물론 그런 지식에는 법칙성이라는 생각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유일신이 세상을 창조했기 때문에...”라는 생각이 법칙성의 존재를 깨닫도록 하는 데 무슨 도움이 되었단 말인가? 이것은 마치 맨날 역기와 아령으로 겁나게 열심히 운동하는 보디빌더에게 밥 먹을 때 숟가락을 드는 것이 근육 키우기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20세기가 되면서 일류 과학자들은 종교에서 점점 벗어나게 된다.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들 중에는 종교인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상 모든 과학자들이 종교인이었던 이전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류 과학자들의 집단이 종교를 버렸다고 해서 과학 발전이 지체되었다는 증거가 조금이라도 있나? 현대 사회에서 종교인 과학자에 비해 비종교인 과학자의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증거가 조금이라도 있나?

 

중세 유럽과 근세 유럽에서 기독교인들이 대학도 세우고, 과학 연구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했다는 증거가 있나? 과학 연구를 촉진하는 요인은 호기심, 지위에 대한 욕망, 기술에 응용하려는 욕망 등이다. 이런 요인에 종교가 기여했다는 증거가 있나?

 

옛날 사람들도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호기심이 있었고, 지위에 대한 욕망이 있었고, 기술에 과학을 응용해서 편히 살거나 전쟁에서 이기려는 욕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기독교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과학을 발전시켰을 뿐이다. 가끔 기독교가 과학 연구를 방해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독교인 덕분에”와 “기독교 덕분에”를 구분해야 한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가 과학 연구를 촉진하고, 기존 이론에 대한 의심을 조장하고, 비판 문화를 촉진하고, 기술 발전을 응원했다는 증거가 있어야 “기독교 덕분에”라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냥 신을 믿기만 하면 다 보살펴 준다는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이 기술 발전을 촉진할 것 같은가?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한 시간인들 더 늘일 수 있겠느냐? 또 너희는 어찌하여 옷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꽃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잘 알고 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마태오의 복음서 6:25~34, 공동번역개정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마태복음 6:25~34, 개역개정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