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 체계와 기본적인 추론 절차를 인정한다면 수학 정리(theorem)는 완벽한 진리다. 수학 정리에서는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반례만 제시해도 그것이 정리가 아님을 입증한 것이다. 수학 정리가 되고자 하는 후보가 단 하나의 반례만으로도 자격을 상실하는 이유는 수학 정리가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리라는 엄청난 지위에는 단 하나의 반례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혹한 조건이 따른다. 이것이 수학의 반증(falsification)이다.

 

 

 

과학에서는 상황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왜냐하면 과학 이론은 수학 정리와는 다르게 절대적 진리를 자처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측력이 전혀 없다면 전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이론으로 인정 받지 못한다. 하지만 완벽한 진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 예측력이 있다면 이론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과학 이론이 절대적 진리라는 엄청난 지위를 노리지 않기 때문에 단 하나의 반례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혹한 조건도 따르지 않는다.

 

과학 이론의 반증을 우선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수학의 반증과 비슷한 반증이 있다. 어떤 과학 이론과 모순되는 현상이 있음을 확실히 보여줄 때 그 이론은 수학적 의미에서 반증된다. 즉 그 이론이 절대적 진리가 아님이 드러난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 이론의 예측력이 완벽하지 않음을 입증한 것이다.

 

둘째, 어떤 과학 이론의 예측력이 전혀 없음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이 때 그 이론이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이 입증된다.

 

 

 

혈액형 성격론 중에는 A형은 소심하다라는 명제가 있다. 만약 대규모 설문 조사, 실험, 범죄자 통계, 혁명가 통계 등을 통해서 소심함과 A형 사이에 어떤 유의미한 상관 관계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A형은 소심하다라는 명제의 예측력이 전혀 없음을 입증한 것이다. 그 명제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 때 이런 명제 또는 이론은 폐기하는 것이 마땅하다.

 

 

 

뉴턴의 중력 이론처럼 예측력이 있긴 하지만 반례가 발견된 경우는 어떤가? 두 가지 경우가 있을 것이다.

 

첫째, 반례가 발견되었지만 아직 그 이론을 대체할 이론이 없는 경우가 있다. 그 이론이 완벽하지 않음이 드러났지만 대안은 없는 것이다. 이 때 그 이론을 폐기해서는 안 된다. 예측력이 있기 때문에 쓸모가 있는 이론을 단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폐기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렇다고 그 이론에 만족해서도 안 된다. 그 이론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 이상 더 나은 이론이 있을 가능성은 고려해야 한다. 그 이론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 반례가 발견되었을 뿐 아니라 더 나은 이론이 나온 경우가 있다. 실제로 물리학의 역사에서 뉴턴의 중력 이론보다 더 나은 아인슈타인의 중력 이론이 제시되었다. 이 때 뉴턴의 이론은 폐기되지는 않지만 폐위된다. 뉴턴의 이론은 완전히 추방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왕좌에서 물러났으며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왕좌를 차지했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반증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다. 어떤 이론이 완전히 쓸모가 없음을 입증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이론에 문제가 있음을 입증했지만 아직 대안이 없는 경우도 있고, 어떤 이론보다 더 나은 이론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칼 포퍼의 반증론(falsificationism, 반증주의)에서는 이 세 가지 형태의 반증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았다. 포퍼의 과학 철학의 약점 중 많은 부분이 이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것 같다.

 

 

 

2011-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