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 살해는 그렇게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종의 존속을 위해라는 식의 설명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쉬운 설명이 있었다. 동종 살해를 하는 종은 그렇지 않은 종에 비해 멸종하기 쉽기 때문에 멸종하지 않기 위해 동종 살해를 하지 않게 되었다라는 식이다. 하지만 자연 선택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동종 살해를 하도록 영향을 끼치는 어떤 대립유전자가 동종 살해를 하지 않도록 영향을 끼치는 다른 대립유전자에 비해 개체군 내에서 더 잘 퍼진다면 나중에 그 종이 멸종하는 말든 동종 살해를 하는 방향으로 자연 선택이 일어난다. 의인화를 하자면, 자연 선택은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는다. 또한 자연 선택은 종이 어떻게 되는 개의치 않는다. 어떤 대립유전자가 평균적으로 스스로를 더 잘 복제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개체에 영향을 끼치면 그 대립유전자는 개체군 내에서 퍼지게 마련이다. 그러면 그런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것은 뻔한 진리다.

 

동종 살해가 흔하지 않은 이유는 동종 살해가 어렵기 때문인 것 같다. 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사자를 잡아 먹는 것보다 얼룩말을 잡아 먹는 것이 훨씬 쉽고 안전하다. 약간 무리한 의인화를 해 보자면, 사자는 내가 다른 사자를 잡아 먹는다면 나중에 우리 종이 멸종할 확률이 높겠군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자 대신 얼룩말을 잡아 먹는 것이 아니다. 사자는 얼룩말을 잡아 먹는 것이 다른 사자를 잡아 먹는 것보다 쉽고 안전하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자 대신 얼룩말을 잡아 먹는 것이다.

 

같은 종의 동물들은 대체로 서로 전투력이 비슷하다. 따라서 죽이기가 만만치 않다. 반면 다른 종의 동물들 중에는 상당히 만만한 것들이 있다. 왜 만만한 것을 죽여도 먹고 살 수 있는데 힘들게 동종을 살해한단 말인가?

 

사실 동종을 만만하게 죽일 수 있고 동종을 살해함으로써 큰 이득을 얻는 경우라면 동종 살해를 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수컷의 유아 살해다. 새로 암컷의 무리를 차지한 수컷이 그 무리의 새끼들을 몰살함으로써 암컷이 바로 배란을 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있다. 사자, 고릴라, 랑구르 원숭이 등 여러 종에서 그런 현상이 관찰되었다. 이런 종에서는 수컷이 암컷에 비해 훨씬 힘이 세기 때문에 큰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유아 살해를 할 수 있으며 유아 살해를 통해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만약 종을 위해가 이유였다면 종의 미래가 걸린 유아를 살해하지 않도록 사자, 고릴라, 랑구르 원숭이 등이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살인 금지 규범은 유전자 수준의 진화의 산물인가? 문화, 학습, 사회화의 산물인가? 나는 진화의 산물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살인 금지 규범과 관련된 모든 것이 진화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살인 금지 규범의 보편성과 다양성을 살펴보자. 야노마뫼 족을 비롯하여 여러 문화권에서 외집단 사람을 죽이는 것이 금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용맹스러운 행동이라고 자랑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현대 문명국에서는 외집단 사람을 죽이는 것도 금지한다. 외집단 사람을 죽이는 것과 관련된 규범에는 편차가 크다. 하지만 내집단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한결 같이 금지된다. 정당 방위를 위한 살인, 중죄를 처벌하는 사형과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내집단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나는 내집단 사람을 살인하지 말라라는 규범이 없는 문화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살인 금지 규범의 이런 측면이 인류 보편적이라고 생각하며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한다. 대체로 보편성은 인간 본성을 가리키며 다양성은 문화, 학습, 사회화를 가리킨다. 물론 그런 규범이 인간 본성이며 자연 선택의 직접적 산물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필요하다.

 

 

 

살인 금지 규범의 진화도 종의 존속을 위해를 끌어들여 설명할 수 있다. 살인 금지 규범이 있는 종은 그렇지 않은 종에 비해 멸종할 가능성이 작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위에서 살펴본 것과 똑 같은 문제에 부닥친다. 만약 살인 금지 규범을 무시하도록 영향을 끼치는 어떤 대립유전자가 살인 금지 규범을 존중하도록 영향을 끼치는 다른 대립유전자에 비해 개체군 내에서 더 잘 퍼진다면 나중에 종이 멸종하든 말든 상관 없이 살인 금지 규범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난다. 게다가 인간이 외집단 사람을 별 거리낌 없이 죽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종의 존속을 위해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종의 존속을 위해를 끌어들이는 진화론이 터무니 없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제 진화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논란이 벌어지지 않는다. 반면 집단의 번영을 위해를 끌어들이는 집단 선택론은 진화 생물학계에서 여전히 어느 정도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진화 윤리학계에서는 집단 선택론이 오히려 다수파를 형성하는 것 같다. 집단 선택론은 내집단 사람을 죽이는 것은 금지하고 때로는 거리낌 없이 외집단 사람을 죽이는 현상과 부합한다. 외집단이 망하면 상대적으로 내집단이 흥한다. 자연 선택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적인 번식이기 때문에 집단 선택에 의해 살인과 관련된 규범이 진화했다면 내집단 사람은 죽이지 말고, 외집단 사람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죽여라라는 식의 규범이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신집단 선택론(new group selection)과 관련된 온갖 복잡한 사정들을 다룰 생각은 없다. 나는 신집단 선택론이 거의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며 개체 선택론의 관점에서 살인 금지 규범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신집단 선택론이 진화 윤리학계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개체 선택론적 가설이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기 때문인 듯하다.

 

 

 

살인 금지 규범의 진화와 관련된 개체 선택론적 가설을 제시할 것이다. 나름대로 스스로 만들어낸 가설이라고 믿고 있지만 다른 학자가 이미 비슷한 가설을 발표했는지 여부에 대해 확신할 만큼 살인 금지 규범의 진화에 대한 진화 심리학계의 문헌을 많이 본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제시하는 가설은 유지 선택에 대한 가설이다. 결국 변화 선택에 대한 가설까지 제시해야 온전한 설명이 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해명하기 쉬운 유지 선택에서 출발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인 것 같다. 유지 선택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참조하라.

 

변화 선택과 유지 선택 --- 진화 심리학 첫걸음마

http://cafe.daum.net/Psychoanalyse/83fZ/225

 

 

 

살인 금지 규범이 이미 지배적이라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면 이 규범은 안정적인가, 아니면 다른 규범 또는 규범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가? 즉 이 규범은 유지될 것인가, 아니면 유지되지 못할 것인가? 살인 금지 규범을 무시하도록 영향을 끼치는 유전자가 있다면 그 유전자는 개체군 내에서 퍼질 수 있을까?

 

살인 금지 규범을 무시하는 사람은 살인이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살인을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 이 때 그 사람이 얻는 것과 살인 당한 사람이 잃는 것을 적응적 관점에서 비교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다. 연적을 살해한다면 원하는 사람과 성교나 결혼을 할 수 있다. 살인을 해서 시신을 먹을 수도 있다. 살인을 해서 죽은 사람이 가지고 있던 먹을 것이나 도구를 취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이 살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반면 살인 당한 사람은 죽기 때문에 더 이상 번식할 수 없다. 이것은 살인자가 얻는 것과 비교할 때 엄청나게 큰 손실이다.

 

인간은 자신, 자신의 친족, 자신의 친구, 자신의 배우자의 번식을 누군가가 심각하게 침해할 때 가만 있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보복을 하는 동물이다. 그리고 보통 그 보복의 정도는 번식을 얼마나 침해했느냐에 달려 있다. 번식이 더 심각하게 침해될수록 더 큰 보복을 하는 경향이 있다. 죽음은 번식에 가장 심각한 지장을 준다. 죽으면 더 이상 자식을 낳을 수도 없으며, 더 이상 친족을 도와줄 수도 없다. 이 막대한 침해에는 막대한 보복이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살인자의 입장에서 볼 때 살인으로 얻는 것에 비해 보복으로 잃는 것이 훨씬 클 것 같다. 이것은 살인 당한 사람이 잃는 것이 살인자가 살인으로 얻는 것에 비해 훨씬 크다는 점에서 유도된다. 살인에는 이런 면에서 비대칭성이 있다. 따라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살인을 하는 것은 대체로 바보 같은 전략이다. 그렇다면 살인은 아주 나쁘다라고 믿는 것이 살인은 나쁠 것이 없다고 믿는 것보다 대체로 더 적응적이다. 살인이 도덕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진짜로 믿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살인을 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에 잘 번식하기 힘든 것이다.

 

 

 

대체로 동물들이 동종 살해를 하지 않는 이유는 동종 살해가 대부분의 경우 최적 전략이 아니기 때문인 듯하다. 마찬가지로 살인은 나쁘다라는 규범이 유지되는 이유는 살인이 대부분의 경우 최적 전략이 아니기 때문인 듯하다.

 

정당 방위의 경우에는 예외다.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을 때에는 살인을 하는 것이 최적 전략이 될 때가 많다. 그리고 정당 방위를 위한 살인은 보통 도덕적으로 비난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강간은 어떤가? 강간으로 남자가 얻는 것에 비해 여자가 잃는 것이 훨씬 큰가? 만약 그렇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강간하지 말라라는 규범도 위와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2011-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