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서남표 총장을 위한 변명② - 서울대, 너나 잘 하세요

                                                                          2011.4.10.


지금 막 카이스트 교수 1분도 자살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네요. 먼저 고인이 된 학생 4명과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카이스트 사태를 보면서 안타깝고 착찹한 심경이나 그래도 냉철하게 지켜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판과 비난을 무릅쓰고 다시 한번 서남표 총장의 개혁 방향을 옹호하고자 합니다.

전번 글 - KAIST 서남표 총장을 위한 변명

서남표 총장의 카이스트 개혁안이 경쟁을 통한 효율을 강조함으로써 삭막한 교육환경을 만들었고 그것이 학생과 교수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현재의 결과를 놓고서 총장의 개혁안이 모든 원인인 것처럼 몰고가고 서총장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분위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재의 여론과 언론, 카이스트와 서 총장을 비난하는 서울대 교수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의 대학 개혁 방안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대학 개혁을 위해 실제 여러분들은 어떤 움직임을 보이셨나요? 서 총장과 카이스트의 개혁 드라이브가 없었더라면 서울대를 비롯한 한국 대학들이 개혁의 시늉이라도 했겠습니까?


1. 서남표 총장의 열정과 진정성은 인정합시다.


서남표 총장 바로 직전의 카이스트 총장은 노벨상을 받았던 러플린이었죠. 이 분은 카이스트를 효율적이고 경쟁력 있는 세계 대학을 만들고자 카이스트를 사립화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학내외의 반발로 결국 실패하고 연임하지 못하고 쫒기다 시피 미국으로 돌아갔지요. 그런데 러플린이 실패한 것은 사립화 시도에 대한 반발도 있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개혁의 방향은 제시했으나 실행할 의지나 열정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러플린의 후임으로 MIT의 서남표 교수가 카이스트 총장으로 부임해서 러플린의 사립화 계획을 폐지하는 대신 다양성과 학문간 융합, 경쟁을 통한 면학과 연구 분위기 조성, 대학 규모의 확대 등 카이스트 개혁을 통해 경쟁력 있는 세계 대학으로 육성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직접 고등학교(과학고 등)를 방문하여 강연도 하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여 일반고의 우수한 학생을 선발, 종전의 과학고 출신 위주에서 탈피하여 구성원의 다양성을 꾀했습니다. 

물론 서남표 총장의 독선적인 운영으로 구성원들의 합의와 동의를 얻는 과정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이 부분은 서 총장이 비판 받아 마땅하고 반드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서 총장의 개혁안에는 구성원(학생과 교수)들의 합의와 동의를 얻어 시행하기 힘든 부분이 많음을 간과해서도 안 됩니다. 상대평가, 차등 등록금제와 초과학기 전액등록금 부담제에 학생들이 동의하기 힘들 것이고, 테뉴어 심사 강화를 어느 교수가 반기겠습니까? 제도 시행의 대상자이고 어찌보면 이해관계 당사자들인데 이들에게  동의와 합의를 얻어 시행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런 제도는 그 제도 자체의 타당성을 제3자가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시행여부를 판단해야할 사안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제도 자체만으로 놓고 볼 때, 국내 대학들의 개혁을 위해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으시는지요?

서 총장은 이런 제도를 단순히 도입만 한 것이 아니라 실행과 효율성 제고를 위한 노력을 하였습니다. 무학과 제도, 외국인 교수 초빙, 교내 병원 설치로 정신과 상담 및 건강진료 시행, 체육시설의 확충, 기숙사 신증축, 연구설비 도입 등 실질적 조치를 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서 총장을 평가해줄 부분은 대학 개혁을 위해 필요한 재원을 국비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라 대학이 자립할 수 있도록 기금 조성에 엄청난 노력을 쏟았다는 것입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훌륭하고 좋은 제도를 제안하지만, 그에 따르는 자금 조달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대학 뿐 아니라 사회 일반에서 일어나는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결국은 돈입니다. 재원의 조달여부를 도외시한 어떠한 좋은 제도와 방법도 그래서 공허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서 총장은 재원의 확보가 절실함을 깨달았고, 자체 기금의 조성을 위해 70의 노구를 이끌고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기부금을 확보하고자 동분서주했습니다. 서남표 총장이 차등 등록금제로 절약한 비용과 기부금으로 조성한 기금을 사적으로 사용하거나 카이스트 발전에 어긋나는 곳에 투자했다면 이런 노력들도 비판받아야 하겠지요. 하지만 서 총장이 그렇게 한 적도 없으며, 그렇게 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로지 기부금 조성은 카이스트 발전을 위한 투자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국내 대학, 특히 사립대들이 학생들의 등록금을 대학 발전에 사용하지 않고 매년 이월시켜 재단 기금만 불리는 형태에 비하면 서 총장의 이런 노력의 평가에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혹자는 서 총장이 기금을 펀드에 투자에 손실을 보았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사실을 모르고 서 총장을 비난하기 위한 것에 불과합니다. 카이스트는 2008년 미국발 세계금융위기를 맞아 투자해 두었던 펀드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카이스트 뿐 아니라 MIT, 하버드 등 미국의 유수한 대학과 국내의 대학들도 기금을 펀드에 투자해 운용하였고, 이들도 카이스트와 마찬가지로 그 때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대학내에서나 외부에서 기금의 펀드 손실에 대해 담당자와 총장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소식은 접하진 못했습니다. 이래도 이것이 서남표 총장의 잘못이라고 해야 할까요?

비록 그 과정에서 독선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많았지만, 서 총장은 자기의 개혁방안을 실행에 옮기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임했다는 것과 카이스트를 세계 일류 대학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진정성은 우리는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2. 서울대는 카이스트와 서 총장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준구 교수, 법학대학원의 조국 교수, 수의학과의 우희종 교수가 이번 카이스트 학생 자살사건을 두고 KAIST와 서남표 총장을 맹비난하였습니다. 이 분들이 각각의 분야에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개진해 왔던 것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번의 KAIST와 서 총장의 비난은 저로서는 구역질이 납니다. 한마디로 친절한 금자씨 버전으로  “너나 잘 하세요”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2-1. 과학고 최상위권이 카이스트 대신 서울대를 가는 이유

5~6년 전부터 과학고 출신들이 서울대를 진학하는 경우가 많아졋습니다. 특히 상위권 학생들의 서울대 진학은 최근에 대세화 되다시피 하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과학고 출신들은 KAIST 진학이 정석화되었었지요.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아이러니컬하게도 서남표 총장의 개혁이 시작되고 난 이후에 그 경향성은 더해 갑니다. KAIST는 세계 대학 평가에서 나날이 그 순위를 앞당겨 가고 있는데 과학고 최상위권은 KAIST를 기피합니다. 그렇다면 서울대가 면학이나 연구 분위기가 좋아져서 그럴까요? 그랬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불행하게도 그 이유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상반되며, 전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첫째, 카이스트가 서남표 총장 부임 이후로 학습의 강도와 학습량이 늘어났고, 영어수업의 부담도 있어 과학고의 연장이라는 인식이 과학고생들간에 퍼지면서, 과학고에서도 공부하느라 죽도록 고생했는데 대학에서는 숨 좀 쉬자는 과학고생들의 바램이 작용했습니다. 서울대는 절대평가로 A학점을 50%나 주고, 1~2학년 과정은 대부분 과학고에서 배운 수준보다 낮거나 최소 그 이상은 되지 못하여 대충 공부해도 A학점 받는데 지장이 없습니다. 일반고 출신, 농어촌 특별 전형의 학생들과 경쟁하다 보니 과학고 출신들은 상대적으로 훨씬 수월한 입장에 2년간 놓인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요즈음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2~3년 전만 해도 과학고 출신의 서울대생은 1~2학년 과정은 배울게 없어 재미없다고 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둘째는 카이스트가 대전에 소재하는 지리적 핸디캡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서울 중심의 사고가 지배적인 것과 집과 멀리 떨어져 있다는 공간적 불안감이 수도권 과학고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KAIST를 기피하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만약 카이스트가 서울, 아니 서울 인근의 경기도에만 위치했어도 저주없이 KAIST로의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과학고 출신 학생들이 다수 있음을 볼 때, 이 지리적 조건이 무시못할 이유가 되었을 것입니다.

셋째, 카이스트의 주변 환경입니다. 카이스트는 국내 일반 대학과 달리 주변에 유흥이나 소비, 여가 활동의 공간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있다고 하더라도 이용할 시간이 없겠지요. 요즈음 학생들은 폐쇄적 기숙사 생활에 갑갑해 하고 적당한 스트레스 해소 공간을 찾고 있습니다. 젊음을 만끽하고 나름 소통의 공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죠.

넷째, 아마 이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이 여전히 실력이나 능력으로 평가되지 않고 학벌, 학력, 학연 중심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서울대라는 name value와 학연이라는 프리미엄이 아직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이는 실력이나 노력 외의 불로소득이 되는 것이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과학고 출신들이 서울대를 선택하는 이유 중에 서울대가 긍정적인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전근대적인 사회적 분위기와 서울대의 형태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수한 자원 확보를 용이하게 만들고 있지요. 서울대와 서울대 교수들은 자기들이 잘 나서 그런 줄 착각하고 있습니다.

서울대는 대학원 지원자가 미달하여 전전긍긍하는 학과가 많습니다. 서울대 학부 졸업생이 KAIST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경우가 많고, KAIST는 적어도 대학원 지원 미달로 원생 모집을 고민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최고의 학생들을 뽑아 놓고서도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니 졸업생들마저도 외면하는 것이죠.

정치에 한 눈 파는 교수, 강압적 폭력적 교수법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교수, 학생을 성희롱하여 제재 받는 교수, 대학원생이나 조교들을 사적인 일에 동원하는 교수, 별별 사건들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곳도 서울대입니다. 적어도 이런 일들은 KAIST에서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교수들에게 연구를 독려하기는 해도 연구 외적으로 신경쓰게 하는 것은 서울대보다 훨씬 적습니다.


2-2. 학점 인플레와 교수 테뉴어 심사

저는 심하게 이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서울대가 절대평가를 하고 학점을 후하게 주는 이유는 교수들의 이해관계도 작동한 것이 아닌가 의심해 봅니다. KAIST처럼 상대평가를 하고 학점을 철저히 관리하게 한다면, 교수들도 그에 상응하여 테뉴어 심사도 강화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을 우려하는 것이 아니냐고. 학점 인플레와 교수들의 평가(테뉴어 심사)는 모종의 암묵적 밀약일지 모른다는 근거 없는 의심을 해 보는 것이죠. 카이스트와 서울대는 교수와 학생들간에 형평성은 지키고 있습니다. 카이스트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가혹하고 비인간적(?)으로 몰아 붙이고, 서울대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모두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이죠. ^^

어떤 언론에서는 카이스트의 일반고 출신 학생들의 성적 부진과 서울대의 농어촌 특별전형 출신의 학점 향상 동향을 비교하고 카이스트를 비판하는 기사를 실었더군요. 저는 그 기사를 보고 한참 웃었습니다. 실상을 모르면 기사를 올리지 말든지, 피상적으로 보이는 현상을 보고 저런 어처구니 없는 기사로 대중을 호도하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카이스트는 일반고 출신이나 전문계 고등학교 출신들을 주대상으로 입학전에 카이스트 수학에 필요한 일정 수준의 능력 향상을 위해 Bridge Program을 수개월간 실시합니다. 물론 이 과정을 이수해도 카이스트 정규과정을 따라가기 벅찬 학생들도 있어 만족할 수준은 못되지요. 그런데 서울대는 카이스트의 브릿지 프로그램에 버금가는 교육을 농어촌 특별전형이나 일부의 일반고 출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있나요? 서울대의 농어촌 특별전형 학생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향상되어 일반고와 특목고(과학고) 출신들의 성적에 근접해 간다고요? 네 겉으로의 데이터는 그렇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서울대의 1~2학년의 학습수준과 학습량은 카이스트와 차이가 많아 과학고 출신들은 그다지 많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수한 과학고 출신들을 선발해 놓고서는 1~2년을 허송하게 만드는 것이죠. 국가의 과학영재 육성 목적에 역행하는 것이고, 어찌보면 과학고 출신들을 결과적으로 역차별한 것이 되지요. 카이스트는 과학고 출신들도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다보니 일반고 학생과 전문계고 출신들이 많이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가 쉽게 줄어들지 않은 것이고, 서울대는 과학고 출신들은 널널하게 해도 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하향 평준화를 만들어 놓고 그 차이가 줄어들었다고 자랑하고 있습니다. 적응능력향상 프로그램으로 보나 실질적 학생들의 능력향상 정도를 절대적으로 평가한 것으로 보나 카이스트가 서울대보다 비난받을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2-3. 카이스트 사태를 빌미로 자기의 치부를 감추려 말라

위에서 살펴본대로 서울대가 KAIST와 서 총장을 비난할 자격이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서울대를 개혁하기 위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서울대는 지금 무얼 하고 있습니까? 위의 3분의 교수들은 사회적 거대 담론에는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하지만, 정작 서울대 문제에는 말이 없습니다. KAIST와 서남표 총장의 개혁 방향이 서울대로 하여금 그 방향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이번 자살 사태를 빌미로 KAIST와 서남표 총장의 개혁에 딴지를 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KAIST와 서 총장의 개혁 방향이 잘못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대학은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비판과 비난이 타당성과 설득력을 얻을려면 그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비난을 위한 비난으로, 자기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가림막으로 사용했다는 역비판을 불러 올 수 있습니다.

친절한 금자씨는 말합니다. 서울대와 서울대 교수님들, “너나 잘 하세요”


3. 징벌적 등록금제라는 말이 타당한가?


많은 언론과 여론은 이번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의 원인으로 징벌적 등록금제를 꼽습니다. 물론 이 제도가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3-1. 징벌적 등록금과  세금 폭탄

노무현 정권시절, 종부세 도입과 시행을 두고 보수 언론들은 “세금 폭탄” 운운하면서 종부세제를 비판했지요. 대중들은 종부세의 세부내역은 모르면서 보수언론들의 “세금 폭탄”이라는 딱지 붙이기에 현혹되어 종부세제가 나쁘다고 인식합니다. 언론이나 위정자들이 대중들을 속일 때 흔히 사용하는 수법으로 어떤 의미나 개념에 전혀 새로운 의미나 위치를 부여하여 대중들이 이를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수법이지요. 대표적인 것이 좌파를 “빨갱이”로 딱지 붙여 부정적 인식을 갖게 만드는 것이죠.

이번에도 그 수법이 진보/보수 언론을 막론하고 쓰여지더군요. 카이스트에는 “징벌적 등록금“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냥 차등별 등록금제라고 부르고 있지요. 그런데 이것이 자살 사건이 일어나자 언론들은 ”징벌적“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바꾸어 사용하고 대중들은 무의식적로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3-2. 독려형 혹은 책임형 등록금이라 부르거나 장학금이라고 한다면

서남표 총장은 차등별 등록금제를 07학번부터 적용하고 2008년부터 첫 시행을 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는 학점과 관계없이 전학생이 전액 학비를 면제 받았지요. 서 총장이 이 제도를 도입한 것은 학생들에게 긴장감을 부여하고 열공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발 당시의 목적과 취지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제도는 소급 적용한 것도 아니었고, 입학요강에 공지되었으며 2007년 이후 신입생들은 이 내용을 알고 입학했습니다. 단지 이것이 징벌적이라고 여겨지는 이유는 2007년 이전까지는 학점과 무관하게 전액 학비 면제를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제도 도입으로 일부의 학생이 학비를 부담하게 되니까 종전과 비교하여 불이익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징벌적인 것이 아니냐는 인식을 하게 된 것이죠. 만약 카이스트가 2007년도에 신설되어 신설과 동시에 이 제도를 시행했다고 한다면 이것을 징벌적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닐 것입니다. 2007년도 이후 입학생들은 과거의 전액 학비 면제와 비교하지 말고 학점 3.0 이상자에겐 전액 학비를 면제해 주는, 실질적인 장학금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실 현재 이 제도로 학비(등록금)를 부담하는 학생은 12% 정도 됩니다. 나머지 88% 정도는 전액 학비 면제를 받고 있는 셈이지요. 이는 사립 대학, 뿐 아니라 다른 국립대학들과 견주어 보아도 대단한 특혜입니다. 다른 대학에서 형평성을 문제 삼고 나온다면 할 말이 별로 없습니다. 카이스트도 이 형평성 문제에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카이스트는 이러한 특전을 차등별 등록금제로 시행함으로써 형평성 문제를 대외적으로 잠재우려 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차등 등록금제를 달리 부르면 독려형 장학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 내용은 똑같은데 어떻게 부르느냐, 그리고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접근하게 되지요. 저는 차등 등록금제는 “징벌적”이 아니라 독려형 장학금 제도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4. 카이스트 학생들의 본질적인 고민은 무엇인가


4-1. 언론의 황색 저널리즘

카이스트 학생들의 자살사건이 잇따르자 보수, 진보 언론을 막론하고 명문대생의 자살이라는 자극적인 내용을 기사화하는데는 열심이었지만 정작 심층적인 분석은 등한시 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진정으로 고민하는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사태가 카이스트만의 문제인지, 카이스트의 개혁 방향이 실제 이 사건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은 없었습니다. 단지 차등 등록금제를 이 사건의 주범으로 단정짓고 서남표 총장을 비난하는 것에만 여념이 없었지요.

언론들은 차등 등록금을 낸 학생의 비율이 2008년 4%, 2009년 8%, 2010년 12%로 매년 증가해 온 것으로 보도하면서 카이스트가 마치 차등 등록금제를 2007년 도입한 후에 계속해서 강화해 학생들을 옥죄어 온 듯이 왜곡하고 있습니다. 차등 등록금제는 07학번부터 적용되어 2008년부터 첫 대상자가 나오게 됩니다. 2008년은 07학번만 대상이었음으로 4개 학년 전체 학생의 비율로는 4%, 07학번 2학년생만의 비율은 12%가 됩니다. 2009년은 07학번(3학년), 08학번(2학년)이 대상이 되어 4개 학년 전체학생 기준으로 8%가 되고, 07학번, 08학번 2개 학년 대상 기준으로는 2008년과 같이 12%가 되지요. 2010년도 2008년과 2009년과 마찬가지로 대상 학년 기준으로는 12%가 됩니다. 즉, 차등 등록제를 시행한 첫 해부터 지금까지 차등 등록금을 낸 학생의 비율이 12% 수준을 유지한 것으로 카이스트가 매년 강도를 높여 옥죄어 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언론들이 이런 식의 기사를 쓰니까 대중들은 차등 등록금제의 폐해가 크고, 이것이 학생들의 자살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으로 인식하게 되지요.

학생들의 자살사건은 카이스트 뿐아니라 국내, 해외 명문대에서도 발생합니다. 서울대도 작년에 5건이 발생했고, MIT도 평균적으로 10만명당 20.6명의 학생이 매년 자살한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우수한 집단에서는 엘리트 스트레스라는 것은 어쩔수 없이 존재하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는 소수의 몇 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죠. 자살을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지만, 학생들의 자살이 카이스트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살한 4명의 자살 이유도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차등 등록금제 때문이라고 직접적으로 유서에 남긴 것도 없구요. 4명 중 2명은 학점이 3.0을 넘어 차등 등록금 납부 대상도 아니었고, 1명은 3.0에 가까운 학점을 받은 학생으로 차등 등록금이 많지 않아 큰 부담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문계 고교 출신인 로봇 영재 1명만 2.0 이하로 학사경고를 2회 받았지만, 이 학생도 차등 등록금의 부담보다는 카이스트 적응문제와 이성문제가 주요인이었던 같고, 실제 가정형편도 어려운 편은 아니라고 합니다. 언론들은 이런 객관적인 사실은 무시한 채, 모든 원인을 차등 등록제로 몰아갔고, 서 총장의 개혁의 실패로 결론지어 버립니다.

위에서도 설명한 바 있지만, 서울대의 농어촌 특별전형 학생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성적이 올라가고 일반고와 과학고 출신과의 성적 차이가 줄어간다는 사실을 들어 카이스트가 일반고와 전문계고 출신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고 이들을 몰아붙이기만 했다고 질타하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이 기사가 얼마나 실제 사실을 도외시한 피상적인 것이라는 것과 사실을 왜곡하고 있음을 이미 위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추가) 오늘(4/12) 아침 한겨레 신문은 서 총장의 편법과 카이스트의 비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대단한 비리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개혁되어야 할 대상은 거꾸로 카이스트와 서 총장이라는 식입니다. 물론 이번에 적발된 카이스트의 문제는 옹호될 대상도 아니고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저 정도 수준의 문제점이 없는 한국의 대학이 있을까요? 아니 이번에 적발된 카이스트의 문제점보다 깨끗한 대학이 국내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나, 둘 정도가 될까요? 서울대가 카이스트처럼 감사를 하게 되면 카이스트보다 적은 비리와 편법이 나올까요? 서남표 총장의 사학연금 가입과 인센티브 지급 건을 한겨레는 비비꼬고 있습니다. 서 총장의 사학연금 가입은 사학연금 측에 문의를 하고 문제없다는 회신을 받고 가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인센티브 지급도 별도의 평가없이 지급하기로 계약한대로 지급한 것이라고 합니다. 6만불 인센티브 중에 대부분을 수령하고 일부를 사학연금으로 납부한 것을 두고도 이상하게 왜곡합니다. 사학연금에 가입한 이상 소득에 따른 연금을 납부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정상적으로 처리한 것을 두고 마치 편법적으로 한 것처럼 이상하게 꼬아놓아 독자들을 헷갈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KAIST 구성원(학생과 교수)들의 진의도 왜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남표 총장의 개혁이 속도조절과 보완이 필요하고, 서 총장의 독단적 훈영은 개선되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과 교수들은 서 총장의 사퇴까지는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들의 기사를 보면 마치 전구성원들이 서 총장의 사퇴를 원하는 것처럼 선동하고 있습니다. 서 총장의 개혁에 대해 묻는 설문조사에서 카이스트의 학생들의 다수는 카이스트의 개혁 방향은 그대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4명의 동료 학생들과 1명의 교수가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는데 충격과 동요가 없을 수 없고 애도의 념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이런 설문조사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죠. 오히려 당사자들인 카이스트의 구성원들보다 언론이나 인터넷 여론이 사태를 왜곡하며, 사태를 증폭시키고 수습의 방향을 잘못 오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보수와 진보(언론)를 막론하고 이 사태에 심층적이고 종합적으로 접근하는 태도가 아쉽습니다. 한겨레 등 소위 진보언론은 대학의 개혁의 방향과 한국 교육의 전반적인 문제에서 이 사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이념의 프리즘을 갖다대고 이번 사건에 접근하는 듯해 더 실망스럽습니다.


4-2. 국내 이공계의 현실

대부분의 카이스트 학생들의 진정한 고민은 따로 있습니다. 단지 국내 이공계의 문제만이 아니긴 하지만, 이들은 향후의 진로와 비전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고 불안해 합니다. 이들은 청운의 꿈을 품고 한국 과학계에서 성과를 내어보겠다는 야무진 포부를 갖고 카이스트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강도 높은 수업수준과 과제를 수행하면서 죽도록 공부를 합니다만, 1~2년 뒤에는 한국의 이공계 현실과 맞닥뜨리면서 회의를 하게 되지요. 사회에 진출한 선배들의 현주소를 보고 또 학내 선배들의 이야기들를 듣고 이공계의 암울한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의전, 치전, 약전으로 진로를 변경하는 학생들도 생기고(물론 애초부터 의전 등을 목표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지만) 자기들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고민들이 깊어질수록 뚜렷한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특히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은 그 선택의 폭도 좁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방황을 하게 되지요. 이런 고민과 방황이 카이스트 학생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대학의 이공계 학생들의 공통된 것이긴 하지만, 특히 카이스트 학생들은 고교시절까지 1~2등을 다투다 들어온 자존심과 자부심이 강한 학생들이라 예전에 생각했던 자기의 앞날이 현실과는 많은 괴리가 있음에 충격의 강도가 더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5. 대중들의 이중성


5-1. 다양한 재능의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공짜가 아니다.

로봇 영재의 죽음을 두고 다양한 인재를 뽑았으면 그에 상응하는 교육을 카이스트가 시켜야 하는데 일률적 교육으로 내몰아 적응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냐고 대중들은 카이스트를 질타합니다. 네, 맞습니다. 이것은 분명 카이스트가 잘못하였지요. 가능성 있는 다양한 재능을 가진 인재는 그 특성에 맞게 교육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개인별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육하는데 엄청난 돈이 든다는 것입니다. 한정된 예산으로 개인별 프로그램으로 교육을 한다면 필시 일반 학생들의 교육은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 밖에 없게 되지요. 일반 학생들이 상대적 피해를 입고 역차별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이를 해소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개인별 교육을 하려면 그만큼의 예산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중들은 소요되는 재원에 대해 세금으로 충당할 준비는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대중들은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까지만 열을 올리지 그 해결을 위한 비용문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다양한 인재들의 개별 프로그램 개발과 수행에 따르는 재원을 세금으로 충당하자고 할 때, 과연 얼마나 흔쾌히 자기 주머니를 내어놓겠습니까? 카이스트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국가가 필요한 예산을 카이스트에 추가적으로 더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카이스트와 서남표 총장은 이런 문제와 예산의 확보를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진척이 느려 부작용이 조기에 발생했을 뿐입니다. 대학 개혁은 계획만으로 되지 않고 실행하는 과정에 필요한 정책, 학생의 자질, 교수진의 확보, 프로그램의 개발, 이를 위한 비용의 확보라는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차질없이 진행될 때 가능합니다. 적어도 카이스트와 서남표 총장은 이러한 요소들을 순차적으로 혹은 동시적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그 중 몇 요소들(특히 예산 확보)이 시행착오와 대내외적 요인으로 순조롭게 이행되지 않음으로써 부작용이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개혁을 위한 계획과 실행과정의 문제는 제대로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하겠지요. 대중들은 한 단면만 보고 비판과 비난을 하긴 쉽지만, 실제 개혁을 수행하는 입장의 세세한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자기들의 비판이 얼마나 공허한지는 느끼지 못합니다.


5-2. 학점 인플레는 절대평가가 주범이다.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사건이 일어나자 카이스트의 상대평가가 도마에 오릅니다. 상대평가로 학생을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비난하지요.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대학의 학점 인플레가 세간에 오르내렸지요. 대학들이 절대평가로 학점을 후하게 주어 학점의 인플레가 발생하자 대중들은 이를 질타하였습니다. 학력 인플레의 주범인 절대평가를 비판하면서 이번에는 상대평가하는 KAIST를 비난하는 이중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 한국 대학의 개혁을 위해, 학생들의 진정한 실력의 향상을 위해 어느 쪽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까요?


5-3. 김연아, 박찬호, 박세리도 혹독한 경쟁을 이겨냈다.

김연아, 박찬호, 박세리의 선전에 환호하면서 정작 그들이 인종 차별과 혹독한 훈련,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그 성취물을 이룬 과정에는 대중들은 무관심합니다. 세계적 석학과 노벨상 수상자 배출을 기대하고 세계적 대학으로 성장해 주길 바라면서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습니다. MIT와 하버드 같은 명문 대학을 요구하면서도 그들의 시스템을 도입하고자 하면 반대합니다. KAIST의 상대평가와 차등 등록금제를 비난하면서 한편으로는 우리 대학들의 무사안일을 비판하고, 대학 개혁의 필요성은 강조합니다.


5-4. 창의력은 무에서 결코 나오지 않는다.

악성 베토벤도 매일 아침 8시에 자기 작업실로 반드시 출근했다고 합니다. 1%의 영감과 99%의 노력이 천재를 만든 것이지 겵코 무에서 유가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대중들은 막연하게 여유와 휴식을 주면 창의력이 향상되고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창의력과 아이디어는 관심과 노력이 없으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 학부과정은 어떤 성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보다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skill을 익히고, 심화 학습하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했느냐에 따라 향후의 자기 성과물의 질이 결정되는 것이죠.


6. 서남표 총장의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서남표 총장의 독선적 운영형태는 분명 개선되어야 하지만, 그의 개혁 방향과 정책의 기본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부작용이 나타난 것은 수정, 보완하고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지 근본적인 방향을 수정하는 것은 한국 대학의 미래를 위해서도, 한국 과학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차등 등록금의 기준을 학점 2.5 정도로 다소 완화하더라도 그 제도 자체를 폐기하면 안됩니다. 초과학기 전액 등록금 부담제는 합리적인 제도이며, 카이스트 학생들이 수용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중간고사 치른 이후의 drop 불가와 4개 과목 이상 재수강 금지, 9학점 미만 수강시에 등록금을 부과하는 방침도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좋은 제도로 계속 유지되어야 합니다. 영어수업은 전달력에 문제가 있거나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에 한국어와 영어를 병행하거나 한국어 보강 수업을 하는 것으로 보완이 필요합니다만 지금에 와서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개혁은 혁명보다도 어렵다고 합니다. 이해관계 구성원들의 합의와 동의가 우선되고, 조그마한 부작용도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겠죠. 서남표 총장은 무사안일에 빠진 한국 대학들을 개혁하기 위해 칼을 빼들었습니다. 다소의 부작용과 무리한 운영이 있더라도 조금만 시간을 주고 기다려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카이스트 구성원들, 학생과 교수들이 스스로 사태를 수습하고, 방향을 설정해서 개혁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주변에서 도와 주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