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lr클럽이라는데도 유빠들 소굴인데 희정이라는 닉을 가진 호남유빠가 퍼온 글이 아래 글인데 누가 저자인가 보았더니 김동렬이네요
한번 일읽어보세요
가관입니다
진즉 맛간줄 알았지만 마이 심하네요


유시민과 바지전쟁


민주당이든, 문성근이든, 손학규든, 기타등등이든, 개든, 소든, 말이든, 당나귀든, 노새든, 누구든 간에.. 그 어떤 사람이 그 어떤 짓을 한다면 그 이유는 대개 ‘그 사람이 할 줄 아는 것이 딱 하나 그것밖에 없어서’가 정답이다.



마라톤을 해도 페이스메이커 유시민이 필요하고, 장사를 해도 흥행메이커 유시민이 필요한데.. 유시민 없으면 총선, 대선 다 물건너 가는 건데, 그런데도 개나소나 다 달려들어 유시민 때리기를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그 자들 단지 그것 밖에 할 줄 아는게 없으니까.



어쩔 것인가? 유시민이 정치판 떠나버리면 젊은이들 정치판 관심 끊어버리고, 투표율 10프로 내려가고, 총선이고 대선이고 다 날아가버린다는 사실 뻔히 알지만, 그들에게는 침묵이나 유시민죽이기 외에 다른 선택은 없다.



정치인들은 언론에 이름 낼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한다. 그러므로 침묵하거나 유시민 때리거나 선택지가 딱 둘 뿐이라서 유시민을 때리는 거다. 그게 그들의 이유다. 그게 그들의 구차스런 생존방식이다. 정치가들 다 그렇지만.



어차피 이번 총선과 대선은 세대간 대결이다. 빽바지와 흑바지의 바지전쟁. 지금 한국에서 문제되고 있는 보수기독교 행패, 언론개혁 문제, 학생인권 문제 이거 다 60년대 유럽에서 학생혁명으로 짚고 넘어갔던 문제들이다. 우리가 딱 50년 뒤졌다.



제발 역사공부 좀 해라. 뭐 복지논쟁 어쩌구 하지만 본질 아니다. 학생혁명이 본질이다. 진보? 보수? 남북관계? 복지? 부동산? 웃기고 자빠졌어. 제발 역사책이나 좀 읽어라!



구조로 보라! 사건의 기승전결이 진행되는 각 단계를 헤아려 보는 시선을 얻어야 한다. 사건이 ‘결’ 단계에 이르면 누군가가 정당한 이의제기를 해도.. 쓸데없이 문제를 일으켜 피곤하게 만드는 인물이라고 낙인을 찍어 왕따시켜 버린다. 그러나 사건이 ‘기’ 단계나 ‘승’ 단계에 있으면 그 반대 효과가 일어난다. 죽이려고 하면 할수록, 밟으면 밟을수록 그 짓밟는 에너지를 흡수하여 더 크게 일어난다. 요원의 들불처럼 일어난다.



그러므로 밑바닥에 고인 에너지의 크기와 방향성을 들여다보는 눈을 얻지 않으면 안 된다. 표피를 관찰하지 말고 본질을 보란 말이다. 촛불? 광우병 쇠고기는 사실 PD수첩의 오보였어. 다 오해라니까. 오해풀어. 됐지? 상황끝. 자자 이제 다들 집에 가자구. 이렇게 해결이 되는 간단한 문제일까? 천만에! 이건 쇠고기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의 문제다. 에너지가 있으면 어디라도 약한 틈새를 찾아 기어코 터져 나온다. 지하의 마그마처럼. 촛불은 예고편이다. 밑바닥에 고여 있는 에너지는 그대로. 역사의 추동력을 받아 계속 간다.



쏘아진 화살은 그 자체의 동력에 의해 계속 날아간다.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미라보가 처음 혁명을 선동했지만 스스로 반동이 되었다. 사태의 급박한 전개에 놀라 휘둥그래진 눈으로 당혹해하며, 어쩔줄 몰라하며, 전전긍긍하며 쏘아진 화살을 멈추려 했기 때문에. 마라, 당통, 로베스피에르들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그저 그 역동하는 화살의 동력에 몸을 실었을 뿐.



주인공은 미라보도 아니고, 마라도, 당통도, 로베스피에르도 아니다. 에너지가 주인공이다. 화살이 주인공이다. 쏘아진 화살은 계속 날아간다. 적들의 심장을 관통하고도 화살은 도무지 멈추려 들지 않는다.



앞에서 찌른 한나라당이 제 1의 적이면, 뒤에서 찌른 민주당이 제 2의 적이다. 우선순위의 문제일 뿐 심판에는 열외가 없다. 화살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관통하고도 계속 날아간다. 유시민도 그 화살 멈추지 못한다. 그것은 화살 자체의 논리. 화살 자체의 결, 화살 자체의 지닌 관성. 형제여! 부디 이르노니 진리와는 대적하지 마시오.



개나 소나 다 유시민 죽이기를 하지만 이는 결과적으로 유시민에게 백만표를 몰아주는 일, 왜냐하면 의사결정의 법칙으로 볼 때, 구조가 복잡한 민주당을 상대하느니 유시민 하나를 상대하는게 편하기 때문. 패도 한 넘을 패는게 낫고, 밀어도 한 넘을 미는게 낫다.



그래서 힘센 자들은 다들 유시민을 패지만, 그래서 민초들은 다들 유시민을 민다. 그럴수록 유시민이 뇌관이 뇌고, 유시민이 정국의 키가 되고, 유시민이 떠오르는 것.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침 뱉고 유시민을 떠나가겠지만, 그때 그시절 노무현 대통령을 배신한 그들처럼 등돌리고 떠나가겠지만, 곧 그만큼 새 물이 들어와서 그 빈 공간을 메꾼다. 왜냐하면 사건의 기승전결 전개에서 지금이 ‘승’ 단계이기 때문이다. ‘승’ 단계에서는 반드시 이런 판 구조의 재편성이 반복적으로 일어난다.



그들이 유시민을 때릴수록 그들 스스로 계륵이 되어간다. 스스로 골치아픈 존재가 되어간다. 그때 그 시절의 미라보처럼. 죽일 수도 없고 살릴 수도 없고. 혁명의 영웅이면서 동시에 진정한 혁명의 방해자. 민주당은 총체적으로 미라보가 되어가고 있다. 집단의 의사결정을 어렵게 하는 계륵. 아 골치아파.



인간의 감정을 빼고 에너지의 법칙, 집단의 의사결정 법칙으로 보면 답이 나온다. 유시민은 죽어도 다시 부활하게 되어 있다. 선거의 승패에 연연할 필요가 없고, 판단의 옳고 그름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선거에 지면 동정표 받아 부활하고(한 두번 졌나?), 오판하면 경직되지 않고 유연한 인물로 여겨져서 더 크게 부활한다.



왜? 유시민도 정치판 무대 위에 올라 선 한 명의 연기자일 뿐, 역사가 진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역사 그 자체가 가장 멋있어지는 방향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법칙을 따른다. 주인공의 좌절과 실패와 오류가 없는 드라마 봤나?



유시민 져도 이기고 오판해도 이긴다. 잘해도 이기고 잘못해도 이긴다. 좌절해도 이기고 오류가 있어도 이긴다. 왜 배후의 진짜 주인공인 역사는 유시민 하나만 가지고 드라마를 쓰는게 더 편하니까. 그것이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역사의 힘이다.



설사 김해을에서 졌다고 그걸로 매장될 유시민이라면, 유시민이 고작 그 정도의 별 볼 일 없는 인물이라면, 일찌감치 관심 끊으시라. 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들이 유시민을 매장하면 할수록 더 크게 일어난다. 그래 좋다. 매장하는 단계까지 가보자.



궐기하라 후단협이여! 당신들의 때가 돌아왔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