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론자(백지론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이라고 표현해야 더 적절하겠지만 편의상 백지론자라고 표기하겠다)들이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동물학습 또는 문화에 의해 움직이는 인간을 대비하는 경우가 많다. 동물은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온갖 종류의 본능들에 의해 움직이지만 학습 기제가 고도로 진화한 인간은 다르다는 것이다. 본능이라는 애매한 용어를 선천적 심리 기제로 대체해 보자. 백지론자들에 따르면, 동물은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된 온갖 종류의 선천적 심리 기제들에 의해 움직이지만 인간은 고도로 진화한 학습 기제가 그런 것들을 대체한다.

 

따라서 진화 생물학이 그 학습 기제가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규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다른 방면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학습 기제 말고는 선천적 심리 기제가 몇 개 안 되기 때문이다.

 

 

 

인간도 수백만 년 전 또는 수천만 년 전에는 다른 동물과 별로 다를 바 없던 동물이다. 인간이 아주 특별해진 것은 대략 지난 5백만 년 동안 일어난 진화 때문이다. 따라서 백지론자들이 보기에도 천만 년 전에 우리의 직계 조상에게는 다른 동물들처럼 온갖 선천적 심리 기제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없다. 그렇다면 그런 선천적 기제들이 퇴화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퇴화 가설로 이어진다는 점도 깨닫지 못하는 듯하다.

 

 

 

물론 퇴화는 일어난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깊은 동굴에서 진화하게 된 동물은 눈이 퇴화하기 마련이다. 이제 쓸모가 없어진 눈에 자원을 투자하지 않는 것이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보고되었다. 우리의 직계 조상도 여러 가지 면에서 퇴화가 일어났다. 꼬리가 사실상 사라졌으며 송곳니도 흔적만 남아 있는 정도다. 육체적인 면이든 정신적인 면이든 우리의 직계 조상이 진화하면서 퇴화한 것들을 여러 가지 더 찾아낼 수 있을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백지론자들은 인간의 정신적인 면들 중에서 어떤 것들이 퇴화했다고 믿는 것일까? 또는 그들이 퇴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그들의 생각은 어떤 퇴화 가설들로 이어지는 것일까?

 

백지론자들도 보통 인정해온 선천적 심리 기제들이 있다. 시각 기제, 청각 기제, 미각 기제, 후각 기제, 촉각 기제와 같은 감각 기제들, 여러 가지 운동 통제 기제들, 식욕 기제, 성욕 기제, 체온 조절 기제들과 같은 기본적인 동기(motivation) 기제들이 선천적 심리 기제임을 부정하는 학자는 20세기 이후에는 거의 없었다. 노엄 촘스키의 선구적인 연구 이후에는 언어 학습 기제가 선천적 심리 기제임을 인정하는 학자들이 진화 심리학계 밖에서도 많이 생겼다.

 

논란이 되는 것들은 근친 상간 회피 기제, 남자의 질투 기제, 여자의 질투 기제, 여자의 자식 사랑 기제, 남자의 자식 사랑 기제, 유아 살해 기제, 공격성과 관련된 기제, 낭만적 사랑 기제, 우정 기제, 도덕 판단 기제, 강간 기제, 서열과 관련된 기제 등이다. 한결 같이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것들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백지론자들도 체온 조절 기제처럼 이데올로기적으로 무해해 보이는 것들이 선천적 심리 기제라는 가설에는 거의 시비를 걸지 않는다. 반면 질투 기제처럼 이데올로기적으로 문제가 될 것 같아 보이는 경우에는 어김 없이 시비를 건다. 이것은 이들이 진화 심리학에 반기를 드는 이유가 과학적 기준 때문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기준 때문임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논란이 되는 것들 중에 진화 심리학계 내부에서도 논란이 되는 것들도 있다. 유아 살해 기제, 도덕 판단 기제, 강간 기제 등이 그렇다. 이런 기제들은 포유류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적어도, 포유류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반면 근친 상간 회피 기제, 수컷의 질투 기제, 암컷의 자식 사랑 기제 등은 포유류에서 사실상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우리의 조상들에게도 이런 선천적 기제들이 있었을 것이다. 백지론자들의 말이 옳다면 이런 기제들은 인간의 학습 기제가 고도로 진화하면서 퇴화했다. 이것이 백지론자들의 생각에서 필연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퇴화 가설들이다.

 

 

 

백지론자들의 퇴화 가설들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난점이 있다.

 

첫째, 번식에 긴요한 근친 상간 회피 기제, 수컷의 질투 기제, 암컷의 자식 사랑 기제가 왜 인간의 경우에 퇴화한 것일까?

 

둘째, 근친 상간 회피 기제, 수컷의 질투 기제, 암컷의 자식 사랑 기제 등이 인간의 경우에 퇴화했다고 본다면 그것들이 어떻게 인간의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학습은 근친 상간 회피 기제를 대체할 수 없다. 학습이 선천적 근친 상간 회피 기제를 대체하기 위해서는 근친 상간이 해롭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근친 상간이 해롭다는 것은 인간 진화의 역사라는 기준으로 볼 때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설사 수백만 년 전, 또는 수십만 년에 우리 직계 조상이 근친 상간은 기형아를 낳을 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 직계 조상에게 기형아에 대한 선천적인 거부감이 없었다면 근친 상간을 피하지 않았을 것이다. 백지론자는 선천적 근친 상간 회피 기제가 없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선천적인 기형아 거부감 기제를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백지론자에게 반가운 소식이 아닐 것 같다.

 

우리 직계 조상이 근친 상간은 기형아를 낳을 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전제할 때, 백지론자에게 대안 없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게 포괄 적합도 최대화 자체에 대한 선천적 욕망이 있다고 가정하면 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있을 법하지 않다. 콘돔을 기꺼이 사용하는 현대인을 살펴볼 때 인간은 포괄 적합도 자체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하다. 인간에게는 성욕이나 식욕과 같은 특수한 욕망이 있을 뿐이다. 즉 성교하고 싶어하고 먹고 싶어할 뿐이다. 나는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하겠다는 식의 매우 일반적인 욕망은 없어 보인다.

 

 

 

수컷의 질투 기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될 수 있는 한 암컷들을 성적으로 독점해야 자신 안에 있는 유전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다는 점을 우리의 먼 조상들이 알았을 리가 없다. 암컷의 자식 사랑 기제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자식을 잘 돌봐야 자신 안에 있는 유전자를 널리 퍼뜨릴 수 있다는 점을 우리의 먼 조상들이 알았을 리가 없다.

 

 

 

근친 상간 회피, 수컷의 질투, 암컷의 자식 사랑과 관련된 선천적 심리 기제가 없다고 가정할 때 도대체 왜 그런 것들이 인간의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단 말인가? 몇몇 고대 왕국에서 남매끼리 결혼한 사례가 보고되긴 했지만 나는 그런 왕국에서 남매간 결혼이 보편적으로 있었다는 증거를 본 적이 없다. 왕가에서 일어난 근친 상간은 순수한 혈통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예외적 현상으로 보인다.

 

우연히 모든 문화권에서 근친 상간 회피 등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전혀 없어 보인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동물을 보고 모방했다는 황당한 가설 말고는 선천적 심리 기제를 대체할 대안 가설이 떠오르지 않는다.

 

백지론자들은 자신의 생각이 위에서 이야기한 퇴화 가설로 이어진다는 점에 직면해야 한다. 만약 그런 퇴화 가설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를 밝혀야 한다. 퇴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면 도대체 인간의 조상들에게 무슨 희한한 사정이 있었기에 번식에 요긴한 그런 기제들이 퇴화했는지 밝혀야 한다. 또한 그런 선천적 기제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근친 상간 회피 같은 것들이 인간의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밝혀야 한다.

 

 

 

201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