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다시 한번 읽어볼 만한 기사가 있어 소개합니다.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박연차에게서 돈을 받았음을 시인하는 사과문을 낸 뒤에 나온 한겨레21의 기사입니다.

영남 개혁세력 ‘정치적 사망선고’ - 한겨레21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4744.html

저처럼 정치에 관심이 부족했던 사람들에게는 유시민과 참여당, 영남개혁세력의 현 주소가 어디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게 하는 괜찮은 참고 자료인 것 같습니다. 일부를 옮겨 봅니다.


하지만 이 강력한 무기는 노 전 대통령과 영남 개혁세력 ‘자기를 베는 칼’이 되고 말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이 그토록 줄기차게 내세웠던 지역주의 청산은 ‘영남 패권주의’로 변질되면서 스스로의 기반을 뒤흔들었다. “‘전라도 머슴살이’ 발언에서도 드러났듯이 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민자당 대신) 민주당 쪽으로 간 영남 개혁세력의 의식 세계엔 독재세력을 향한 반감 말고도 영남 패권주의가 있었다. 이들은 2002년 대선 때 유권자들이 지역주의를 넘어 이념과 가치를 중심으로 정계를 개편할 여건을 만들어줬지만, 정서적으로 편한 영남의 지지에 기대어 세력화를 시도했다.” 임원혁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의 지적이다.

2005년 노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제안한 ‘대연정’은 대표적인 영남 패권주의의 발로로 꼽힌다. 그는 “새로운 정치 문화”를 대연정의 이유로 들었지만, 열린우리당 대구시당위원장을 지낸 김태일 영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한나라당 세력에게 자리를 내줄 테니 대구·경북 지역에서 적당히 섞여 잘 지낼 수 있는 틀을 만들자는 것이 대연정의 요체”라고 반박했다. 정체성이 다른 한나라당에 손을 내민 것은 ‘기득권 세력과의 제휴 전략’으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는 쉬운 길이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대연정은 지역주의의 벽에 구멍을 낸 것이 아니라, 거꾸로 이 지역에서 지역주의와 대치하고 있는 개혁 전선에 구멍을 내고 말았다. 한나라당과 싸우는 최전방이라 할 대구·경북의 개혁세력들은 망치로 뒤통수를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런 기득권 세력과의 제휴 전략은 이 지역에서 개혁적 지지 기반을 약화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유명무실이 된 4대 개혁입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 등 노무현 정부의 보수적인 정책은 영남 지역의 보수 성향 유권자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임원혁 연구위원은 “열린우리당은 자신들이 한나라당을 대체할 건전한 보수 정당이라는 점을 부각시켜 영남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다. 개혁적인 대선 공약에 반하는 이런 행동에 국민은 사기당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떨어지고, 5·31 지방선거를 비롯해 선거에서 불만을 표출한 거다. 초심으로 돌아가 개혁적인 정책을 펴겠다고 하면 됐을 텐데, 노 전 대통령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중앙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지역에선 자리와 각종 지역 민원 해결 등의 ‘특혜’로 ‘지지’를 사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지역에 남아있던 개혁세력들은 이전보다 더욱 외로웠다”는 김태일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옆에서 지켜본 노 전 대통령 주변 인사들의 행동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대통령 권력과 결합된 에이전트들만 활동했다. 이들은 고급 공무원들의 뒤를 봐주거나 자리를 주고, 서민·중산층과 무관한 토목공사 예산을 따오는 방식으로 지역에 자리를 잡으려고 했다. 지역 토호·언론·관료로 이뤄진 ‘지역성장연합’과 결합하고 교육, 주거, 일자리 등 서민·중산층의 요구에는 관심이 없었다. 한나라당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정당 조직의 기초체력을 닦아 개혁세력 유권자들을 밑바닥부터 끌어안는 노력 대신, 한나라당 지지층의 ‘해결사’ 노릇을 했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말부터 민주당 안팎에서 나돌았던 ‘친노 신당설’도 영남 패권주의와 맥이 닿는다. 신당 논의의 주축이 됐던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은 “노 전 대통령을 팔아서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든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신당은) 지역이나 친노 정치세력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내세우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을 바라보는 이들은 ‘지역당’이라고 평가한다. 민주당 관계자는 “‘사회디자인연구소’와 ‘광장’ 등 민주당 안팎의 친노·영남 개혁세력 일각에서 영남을 근거지로 하는 신당을 만들어 내년 지방선거에 최소 20~30명은 출마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이해찬 전 총리가 ‘시기상조’라고 말렸고 자체적인 동력도 확보가 안 돼 주춤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민주당 인사는 “민주당에 호남색이 강해지니까 나오는 얘긴데, 개혁이 실패하니까 지역정당으로 전락하는 거다. 영남당 만든다고 개혁이 성공하나. 개혁이 성공해야 영남도 사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문제는 사람이다. 영남 개혁세력의 구심이 될 만한 ‘인물’도, 이를 뒷받침할 정치적인 ‘세력’도 없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민주당의 고민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윤호중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지역의 벽을 뛰어넘을 사람이 없으니 지지층도 형성되지 않고, 그러다 보니 또다시 지도자도 길러지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영남 지역에서 개혁세력의 정치적인 지도력을 확보하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