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http://capcold.net/blog/4470 에서 그대로 셀프펌해왔습니다;;;]

!@#... 온라인에서(아니 사실 오프라인에서도) 사회에 대한 논쟁이 이루어질 때, 보수(를 자처하는 수구 내지 착란) 성향의 사람들이 상황을 마무리하겠다고 종종 동원하는 것이 바로 "현실드립"이다. 백날 여기서 이러고 있어봤자 현실은 냉엄하니 네놈들 앞가림이나 하라는, 가히 데우스 엑스 마키나스러운 꼰데질 말이다. 최근 그런 현실드립의 가히 모범적인 사례를 발견했는데(클릭), 꽤 재미있는 표현이 등장한다. 바로 결론부의 "그러나 남들 하는 거 다하고 싶고 쳐먹고 싶은 거 즐기고 싶은 거 다하고자 하면서 정작 자신은 20대 초나 지금이나 항상 변함없는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면" 이라는 말. 본문 자체야 "입닥치고 네 스펙이나 올려" 정도니 굳이 뇌세포 할애해서 깔 가치도 없지만, 이건 꽤 재밌는 화두다. 왜냐하면...


...사실은 남들 하는 거 다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바로 그 지점에서 자아 개발이든 사회발전이든 원동력이 생겨난다. 이 평범한 진리를 보편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운동이라도 해야할 판이다.

!@#... '남들 다 하는 만큼'은 크게 두 가지 요소로 나눠볼 수 있다. 바로 향유하는 것과 경쟁하는 것. a)남들 즐기는 것에 뽐뿌 받아서 나도 그만큼 누리며 살고 싶다는 것이 전자고, b)남들이 다 하는데 나만 그 정도를 못하고 있으면 패배하고 뒤쳐질까봐 따라가는 것이 후자다. 한 눈에 봐도 b)가 피곤함을 만드는 요소임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에 비해 순수하게 a)만 존재한다면 사실 별 문제가 생길 구석이 없는 것이,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얼마든지 향유 욕망의 수준이 그럭저럭 조정이 되기 때문이다(예: 군대 신병 훈련소의 초코파이). 그런데 문제는 a)에는 종종 b)가 매우 깊게 개입되어 있다는 점이다. 실제 핸드백의 기술적 품질요소를 꿰고 있는 오타쿠가 아니면서도 명품 핸드백을 선호하는 뭇 귀부인들을 떠올리면 되겠다(골프채/사장님들, 고비용 '낭만' 데이트/커플 등 여러가지로 대입해서 읽는 것 가능). 그리고 b)의 불안을 지피면서 a)로 포장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상업 마케팅 기본 패턴 가운데 하나가 아니던가.


!@#... 여튼. 경쟁이 중요한 요소가 되는 '남들 다 하는 만큼'의 문제는, '남들 다'의 범주가 종종 무척 임의적이라는 점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초딩학생 자녀를 둔 한국 부모들 가운데 상당수가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황당한 경우가 자주 있다. 경쟁적으로 서로 (한국)이웃의 눈치를 보며 과외시키고 특활시키고... 애가 특별히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남들 다 하는 만큼씩은 하려고 말이다. 물론 마치 올스타전에서 헤드퍼스트슬라이딩하고 있는 꼴이랄까, 그들의 '남들 모두'의 기준인 듯한 강요적 한인 학부모들의 좁은 울타리를 살짝 벗어나서 초등학교라는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오버질로 점철된 소수그룹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 매우 진지하게, 남들 다 하는데 내 아이만 안 시키면 뒤쳐진다고 믿고 있다. 덜 피곤하며 특별히 효과가 나쁠 이유가 없는 다른 생활 방식이 뻔히 옆에 보이는데도, 막무가내다. 스스로를 좁은 틀에 가두어 선택권을 없애놓고는, 뒤쳐지지 않겠다며 전력질주로 달린다. 실제로 필요한 만큼 이상의 경쟁을 스스로 만들고, 그 경쟁에 찌들려 신음하는 꼴이다. 이건 게임이론 실험들 가운데 최악의 자승자박 시나리오들만 골라서 모아도 나오기 힘든 경지다.

!@#... 그렇다고 capcold가 무슨 김규항도 아닌데(...), 무슨 금욕적 생태사회, 속세적 욕망과 고립된 고고한 지사적 삶을 논하며 신선놀음하자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시야를 약간 넓혀서 뻔히 있는 선택지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정도다. 우선 작은 것 부터, 가장 개인적인 취향 선호부터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 아니 사실 특정 사안들에 대한 뚜렷한 개인적 선호가 없을 수록 불안감에 휘말리며 남들 하는 만큼 따라가겠다고 하기가 쉽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공부에 대한 불안감으로 남들 산다는 교재 다 사서 서가를 가득 채우고는 실제로는 제대로 읽어보지도 못한 경험이 있는 분, 손들어보시길. 그리고 지나와서 보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어차피 약간씩만 다른 구성일 뿐 하나만 제대로 봤어도 다 통할 내용들이었는데 말이다. 다만 지금은 토익 교재를 그렇게 사모으고 있을 따름. 혹은 좀 더 '사회인' 영역으로 들어오자면, 뭐 그리 "사회적 지위를 세우려면 이 정도는 어쩔 수 없이 해야한다"는 것들이 넘치는지. 그런데 그 중 상당 부분이, 일이라든지 뭐라든지 특정 형질로 자신의 개성을 뚜렷하게 선보일 수 있다면 사실 어떻게 되도 상관 없는 것들 천지다. 한마디로 이런거다: 내가 그저 그런 차를 몰면 빈티, 장동건이 똥차를 몰면 빈티지. 2000년대의 취업준비 트렌드인 소위 '스펙 쌓기'는 또 어떤가. 학점과 토익점수들이 상한선을 넘실댄다. 다들 남들 하는 만큼씩, 조낸 똥빠지게 뛰었겠다 싶다. 그런데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만 아니라면, 그런 자격증보다 실제로 무언가 자신이 지망하는 해당 분야에 연관된 일을 벌여서 경력을 쌓은 사람이 더 매력적이다. 그 대기업들마저도 항상 대학에 와서 푸념의 노래를 부르는, "실무지식을 갖춘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니까. 하지만 그건 남들 다 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런지, 별로 활발하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겠다.

!@#... "남들 다하는 만큼" 보다 자기가 정신적으로 버틸 수 있는 여력 만큼씩만이라도 좀 덜 하고 살면 좋은 것이, 잉여용량이 생긴다는 점 때문이다. 단순히 돈도 그렇지만, 클레이 셔키가 이야기한 '인지 잉여'(cognitive surplus. 즉 관심을 쏟을 정신적 여유, 시간 등등)가 특히 중요하다. 바로 그런 잉여가 개인적 취향의 발전, 사회적 경쟁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자기만족을 위한 자기개발에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결국은 투자를 위해서도 좋다. 구글의 그 유명한 20% 규칙(업무 시간의 20%에 해당하는 양을 자신의 일 말고 다른 것에 자유롭게 투자하도록 하는 룰. 창의적인 새 프로젝트들의 산실이다)을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 차원으로 모이면, 민주주의의 기반이 된다. 애시당초, 민주주의는 시민들의 인지 잉여 위에 서 있는 체제다. 적어도 단순하게 시민들에게 투표권만 주고 입씻는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을 위한 유연한 다양성의 원동력 확보를 목표로 하는 민주주의라면 말이다. 잉여 용량만큼씩 어떤 이상을 그려볼 수도 있고, 발전방향이 맞을까 사고의 시뮬레이션을 돌려볼 수 있다. 물론 그런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현실로부터 유리되지 않게 하는 것, 그들의 시스템이기 때문에 놓칠 수 밖에 없는 요소들을 부각시키는 것은 잉여용량이 있는 민주사회 시민들이다. 게다가 미디어의 발달 덕분에, 잉여력을 집합적으로 모아내는 방법들이 나날이 새로 탄생하고 있다. 시민저널리즘은 알리고 싶은 기사거리와 그것을 구체화할 인지적 짬이 있는 이들의 잉여력을 결집한 것이다. 위키피디아는 내 지식을 표준 지식으로 정립시켜 놓겠다는 의지가 인지잉여와 만난 것이다. 오픈소스 프로그램 개발은 당장 굶어죽지는 않을 개발자들이 소중한 잉여 노력을 집중해준 결과물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진적인 사회는 인지 잉여를 적극적으로 키워내고 그 잉여로 무언가를 해볼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키워주는 사회다. 복지제도를 통해서든, 효과적 사회 참여 경로의 유연성을 통해서든 말이다.

!@#... 모든 것의 시작은, 남들 다 하는 만큼씩 하지 않는 것이다. 제발, 어떤 것들에 대해서는
덜 열심히 하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무슨 움막에 들어가서 이슬 먹고 살라는 것이 아니다. 의식적으로 조금씩 시야를 넓혀서, 사실 안 해도 되겠다 싶은 것은 굳이 하지 않음으로써 잉여를 확보하라. 개인도, 기업도, 사회 전반도 각각 마찬가지다. 그리고 딱 그 잉여용량 만큼 해보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다(우선, 그게 뭔지 고민하는 것조차 잉여가 필요하다). 그 기반 위에 사회적 이상에 대해서도 좀 생각해보고, 그 중 어떤 것들은 현실적 적용도 고민해봐도 좋겠다. 그 다음에는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실험도 하고 운동도 하고 정치세력화도 해보고. 잉여력이 확보되는 만큼씩이다. 많은 분야에서 실제 필요 이상으로 지들끼리 경쟁의 무덤이 넘치는데, 내부에서 치킨게임하지 말고 그만큼씩 생겨나는 잉여를 더 멋진 것에 사용하자는 이야기다. 자, 외쳐보자.

"명랑사회를 위해, 남들 다 하는 만큼씩 하지 않고 살도록 용을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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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넷상의 다소 찌질한 토론 장면들에서 "잉여"라는 표현이 어떤 뉘앙스로 쓰이는지는 알만큼 다 알고도(예: 잉여인간) 굳이 이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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