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난아기가 보이는 능력이 모두 선천적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갓난아기는 모국어의 리듬을 어느 정도 아는 상태에서 태어난다고 한다. 이것은 뱃속에 있을 때 모국어를 들었기 때문이지 유전자 등에 모국어에 대한 정보(외국어와는 구분되는 모국어의 리듬 등)가 들어있기 때문이 아니다. 자궁 속에서 발생(development, 발달)하는 동안에도 환경 또는 경험이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자궁 속에서 학습했다고 상상하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능력들이 있다. 예컨대, 갓난아기는 거의 태어나자마자 볼 수 있다. 인간이 보기 위해서는 2차원인 망막에 맺힌 정보를 이용해서 3차원 공간을 추론해야 하며, 3차원 색감(인간이 3차원으로 색을 보기 때문에 빛의 3원색이 된 것이다. 만약 인간이 4차원으로 색을 보았다면 교과서에는 빛의 4원색이라고 나왔을 것이다)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엄청나게 복잡한 정보 처리가 필요한데 뱃속에서 이것을 어떻게 배울 수 있는지 상상도 하기 어렵다.

 

모국어의 리듬과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갓난아기가 보이는 대부분의 능력은 선천적 인간 본성임이 명백해 보인다.

 

 

 

갓난아기가 보이는 능력은 선천적이다를 뒤집어 보면 갓난아기가 할 줄 모르는 것은 후천적이다가 된다. 하지만 후자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후자가 성립한다고 믿는 것 같다.

 

신체적인 면을 살펴보면 이것이 분명해진다. 젖니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는 것, 사춘기에 여자의 젖가슴이 커지는 것, 사춘기에 겨드랑이 털과 음모가 나는 것 등을 생각해 보자. 완전 변태를 하는 동물은 살면서 신체 구조가 갑자기 엄청나게 바뀌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학습, 문화, 사회화 등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선천적 본성이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그런 것들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사춘기에 이성에 대한 관심과 성욕이 생기는 것이 학습, 문화, 사회화의 산물이 아니라 선천적 인간 본성이라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살인은 나쁘다와 같은 도덕적 판단을 갓난아기가 하지 못한다고 해도(그런 판단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그런 판단이 학습의 산물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영구치가 나는 것처럼 발생 시간표에 따라 도덕적 판단 기제가 발생(development)하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아기들이 보이는 능력에 대한 연구가 상당히 많이 이루어졌다. 태어난 지 하루도 안 된 아기들을 대상으로 연구한다면 더 설득력이 있겠지만 이것은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힘들다. 그래서 보통 태어난 지 몇 주 또는 몇 달 정도 된 아기들을 대상으로 연구한다. 태어난 지 몇 달 정도 된 아기를 대상으로 한 연구들도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기들은 아직 말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주로 얼마나 오래 쳐다보는지를 비교한다. 아기들은 어른들이 잘생겼다고 판단하는 얼굴을 더 오래 쳐다본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것은 잘생김에 대한 판단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선천적임을 보여준다. 마술 트릭을 써서 고체가 겹치도록 하는 장면을 보여 주면 아기들은 더 오래 쳐다본다. 이것은 기본적인 물리 법칙에 대한 이해가 선천적임을 보여준다. 마술 트릭을 써서 기본 산수와 모순되는 장면을 보여줄 때(예컨대, 무대에 인형이 세 개 있었는데 하나를 빼 내자 하나 밖에 안 남는 상황) 아기들은 더 오래 쳐다본다. 이것은 기본적인 수학에 대한 이해가 선천적임을 보여준다.

 

 

 

2011-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