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 보면 중구난방에 배가 산으로 가곤 하는데,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요.  TimeLord님이 '백지론자들의 자기기만'이란 글을 올린 게 논의가 시작된 발단이죠. 글 제목만 보면 얼핏 백지론자들을 반박하는 글로 이해됩니다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TimeLord님이 정리한 백지론자들의 주요 의견을 여기서 다시 확인해 봅시다.   


 1) 지능 검사는 무용하다.
 2) 인간의 지능을 측정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3) 지능검사는 누구나 연습하면 잘 할 수 있다.
 4) 지능의 유전성을 주장하는 사람은 히틀러같은 우생론자이다. 


  1)과 3)는 사실 인간의 지능, 그 자체에 관한 주장이 아니에요. '지능검사'에 관한 진술이지요. 다시 말해, 1)과 3)은 '지능검사 무용론'이지, 지능이 유전과는 무관하다고 말하는 백지론이 아닙니다 (사실 지능이 유전성과 무관하단 미친 소릴 하는 인간들이 과연 있을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당초에 이 간단하기 그지없는 개념상의 구분을 하지 않은 채, 지능검사 무용론을 생뚱맞게 '백지론'이라고 일컬으며 양자를 마구 뒤섞어 주장을 전개하다 보니, 관련된 후속 논의가 산으로 가기 딱 좋지요.


바둑의 예를 끌어와 백지론과 지능검사 무용론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다시 정리해봅시다. 

 1) 기재(바둑재능)은 타고난 유전성과는 일체 무관하다.  -  강한 백지론 1 -
 2) 기재가 유전되긴 하지만, 그 차이는 후천적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 (즉, 이창호 수준의 타고난 기재가 1시간 공부할 동안, 평범한 기재를 가진 아이가 2, 3시간씩  배로 노력하면 그 갭을 극복할 수 있다) - 약한 백지론 2 - 

 a) 타고난 기재가 사람마다 다른가 어떤가라는 문제와는 별개로,  이를 객관적으로 수치화해서 측정하기란 불가능하다. -  지능검사의 원리적 부정론)
 b) 기재의 측정이 가능한가 문제와는 별개로, 현행 공인받는 기재 측정 검사는 너무 허접해서 누구나 연습만 하면 잘 할 수 있다. - 현행 지능검사의 유효성 부정론 -


지금 의견이 엇갈리는 지점이 어딘지를 논쟁 당사자들이 서로 분명하게 포착한 뒤 논의를 해야 뒤죽박죽이 안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