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이 글의 목적은 인간 강간의 원인에 대한 온갖 가설들을 소개하는 것이다. 각 가설을 뒷받침하거나 반증하는 증거들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여기서는 각 가설을 간략히 소개하고 각 가설의 가망성에 대한 내 생각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포르노 때문에
 

포르노가 강간을 유발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포르노가 강간으로 이어진다는 가설은 온갖 형태를 취한다. 몇 가지를 살펴 보자.

 

첫째, 포르노는 여자 또는 여자의 육체를 존중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격하한다. 여자를 성교의 도구 정도로 묘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르노를 본 남자는 여자를 존중하지 않고 성교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방향으로 영향을 받는다. 그리하여 강간을 할 확률이 높아진다.

 

둘째, 어떤 포르노에서는 강간으로 시작했다가 여자가 성교를 즐기는 것으로 끝난다. 이런 포르노는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많은 포르노에서 여자는 성교를 거의 항상 무조건적으로 좋아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포르노를 본 남자는 여자가 항상 성교를 좋아할 것이라고 믿게 된다. 그리하여 여자가 성교를 하기 싫다고 분명히 표현할 때에도 좋으면서 그냥 빼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리하여 강간을 하게 된다.

 

셋째, 포르노를 본 남자는 성적으로 흥분하게 된다. 그런 흥분을 풀 수 없게 된 남자는 강간이라도 한다.

 

넷째, 강간을 다룬 포르노를 본 남자는 그것을 모방한다. 그리하여 강간을 하게 된다.

 

다섯째, 남자는 세상의 폭력 정도에 따라 자신의 폭력성을 조절하도록 자연 선택에 의해 설계되었다. 강간 등을 다룬 폭력적인 포르노를 본 남자는 세상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폭력 전략을 취하게 된다. 즉 강간을 하게 된다.

 

<동방불패> 같은 무협 판타지나 <해리 포터>나 <반지의 제왕> 같은 마법 판타지를 본 남자가 인간이 하늘을 날거나 마법 지팡이로 마법을 부릴 수 있다고 믿는 경우는 거의 없다. 현실의 경험과 판타지 영화의 경험이 충돌할 때, 예컨대 현실 속의 사람은 날 수 없는데 비해 판타지 속의 사람은 날 수 있을 때 남자의 믿음은 대체로 현실의 경험에 따른다.

 

나는 포르노 판타지의 경우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르노 속에서는 엘리베이터 속에서 여자들이 갑자기 처음 보는 남자에게 달려들어서 성교가 시작된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남자가 아무리 많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녀도 그런 일이 일어나는 법이 없다. 이럴 때 남자의 믿음은 거의 전적으로 현실의 경험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따라서 포르노 속에서 여자가 성교에 환장한 것으로 묘사되고 심지어 강간 당하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더라도 남자의 믿음에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여자는 아무하고나 성교를 하지도 않고 강간을 당하면 몹시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무협 판타지는 천하무적이 되고 싶어하는 남자의 판타지를 극화한 것이다. 포르노 판타지는 수 많은 젊고 예쁜 여자와 성교를 하고 싶어하는 남자의 판타지를 극화한 것이다. 아마 남자가 무협 판타지나 포르노 판타지를 즐기는 이유 중에는 그런 욕망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즐긴다고 해도 현실 감각에는 별로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실제로 여러 연구에 따르면 일반적인 포르노와 강간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 관계가 없다.

 

반면 강간 등을 다룬 폭력적인 포르노와 강간 사이에는 의미 있는 상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폭력적인 포르노를 더 많이 보는 남자가 강간을 더 많이 한다. 따라서 폭력적인 강간을 모방한다고 보는 모방 가설과 폭력적인 포르노 때문에 세상이 매우 폭력적일 것이라고 착각해서 (아마 무의식적으로) 폭력 전략을 취한다고 보는 가설은 고려해 볼 만하다.

 

문제는 상관 관계에서 곧바로 인과 관계를 추론해낼 수 없다는 점이다. 폭력적인 포르노를 보는 것이 강간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원인 때문에 어떤 부류의 남자가 폭력적인 포르노도 많이 보고 강간도 많이 하는지도 모른다. 거칠게 말하자면, 싸가지 없는 남자가 폭력적인 포르노도 많이 보고 강간도 많이 하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원인은 “싸가지 없음”이다. 그 싸가지 없음이 유전자 때문인지 환경 때문인지는 또 다른 문제지만 여기서는 깊이 들어갈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또한 모방 가설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인간은 아무거나 모방하지 않는다. 아빠가 망치질을 하는 것을 본 아들은 망치로 못을 박는 것을 모방하지 아빠가 실수로 망치로 손가락을 찧는 것을 모방하지는 않는다. 만약 인간이 무턱대고 아무거나 모방한다면 <위기탈출 넘버원> 같은 프로그램을 폐지해야 할 것이다.

 

폭력 전략 가설도 별로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남자가 방 안에 24시간 틀어박혀서 폭력적인 포르노만 본다면 모르겠지만 방 바깥 세상의 폭력 정도를 계속 관찰할 기회가 있다면 폭력적인 포르노가 그리 큰 영향을 끼칠 것 같지 않다.

 

발기 실험에 따르면 강간범들은 강간 기록이 없는 남자에 비해 폭력적인 포르노를 보았을 때 더 발기한다. 즉 그들은 폭력적인 포르노를 더 즐긴다.

 

 

 

 

 

뇌 손상 때문에
 

유전자 이상 때문에 또는 엄마가 임신 중에 술과 마약에 쩔어 살았기 때문에 또는 뇌에 영향을 주는 질병 때문에 또는 뇌에 직접적으로 외상을 입었기 때문에 뇌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거나 손상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강간과 관련된 메커니즘 예컨대 충동 조절 메커니즘 등이 손상되었다면 강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일부 뇌 손상이 강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전체 강간 사례 중 극히 일부일 것이다.

 

 

 

 

 

여자가 억압 받거나 차별 받기 때문에
 

여자의 지위가 남자의 지위에 비해 낮으면 강간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강간은 강제력, 폭력, 협박 등을 사용해서 성교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도와 마찬가지로 힘이 있는 자가 힘이 없는 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대체로 남자가 여자에 비해 훨씬 힘이 세다.

 

하지만 완력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성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 관계에 바탕을 둔 사회적 힘도 매우 중요하다. 건장한 아버지, 오빠, 남편이 있는 여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강간 당할 확률이 작다는 연구도 있다. 19세기 미국의 백인 남자 중에는 흑인 여자 노예를 별 거리낌 없이 강간하는 사람이 있었겠지만 그런 사람도 미국 대통령의 딸을 강간할 기회가 생겼더라도 한 번 더 생각했을 것이다.

 

여자의 사회적 지위는 이런 사회적 힘으로 연결된다. 즉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회일수록 여자의 사회적 힘이 더 강한 것이다. 따라서 여자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강간이 덜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다는 연구가 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지위의 차이는 대체로 사회 계급 사이의 지위 차이와 비례한다. 즉 노예 사회나 봉건 사회는 현대 서유럽 사회보다 계급 간 불평등도 심했지만 남녀 사이의 불평등도 심했다. 불평등한 사회는 두 가지 경로로 강간 확률을 높인다. 남녀가 불평등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여자의 사회적 힘이 작다. 게다가 남자 노예주와 여자 노예, 남자 봉건 영주와 여자 농노, 남자 자본가와 여자 노동자처럼 사회적 신분에서도 여자가 불리한 경우가 많이 있다. 이럴 경우 강간이 일어나기가 매우 높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사회가 폭력적이기 때문에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강간률도 높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런 상관 관계를 보여준 연구도 있었다.

 

폭력적 사회가 강간으로 이어지는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을 수 있다. 두 가지만 살펴보자.

 

빈 서판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모방 가설을 선호할 것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주변의 폭력적인 사람들을 모방하여 폭력을 휘두른다. 그런 폭력적인 행동 중 한 양상이 강간이다.

 

많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폭력 전략 가설을 더 선호할 것 같다. 이 가설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사는 사회의 폭력 정도에 맞게 폭력 정도를 조절하도록 설계되었다. 즉 더 폭력적인 사회일수록 더 폭력적으로 행동하도록 설계되었다.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남자가 더 폭력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이런 메커니즘이 발동한 결과다.

 

인간은 무턱대고 모방하지 않는다. 만약 어떤 사회의 남자들 대부분이 어떤 이유로 바보 같이 행동한다고 하자. 그 사회에 사는 남자는 남들처럼 바보 같이 행동할까? 아니면 자신의 지능을 뽐내서 더 예쁜 여자와 사귀려고 할까?

 

 

 

 

 

진화한 강간 메커니즘 때문에
 

강간이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효과적인 피임 수단과 낙태 수단이 개발된 것이 100년 정도 밖에 안 되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 100년은 3세대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진화론적인 시간 척도로는 순식간이며 무시해도 무방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 인간이 진화했을 때에는 효과적인 피임 수단도 낙태 수단도 유전자 감별 수단도 없었다. 따라서 강간이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다.

 

여자의 입장에서는 강간을 당하면 번식 상 손해를 보게 된다. 따라서 여자는 강간을 피하도록 설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도 강간을 매우 위험한 전략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자의 친족이나 친구가 강간한 남자를 가만 두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강간을 하면 임신으로 이어져서 번식 상 이득을 볼 수도 있지만 보복을 당해서 번식 상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물론 상황마다 이득과 손해의 크기가 다르다.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나 할머니를 강간하면 이득은 없고 손해만 볼 것이다. 부족장의 딸을 강간하는 경우에는 고아를 강간하는 경우보다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더 크다. 전쟁 시에 다른 부족 여자를 강간하면 보복 당할 가능성이 작다.

 

만약 남자가 이런 것들을 잘 고려하여 이득이 손해를 초과할 때에 강간을 한다면 전혀 강간을 하지 않는 남자나 시도 때도 없이 아무나 강간하는 남자에 비해 더 잘 번식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강간에 전문화된 강간 조절 메커니즘이 자연 선택의 결과로 진화했을 수 있다. 물론 그랬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일 뿐 실제로 그런 메커니즘들이 진화했는지 여부는 객관적으로 검증해야 하며 그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 할머니, 남자, 동물을 강간하는 경우보다 젊은 여자를 강간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것은 강간의 적응 가설과 부합한다. 하지만 강간이 아니더라도 남자는 보통 성적 대상으로 젊은 여자를 더 선호한다. 따라서 이것은 강간의 부산물 가설과도 부합한다.

 

부족장의 딸을 수십 명이 보는 앞에서 강간하는 경우보다 고아를 남들 안 보는 데서 강간하는 것이 더 적응적일 것이다. 실제로 남자는 대체로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 따라서 이것은 강간의 적응 가설과 부합한다. 하지만 남자는 물건을 훔칠 때도 보통 사람이 안 볼 때 훔친다. 또한 화가 나면 고아를 쥐어 박는 남자도 보통 남들 보는 앞에서 부족장의 딸을 두들겨 패지는 않는다. 따라서 남자의 그런 행동은 부산물 가설과도 부합한다.

 

그렇다고 강간의 적응 가설을 전혀 검증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강간 시의 정자의 숫자를 측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강간은 매우 위험한 전략이기 때문에 한 번 강간할 때 최대한 정자를 많이 사정해서 임신 확률을 높이는 것이 적응적일 것이다. 만약 강간 할 때 사정된 정자의 숫자를 측정해 보았는데 평소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부산물 가설로는 설명하기 힘든 현상이다. 하지만 강간 당한 여자의 신체를 검사한다고 정자의 숫자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강간을 실제로 하는 실험은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다. 그렇다면 강간을 다룬 포르노를 보고 자위 행위를 하는 경우와 일반 포르노를 보고 자위 행위를 하는 경우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실제 강간 실험보다는 설득력이 덜하겠지만 윤리적인 이유 때문에 다른 길이 없다면 이런 식으로 검증해보는 수밖에 없다.

 

머리를 잘 쓰면 이것 말고도 강간의 적응 가설을 입증/반증할 수 있는 길을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일부 남자가 싸가지가 없기 때문에
 

싸가지 없는 남자의 극단에는 정신병질자(psychopath)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상당히 싸가지 없는 남자들이 있다. 그런 남자들은 강간뿐 아니라 온갖 측면에서 사회 규범을 어긴다. 절도, 강도, 폭행, 살인, 사기 등도 많이 저지르는 것이다. 정신병질자든 아니든 싸가지 없는 남자가 강간을 확률이 높다는 것은 너무 뻔해 보이며 실제 연구에서도 그렇게 나온다.

 

싸가지 없는 남자의 특징 중 하나는 장기 짝짓기보다는 단기 짝짓기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랑, 결혼, 자식 돌보기보다는 많은 여자와 성교하는 것에 골몰한다. 어떤 진화 심리학자는 이런 현상을 보고 정신병질이 극단적인 단기 짝짓기 전략이라는 가설을 제안했다. 여자는 보통 남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성교에 응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많은 여자와 성교를 하고 자식 돌보기는 하지 않는 전략을 취하는 남자는 속임수나 강제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인간처럼 결혼을 하는 종에서는 단기 짝짓기에 전문화된 전략은 곧 싸가지 없는 전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로 강간범들에 대한 통계를 보면 성교한 여자의 숫자가 더 많다. 이것은 성적 욕망을 배출할 수 없어서 강간을 한다고 보는 가설과 어느 정도 모순된다. 반면 정신병질의 적응 가설과는 잘 부합한다.

 

 

 

 

 

좌절 때문에 또는 못 난 남자의 최후의 전략
 

인간은 좌절하면 폭력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좌절한 남자가 강간할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잘 연구된 통계를 본 적은 없다. 어쨌든 여러 강간범들이 자신이 외롭거나 좌절한 상태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적어도 소수의 강간은 좌절 때문에 일어나는 것 같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은 대체로 좌절하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상식 자체까지도 파고들려고 한다. 왜 인간은 좌절하면 더 착해지지 않고 폭력적으로 변하는가? 이것은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학자들이 보통 던지지 않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진화 심리학자는 그럴 듯한 설명을 준비하고 있다. 보통 남자는 지위가 매우 낮거나 배우자(또는 애인)가 없을 때 좌절하는 경향이 있다. 즉 통상적인 방법으로 번식할 가망성이 별로 없을 때 좌절한다. 이럴 때 강간 같은 반사회적인 형태로 번식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현재 결혼한 상태도 아니고, 지위가 매우 낮아서 앞으로 결혼할 가망성도 없고, 여자가 자신과 하룻밤 성교도 할 가망성도 없다고 하자. 만약 계속 착하게 살아간다면 아예 자식을 전혀 남기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 때 강간이라도 한다면 그나마 번식 가망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남자가 매우 좌절했을 때 강간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이 진화했을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 또는 좀 더 일반적으로 설명해보자면, 남자가 매우 좌절했을 때 더 폭력적으로 변해서 여러 반사회적 행동으로 번식을 추구하도록 진화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남자 증후군 때문에
 

20세를 전후하여 남자의 모험심과 반사회성은 절정을 이룬다. 이 때 강간을 포함하여 모든 형태의 범죄율이 가장 높다. 또한 과속 같은 위험한 행동도 가장 많이 한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 대부분은 반사회적 행동을 별로 하지 않는다.

 

이것을 어떤 진화 심리학자는 젊은 남자 증후군(young male syndrome)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진화한 전략이다. 젊은 시절에 경쟁이 더 치열하기 때문에 더 모험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취해서 경쟁에서 이기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여 정착하면 자식 돌보기에 좀 더 치중하는 전략으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물론 정신병질자 같은 소수는 전략을 바꾸지 않고 일관되게 반사회적인 전략을 취한다.

 

나는 이 가설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 대충 보기에는 별로 그럴듯해 보이지 않는다. 우선 젊은 시절에 경쟁이 더 치열한지 여부가 의문이다. 또한 남자들 간의 경쟁의 매우 중요한 측면은 이타성 경쟁이다. 이것은 여자가 이타적인 남자 즉 자신과 자식을 잘 돌볼 것 같은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쟁이다. 따라서 경쟁이 더 치열하면 더 이타적으로 보이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다. 게다가 남자들이 매우 폭력적인 전략을 취할 때 짱 보고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훌륭한 전략일 수 있다. 다른 남자들끼리 죽도록 치고 박고 싸우다가 죽거나 부상당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왜 20세를 전후하여 남자의 왜 그렇게 모험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을 보이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호르몬의 변화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설명이 설사 맞다 하더라도 진화 심리학자는 완전히 만족하지는 않는다. 왜 하필이면 그 때 예컨대 남성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는지를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새디즘 때문에
 

동의 하의 성교보다는 강간을 할 때 더 성적 쾌감을 느끼는 남자가 있어 보인다. 특히 연쇄 강간 살인범의 경우가 그런 것 같다. 그렇다면 그들은 성교를 하고 싶은데 여자가 동의해 주지 않아서 강간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강간 자체가 더 즐거워서 강간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소수인 것 같다.

 

 

 

 

 

여자를 지배하기 위해
 

Susan Brownmiller 같은 가부장제 이론가들이 지지하는 가설이다. 이 가설에 따르면 남자가 강간을 하는 이유는 남자 전체가 여자 전체를 지배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강간은 성교가 아니라 폭력이다”라는 문장의 한 가지 해석이다. 강간이 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폭력 또는 권력의 문제라는 것이다.

 

나는 <여자가 억압 받거나 차별 받기 때문에>라는 절에서 강간이 권력과 상관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즉 여자의 지위가 낮은 사회 또는 여자의 사회적 권력이 약한 사회일수록 강간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보았다. 여기에서는 여자의 낮은 지위는 강간의 원인이었다.

 

반면 Brownmiller의 가설에서는 여자의 낮은 지위가 강간의 목적이다. 남자는 여자를 굴종 상태에 놓기 위해서 강간이라는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남자 전체의 이해 관계와 여자 전체의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또한 남자들 사이의 이해 관계가 일치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나는 이 가설이 가망성이 없다고 본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남자들 사이에서 이해 관계는 첨예하게 충돌한다. 자신의 딸, 아내, 동생이 강간당했을 때 어떤 남자가 “그래? 여자 전체의 굴종적인 상태의 유지를 위해, 남자 전체의 이해 관계를 위해 누군가 강간이라는 훌륭한 일을 했군”이라며 만족할까?

 

둘째, 강간은 남자에게도 매우 위험한 일이다. 웬만한 폭행보다도 훨씬 심각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여자에게 굴욕을 주기 위해서 쓸 수 있는 덜 위험한 방법들이 있는데 강간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나는 남자가 그렇게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셋째, 만약 남자 전체가 여자 전체를 예속 상태에 놓기 위해 강간을 한다면 남자들이 나서서 강간을 금지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적어도 내집단 자유인의 강간은 금지된다.

 

강간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여자를 통제해야 한다. 따라서 통제와 관련된 심리적 메커니즘이 남자에게서 작동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본다면 “성교를 위한 통제”다. 강간을 하는 이유가 성욕 때문이냐 통제욕 때문이냐를 따지는 것은 이런 면에서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둘 모두 작동하기 때문이다. 강간을 위해서는 통제가 필요하다. 또한 통제욕만 작동한다면 굳이 성교를 할 필요가 없다.

 

 

 

 

 

사회가 강간을 권하기 때문에
 

어떤 문화권에서는 강간을 별로 처벌하지 않는 반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처벌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매우 타부시하는 반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그런 것에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마다 패야 한다”는 속담이 그런 관대함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전시 강간을 찬양하는(구약 성경을 보라, 징기스칸이 지배했던 사회도 비슷했을 것이다) 반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적어도 명목적으로는 전시 강간을 금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노예 같이 지위가 낮은 여자가 강간 당했을 때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반면 어떤 문화권에서는 어떤 여자도 강간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되어 있다. 강간을 별로 처벌하지 않는 사회, 여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에 관대한 사회, 전시 강간을 찬양하는 사회, 신분이 낮은 사람이 강간 당했을 때 신경 쓰지 않는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상대적으로 강간을 권하는 사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모든 문화권에서 강간을 금지한다. 단지 일부 문화권에서 인권이 무시되는 집단(다른 부족, 노예 등)이 있을 뿐이다. 인권이 무시되는 집단은 강간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인권이 무시된다. 내집단의 자유인을 강간하는 것을 장려하는 사회는 없어 보인다. 조폭 문화는 어느 정도 예외지만 조폭 행동대장도 보스의 딸을 강간했다고 자랑하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포르노, 조폭 문화 등 강간을 권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회의 일부 현상일 뿐이다. 대체로 부모는 자식에게 강간을 해도 좋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뉴스에서 강간은 찬양되지 않는다. 도덕 교과서에서 강간은 금지된다. 강간은 법으로 금지되면 강간범을 처벌 받는다. 영화에서 강간범은 악당으로 묘사되며 선한 영웅의 응징을 받는다. 즉 사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내집단 자유인에 대한 강간은 금지된다. 이런 면에서 강간을 권하는 사회는 없다.

 

 

 

 

 

각 설명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진화 심리학자들과 가부장제 이론들은 서로 다른 가설들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서로 다른 가설이 논리적으로 충동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논쟁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모든 가설들이 서로 완전히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우선 눈과 시력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자.

 

현생 인류의 눈의 기본 구조와 뇌 속의 시각 처리 메커니즘의 기본 구조는 사실상 같다. 그리고 그런 기본 구조의 많은 부분이 자연 선택의 결과일 것이다. 인간의 시각 메커니즘은 적응이며 보편적이다.

 

하지만 색맹도 있고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뭔가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유전자 이상 때문일 수도 있고, 엄마가 임신했을 때 술과 마약을 즐겼기 때문일 수도 있고, 질병 때문일 수도 있고, 사고 때문일 수도 있다.

 

쿵산족(부시맨)은 눈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들은 매우 멀리 있는 물체도 잘 본다. 그런 좋은 시력은 부분적으로는 선천적인 듯하다. 즉 인종(race) 또는 개체군(population)에 따라 선천적으로 눈이 좋을 수 있다.

 

텔레비전에서 눈이 매우 좋은 외국의 어떤 가족이 소개된 적이 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눈이 좋았다. 이것이 그 가족의 유전자 때문임은 뻔해 보인다. 즉 유전자 때문에 개인마다 시력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책이 있는 문화권은 그렇지 않은 문화권에 비해 근시인 사람이 많다. 책을 오래 보는 것이 근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환경에 따라 문화권마다 시력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같은 문화권에 살더라도 누구는 책을 많이 보고 누구는 거의 안 본다. 물론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 근시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즉 같은 문화권에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개인에 따라 경험이 다르고 그런 경험 때문에 시력이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서 눈과 관련된 기본적인 메커니즘이 인류 보편적이며 적응이라는 점, 어떤 사람의 경우 그런 메커니즘이 고장 나서 잘 볼 수 있다는 점, 개체군과 개인에 따라 선천적으로 시력이 다를 수 있다는 점, 문화권과 개인에 따라 경험이 달라서 시력이 다를 수 있다는 점 모두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는 모두 옳은 설명이다. 단지 차원이 다른 설명일 뿐이다.

 

이것을 강간에 적용해 보자. 남자에게 보편적인 강간 조절 메커니즘이 진화했다는 가설, 어떤 사람의 경우 강간과 관련된 뇌의 메커니즘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거나 고장 나서 다른 사람보다 강간을 더 많이 한다는 가설, 개체군과 개인에 따라 선천적으로 강간할 확률이 다르다는 가설, 문화권에 따라 강간률이 다를 수 있다는 가설, 개인의 경험에 따라 강간할 가능성이 다르다는 가설은 서로 모순되지 않을 수 있다. 강간의 적응 가설은 주로 진화 심리학자가 연구하고, 뇌 손상에 대해서는 주로 병리학자가 연구하고, 개체군과 개인의 선천적 차이에 대해서는 주로 행동 유전학자가 연구하고, 문화권과 개인의 환경적, 경험적 차이에 대해서는 주로 사회 과학자가 연구한다. 각 가설은 서로 다른 차원을 연구하는 것이다. 물론 각 가설이 옳은지 여부는 각각 독립적으로 검증해야 할 것이다.

 


2009-09-01