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공짜 점심에 대한 책을 읽은 김에.

몇년전부터 특허권이나 상표권등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나의 기존 관념이 완전히 변했었다. 즉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특허권 보호라는 측면에 대한 반대 입장으로 생각이 바뀐 것이다. 이런 변화에 대한 연유를 굳이 들어 보자면 안토니오 네그리의 '멀티튜드'가  아마도 처음 기폭제였던듯 하다. 그 다음이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었고 그 다음으로 들자면 언어에 대해 천착한 소쉬르와 리오타르, 그리고 메를로퐁티가 될듯하다. 

시작은 다른 사람들의 특허권 문제 제기로부터 출발했으나 저작권 반대에 대한 내 스스로의 논리적 정합성을 언어의 영향으로부터 구했다는 의미다. 언어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고 그 언어가 없다면 저작권은 아예 성립조차 할수 없다. 그렇다면 언어가 제공하는 저작권의 기여는 누가 소유해야 하는가? 결국 나는 사회의 언어규칙이나 지식으로로부터 대부분을 의존하는 저작권은 개인의 소유로 보호해서는 안된다는 거였다. 99%의 공짜에다가 단지 자기노력인 1%를 기여해놓고서 100%를 자기 몫으로 요구하는 것은 강도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달에 그와 같은 맥락에서 소유권 문제를 다룬 책이 나왔다.  'Unjust deserts' , 가 알페로비츠와 루 데일리 공저에 원용찬 전북대 교수의 번역이다. 한글 제목은 그다지 마음에 안드는 '독식비판'이다. 

쓸데없는 감상보다는 책속의 내용 몇 구절을 그냥 인용하는게 더 효율적일 듯 하다.


"동일한 시간동안 동일한 일을 할 경우 오늘 우리는 1870년대 사람보다 아마 15배나 많은 경제산출물을 생산할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인들이 그때보다 더 많은 생산성을 발휘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대신에 그것은 조엘 모커가 말하는 공짜 점심때문이다. 우리는 확실히 선조보다 더 많이 안다고는 할 수 있을망정 더 똑똑하다거나 근본적 의미에서 더 지능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발명이란 주로 예전의 것과 새로운 기여가 결합된 산물이지만 그중 대부분은 예전의 기여분에 더 많이 기울어져 있다.", "내가 번 것중의 아주 많은 부분은 사회에서 나온 것이다.- 워렌버핏.","우리가 가진 대부분은  우리자신들의 아무런 노력도 없이 과거를 통해 내려온 공짜점심이다."    

" 개인이 사적 경제를 영위하는데 있어 사회의 기여도를 무시하는 일은 일종의 합법적 약탈을 승인하는 것이며 개인이 아니라 사회가 창조하고 기여한 것에 대한 사적 탈취이다.... 경제학의 근본문제는 재산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자리매김시켜 재산권의 사회적 개념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는 부의 형성에서 개인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를 정확히 구분하는 것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레너드 홉하우스"

" 실제로 공공정부부문이 집행하는 촘촘한 법망의 보호가 없었더라면 미국에서 가장 큰 법인기업도 단 하루를 넘길 수 없었을 것이다. 노동력이 없었더라면 기업은 사라졌을 것이다. 노동력이 적절하게 훈련받지 못했더라면 기업은 서서히 쇠약해졌으리라.그리고 숙련기술노동자, 화이트칼라 종업원, 임원진의 교육은 누가 제공하는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언어이다. 공짜로 주어지는 언어는 바로 사회가 제공하며 오랫동안 진화과정을 거쳐서 이뤄진 것이다. 유명한 프로테스탄트 윤리(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로- 몬테로사가 굳이 덧붙이자면^^)처럼 관념, 사고, 시민의 기질,과학과 기술조건등도 역시 모두가 사회적이다. 누가 제네럴일렉트릭의 운영에 더 크게 기여했는가? 회사중역인가? 아인슈타인인가? 패러데이인가? 뉴턴인가?- 로버트 달"    

" 이제 우리는 새로이 판단을 내려야 한다. 무엇이 기여분이고 무엇이 유산인가? 무엇이 노력의 댓가이고 무엇이 불로소득인가? 따라서 누가 무엇을 응분의 보상으로 받아야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주장하는 사회적 기여도는 대략 80% 이상이다. 로버트 솔로의 경제적 잔차를 그 기준으로 보자면. 그런 의미에서 빌게이츠 시니어의 주장은 타당하고 빌게이츠나 워렌버핏의 기부는 실상 기부가 아니라 자기가 번 것으로 보는 재산에서 자기 몫 외를 원주인인 사회에 돌려주는 셈이다.그럼으로서 그들은 자본주의를 더 확고하게 다지는 셈이다. 바로 개인이 노력한 댓가만을 소유로 취한다는 자본주의의 원래 이념을....  



2. 엄마를 부탁해.

뉴스에 자주 언급되는 지라  근 몇년간 한국 현대소설과 담 쌓고 지내던 처지를 바꿨다.  또 읽으려고 하면 시간이 그다지 들 일도 아닐 터. 오늘 오후에 딱 세시간 걸렸다.  작가가 전라도 출신인지라 일단 소설속의  가끔 등장하는 사투리들(나도 언제부터인가 쓰기를 잃어버린)이 먼저 보였다. " 고기를 끊다", " 양석"등의 말은 내가 어린시절 내 주위에 항상 존재했던 말이었다. 

 그다음 신경숙 소설의 엄마와 내 엄마가 혼동되기 시작했다. 당대 그시절 엄마의 모습이란 거의 비슷해서일까?

그리고 그걸로 끝. 미국에서 관심을 두건 말건 그것은 이제 2차적 문제였다. 작가가 원한 것도 그런 의미였으니까. 내게는 엄마를 다시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였다. 그래서 아크로 제현들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